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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중국이 우리의 미래다(?)

 

2009.7.22.수요일

 

자기개발을 위해서 1년에 한 번씩은 해외를 다녀오겠다는 생각을 했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했지? 그 말 들으면서 쓰게 웃었던 건 나는 서른살 때부터 매해 그 생각을 했었지만 전혀 근처에도 못가고 있는 형편이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도 여권에 다른 나라 입국심사대 스탬프가 찍혀 주려면 한달 쯤 전에는 일정을 잡고 예약을 해야 하는데 오늘 오후 스케줄도 모르는 내 주제에서 한 달이란 삼천 갑자와도 같은 시간이거든. 

 

 

그래도 올해는 어떻게 그 기회를 잡았어. 중국 북경에 가게 된 거야. 15년 전 새까만 조연출 시절에 고구려 도읍지를 한 차로 돌아들며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노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잠깐 들렀던 북경과는 괄목상대의 차이가 있더군. 우선 택시에 창살이 없어졌더라고. 15년 전 북경 택시 운전석은 철창으로 칭칭 감겨 있었고 그 사이에 난 구멍으로 요금을 주고받으면서 흡사 전당포에 온 기분이 들었었는데 말이지.

 

 

숙소는 중국에서 오래 머물러 왔던 아들 녀석 친구의 누나네였어. 7성급 호텔보다 좋다는 공짜 숙소인데다 짝퉁 DVD 타이틀 그득한 DVD 플레이어까지 구비되어 있으니 더 이상 좋을 수 없었지. 에어콘 빵빵하게 틀어놓고 못본 영화 실컷 보면서 북경의 첫밤이 깊어간 것까진 좋았는데 한참을 달게 자다가 꾸르륵 신호에 잠이 깼어. 기분 낸다고 마셔 댄 맥주가 좀 과했나 봐.  엉거주춤 일어나서 화장실을 찾는데 작은 문제가 발생했어.
 
온 집안이 암흑천지인 가운데 대충 위치를 알고 있던 스위치를 더듬더듬 찾긴 했는데 죽어라고 눌러도 불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야. 방이고 화장실이고 모든 전기가 끊겨 있었어. 아뿔싸 정전이구나....... 하필이면 이럴 때 정전이 되냐...... 새벽 3시에 주인 깨워서 플래쉬 달라 그럴 수도 없고 배 속에서 뱃고동은 타이타닉처럼 울려 대고...... 소파 모서리에 부딪치고 곤히 자던 아들 녀석 배를 짓밟으면서, 가까스로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쥘 수 있었고 그 불빛으로 암흑과 싸우며 위기를 벗어났지.  올림픽까지 치른 주제에 (?) 간만의 방문자에게 이런 전력 사정을 선보이는 중국에 대해서 온갖 악담을 퍼부으면서 말이야.

 

 

정전은 다음날 아침 날이 밝고 잠을 깰 때까지도 계속되고 있었어. 이런 한심할 데가..... 나는 혀를 차면서 주인 아가씨에게 말했어. "고생 많으시겠어요. 이렇게 전력 사정이 안좋아서야 원......." 그랬더니 집 주인 아가씨의 눈이 등잔만해져서 허둥지둥 서랍을 뒤지며 뭘 찾더니 외마디 비명을 지르더군. "아 어제까지였구나."  

 

정전이 아니래...... 중국에서는 전기요금을 날짜로 계산해서 내는데 만약 요금 납부가 이뤄지지 않으면 즉일 즉시로 전기를 끊어버린다는 거야. 나의 어둠 속 애달픈 절규는 부실한 전력 사정 탓이 아니라 돈 얼마를 제 날짜에 맞춰 내지 못한 때문이었던 거지. 지금까지 체납한 적도 없고 며칠을 연체한 것도 아닌데 한 마디 말도, 경고도 없이 깔끔하게 송전을 차단해 버리다니 만만디로 이름난 나라가 어찌 이럴 수 있나. 성미 급하기로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목을 맬 대한민국도 단전 때문에 촛불 켜고 생활하던 사람들이 죽음을 당한 뒤에는 단전을 포기하고 제한공급을 하는 쪽으로 전환했는데. 그렇게 한탄을 하니 주인 아가씨가 이렇게 정리를 해 온다. 

 

"13억이 돈독 올라 있다고 보시면 돼요.  돈 없으면 죽어요."

 

돈 없으면 죽는다...... 택시 요금이 10위안 나와서 50위안을 줬더니 잔돈 줄 생각은 않고 깜찍하게 시치미 떼면서 허공만 바라보던 택시 기사나 30위안짜리 기념품을 팔고 100위안을 받아챙기고는 장난감 돈 70위안을 천연덕스럽게 거슬러 줘서, 이를 뒤늦게 발견한 아내의 머리에서 김이 나게 만들었던 천단 공원의 상인도 아마 "돈 없으면 죽는다"는 살벌한 구호를 머리에 두르고 있었겠지.   

 


                    이런 돈에 속았어........  완전히 새됐다

 

하지만 솔직히 낯설지는 않았어. 돈 없으면 죽는다는 13억과 국민 여러분을 부자로 만들어 드립니다를 부르짖는 사람을 스스럼도 없이 역대 최대 표차로 대통령으로 뽑아버린 나라의 4천만이 무슨 대차가 있으려고. 그리고 자기네 나라 말 한 마디도 못하는 외국인들을 봉삼아 벗겨먹는 것이야 우리나라 이태원에도 널려 있는 풍경 아니겠어. 그런데 주인 아가씨의 다음 말은 나를 조금 무섭게 했어.

 

 
      중국 수영장이란다.... 후와                                    다 해먹을 거야.......?  
 
"그런데 여기 사람들은요. 부자를 욕하지 않아요. 돈을 어떻게 벌었는지 탓하지 않아요. 자기가 그 위치에 못 간걸 애석해할 뿐이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욕하는 돈지랄은 중국에서 흉이 안돼요. 그저 부러울 뿐이지. 부자들은 자기네들끼리 만리장성 쌓고 살아요. 내가 헬기타고 등교하는 애까지 봤어요."  

 

이번에 낙마한 검찰총장 후보자께서는 중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이 천추의 한이 될 거야. 교외의 조그만 곳 (워커힐 호텔)에서 결혼식을 한 게 무슨 죄라고, 자신의 능력과 권력을 담보로 무이자로 돈 기십억 빌린 것이 무슨 문제라고, 해외여행가는 길에, 진짜 빠리의 명품점도 아니고 면세점에서 기백만원짜리 가방 하나 산 게 무슨 시빗거리라고 그렇게 악다구니들을 치냐 말이지. 사람들이 좀 대국적이지 못하고 말이야.  

 

 

그런데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국적이 되어 가는 게 두려워.

 

아이들이 똑똑해서 가는 학교가 아니라 아버지의 직업이나 할아버지의 재산의 힘이 더 크게 좌우하는 명문 학교의 존재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개인의 능력으로 대범하게 치환되어 가는 걸 보면, 움치고 뛰어도 경쟁할 깜냥이 안되는 사람들이 그걸 묵묵히 받아들이는 걸 보면, 부자들 가슴의 대못 아니 손톱의 가시를 뽑아 주느라고 세수(稅收)가 펑크가 나도 그러려니 태연하게 넘어가는 거 보면 우리의 국량이 점점 중국의 대국스러움을 따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공포가 든다는 거지.

 

더더군다나 대형마트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고통스럽게 해체되어 가야 하는 시장 상인들의 애끊는 호소 앞에서 "옛날에는 얘기할 데도 없었는데 이렇게 얘기 할 데라도 있으니 좋지 않느냐."면서 폭넓게 세상을 보라 충고하시는 더 이상 클 수 없는 분이 우리를 이끄시고 있잖아.

 


 
날고 뛰어 봐야 아직은 우리의 70년대 분위기고 경제 규모만 컸지 너희들의 의식 수준은 아직 멀었다고 억지로 으스대고 있었는데 북경의 첫날밤을 거치면서 나는 어쩌면 중국이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이 우리의 미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었어.

 

돈지랄이 경제를 살리는 부자들의 소비"로 바야흐로 명의변경을 일으키고, 애초에 될성부른 돈잎들은 따로이 재배되어 쭉정이들과 차별되며, 세금 포탈에 분식 회계에 뭔 짓을 하더라도 "국가경제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 죄를 탕감받는 사회의 중장기적 모델이라면 중화인민공화국을 빼놓고 어디를 감히 논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지. 착각일까?  착각이었으면 좋겠어.

 

산하(nasanh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