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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제곱] 안 낳는 건가 못 낳는 건가

 

2009.7.29.수요일

 

 

여성들이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그게 너무 당연하다 못해 폭발하는 신생아 출산을 막기 위해 둘만 낳아 잘 기르자에서 하나도 많다 라던 산아제한 포스터를 본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안 낳아서 문제란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이는 씨가 마르고 노인들만 북적거리는 세상이 온단다. 이 문제에 있어 가장 최대의 책임자는 바로 임신하고 출산을 할 수 있는 여성들일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여자들이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못 낳는 것인가? 생각해보면 환경이 못 낳게 하고 있고 거기에 여성들이 안 낳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다음 사례들은 결코 현 세대의 모든 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단면 정도는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지난 2006년 큰언니는 막내딸 은호를 낳았다. 다른 조카들 때는 그러지 못했지만 때마침 백수로 있었던 나는 임신으로 운전을 못하는 언니를 데리고 열심히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다녔었다. 임신 초기에는 정기 검진이 일주일에 한번 정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마다 약 4만원에서 5만 원 정도의 진료비가 청구되었다. 왜냐면 산부인과 초음파 검사는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시시 때때로 검사를 하기도 했었는데 검사비도 만만치 않았다. 병원에서는 검사는 선택 항목이라고 했지만 세상에 어떤 엄마가 자기 아이 건강을 검사한다는데 돈을 아끼겠는가. 해서 비 보험 항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일단 병원에서 하라는 검사는 다 했었다. 그리고 애를 낳기 얼마 전에는 입체 초음파라는 것을 해서 아이의 얼굴을 봤는데 그 비용은 8만원 정도였다. 그리고 아이를 낳을 때의 비용은 자연분만에 무통분만 그리고 보름간의 산후 조리원 비용이과 기타 자잘한 비용들이 전부 해서 약 300만원  정도 들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2006년의 일이었다. 언니는 임신 후기쯤 되었을 때 산후 조리원 비용이 일제히 오른다고 해서 미리 돈을 내고 예약을 했기 때문에 저 정도 비용이었고 후에 몇 번이나 더 산후 조리원 비용은 올랐다고 한다. 이 비용만 계산해도 언니는 이미 은호를 낳기 전에 몇 백 만원 단위의 비용이 든 것이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애를 낳기 전에 검사하는 거랑 애를 낳는데 드는 돈 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산후 조리원 같은건 가지 않을 수도 있지 않냐고. 물론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누군가가 옆에서 산후 조리를 해 주어야만 가능해진다. 당시 우리 엄마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해서 꼼짝도 못하는지라 언니의 산후 조리를 해 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경험도 없는 내가 하기에도 그렇고 (언닌 내가 뭘 하면 답답해서 오히려 자기가 해 버린다.) 마지막으로 시어머니라는 대안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경험이 있는 언니는 이번만큼은 조리원에서 단 15일이라도 맘 편히 조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언니네 시어머니가 유별난 분은 아니었지만 며느리 된 입장에서 꼼짝 않고 누워서 시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 받아먹기가 미안해서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했더니 언니는 손목과 발목이 아작이 났다고 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셋이나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의지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그럴만한 환경이 받쳐주었기 때문이었다. 언니는 결혼과 동시에 일을 관둘 수 있었고 임신을 하면 회사에서 눈치를 주거나 심하게는 쫓겨나는 일을 겪지 않아도 됐었다. 임신을 했다고 해서 눈치를 주거나 쫓아내는 회사가 어디 있느냐고? 내가 알기론 대기업이나 몇 몇 회사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그런다. 기업의 입장에서 볼 때 임신한 여성은 전혀 반갑지가 않다. 왜냐하면 출산 휴가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줘야 하는 것이지만 세상이 어디 당연히 줘야 할 것들을 군말 없이 준 적이 있던가. 그리고 그 출산 휴가라는 것이 고작 3개월이 대부분이다. 아이를 낳고 조리하는 기간이 1개월 정도 소요된다면 2개월은 몸을 다시 원래 상태대로 추슬러야 하는데 그게 단 2개월 가지고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이를 낳은 엄마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만약 우리 언니처럼 결혼을 하고 일을 관두지 않았다면 여성들은 임신 내내 일을 해야 하고 출산휴가는 고작 3개월이다. 물론 이것도 회사에서 보자면 엄청난 손해이다. 유급 휴가니까. 그러나 무급으로 하더라도 6개월 정도는 쓰고 싶다는 게 보통 엄마들의 바람일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젖을 떼어낼 때 까지만 이라도 엄마가 아이 옆에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좋다. 유축기로 젖을 짜서 보관해두고 젖병에 담아 먹이는 방법이 있기는 한데 이게 또 회사 내에 유축기로 젖을 짤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헛방이다. 결국 탈의실에서 다른 여직원들 및 직장 상사의 눈치를 봐가며 한 몇 개월 버티지만 (젖은 2시간 정도에 한 번씩 돈다. 따라서 2시간마다 들어가서 젖을 짜는 부하 직원을 곱게 보는 상사는 아마 잘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이런 걸 몇 개월 하고나면 유별나게 굴지 말고 분유를 먹이지 그러느냐고 은근히 압박을 준다고 한다) 결국에는 분유 수유로 돌아선다고 한다. 내 아이를 특별하게 생각해준다는 분유 회사, 내 아이를 최고라고 생각한다는 분유회사에 내 몸에서 흐르는 그 아이의 생명줄을 끊고 소젖으로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아직 목도 못 가누는 젖먹이를 떼어놓고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기성취 혹은 목표의식에 의한 것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대부분의 여성은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남편 하나 벌어서는 자신과 아이의 몫을 다 감당할 수 없으므로, 혹은 남편 월급만 가지고는 현재만 있을 뿐 미래에 대한 대비 (이를테면 저축이나 주택청약부금 같은) 를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첫째 아이를 낳고 3개월 만에 회사로 복직을 해 본 엄마들은 생각 할 것이다. 이거 모르고 한번은 했지 두 번은 못하겠다고. 내가 몸이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그녀가 직장을 다니려면 시부모님이건 친정 부모님이건 아이를 맡아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분들도 첫 손주까지는 그렇게 해 주실지 모르겠지만 둘째, 셋째부터는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하더라도 싫다 하신단다. 하긴 그 마음도 이해는 간다. 평생 자식을 키워서 이제 좀 누군가를 키운다는 일에서 벗어나나 했는데 그 자식이 낳은 자식을 또 키워야 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힘든 일이며 아무도 강요할 수 없는 일이다. 이래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식을 하나 낳은 선에서 그냥 포기를 한다. 내 친구 중 한명도 첫 아들아이를 낳고 난 다음 계획대로라면 딸이건 아들이건 하나를 더 가지려고 했지만 키워보니 그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란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차라리 예전의 대가족 제도가 훨씬 이상적이었다. 지나가다 삼촌도 애 좀 봐주고, 고모도 봐주고 시부모님도 봐 주고 이렇게 돌아가면서 봐 주면 여성 혼자서 온전히 육아를 다 감당해내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맘 놓고 화장실에 가서 똥 한번 쌀 여유도 없을 정도란다. 이렇게 하루 종일 아이에 시달리던 초보 엄마가 또 둘째를 가지겠다는 생각이 그리 쉽게 들까? 남편이 있긴 하지만 그 역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격무에 시달리다 온 사람인데 그에게 뭘 얼마나 더 도와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처럼 언제 잘릴지 몰라 조마조마한 직장을 새가슴 쓸어가며 다니느라 그들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극도로 피곤할 것인데 말이다. 이래서 누구의 잘잘못이 아닌 육아는 거의 백프로 여성의 몫이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이 여성에게 하나 까지는 강요할 수 있겠지만 둘, 셋을 강요하기에는 환경이 너무 열악하고 또 한 사람에게만 너무 많은 짐을 질 것을 강요하는 일이 되어버린다.

 

아이를 키우는 언니를 보면서 또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애를 키우는 데는 무조건 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까 도입부에 나열한걸 보면 알겠지만 임신한 그 순간부터 아이는 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이 비용들이 점점 더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부부들에게 아무리 애국을 내세우며 출산을 장려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내가 아는 부부만 해도 아이를 2명이상 낳은 부부는 부모 중 한명이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가 대부분이다. 즉 돈이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이를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예전에는 태어날 때 자기 먹을 건 갖고 태어난다는 둥, 낳아놓으면 다 알아서 큰다는 둥 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시절이 완전히 달라져있다.

 

이 땅이 워낙 교육 교육 하는 덕택에 이제 사교육은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시점이 아닌 만 3세만 되어도 시작된다. 그 아이들에게 영어, 피아노, 바이올린, 발레, 골프, 수영 등을 가르치는 게 요즘 중산층의 육아교육 현장이라고 한다. 사정이 이러니 어지간한 가정에서는 전부 다는 아니지만 저 중에서 한 둘만 가르친다 하더라도 이미 그때부터 사교육비 지출은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애 학교 가기 전 까지는 돈을 모아놓을 수 있다고 하던데 요즘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애는 태어남과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소비를 불러온다. 그리고 초등학교로 들어가면 본격적인 사교육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그렇게 해서 대학을 보냈더니 대학 등록금은 더 기절할 액수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자면 그 돈은 부모들이 다 충당해야 하는 것인데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는 자는 아마 대한민국 강남 노른자위 땅에 사는 부모들뿐일 것이다.

 

 

사실 나 같은 비혼 여성들이 늘어나는 것도 저 출산의 큰 이유 중 하나이다. 옛날 같으면 학교 졸업하고 바로 결혼을 하거나 잠깐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했겠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여자라고 학교도 제대로 안 보내 주던 시대가 아니니 당연히 여성들의 사회적 진출이 늘어났다. 여자들도 이제 능력만 있다면 약간의 차별 대우는 있지만 그래도 남성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성은 결혼을 하더라도 사회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반면 여성은 임신과 육아가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사회생활과 한 생명을 낳아 기르는 고귀한 문제를 어떻게 비교 하냐고 말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감히 뭐라고 말 할 수 없는 문제이다. 임신에서 육아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빠르다 하더라도 3년 정도는 쉬어야 하는데 그렇게 쉬고 난 다음 그 여성이 다시 원래 하던 일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이러니 여성들은 자신이 어렵게 얻은 위치를 아이 문제로 쉽게 포기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미 아이를 출산했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출산 전이라면 이건 분명히 비교 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성들이 아이를 안 낳고 있다고 말한다.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못 낳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고 보여 진다.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혹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고 나서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박탈된다면 이제 출산은 여성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윽박지르기만은 어렵게 되었다. 왜냐하면 모든 여성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만이 자신이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일인 시대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를 낳으라고만 하지 말고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비용에 대한 부담이 지금 보다는 훨씬 줄어든다면, 그리고 아이를 낳고 육아와 일을 병행 하고 싶은 여성들에게 충분한 제도적 뒷받침을 해 준다면.(사내 탁아방 운영 등) 또 그녀들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 다시 사회로 복귀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준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우리는 저 출산 문제를 가지고 단지 여자들이 이기적이어서 그렇다고 말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아무런 사회적 제도적 뒷받침 없이 그저 아이를 안 낳는다고 여성들을 이기적이라고 비난만 하는 것에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굳이 안 낳겠다고 버티는 여자들은 어쩔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낳아 기르고 싶은데 여러 가지 환경과 여건 때문에 좌절하는 일은 좀 막아놓고 출산장려정책을 펴야 하는 거 아닐까? 덮어놓고 인구 줄었으니 좀 낳으라고 압박하는 건 무슨 공장에서 생산량 줄어들었다고 작업반장이 여공들에게 압력 주는 것도 아니고 말이 안 된다. 여건 조성도 제도적 뒷받침도 없이 저지르기에 애 낳아 기른다는 것은 좀, 아니 많이 큰일임을 알아주면 좋겠다.

 
투덜은 나의 힘
 
스테로이드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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