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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눈에 콩깍지] 잭 블랙, 그 남자의 엉덩이골에 관한 고찰

 

2009.7.28.화요일

 

 

초등학교부터 거슬러 올라가서 내 오랜 학창시절을 지배했던 서태지, 신성우를 지나 정우성, 브래드 피트로 이어지는 완벽한 꽃미남 계보를 배반하는, 가장 엉뚱깽뚱하면서도 가장 오랜 기간동안 내 이상형으로 자리 잡은 사람은 잭 블랙이다.

 

잭 블랙. 다들 아시겠지만 코미디에 주로 나오는 코믹전문 배우다. (그가 정극에 나온 영화를 아직 못 본 터라 간편하게 정의 내린다. 몇 년 전 <로맨틱 홀리데이>라는 영화가 있었으나, 코믹하지 않은 그는 왠지 이질감이 느껴졌던지라 볼 기회를 마다했었다.)

 

그나저나 거 취향 참 거시기하다 하시는 분들 계실 거다. 단순히 그냥 좋아하는 배우도 아니고 이상형이라니. 인정한다. 나도 내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으니까.

 

필자가 맨 처음 잭 블랙을 발견한 영화는 <화성침공(Mars Attacks!, 1997)>에서다.
팀 버튼이 감독하고 잭 니콜슨, 아네트 베닝, 피어스 브로스넌 등. 굴지의 초특급 대배우들이 코믹경합을 펼치는 이 가공할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형 역할로 다소 짧은 헤어를 하고 솔저로 분한 잭 블랙의 모습을 기억하는 독자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연기가 엄청 인상적이거나 그렇지도 않았다. 근데 내가 왜 그 영화를 팀 버튼의 영화도 아니고 잭 블랙의 영화로 기억하고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정답은 골에 있었다. 바로 엉덩이 골

 

 

화성인에 대항하는 지구수비대로 자원하여 등장하자마자 곧바로 타 죽기까지, 그는 군복바지를 거의 벗겨지기 일보직전까지 내려서 입고 있었다. 당시 그 영화에 대한, 그에 대한 사전지식 없이 영화를 접했던 나는, 정신없는 전쟁씬 속에서 유독 튀는 패션의 그를 보며 "저 인간 뭐지? 되게 웃긴다 ㅋㅋ" 했더랬다.

 

이후 여러 출연작들이 있었지만 조연으로 출연하더라도 주연 못잖은 아우라를 내뿜었던 영화로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High Fidelity, 2000)>를 꼽을 수 있겠다.
사실 이 영화는 주연, 제작, 각본을 도맡았던 존 쿠삭의 원맨쇼가 도드라질 뻔 했으나,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엔 샤프한 존 쿠삭보다 굴곡있는 몸매의 잭 블랙이 더 눈에 들어왔다. 존 쿠삭의 레코드 가게 동업자이자 친구로 분한 잭 블랙은 이 영화에서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성과 반대된다고 여기면 그 상대가 설령 손님일지라도 갖은 무안과 냉소적인 욕설을 퍼부어 급기야 손님으로 하여금 자괴감에 빠트려 그냥 나가게 만드는, 사장인 존 쿠삭 입장에서 봤을 땐 갈아마셔도 시원찮을 놈으로 나온다. 그리고 예의 잭 블랙의 인증샷이 등장한다. 아래로 하염없이 내려간 바지를 입은 채 순진무구한 손님을 기어이 울려 보낸 뒤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서는 그의 뒷태. 포인트는. 그렇다. 바로 엉덩이골이다.

 

 

2003년작 <스쿨 오브 락>에서는 아쉽게도 엉덩이골이 등장하지 않아 그의 골팬인 필자의 아쉬움을 자아냈었다. (어떤 씬에 나올까 내심 기대했었는데 말이지..) 가련한 친구네 집 더부살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만뻔뻔한 자태를 뽐내던 잭 블랙은 잠깐이나마 목욕가운을 입고 등장하여 3등신에 어울리지 않는 각선미를 뽐내긴 했으나, 초딩의 초딩에 의한 초딩을 위한 영화다 보니 다소 19금스런 연출은 스스로 피한 듯 싶다.

 

물론 그밖에 출연한 영화들 곳곳에서 간간이 엉덩이 골이 등장하긴 했으나, 그것은 마치 성배를 찾아 성지 순례하는 자의 기나긴 사투와 인내, 그 속에서 전연 기대하지 않았던 로또대박을 맞았을 때의 기쁨과 견주어 봐도 전혀 꿀릴게 없을 만큼 다소 복불복스러운 면이 있다 할 것이다.

 


<스쿨오브락>. 락 콘테스트 예선에 붙은 기쁨을 노래하는 모습

 

마지막으로 필자가 잭 블랙의 작품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나쵸 리브레 (Nacho Libre, 2006)>다. 이 영화는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레슬링에 출전해 거기서 나온 대전료로 고아원 아이들을 먹여 살린 멕시코의 어느 실제 신부 얘기를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수도원의 음식 솜씨 전혀 없는 요리사지만, 링 위에선 나쵸로 불리는 한 남자의 좌충우돌 레슬링 기와 새로 부임한 엔카나시온 수녀님에 대한 연정, 고아원 아이들과의 유대관계에 대한 한편의 동화 같은 내용이다.

 

이 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는, 늘 보던 헐리우드 스타일의 코미디가 아닌지라 한 박자 늦은 템포의 유머가 다소 낯설게 느껴졌다. 이야기가 달나라로 가지 않는 한 절대 변할 것 없는 목가적인 멕시코 시골마을 풍경 속에서, 굵직한 살인사건 하나 없이 잔잔하게 펼쳐지는 무용담들이 어찌 보면 지루하기까지 했던 거다. 무릇 코미디 영화라 하믄 장면과 내용의 빠른 전개가 필수거늘, 초반부터 그야말로 풍경만큼이나 나무늘보스러운 느린 전개에 급기야는 "이제 잭 블랙도 한 물 간건가" 싶기도 했더랬다. 그런데 인내심을 갖고 계속 보다보니 그 잔잔함 가운데 나쵸의 정체가 탄로나는 위기의 순간과 레슬링 절대강자 람세스와의 세기의 대결 구도는, 추리 영화나 스릴러의 그것만큼이나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만들어줬다.(그래. 나 눈에 뭐가 씌였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백미는 잭 블랙의 아찔한 몸매라인에 있다.

 

피골이 상접한 파트너 에스퀼레토와 레슬링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 시종일관 벗고 나오는 통에 필자는 므흣한 눈으로 그의 몸매를 감상하기 바빴다. 수도복을 입지 않은 대부분의 씬에서 반쯤 헐벗고 나오는 그의 쏘시지같은 몸통에 열광하며, 이전까지 감질나게 보여줬던 엉덩이골에 대한 갈증을 일시에 해소할 수 있었다랄까. 뭐 대충 그런 기분이었다.

 

연기와 더불어 뮤지션으로서의 잭 블랙도 매력만점이다.

 

연기학교에서 만난 배불뚝이 친구 카일 가스와 함께 Tenacious D라는 메탈 밴드를 만든 잭 블랙은 일찌감치 코믹 컨셉을 잡아 시선을 끌었다. 사실상 별 볼 일 없는 남자들의 판타지를 구현하는 가사들과 뮤비, 이후 동명의 영화는 가히 놀랄만한 내공의 연주 실력과 뛰어난 잭 블랙의 가창력을 함께 선보이며 단순한 가십으로만 끝나지 않았고, 유수의 음악 사이트나 잡지를 통해 상당한 실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어왔다.

 

 

어쨌거나 아직까지 엉덩이골에 대한 잭 블랙의 공식 입장을 못 들어서 단언하긴 어려우나, 필자의 생각은 이러하다. 신인시절에는 "내가 바로 잭 블랙이외다"를 알리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서 기인한 것일 테고, 그렇게 알리게 된 엉덩이골이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그만의 시그니쳐가 된 이상, 팬서비스 차원에서 가끔씩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철저한 계산하에 나온 슬랩스틱이 아닐까, 라는.

 

솔직히 말해서 엉덩이골 만큼이나 필자가 깜빡 넘어갔던 건 무엇보다 그의 진지함이었다. 모든 영화에, 음악에 임함에 있어 어떠한 역할, 어떠한 노래, 어떠한 대사든 그는 언제나 진지했다. 예전부터 코미디 프로를 보면서도 늘 느꼈던 거지만, 남을 웃기려고 대중 앞에 선 자들은 절대로 먼저 웃는 법이 없다. 백이면 백, 듣기만 해도 뒤로 꼴깍 넘어갈 만큼 웃긴 얘기들을 한보따리 짊어지고 나타난 내공의 소유자들은 대중 앞에서 경솔하게 웃음부터 먼저 흘리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할 이야기, 제스처가 비록 웃음은 줄지언정 가볍지 않음을 나타낸다. 결코 진지하게 보이지 않는, 굴곡 있는 몸매의 소유자가 진지한 표정으로 나왔을 때 그 웃음이 배가되는 것. 잭 블랙만이 보여주는 희극연기의 정점이라 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정상적으로 사는 게 더 어려운 세상. 무얼 하든 진지하게 임하는 남자가 그리운 시기다. 그런 의미에서 잭 블랙. 당신 참 멋진 사람이야.

 



 
 

잭 블랙의 주요 작품들이다.

 

1994년 : 에어본 (조연), 네버엔딩 스토리3 (주연)
1996년 : 캐이블 가이 (릭 역)
1997년 : 화성침공 (빌리 글렌 노리스 역), 자칼 (이안 라몬트 역)
1998년 :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피들러 역), 스키드 마크 (조연)
1999년 :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타이터스 텔레스코 역)
          예수의 아들 (조연)
2000년 : 사랑도 리콜이 되나요? (베리 역)
2002년 : 악마같은 여자 (조연),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할 라슨 역),
          오렌지 카운티 (주연), 아이스 에이지 (목소리출연 - 지크)
2003년 : 스쿨 오브 락 (듀이 핀 역)
2004년 : 앤비 (닉 밴더파크 역)
2005년 : 킹콩 (칼 던햄 역), 샤크 (목소리 출연 - 렌니)
2006년 : 나쵸 리브레 (제작, 나쵸 역), 로맨틱 홀리데이 (마일즈 역),
          터네이셔스D (각본, JB 역)
2007년 : 이어 오브 더독 (제작), 워크 하드 - 듀이 콕스 스토리 (조연)
2008년 : 트로픽 썬더 (제프 포트노이 역), 쿵푸 팬더 (목소리출연-팬더곰 포)
2009년 : 마고 앳 더 웨딩 (조연), 이어원 (주연), 비카인드 리와인드 (제리 역)

 

내 몸에 흐를 柳( lefteye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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