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문화] 三 國 志 (3)

2001-04-24 00:00

작은글씨이미지
큰글씨이미지
너부리 추천0 비추천0




[문화] 三 國 志 (3)

2001. 4. 24. 화요일
딴지기자 너부리

이번 호에는 지난 47호에서 예고한 바와 같이 현재 본지에서 절찬리에 연재되고 있는 무삭제 고우영 삼국지의 그 험난했던 복원과정과 삼국지 전용 게시판에서 제기되었던 독자제위의 몇가지 궁금증과 요구사항 등을 본 기자가 공식적으로 답변하며 3회에 걸쳐 연재하는 三 國 志기사를 마치고자 한다.


 


 작품의 복원



다시 태어나는 장비...


70년대 말 한국도서잡지주간신문윤리위원회(현 항국간행물윤리우원회의 전신)의 심의로 출판과정에서 고화백의 원본자체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는 것, 그럼으로 해서 수 많은 독자가 무삭제 삼국지를 염원하고 있음에도 출판될 수 없었다는 것은 지난 47호에서 본 기자와 고우영 화백과의 이너뷰를 통해 독자제위들도 확인한 사실일게다.


그리고 훼손된 그 원본그림을 되살린다는 것... 그것이 작가에게는 얼마나 큰 고통이 되는 것인지 독자제위는 짐작할 수 있겠능가?


사실 본 기자가 지난 2월에 고화백을 대면하고서 무삭제 삼국지를 복원하자는 제의를 했을 때 고화백은 단호하게 거부를 하셨드랬다.


난도질 당한 원본을 다시 쳐다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며, 그 원본뭉치들을 만지노라면 마치 죽은 자식의 몸을 더듬는 아비의 심정처럼 처참한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실제로 고화백은 자신의 보물 1호가 될법한 작품의 원본들을 마치 상복을 입혀 놓은 듯 누런 갱지로 포장하여 작업실의 구석탱이에 방치하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본 기자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그때의 상황을 이너뷰의 형식으로 함 재현해 보자(과장 엄씀).








상황 재현(2001. 2. 8 - 47호 이너뷰 참조)


..........


너부리: 그럼... 이제는... 선생님의 무삭제 삼국지를... 다시 볼 수는 없는 걸까요? (한참을 흥분해서 날뛰다가 겨우 내뱉은 질문 되겠다.)


고화백: 글쎄요...


너부리: ...


고화백: ...


너부리: ...


고화백: ...?


너부리: ... ㅡ,.ㅡ


고화백: ... 허허 ... 지금 나보고 다시 그려달라는 거 같은데... 전 이제 그 그림들 쳐다 보고 싶지도 않아요.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다시 내놓기도 싫고...


너부리: ...


고화백: ...??


너부리: ... ㅡ,.ㅡ


고화백: (손을 휘휘 저으며)글쎄... 싫다니까는...


너부리: ... 살다보면...


고화백: ...???


너부리: ... 싫은 일도 ...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고화백: ㅇ,.0


(하략)


그렇다!


고우영 무삭제 삼국지를 복원하기 위해 본 기자가 선택한 방법은...


땡깡이었다.


본 기자, 이 자리를 빌어 오후 4시에 찾아와 저녁식사 때가 다가올 때 까정 철푸덕 똥꼬를 붙이고 앉아 작업 및 식사를 방해하고, 적반하장의 생때를 부려가며 데구르르 굴러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서나 가까운 군부대에 신고하지 않으셨던 고화백의 배려에 대구리 숙여 감사의 말씀 올리는 바이다.


 


 복원의 과정



 저 칼질 당한 원본에 원래 있던 대사가 뭐였을까?  쩝... 연재보다보믄 나오겠지 뭐...


독자덜 중에 이번의 연재가 과거 70년대에 잠시 발매되었던 10권 짜리 무삭제 삼국지를 용케 구해서 스캔한 것이 아니냐는 질문들이 많았다. 물론 복원작업 과정에서 작가의 옛 기억만으로 복원할 수 없는 장면은 작가 조차도 유일하게 한질을 소장하고 있는 과거 무삭제본(엠비쒸의 만화열전도 이 책으로 만들어짐)을 확대 복사하여 다시 원본에 따 붙이는 작업을 병행하였드랬다.


그러나 한가지 유의할 점은 과거 무삭제본 10권 삼국지도 사실은 완전 무삭제는 아니였다는 점이다. 본 기자도 이번 취재를 통해 새로이 알게된 사실 되겠다. 즉, 신문의 연재와 같이 했던 과거의 무삭제본 삼국지에도 모자이크 및 화이트질 형식의 수정은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지가 연재하고 있는 고우영 삼국지는 작가가 처음 원본에 펜을 대기시작했던 상태의 오리지널 원본 삼국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예 1>










10권 짜리 무삭제(?)판


복원 삼국지




초선이 동탁에게 유린당한 뒤의 표현이다. 사실 과거 무삭제본에서도 위와 같은수정이 있었던 것이다. 글구 최근에 복원된 부분은 과거와 그림이나 구조가 약간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삭제본을 소장하고 있는 독자들은 확인해 보시라.


<예 2>










10권 짜리 무삭제(?)판


복원 삼국지




이거이가 바로 무려 20여년 전에 이미 울나라에서 구현되었던 엽기 하드고어란것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너무 잔혹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허나 의부를 죽이는 여포의 잔인함과, 욕심 많던 네로 동탁의 비참한 최후를 이보다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겠능가?


물론 위 장면도 새로이 복원된 컷임을 알 수 있으리라.


<예 3>










10권 짜리 무삭제(?)판


복원 삼국지




24년... 세월의 풍파에는 10권 짜리 무삭제 판도, 작가의 원본도 온전할 수가 없었다. 행여나 깨끗한 스캔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마모되고 변색된컷 까지 하나하나 독자제위를 위하여 깨끗이 복원작업을 일궈낸 것이다. 눈알이 빠지든 말든 이런건 충분히 그냥 볼 수 있으니 제발 이런 노고까정하실 필요는 없다고 본 기자가 극구 만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면 관계상 모든 것을 보여줄 수는 없으나, 이 밖에도 완전 오리지널 삼국지를복원하기 위해 조조가 화타를 고문하는 장면이라든가, 전시 중의 효수 장면, 초선과 몇몇 여인들의 베드씬 등 무삭제 10권 삼국지에서 조차도 수정되었던 많은 부분을 원본 그대로 손수 복원한 고화백께 독자제위덜은 알아서들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독자제위의 궁금점


본 기자에게 개인 멜, 또는 삼국지 전용 게시판에 개재되었던 독자제위의 의문사항들과 요구사항에 대한 입장을 밝혀보고자 한다.






Q. 연재 페이지를 늘려달라.


A. 이고는 심각히 고려중에 있다.


고화백의 복원작업은 이 기사가 나갈 쯤이면 아마도 마무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구 고화백께서 독자덜을 위하여 연재량을 늘려 주는게 어떻냐는 의견을 개진하신 바도 있기 때문이다. 조케따...


허나... 독자제위께서 애꿎은 똥꼬털만 비비 꼬아가며 안타까와하는 모습이 어째서 본 기자에게는 때때로 야릇한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물론 본 기자는 내일꺼 미리 본다. 억울하면 신고하덩가...


Q. 책 또는 CD로 재출판 해달라.


A.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저작권은 삼국지 전용 게시판 1311번의 우석출판사의 한 관계자가 야그했듯이 여전히 우석과의 계약관계가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CD라고 하는 디지털 출판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2월달부터 무리하게 복원작업을 지속했던 고화백에 대한 수익사업의 일환으로써, 그리고 영구 소장용 고우영 무삭제 삼국지로써의 가치가 있으리라 본다.


글구... 본지도 던 좋아한다.


쩜만 기둘리시라.


Q. 그 외의 다른 작품도 연재해 달라.


A. 60대를 넘은 작가의 고된 복원작업이 쉽지 않음은 독자제위들도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초한지, 수호지, 서유기, 일지매 등의 원본에도 삭제, 수정량이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단기간 내에 작가의 기억력만으로 그 모든 것을 복원하기는 힘든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생계에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 것이 복원작업이기도 하다.


물론, 잊혀질뻔 했던 명작의 복원이 어떻게든 이루어졌으면 하는 것은 대다수 독자들의 바램과 마찬가지로 본 기자의 염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한쪽 눈의 시력을 거의 상실하신 노()작가에게 모든 작품의 복원을 요구하는 것은 과거 원본삭제를 강요했던 것 이상으로 고화백에게는 마음의 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씨바...


Q. 고화백 팬클럽 또는 동호회를 만들어 달라.


A. 그동안 본 기자에게 개인 멜로 또는 게시판을 이용하여 팬클럽 또는 동호회를 만들자는 많은 의견이 있었더랬다. 해외교포들 사이에서도 어케든 팬클럽 활동을 할끼라고 기염을 토했던 바도 있다.


이제 에쵸티 팬클럽의 아성은 무너질 것인가...


 


 


 에필로그








명동의 신문팔이(edrong@hanmail.net)


찢어지게 가난하던 우리집의 삼형제는 저녁이 되면 한국일보에서 띠어온 일간스포츠를 명동에서 팔았지요.


지금 기억으로는 100부를 가져와서 다 팔면 1300원을 벌었습니다.


큰형은 50부. 둘째형은 30부. 나는 20부.


저녁 7시부터 뛰어다니며 신문을 팔다 9시 정도되면 지치게 됩니다. 그때쯤 나는 챔피온다방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남은 신문 펼쳐들고 낄낄대며 고우영선생의 만화를 보았습니다. 그러고 앉아있으면 큰형이 신문을 다팔고 와서 내손에 50원을 주고 저의 남은 신문을 들고 다시 달려 갑니다.


그돈 50원으로 저는 제일백화점(?)뒤에서 오뎅을 사먹고요...


맛있게 먹고 쉬고 있으면 큰형과 둘째형이 신문을 다 팔아치우고 우리는 집으로 걸어서 왔지요.


새삼... 그 시절이 떠오르네요.


삼국지 기사로 인해 본 기자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으로 50대의 독자에게 메일을 받아보았으며, 짧은 영어실력으로 겨우겨우 해석을 해서 볼 수 있었던 해외교포의 격려메일, 우석출판사 관계자의 협박, 비난성 게시물과 메일도 받아 보았다(우석출판사의 공식적인 반박문을 기사화 해줄 것을 약속했으나 아직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이씀). 본지의 페이지 뷰가 늘어날 수 있다는 예상에 누구보다 즐거워하기도 했으며, 행여 던을 벌 수도 있지않을까 하는 기대에 누구보다 가슴 왈랑거리기도 했더랬다.


그러나...


본 기자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고화백께... 칭찬받았다는 것이다.(첨엔 무지 미오하셨거든)


그동안 본지의 당돌한 부탁을 수렴하여 그 괴로운 복원작업을 일구어온 고화백께, 그리고 아낌없는 성원으로 작가의 복원작업에 힘을 실어준 많은 독자덜께 본 기자 대구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이것으로 3회에 걸쳐 새빠지게 스캔질을 해가며 연재했던 삼국지 기사의 피날레를 장식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삼국지 전용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 고화백께서 하나도 빠짐없이 확인하고 계시고, 실제로 독자제위 중에는 고화백의 답메일을 직접 받아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게시판을 통한 독자제위와 작가와의 활발한 커뮤니케이숀이 지속되길 바라며 연재되는 오리지널 무삭제 고우영 삼국지의 복음이 널리 전파되는 것이 본 기자의 소박한 바램 되겠다.



삼국지 복원작업 중의 고화백(2001. 4. 12)


이상. 졸라~!



딴지기자
너부리(
newtoilet@ddanz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