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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공포의 괴 전화... 그 정체는?


2001.4.25. 수요일
딴지 괴체험 전문기자 파토


 







길고 고통스러운 세월이었다.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 같은 누군가의 두 눈, 잊혀질 것 같으면서도 어김없이 되살아나던 공포, 무의식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린 심리적 압박감....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픈 일념에 필자는 고통스러운 기억을 되살려 지난호 기사를 썼었다. 괴전화 사건의 전말이 보도된 후, 전국 방방곡곡은 물론 미주와 중동지역에서까지 필자를 동정한 수많은 제보 메일이 답지하였다. 


쏟아지는 메일의 홍수속에는 나름대로 사건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한 많은 노력이 깃들어 있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들이었다.


좀 초자연적인 현상과 관련지어 말하겄슴다. 그전에 가위에 눌리셨다고 하셨죠? 그라믄 뻔하네용 원귀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일단 가는군요 너무 뻔하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함다 그럼 이만......


전 미국에서 사는 X창모라구 하는데요 신기한 경험을 하셨군요. 혹시 아는분중에 억울하게 죽으신분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 저는 왠지 이게 사람의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네요. 그럼 안녕히 게세요


위의 제보들은 전형적인 귀신원인론으로, 논지의 시작부터 마지막 인사말까지 한 호흡으로 귀결되는 간결한 문장이 압권이긴 하나 문제에 대한 아무런 근거나 대안도 제시해주지 못함으로서 필자를 또 한번 좌절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제보들이었다.


한편, 해당 조직에 관여된 분의 메일을 기대한다는 필자의 간청은 다음과 같은 제보를 초래하기도 하였다.
 







흐흐흐...사실 그 전화를 보낸것은 우리다.


20년전. 조직의 배추도사는 유에뿌오가 과거로 온것임을 점성술을 통해 알아내고 나에게 알려왔다. 본좌는 심히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그들은 왜 오는 것일까.혹시 나를 강간하려고?

이를 막기 위해 비밀리에 백곰과 태권뿌이 프로젝트에 착수햇다. 지휘자는 김박사와 배추도사.이것으로 나역시 순결을 보장 받을수 있음을 알고 즐거운 나머지 김박사를 나의 관저로 부른것이 실수였다. 


멀리서 오는 김박사의 번쩍거리는 문어머리(대머리)를 보고는 그자가 나를 유괴하려는 외계인이 틀림업다고 판단,필살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드뎌! 똥침! 으하하하.나의 필살기에 외계인은 울기 시작했다. 하하. 바보같은놈. 이것으로 지구의 평화도 지켜지겠지..

나는 모든걸 낙관하고 기쁨에 겨워 지는해를 쳐다보며 어머니를 회상했다.
아...부침개 먹고 싶다. 언제나 엄마가 해주시던 부침개는 졸라 맛있었다.

근데 이게 왠일인가? 외계인 녀석이 일어서며 한국말을 하는게 아닌가? 그는 나를 보며 중얼거렸다.
 
                 "순가락이노 조또 쎈노무시키..." 

허걱. 그는 평소 내가 존경해 마지 않던 김박사였던 것이다. (후략) 


- 제보자: 우주의 지배자 












나도 믿고 싶지만... 이번 일은 이게 아니었잖냐?


위의 글은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으로, 특히 김박사에 대한 응징 직후에 삽입된 어머니와 부침개 단락은 제임스 조이스의 의식의 흐름 기법을 온전히 계승한 절정부라고 할 것이다. 


또한 결론부의 극적 반전과 그 결과 밀려오는 무라까미 하루끼 적인 허무의 카타르시스 또한 글의 품격을 높이는데 일조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내용은... 그래, 외계인도 좋고 강간범도 좋다. 근데 필자에게 걸려온 괴전화에 대한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 있는거냐? 아무리 눈 씻고 봐도 덩그라니 첫 문장 하나 밖에는 없다!


필자는 문어대가리 강간외계인에게는 아무 관심도 없다. 그저 내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받고 싶을 뿐...


이어 다음의 제보를 보자.
 







오늘 꿈을 꾸었다. 깨어나보니 내 방이었다. 앞이 점이었다가 점차 동그랗게 떠졌다. 내가 혹시 기억상실증인가?

문열고 거실에 나와보니 무슨 동그란 기계가 있었다.. 기분이 안좋았다. 아마 그 기계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거 때문이겠지. 순간 느낌이 들어 밖으로 나왔건만 생각이 났다. 인간은 지구안에서 다른 시간대를 살고있다고 나는 그렇다면 인간들은 어떻게 적응하며 살아가지? 아... 저 기계는 그 시간대를 늘려주는 역할을 하는구나. 그래서 더 많이 살라고..

당장 아빠가 걱정되어 집안으로 들어갔다. 사랑방에 가서 가족회의를 하자 그랬다. 근데 아빠가 저 기계를 3번 누르고 오라는 것이다. 또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수명도 다른거라고.

아마도 키생각이 지금 떠올랐다.
키가 크면 촘촘하게 살고 키가 작으면 듬성듬성 산다. 아마도 30년밖에 못산 나폴레옹이나 모짜르트는 키가 컸었나? 옛날부터 시간대문제는 적용되어 온거 같았다.

그럼 아빠는 듬성듬성 사니까 나하고 대화가 어려워야 될꺼아냐? 근데 적응이 되는건 인간의 신비인가? 이걸 엄마한테 곧바로 얘기했지만 건성으로 듣는거 같았다. 다른 사람한테 똑바로 전해주는건 힘들구나... 하고 느꼈다. (후략)


- 제보자: 김병섭 


이 글은 보는 바와 같이 맥락을 알 수 없는 난해한 의미구의 연결로 점철되어 있다. 일제시대의 천재시인 이상을 연상케 하는 면도 없지는 않으나, 개인적으로는 상상력이 지나쳐 일상생활이 곤란한 지경에 이른 듯한 제보자가 걱정되는 심정이다.


이같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에 머리를 쥐어뜯던 중 전해져 온 아래의 제보는 지금까지의 것들과는 조금 색깔이 달랐다.
 







(전략 )고도의 심리전으로 정신적인 어택을 주어 궁극적으로는 필자가 처한 벙커와 같은 갇힌 공간에서 폐쇄공포증 성향의 정신적인 패닉을 유발하고 뚫린 공간 즉, 시원히 확 트인 사방 팔방의 세상천지가 한눈에 콱 들어오는 높은 곳으로의 개방화를 갈구하는 세뇌과정이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길 유도한것이 아니었나 싶다.

비상이라함은 결국 뛰어내려라 그리하면 날수있다. 라는 고도의 추상화와 다단계적인 연상작용을 통한 심리적 정신적인 공격으로서 이는 자살을 빙자한 살인미수라고 볼 수 있다.


주위사람-친구,부모,애인,형제자매-을 주시하라 그리고 의심하라.


- 제보자: 김애리


비상 이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한 독특한 감각 및 발상의 전환과 나름의 진지함을 배가시키는 현학적 문체가 돋보인 수작이었으나, 걱정해 주는 척 하면서 실은 주변의 모든 인간관계를 이간질하는 이 메일이야말로 극한의 외로움과 의심으로 필자를 내몰아 자살케 만들려는 살인미수의 의도가 아닌지 극히 의심스럽다.


그러나, 진실을 향한 염원과 어두운 과거의 극복을 위해 몸부림치던 필자에게 드디어 모든 비밀의 열쇠를 쥐고 있는 듯한 놀라운 제보가 한편 날아들었으니... 아래를 눈여겨 보시라.
 







혹시 KOROM이라는 조직에 대해서 들어서 들어본적이 있나? 그들은 미국에 있는 NSA와 비슷한 일을 하지. 안기부는 대외적인 조직이었고 국정원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 그들은 남산의 관사 지하에 숨겨져 있는 조직을 숨겨지기 위해 존재했어.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것이 들어온 이후, 전화선중 높은 주파수대역을 빌려쓰는 그것은 코롬 조직의 감청보고와 종종 꼬일때가 있었어.

그 과정에서 몇몇의 민간인이 진짜 감청보고를 우연히 받게 된거야.


비상.

그것에는 어떤 의미도 없어.

단지
단어와 단어사이의 노이즈. 그것이 모든 내용을 가질뿐이지. (후략)


- 제보자: 말로우드 


아아. 이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단어와 단어사이의 노이즈... 그렇다. 분명 필자가 받았던 괴전화에는 그런 잡음이 끼어 있었다. 56K 모뎀을 사용하는 유저들이여, 지금 전화기를 함 들어봐라. 전혀 무의미해 보이는 괴상한 노이즈를 마음껏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정교한 디지털 정보도 소리로 바뀌면 쓸모없는 노이즈로만 들리는 법...









그의 죽음은 정녕 자살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연, 이렇게 그 비상전화의 정체는 밝혀지는 것인가? 김구선생과 히틀러, 존 레논의 암살도 배후 조종했다는 거대조직 KOROM의 감청 정보...  결국 나는 그들의 비밀암호를 매일밤 들으면서도 놓쳐 버렸단 말인가. 세계평화가 내 눈앞에서 사라지고 만 것인가...


죄책감에 괴로워하던 필자, 본지의 조직망을 총동원하여 비밀 조직 KOROM 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한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다. 미국의 CIA, NSA 는 물론이고 이스라엘의 모사드, 러시아의 KGB, 독일의 게슈타포, 중국의 홍위병 등 전세계의 모든 정보기관에 암약중인 본지 조직원들을 풀가동하는 본지 창립 이래 최대의 작전이 시작될 찰라였다.


바로 그때였다. 아래의 메일이 날라온 것은.
 







본인이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던 1990년대 중반 실제로 흡사한 사건이 일어나서 언론에 회자된 적이 있어서 알려드리겠슴다.


메사추세츠의 어떤 뇬이 홈비지니스를 하믄서 1-800 넘버 즉,  수신자 부담 전용 전화선을 고객관리용으로 운용하고 있었는데 매일 밤낮 엄씨 90초 간격으로 어떤 넘이 전화질을 해대는 것이었슴다. 근데 수화기를 들면 아무말도 안하고 기냥 끊어버리는 것이었슴다. 


이 뇬은 미치기 직전까지 갔었지만 장사에 지장을 주기는 싫어서 6달 동안을 버텼답니다. 그러나 결국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뇬은 얼마후 수사결과를 듣고 히떡 디비졌는데...

경찰이 괴전화를 추적한 결과 발신지는...
메릴랜드주 포토맥 인근의 한 가정집 지하실에 설치되어 있던 보일러로 밝혀졌답니다. 


이게 무슨 광우병 걸린 소 풀 뜯는 소린가 하는 너거들은 함 들어바바. 이 보일러는 기름이 떨어질 때마다 자동으로 기름회사에 전화를 걸어주는 일종의 컴퓨터 경보장치가 장착되어 있었는데, 이 넘의 기름회사가 홀라닥 망해 버렸고 그 전화번호는 우리의 주인공 메사추세츠 뇬의 업무용 번호로 재배당 되어버린 것이었슴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믄 이 앵꼬난 연료탱크는 무려 반년동안 수백 키로나 떨어진 곳에서 인간의 도움도 없이 달랑 지 혼자 한 뇨자의 인생을 공포로 몰아 넣었던 것임다.

이상을 종합 유츄해 볼때 귀하가 받았던 괴 전화의 정체도 아마 엇비슷한 넘이 아닐까 싶슴다. 보다 학실이 알아보고 싶으믄 인근 가정집 보일러들을 주인 엄쓸때 몰래 하나씩 각개격파할 것을 강력히 추천하는 바입니다.


연희동에서 아침에 텐트가...
(제 본명과 이멜은 밝히지 말아줬슴 감사하겠슴다!)

 



이 메일을 읽은 필자의 뒷통수에는 커다란 땀방울 하나가 굴러 내리고 있었다.


글타... 시도때도 없는 전화, 녹음된 듯 합성된 듯한 목소리, 아무 내용도 없는 경고, 모든 정황이 다 여기에 들어맞는 것이다... 해머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에 휩싸여 있던 필자는 즉시 전세계 조직원들에게 급전을 보내어 KOROM 관련된 지상최대의 작전을 긴급히 중지시켜야 했다. 미국의 미드웨이 항모는 북태평양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러시아의 수호이 37 편대는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륙 직후 귀환하고 만다. 













아아... 정녕 너였단 말이더냐..


하지만... 5년전 나를 공포에 떨게 하고, 악몽에 시달리게 하고, 온갖 추측과 괴기한 상상을 유발시키고, 급기야는 이렇게 금쪽같은 본지 지면을 통해 제보까지 받게 만든 괴전화의 발신자가... 겨우 어느집 보/일/러 였단 말인가?


여하튼 이제 밤마다 필자를 짓누르던 공포는 사라질 것이다. 나를 감시하는 눈동자 따위는 없었고, 전세계적 감청을 자행하는 국제 괴조직의 음모도 상상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마땅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의 잃어버린 5년 세월에 대한 회한과 허탈감은 그 공포와 맞먹는 무게로 다시금 나를 압박하고 있다. 



이제 어쩌면 좋으냐? 지난 세월 동안 내가 주변에 진지하다 못해 비장한 표정으로 떠벌리고 다닌 그동안의 이야기를 어떻게 수습하란 말이냐? 그 쪽팔림을 어찌 감당하란 말이냐... 




 


 * 다음편 공포의 가락동 무당귀신 을 기대하시라...!


 


어느 기름집하고
  전화번화가 비슷했던것 같은
파토(pato@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