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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표결은 무효다. 하지만 정신차려야 된다.

 

2009.7.23.목요일
 

 

 

어제 여의도 구석탱이에서 벌어진 활극, 아니 비극은 다들 지켜보셨냐.

 

길거리와 서울광장, 용산, 평택, 한예종과 교육 현장, 검찰청 및 각급 관공서, 부엉이 바위 등에서 자행되어 온 역사 꺼꾸로 돌리기는 (아인슈타인은 틀렸다. 과거로의 시간여행은 이렇듯 쉽게 가능한 것이다) 그 총본산이라고 할 국회에서 어제 또 한번 농도 짙게 펼쳐졌다.

 

마, 미디어법 혹은 언론관계법 개정안이 먼지, 저넘들이 왜 이렇게 통과시키려고 난리 부르스를 추고 있는지는 그간 각 언론과 본지에서도 다룬 바 있으니 아시리라고 보고 더 이야기하진 않을란다.

 

그보다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어제 있었던 사태에 포인트를 잡고 논의를 끌어나가는 게 더 맞는 일이지 싶다.

 

일단 한가지만 짚고 넘어가자.

 

"아 씨바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 아니냐. 선거를 통해 다수를 차지한 집권당이 표결 처리하면 하는 거지, 왜 자꾸 그걸 막을려고 지랄이냐."

 

...이런 식의 주장이 있다. 특히 수구 친여 성향이 강한 사람일수록 이런 관점을 갖거나 동조하게 마련이다. 사실 기계적으로 생각해 보면 얼핏 그럴싸해 보이기도 한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흔히 표결을 민주주의 상징으로 여기곤 하지만, 사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표결은 그저 제도일 뿐 목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표결이라는 제도는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동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안에 대한 결론을 내야만 하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도, 원래 대가리 수 많은 쪽이 무조건 이긴다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사실상 일당백의 권력을 가진 왕이나 권력자의 횡포에 대항하기 위해 1인 1표의 개념을 정립하고, 특정인과 집단에 대한 권력의 집중을 견제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던 거다. 특히 대의민주제에서는 대의자가 국민의 뜻을 반드시 반영한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니 더욱 세심하게 접근해야 한다.

 

 

반면 실제로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것은 합의의 정신이다. 합의를 위해서는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며, 솔직한 의견 교환이 요구된다. 어느 쪽이 다수의견인지 소수의견인지가 먼저 전제되는 것도 아니요, 합리적 주장과 이를 뒷받침하는 논리가 그 요체가 되는 거다. 표결은 이런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그것이 해결되지 않았거나 합의된 내용을 공식화 하기 위해 쓰는 방법인 거다.

 

당연히 중요한 사안일수록 이 합의의 과정은 길어지고 정밀해지고 또 논의에 참여하는 사람의 영역은 넓어질 수 밖에 없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여야 정치인들 간의 대화는 물론이고, 학자나 전문가들의 연구나 의견, 정확하고 정직한(조작된 거 말고) 데이터를 통한 검증, 공청회나 여론 조사를 통한 시민의 의견 수렴 등등이다.

 

물론 모든 시시콜콜한 사안에 다 이런 방법을 충분히 동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운하 같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대규모 사업이나 미디어법 같은 큰 사회적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는 법 개정에는 이런 합의의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알다시피 이게 제대로 되지 않은 거다. 그간 각 언론의 여론조사를 보면 미디어법 개정 반대가 항상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찬성은 2~30% 선에서 그치고 있다. 아래 표를 보면 그간의 여론조사 추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을 거다.

 


사진을 누질르시라. (출처: 미디어오늘)

 

위 표는 작년 9월부터 현재에 걸쳐 국민 대다수가 미디어법 개정의 당위성에 공감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는 객관적 사실을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반대 이유의 대부분은 정부 여당의 언론 장악 의도에 대한 경계이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내가 다시 다수결의 원칙을 마냥 적용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기간 동안 법개정에 대한 찬성 여론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 따라서 정부 여당이 이 문제와 관련된 국민적 합의 도출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거다.

 

그리고 그 노력 부족의 이유는 이들이 게을러서나 머 그런 게 아니다. 얼마 전 자료 조작 사태에서도 드러났듯이 근거와 명분이 실제로 부족하기 때문에 국민을 설득할 논리가 없는 거다. 그것은 삼척동자도 알듯이, 이 법개정이 진짜로 여론 장악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찬성하는 30% 조차도 실은 대부분 그걸 알고 있을 거다. 조선일보 같은 수구 언론이나 대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그걸로 좌파를 영원히 척결하는 것이 아닌 한, 이 법에 대해 굳이 찬성표를 던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렇게 국민이 법개정 주체의 의도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는 상황에서 누가 봐도 시급하지도 않으며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크게 의심되는 재벌의 언론 참여를, 이토록 강경하게 몰아붙이며 직권 상정/표결 처리하는 것은 절대로 진짜 민주주의일 수 없다.

 

이건 그저 민주주의의 외형만을 뒤집어 쓴 계략이요 술수다.

 

물론 그 지상 목표는 장기 집권과 이 나라 전체의 극우화다. 김홍도 목사의 말마따나 사탄의 혀와 입을 막아 파시스트 지상 낙원을 만들려는 자들의 극히 반민주적, 반시대적 책동. 이런 꼬락서니 앞에서 회의장 내에서의 다수결의 원칙은 본질을 잊은 비뚤어진 형식에 불과하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식칼도 사람을 겨누면 흉기일 뿐인 것을.

 

물론 더 큰 문제는, 그런 형식적 원칙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여기서부터는 좀 냉철한 입장을 취하자. 진짜 냉정해서가 아니라 그래야만 저들과 제대로 싸움을 끌고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것을 정확히 구분해야 낚시질을 당하지 않는다.

 

지금 인터넷상에서 너무 많은 주장이 오고 가면서 사실관계에 혼동이 오는 측면이 있다. 이 부분들 중 정확하고 꼭 필요한 것만 취사선택해서 방향을 잡아 나가는 게 이제부터 필요한 일일 거다.

 

일단 어제의 사태와 관련되어 지금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투표 종료 후 정족수 미달로 인한 재투표의 가능 및 효력 여부이고 둘째 대리 투표 여부다.

 

먼저 첫 번째 것부터 이야기해 보자. 이것은 소위 일사부재의의 원칙과 관련된 문제다. 일사부재의란 한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내에 다시 제출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소송법상의 일사부재리 원칙하고는 다른 것).

 

이게 쟁점이 되는 이유는 신문법에 이어 이번 미디어법 개정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방송법 표결 때 투표 종료 후 정족수가 모자라 다시 투표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는 분도 많겠지만 잘 모르는 분들도 있을 테니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울나라 현재 국회의원 총 수는 294명이다. 따라서 그 과반수인 148명(절반은 147이지만 과반이라 148명이어야 함)이 표결을 위한 정족수다. 그리고 그 과반수인 75명이 찬성을 하면 표결에 부친 법안이 통과가 되는 거다.

 

그런데 방송법 표결 상황에서 145명만이 투표에 참여한 가운데 투표 종료가 되어 버렸고, 그 결과 정족수가 모자라는 사태가 되어 버렸다. 이에 민주당은 부결되었다면서 만세를 불렀고, 당황한 이윤성은 재투표를 선언하여 결국은 법안 통과를 선언한 거다.

 

 

자... 여기에 대해 지금 정계, 학계, 법조계, 국민 할 것 없이 여론이 두 개로 나눠지고 있다. 한쪽은 부결된 게 맞고, 일사부재의 원칙 적용해야 하고, 따라서 방송법은 통과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 근거는 국회법 제 92조,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중에 다시 발의 또는 제출하지 못한다(일사부재의) 와 국회선례집에 있는 투표 종료를 선포했을 때는 투표할 수 없다라는 문구 등이다.

 

한편 저쪽에서는 애당초 정족수가 부족했기에 투표 자체가 무효인 거고, 따라서 부결이 아닌 투표 불성립이라는 거다. 그래서 일사부재의 원칙이 성립되지 않으며, 재투표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국회사무처도 놀랍도록 발 빠르게 이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속보이는 넘들 나서긴...).

 

자, 그럼 어느 쪽이 옳은 것이냐.

 

이 지점에서 고민 많이 했다. 현 시국과 이명박 정권에 대해 나와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은 거의 전부가 전자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나 역시 무조건 전자에 손을 들어 줘야 열분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일 거다.

 

그런데, 철저히 논리를 따진다면 마냥 그렇게 가기는 어렵다(물론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옳다는 것 아니니 끝까지 들어봐라).

 

지금 이 문제가 혼란스러운 것은, 이런 상황의 선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기존 법 조항이 정확히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국회법 92조의 일사부재의를 적용하려면 부결이라는 전제 조건이 먼저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 부분이 이 상황에선 상당히 미묘하다.

 

생각해보자. 정상적인 전자 투표라면 의원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 책상의 버튼을 누름으로써 투표를 하게 된다. 이렇게 정돈된 상황에서는 회의장에 들어와 있는 의원의 수와, 말 그대로 자리에 앉아 투표를 하는 재석(在席) 의원의 수가 일치하게 되며, 따라서 정족수는 투표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일목요연하게 파악이 된다. 이 경우 정족수가 모자라면 투표 자체를 시작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제의 경우는 투표 시작 시점에서 의원 대부분이 서서 몸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실제 자리에 앉아서 투표를 할 (수 있는) 넘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저 회의장에 있는 한나라당 의원수를 근거로 투표를 시작한 거다. 그 과정에서 몇넘이 지 자리에 못 돌아가서 버튼을 못 누른 것이고 그 결과 실제 투표 상황에서는 정족수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온 거다.

 

정리하자면, 원래는 정족수에 모자라면 당연히 투표를 실시하지 않아야 하는 건데, 이런 상황으로 인해 실제 물리적으로 신속히 투표가 가능한 쪽수가 모자란 상태에서 그냥 투표를 실시하고 또 종결해 버리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말씀이다.

 

이건 마치 의원들이 회의장 안에 웅성웅성 모여 의장이 투표하라는데 하러 가지도 않고, 그 와중에 의장은 투표를 그냥 진행해 버리고 그 결과 정족수가 모자라 파토가 나 버린 그런 꼴인 거다. 아예 회의장에 안 나오면 안 나오는 거지, 이건 사태는 열라 기묘하고도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이라 아니할 수 없다.

 

 
차라리 이게 정상이다

 

게다가 전자 투표라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 국회에 도입 된지 9년 밖에 안된 거라서 경험과 선례도 부족하여, 이런 특별한 상황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시비를 결정할 수 있는 명료한 법조항은 아직 미흡한 실정이다. 이 상황에서 투표하라고 하는데 가지도 않고 투표하지도 않은 사람들을 정족수 미달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사실상의 기권으로 봐야 하는지의 문제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애매모호하다.

 

따라서 이게 부결인지 불성립인지는 국회사무처건 우리건 법학자건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간단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각자 자기 주장을 하며 평행선을 그어갈 뿐이다.

 

물론 그래서 방송법이 무사 통과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 문제는 누군가 속 시원히 유권해석을 내려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 어쩌보면 지금은 가결도 부결도 아닌 공중에 뜬 상태가 되어 있는 거다.

 

그래서 이 문제는 진짜 결론을 내려면 법정으로 가야 할 거다. 따라서 장기전을 각오하고 논리를 개발하고 또 준비해야 하며, 하루 이틀 상관에서 서로 말싸움으로 풀어 나갈 수준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결과를 통해 판례가 만들어지면 앞으로 유사한 상황에서 적용하는 수 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안다. 약하다.

 

허나... 우리는 강력한 무기를 하나 더 갖고 있다. 바로 대리 투표.

 

 


 

 

 

이건 앞의 것과는 이야기가 다르다.

 

민주당에서 조사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저 상황에서 대리 투표는 백프로 있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더 중점을 둬야 할 분야는 아무래도 이 부분이다.

 

사실 현재 시중에서 떠도는 말과 달리 국회법은 대리 투표에 대한 명확한 규정을 만들어 두지 않고 있다. 현행 국회법 제 111조는 표결을 할 때는 회의장에 있지 아니한 의원은 표결에 참가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대리 투표는 다른 모든 투표의 경우에 비춰도 그렇고, 민주주의 상식상 따로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지 않은 한 무조건 불가하다고 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다시 말해 관습법에 해당한다고 봐야 옳다.

 

실제로 방송 중 의원들이 서로간에 대리 투표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수시로 나온다. 사진자료들도 차차 확인이 되어 가고 또 하나 둘 발표가 되겠지만, 이 목소리들 자체도 부정하기 어려운 분명한 정황 증거다(다만 이윤성 부의장이 야 나도 찬성 눌러라 하고 소리치는 부분은 비록 명료하게 들리지만 별 효력은 없다. 국회의장단은 국회 직원을 통해 대리투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사진이 대리 투표의 증거로 많이 돌아다니지만 의심스러운 분위기와는 달리 한나라당 배은희 의원이 자기 자리에서 누르는 게 맞다. 다시 말하지만, 흥분해서 낚이면 결국 우리가 당한다.

 

이런 와중에 이미 보도에도 나오고 있지만 민주당 강봉균 의원의 이름에도 녹색 불이 들어오고(재석 표시) 전광판에 떴었다. 이건 표결 결과의 여부와 무관하게, 자기 자리가 아닌 곳에서 버튼을 누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 중 하나다. (참고로 많이들 헤깔리는 것 같은데 이 전광판은 의장석 양쪽으로 2개가 있고, 294명 의원 전원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 중 녹색으로 표기된 이름이 재석의원이며 찬성의 경우 그 앞에 녹색 동그라미가 다시 붙는다. 따라서 흰색 이름은 재석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할 때 우리가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아래의 한 컷이다.

 

 

위 사진은 첫번째 조항인 신문법 표결 결과다. 여기에 보면 나경원과 이정현이라는 두 이름이 재석으로 되어 있고, 그 중 이정현 의원 앞에는 찬성 투표를 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나경원 의원은 당시 현장에 없었다. 중앙홀의 충돌로 회의장에 들어오지 못하고 박근혜 의원과 한나라당 원내 대표실에서 TV로 표결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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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정현 의원이다. 위에서 보듯 재석은 물론 찬성 투표까지 한 것으로 된 이정현 의원은, 본인 말에 따르면 처음에는 박근혜를 안내하느라 맨 마지막의 금융지주회사법만 투표했다고 하다가 저 사실을 알고 이게 문제가 되자 나중에는 투표 순간에 본청 옆문으로 들어와서 투표를 했다고 말을 바꿨다.

 

그러나 위의 신문법은 첫 투표였는데, 그렇다면 이정현 의원은 첫 투표 때만 비밀 문으로 휙 들어와서 투표하고 다시 슥 나가서 박근혜와 있다가 맨 마지막에 슬그머니 또 들어왔단 소리다. 당시 회의장이 이렇게 쉽게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상태였던가? 그럼 나머지 한나라당 의원들은 왜 같은 방법으로 안 들어왔는데.

 

하지만 역시 촌철살인의 백미는 오늘 아침 최고의원회의에서 한나라당 장광근 사무총장이 한 대리투표 관련 발언을 꼽아야겠다. 앞서 이야기한 강봉균 의원 문제를 놓고, 그 내막이 실은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투표를 방해하자 박상은 의원이 화가 나서 (강의원 자리에서) 찬성 투표를 눌렀다가 취소했는데 재석 기록이 지워지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니 자기네 책임이 아니고 다 민주당 탓이라는 소리다.

 

하하... 지금 누구 책임이 문제인지의 상황이 아니지 않냐. 이렇게 되면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투표 자체가 엉망 진창이었다는 것을 사무총장 스스로가 털어 놓은 거다. 이렇게 아무렇게나 이넘저넘 남의 버튼을 누르고 다닌 상황에서 벌어진 표결을 어떻게 국회의 공식 표결로 인정할 수 있단 말이냐. 국회가 애들 장난이냐.

 

이렇게 민주주의와 의회제도의 기본 인식조차 없는 와중에 남 탓이나 하고 있는 집권당 의 사무총장님. 여기에 대해 모 국회 의사국 관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투표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대리투표 정황이 사실로 드러나도 큰 영향이 없지 않냐고도 했다니, 참 그 나물에 그 밥이라 아니할 수 없고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감사함다 총장님. 큰일 하셨슴다.

 

또 한가지 열라 중요한 사실은, 앞서 잠깐 언급한 국회법 111조 2항에 의원은 표결에 있어서 표시한 의사를 변경할 수 없다 라고 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서로 남의 의원 버튼으로 찬성과 반대 및 대리 투표와 취소 공방전을 벌여 중간에 계속 의사 표시가 변경되었다. 완벽한 불법이 적나라하게 자행된 거다.

 

상황이 이러니 이 표결은 원천 무효가 될 수 밖에 없는 거다. 방송법은 물론 나머지 미디어 법안과 함께 도매금으로 처리된 금융회사지주법(이게 삼성의 세습에 도움이 되는 법안이라는 거 아시는가들)까지도 전부 불법 표결이고 무효가 되는 거다. 여기에는 더 이상 변명도 해명도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만약 이 표결들이 어찌 어찌하여 한 국가의 공식 법개정 표결로 인정되어 버린다면 그거야 말로 어떤 후진국에서도 보기 힘든 국제적 개망신으로 세계인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거다.

 

암튼 간에 우리는 최대한 정확한 팩트들을 기초로 해서 논리를 정리한 다음(낚이지 말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사태의 본질을 알고 그 의미를 이해하도록 여론을 키워가고 적합한 제도적 법적 대응을 해야 할 것이다.

 

 


 

 

 

... 마, 어젯밤부터 글을 쓰는 동안 새로운 사실들이 속속 들어오고 사태가 변해 가면서 솔직히 어려움이 많았다. 탈고를 하는 이 순간에도 새 정보들이 생산되고 있을 것이고, 와중에 내가 놓친 것들도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략 이 정도 이야기했으면 현재 상황이 무엇이며 우리의 전략이 어때야 하는지는 대략 관점이 잡힌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우리가 이 난리 법석의 와중에 한가지 잊기 쉬운 게 있다.

 

앞의 상황들을 통해 이번 표결이 모두 원천무효화 됐다고 치자. 그럼 그 다음은 뭐냐? 한나라당은 다시금 전열을 가다듬어 머잖아 재표결을 추진할 것이다. 정권의 안위와 재창출, 그리고 대기업 및 거대 언론에 대한 지분 배급이라는 절대절명의 과업이니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포기할 수 없다.

 

그리고 그때는 절대 이런 식의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충분한 대비를 하고 표결에 임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어리석은 자들이지만 잔머리 굴리는 데서까지 바보는 아닌 탓이다. 그리고, 결국 미디어법은 가결되고 말 것이다. 아니냐.

 

따라서, 우리가 지금 이번 사태 자체와 관련해 어떤 노력을 하고(물론 그건 그것대로 해야 하지만) 어떤 승리를 얻어낸다 한들 자칫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우리는 울고 저쪽은 만세 부르고, 그렇게 끝나 버리는 거다.

 


이날 전에도 후에도, 우린 계속 지고 또 울고 있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더 근본적이고도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일단 이 사태에서 이겨서 시간을 벌고, 그 벌어놓은 시간 동안에, 저쪽이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우리 스스로 마음 자세를 제대로 갖고 해법을 찾아가야 한다. 지금까지도 나름 그랬지만 불충분했기에 이렇게 된 거다.

 

특히, 이번에 새로 나온 개정안의 경우 독소 조항들이 더 많이 들어 있다고 한다. 이 개정안은 어제까지 언론에도 공개되지 않았고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내용이 뭔지 잘 모른 채 투표에 임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방송 잘 보면 찬성 누르는 거 맞지요? 하는 질문들이 들려올 정도다. 그러나 이제 그 내용들이 하나 둘 알려지고 이들이 무엇을 하려는지 더욱 명백해지고 있는 만큼, 차제에 그 허실을 정확히 파악하여 알릴 필요가 있다.

 

물론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오늘 당장 논의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싶다. 촛불 하자고 하면 이제 딴지일보가 배후 선동 세력이 될 테고(머 그래도 별 상관은 없다만), 그보다는 쇠고기 때처럼 고생만 하고 빨갱이 되고 결과는 안 나오고 몸만 상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으니 더욱 고차원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여하튼, 이번 사태를 겪고 또 싸우면서 우리는 계속 다음 수를 대비해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이제 더 이상 뒤통수 맞으면서, 아니 두 눈 뻔히 뜨고 면상 얻어 맞으면서 나중에 울고 열 받는 식으로는 곤란하다. 이명박 당선 후 지금까지 우리는 계속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어 버렸다.

 

이러다가는 결국 이 나라 손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떨어질 거다. 빨리 이 타임머신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 모두 박정희 시대, 아니 중세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그렇게 되면 불쌍한 우리 자식들은 우리가 옛날 그 시대에 그랬듯 세상이 원래 이런거려니 하면서 살게 될 거다. 수십 년 전 빤짝했던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풍요의 시기를 그저 먼 이야기 속의 황금시대로만 기억하며.

 

아니 그러면 그나마 다행이다. 더욱 무서운 것은 어쩌면 그 시절을 진짜 잃어버린 10년으로 철저히 믿고 그들 중의 하나로 커 갈 거라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 우리는 아무 희망도 없다.

 

안 된다.

 

딴지 논설위원 파토 (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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