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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랜디 로즈를 기억하시는가

 

2009.7.31.금요일

 

(이 글은 2002.3.13 딴따라딴지에 개재된 것입니다)
 

 

 

미국은 물론 울나라 록 팬들도 끔찍히 사랑해온 랜디 로즈, 얼마전 오지 오스본의 내한 공연으로 더더욱 기억에 사무치는 그. 잭 와일드의 연주도 훌륭했지만 그 자리에 랜디가 있었다면 하고 내심 바랬던 분들도 많았을 것이다.

 

글타. 오는 3월 19일이 바로 고 랜디 로즈의 20 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가 죽은지 벌써 20년 세월이 흘렀다는게 믿어 지시는가? 필자가 첨 오지 오스본의 앨범을 구입한 것이 84년경이었으니 랜디가 죽은지 불과 2년밖에 안지났던 때였다. 그런데 벌써 이십년이 지나갔단다. 참으로 세월은 무정하도록 빠르기만 하다...

 

각설하고, 랜디의 죽음은 록의 역사상 손꼽히는 일대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그 자세한 이야기가 알려져 있지 않다. 일부 헤비메탈 관련 서적과 잡지, 앨범 속지 등에 공연 여행 중 재미삼아 타 본 경비행기의 추락에 의한 사고사 로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을 뿐이다. 열분들도 아마 이 이상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거의 전해듣지 못했을거다.

 

심지어 당시의 상황을 전한 어느 글에는, 오지가 추락한 비행기에서 죽어가는 랜디의 마지막을 목격했으며 랜디는 마지막 순간에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말하려는 것 같았다. 죽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은 너무나 가슴아팠다 고 말했다는 등 전혀 사실무근의 인용문까지 실려있다.

 

이같은 현실을 타파하고 랜디를 보다 제대로 추모하기 위해, 본지에서는 그의 20주기에 즈음하여 국내 최초로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전 과정을 오지 오스본은 물론 당시 동행했던 투어 멤버인 베이시스트 루디 사조, 드러머 타미 엘드리지,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 그리고 오지의 매니저이자 이후 아내가 된 새런 애든 등의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드리기로 한다.

 

국내 매체에는 전혀 소개 안된 각종 디테일들은 물론, 사건 발생 전후 현장에 있었던 오지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전달해 드리려 하니, 랜디를 사랑하는 열분들은 기대해도 좋겠다.

 

다시금 랜디의 영혼이 저승에서 평안하기를 기원하며...

 

 


 

 

 

그날의 상황을 설명하기에 앞서 랜디와 오지는 과연 어떻게 만났는지, 그리고 를 같이 준비하던 오지와 랜디의 관계는 어떤 것이었으며 운명의 마지막 날들에 랜디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엘에이 근방에서 활동하던 로컬 밴드 Quiet Riot 에서 탈퇴한 랜디는 지인의 소개를 통해 기타리스트를 구하던 오지와 만나게 된다. 우측 두번째가 랜디. 세번째는 리더 케빈 더브로우.

 

일단 울나라에 알려진 바와는 달리, 랜디는 공식적인 공개 오디션을 통해 오지의 기타리스트가 된 것이 아니다.

 

그리고 랜디와 만나던 당시 오지의 입장 역시 대 뮤지션으로서 야심적인 솔로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지망생들을 줄세워놓고 그중 최고를 물색 하는 폼나는 처지는 아니었다.

 

더우기 항간에 떠도는, 오지가 랜디를 보자마자 연주를 하기도 전에 자신의 기타리스트로서 낙점했다는 식의 이야기는 완전히 조작된 신화에 불과하다. 이건 뮤지션으로서 상식밖의 무책임한 짓으로, 오지같은 톱 프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짓거리다.

 

첫 만남에 대한 오지의 회상을 통해 진실을 알아보자.

 

"비록 술과 약에 엄청 취해 살던 시절이지만, 랜디를 처음 만났을 때는 분명히 기억해요. 당시 난 산타모니카의 르 팍 호텔이라는 곳에 묵고 있었는데 마치 무슨 짐승처럼 살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에 슬로터의 대너 스트럼이란 친구가 와서 절라 놀라운(fucking amazing) 기타리스트 한명 소개해 줄께 라는 겁니다. 나는 얼씨구 하고 생각했지요. 왜냐하면 당시에는 모든 기타리스트들이 지미 헨드릭스의 싸구려 카피들일 뿐이었거든요.

 

그래서 랜디를 만난 그 아침에 나는 절라 충격을 받았지요. 정말 뜻밖이었어요. 이 작은 청년이 들어오는데, 첨에 난 이 친구가 게이라고 생각했지요. 아주 창백한 얼굴에 하이 힐 부츠를 신었는데 꼭 인형같더라구요. 하지만 내가 당시 약에 쩔어 멍한 상태였음에도 그가 기타 연주를 시작하자마자 이건 뭔가 엄청나다는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다시 만나고는 그 친구한테 완전히 매혹되고 말았어요. 그는 정말 작았지요. 아마도 160 센티도 안됐을 겁니다. 몸무게도 오십키로가 약간 넘는 정도였고... 그렇게 작고 갸날팠지만 그의 사운드는 정말 굉장했어요"

 

전설적인 블랙 사바쓰의 보컬이었던 오지를 생각해 본다면 무명이자 스물 두살 밖에 안된 랜디는 밴드 활동 내내 그 앞에서 쫄아 지냈을거라고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들은 급속하게 가까와져서 곧 격의없는 없는 친구가 되었다.

 

단지 밴드 멤버로서의 고용관계가 아니라 그들은 실제로 형제나 다름없이 지냈다. 오지의 여자친구 새런 애든까지 포함해서 셋이 삼총사가 되어 이후 2년간을 같은 집에서 살면서 언제나 같이 다니고, 음악 작업은 물론 음주가무와 각종 장난질도 항상 함께 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당시 오지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블랙 사바쓰에서는 사실상 해고를 당했고 앨범 계약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비를 들여 밴드를 먹여 살리고 솔로 앨범을 준비하던 시점이었기에, 모든 것이 부족하고 미래 역시 극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베이시스트 밥 데이즐리와 드러머 리 커슬레이크가 불만 투성이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늘상 투덜거리던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랜디는 특유의 인내심으로 언제나 불안정하고 좌충우돌인 오지를 이해하는 편이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밝음과 웃음, 유모어 감각을 잃지 않았다고 새런은 회고하고 있다.

 

 

삼총사. 새런, 오지 그리고 랜디.

 

또한 랜디는 기본적으로 밴드 활동 내내 고향에 두고온 여자친구에게 성실하기 위해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숱한 여성팬들과 약간의 거리를 두었고, 술과 마약에 젖어 산다고 할 오지와의 정신없는 생활 속에서도 알콜 외에는 별로 입에 대지 않았을 뿐더러 매일같이 열심히 연습했다고 오지는 기억한다. 투어를 다니기 위해 새로운 도시에 도착할때마다 전화번호부에서 클래식 기타 강사를 찾아내어 레슨을 받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오지와 자신의 일에 성실했던 랜디가 그 운명의 날 바로 직전에 사실상 록 음악을 포기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오지와의 엄청난 성공에도 불구하고 랜디는 점점 그 자신이 록 음악 및 그 주변의 삶 (마약과 음주, 섹스로 점철된) 이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급기야 밴드를 탈퇴하고 UCLA 에 입학하여 클래식 기타를 전공할 생각까지 하게 되었던 거다. 공교롭게도 랜디는 죽기 바로 전날 밤, 투어 버스에서 오지에게 직접 이런 생각을 고백하기에 이른다. 이런 랜디의 말에 오지는 그러지 말고 록을 계속 해서 돈을 잔뜩 벌어 아예 UCLA 를 사버리지 그래! 라고 응수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열분도 잘 아시다시피, 랜디는 오지와 UCLA 중 하나를 선택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채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그럼, 이제 랜디가 죽던 바로 그날로 가보자.

 

1982년 3월 19일. 전미 투어를 진행하고 있던 밴드는 버스로 중부 플로리다의 올란도까지 600마일이 넘는 먼 길을 이동하고 있었다. 당시 올란도에는 록 수퍼볼 페스티벌 이 계획되어 있었고 오지 밴드는 포리너, 유에프오 등과 함께 그곳에서 연주하기 위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를 운전하던 것은 당시 서른 여섯살이던 앤드류 에이콕이었다. 그는 매니저 새런을 설득해서 플로리다의 리스버그에 있는 플라잉 배런의 자기집 주변에 잠시 멈추어 자동차 부품을 조달받고 동시에 그때까지 투어 버스로 같이 여행중이던 자신의 전처를 내려놓고 가기로 한다.

 

플라잉 베런은 당시 플로리다 버스 회사를 소유하고 있던 제리 캘헌의 사유지로서, 넒은 장원이었다. 그곳에는 캘헌 소유의 집과 그땅에 얹혀 살던 운전사 에이콕의 집, 그리고 헬리콥터나 경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작은 활주로가 있었다.

 

 

빨간 십자표시된 지점이 사고가 일어난 플로리다주 리스버그.

 

목적지 올란도에서 불과 수십 킬로미터를 남겨놓은 지점이었다.
버스는 이른 아침에 그곳에 도착하였다. 경비행기 조종 면허를 갖고 있던 에이콕은 마침 깨어있던 키보디스트 돈 에어리와 투어 매니저 제이크 던컨에게 그곳에 있던 Beechcraft Bonanza F-35 경비행기를 잠깐 타지 않겠냐고 데리고 나간다. 이때 랜디를 포함한 대부분은 아직 차에서 잠들어 있었다.

 

잠시후 드러머 타미 앨드리지는 비행기 소리에 그만 잠을 깬다.

 

"머리 위로 비행기 날아다니는 소리를 계속 들었습니다. 그때는 돈(에어리)이 비행기를 타고 있었죠. 잠잘려고 했지만 비행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고 성가셔서 잠들 수가 없었습니다."

 

비행기는 금방 착륙했고 돈 에어리는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마침 잠에서 깬 랜디에게 비행기를 타보라고 - 랜디가 일종의 비행 공포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권유한다. 랜디는 승락했고, 당시 58세였던 레이철 영블러드와 함께 비행기에 타기로 한다. (그녀는 새런네 집안의 요리사로서 새런의 가족이나 다름 없었다.) 랜디는 베이시스트 루디 사조와 타미 앨드리지에게도 비행기를 타자고 권하지만 그들은 거절했다.

 

"랜디는 일어나서 나를 비행기에 태울려고 했지요" 루디 사조의 증언이다.

 

"그게 내가 그를 본 마지막 순간입니다. 레이철이 랜디와 함께 있었죠. 나는 아직도 그녀가 버스 안에서 요리해 주던 맛있는 칠리 냄새를 생생하게 기억해요. 레이철은 그 비행이 나름대로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고 비행기에 타기 전에 옷을 깨끗하게 차려입기까지 했지요.

 

운전사 에이콕은 그녀가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투어 매니저 제이크에게, 곡예같은 건 부리지 않고 그냥 조용히 떳다가 내려올테니 걱정하지 마 라고 말했어요. 바로 이 말 때문에 비행 공포증이 있던 랜디까지 그 비행기를 타게 된겁니다. 어, 그럴거 같으면 나도 같이 탈래. 하늘에서 사진이나 좀 찍어야겠어 하면서 말이죠."

 

이어지는 타미 앨드리지의 기억.

 

"사실 그때 랜디는 비행기에 탈려고 버스에서 내리면서 내 침대에 머리를 부딪혔지요.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때 내가 랜디에게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저 운전사 밤새 한잠도 안자고 운전했어. 비행기 조종이 쉽지 않을텐데..."

 

한편 오지와 새런은 그때까지 잠들어 있었고 아무도 비행기에 타라고 깨우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오지는 아직도 기분이 오싹해지곤 한다. 왜냐하면 그때 그가 깨어있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랜디와 함께 비행기를 탔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에이콕과 랜디, 그리고 레이철은 버스를 떠나 비행기에 타고 이륙했다. 루디 사조는 금방 다시 잠이 들었지만 타미 앨드리지는 그러지 못했다.

 

"다시 잘려고 했었지요. 그런데 비행기 소리가 점점 더 커져서 잘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차나 한잔 마실려고 전자렌지 안에 티 믹스를 넣고 기대 서 있었지요. 그때 갑자기 우당탕 콰광 하는 강한 충돌이 있었어요. 사실 첨엔 그렇게까지 대단해 보이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어서 심한 탄소섬유 냄새가 나더군요. 우리가 탔던 버스 천장쪽이 탄소섬유로 만들어져 있었죠. 비행기의 날개가 버스의 옆쪽을 친 거였어요. 그리고는 버스 문간에 서 있던 운전사의 전처가 맙소사! 비행기가 버스를 쳤어요! 하고 소리지르는 게 들렸어요."

 

그 충돌의 충격으로 루디 사조도 다시 잠에서 깨었다.

 

"침대에서 뛰쳐나와 보니 차 바닥에 온통 유리조각이 잔뜩 흩어져 있더군요. 나는 오른쪽에 있던 투어 매니저 제이크 던컨을 쳐다 보았죠. 그는 바닥에 꿇어앉은채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 죽었어. 다 죽었어! 하고 외치고 있었어요..."

 

비행기의 왼쪽 날개가 버스의 뒤쪽의 1미터 55센티쯤 되는 높이의 지점 (나중에 루디 사조가 직접 자기 키와 비교해서 추산한 결과)을 찢고 지나간 것이었다. 버스에 부딪힌 후 비행기는 튕겨 나갔고 큰 소나무 꼭대기를 잘라 버린 후에 버스가 주차해 있던 근처의 큰 집 차고에 추락했다.

 

 

사고기종인 Bonanza F 35. 4인승의 작은 비행기다...

 

"버스에서 달려나갔더니 운전사의 전처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앨드리지의 이야기다.

 

"내가 운전사의 전처에게 크게 소리쳤지요. 비행기에 누가 타고 있었어? 그녀가 대답했어요. 랜디하고 레이철...! 이라더군요. 아마 그때부터 나는 뭐라고 중얼중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침 일곱시 반이었지만 바깥은 아주 눅눅하고 무더웠지요. 뭔가 초현실적인 느낌이었어요. 어딘가 이상한 곳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왼쪽을 쳐다보니 남북전쟁 이전 스타일의 오래된 저택이 있었고, 그 외에 다른 집은 아무것도 안보였지요. 나는 잠이 덜깬 채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 우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내려고 했지요.

 

근데 그때 그 집에서 연기가 나는게 보이더군요. 그래서 집으로 달려가서 열린 차고 문으로 들어갔지요. 안을 보니 남자 한명이 속옷만 입고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더군요. 그래서 소리쳤지요. 당신 집에 불이 났어! 그런데 그 남자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더니 가만히 앉아 있는거에요. 청각에 문제가 있었는지, 아니면 갑자기 속옷 차림의 남자가 소리지르며 뛰어들어온데 대한 놀람 때문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 집에서 달려 나왔을때는 이미 차고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있었어요. 그때 차고를 바라보니 아직 비행기의 외형이 남아 있더군요. 하지만 금방 화염 속에서 사라져 버렸지요..."

 

 

랜디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 문제의 집.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사진이다.

 


이어지는 오지의 회고.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건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던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대해 아는거는 그 빌어먹을 벌판에 있었다는 거지요. 잠에서 깨었을때 사실 난 우리가 어디 있는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우리가 빌어먹을 고속도로 위에서 달리고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고속도로는 안보이고 모든 사람들이 빌어먹을 그 불타고 있는 식민지식 저택을 가리키고 있더군요. 다들 어디갔어? 하고 생각했지요. 난 그냥 버스에서 자고 있었던 거에요. 그때 새런은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세런은 투어 매니저 제이크에게 무척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앨드리지의 기억이다.

 

"어떻게 랜디가 비행기에 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어!!" 그녀는 소리쳤어요. 하지만 그건 제이크의 책임은 아니었어요. 그날은 쉬는 날이었고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거였지요..."

 

"모든 사람들이 심한 충격에 빠져 있었지요" 새런의 회고다.

 

"비행기에 탔던 사람이 랜디와 내 삶 전체에 걸쳐 가장 친한 친구였던 레이철이라는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들은 실종된 상태였고 난 계속 비명만 질렀어요. 모두들 공포에 질려 있었고. 아무도 말을 할 수가 없었지요. 우리들 대부분은 잔디밭에 주저 앉아서 울기만 했어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타버린 3구의 시신이 이후 무너진 차고 주변에서 발견되었다. 랜디의 유물과 시신은 그가 차고 있던 약간의 보석들에 의해, 에이콕은 치열에 의해 확인되었다. 나중에 발표된 독극물 조사를 통해 에이콕의 몸 속에서 코카인이 발견되었다. 한편 랜디에게서는 니코틴 이상의 강한 약물은 검출되지 않았다.

 

스물 다섯번째 생일을 불과 넉달여 지난 채,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랜디 로즈는 이토록 허망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다...

 


랜디의 죽음과 관련되서는 아직도 몇가지 의문이 남아있다.

 

비행기가 왜 그처럼 비정상적으로 낮게 비행했는지, (버스의 지상 1미터 50센티 지점에 날개가 부딪혔으니 성인 키보다도 낮게 날았던 것) 그리고 그 넓은 벌판에서 왜 하필이면 투어 버스에 그렇게 가깝게 다가왔는지, 운전사 에이콕이 굳이 리스버그에 들렀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등이 그것이다.

 

사실 비행기의 각도가 조금만 달랐더라도 버스 위를 덮쳐서 오지는 물론 멤버 전원이 사망했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레너드 스키너드 이래 록계 최악의 비극이 되었을 것이다.

 

경찰의 조사에서, 에이콕이 비행기로 버스를 덮쳐 동행하던 전처를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려 했다는 이론이 대두되었다. 미심쩍은 정황들로 미루어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 추리였다.

 

그러나 에이콕의 사체 부검 결과와 타미 앨드리지의 비밀스러운 증언에 따르면 이런 음모론 보다는 다른 이유에 더 수긍이 간다. 그것은 바로 코카인이다.

 

"난 그런 음모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저 비행기가 버스에 너무 가깝게 날았던 것 뿐이에요. 밤새 버스를 운전했다는 것때문에 비행기 조종에 무리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그 운전사는 밤새 깨어있기 위해 다소간의 특별한 도움을 받고 있었지요. 무슨 이야기냐면, 지금껏 아무한테도 한적이 없는 이야긴데, 그날 사고 후 내가 운전석 옆에 숨겨져 있던 코카인이 가득찬 봉투를 발견 했었어요. 에이콕은 항상 약간씩 약에 취해 있었기 땜에 비행기를 몰 당시에도 분명히 약기운이 있었을 겁니다.

 

운전석 왼쪽에 있는 계기판 뚜겅을 열고 그 속의 마약 봉투를 봤을때, 아이고... 내 평생에 그렇게 많은 양의 코카인은 첨 봤어요. 그걸 보자 플로리다 경찰이 와서 그걸 발견할까봐 무척 걱정이 되더군요. 그래서 숲속에 갖다 버렸어요.

 

내가 잘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당시의 상황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희생자 세 사람이 아닌 한 아무도 정확한 진상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위의 증언으로 미루어보건데 조종사의 상습적인 마약복용이 어이없는 사고의 원인에 한몫을 했을 거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랜디의 이런 어이없는 죽음이 밴드 멤버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자 일생의 잊을 수 없는 아픈 기억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슬픔에 멍해진 상태였지만, 오지와 새런은 임시 기타리스트를 고용해서 순회공연을 강행하기로 결정했다. 오지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난 새런한테 이제 끝났어 라고 말했어요. 이건 경고야... 내 경력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그러자 새런이 내게 소리치더군요. "아니야. 이렇게 멈추면 안돼. 랜디가 우리가 이러는 걸 좋아할것 같아?"

 

그 결과 버니 톰이란 기타리스트가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의 공연에서 랜디 대신 연주했다. 그 이후에는 나잇 레인저에서도 활동한 바 있는 기타리스트 브랫 길리스가 나머지 순회 공연을 메꾸었다.

 

 

 오지와 브랫 길리스

 

브랫이 참여한 공연은 ‘Speak of the Devil’ 이라는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되었으며, 이 앨범은 블랙 사바쓰 시절의 곡들로만 채워져 있다.
"그 메디슨 스퀘어 가든 공연이 내 평생 가장 힘든 무대였어요" 루디 사조의 말이다.

 

"왜냐하면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첫 연주를 랜디가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죠. 매일 밤 무대에 오르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스테이지도 세트 리스트도 모든게 똑같고, 단지 랜디만이 없었지요. 난 그 느낌을 도저히 지울 수가 없었어요."

 

"새런은 아주 오랫동안 정말 괴로워했지요." 오지가 말한다.

 

"그녀는 우리 연주를 차마 들을 수도 없었기 땜에 우리가 옛 노래들을 연주하기 전에 공연장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나중에 우리가 집으로 돌아왔을때 그녀는 랜디의 옷가지들을 발견하기도 했지요. 아.. 정말 그럴때의 기분이란..."

 

랜디가 죽은지 넉달쯤 후에 오지는 전처와 이혼하고 새런과 결혼했다.

 

"행복과 불행이 뒤섞인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맞아요. 그날은 내 일생에 있어서 최고의 날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랜디와 레이철은 거기에 없었어요. 난 그들이 정말 우리 결혼식에 오기를 바랬었지요.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와 많은 어려움을 함께 했음은 물론, 오지와 내 관계의 밀고 당기는 우여곡절도 현장에서 지켜봤기 때문이에요. 난 그들이 우리가 결국 결혼에 골인하는걸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랬어요."

 

오지와 멤버들이 랜디에 대해 갖고있던 감정은 87년 오지가 발표한 랜디와의 라이브 앨범 Tribute 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다른 기타리스트와 정규 활동을 하는 와중에 과거에 같이 연주하던 사람과의 라이브 앨범을 낸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그 유명한 앨범 표지에 실린 정겨운 공연 장면을 통해 오지는 그와 랜디의 관계가 어떤 것이었는지, 그가 랜디를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트리뷰트 라이브 앨범 표지. 랜디의 라이브 연주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공식 음반이다.

 

오지와 멤버들 뿐 아니라 당시에 록을 듣던 팬들이라면 누구나 랜디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미지와 추억, 그리움을 갖고 있다. 이것은 단지 그의 뛰어난 기타 테크닉 때문만이 아니라 그의 연주에서 묻어나오는 우아함, 그리고 다른 연주자들에게 찾기 힘든 그만의 분위기와 외모에서 느껴지는 고독함, 섬세함 등이 뒤섞인 것이다.

 

랜디는 우리가 가진 이미지만큼이나 실제로도 갸날프고 수줍은 청년이었다. 불과 스물 다섯에 요절한 점을 생각해보면 그의 삶이 결과적으로 무척 불운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천하의 오지가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삶에 대한 긍정과 내면의 힘, 음악적인 재능을 가진 이 청년은 삶의 매 순간을 열심히 살다가 갔다. 그리고 사후 이십년이 되도록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생전의 모습 그대로 살아남아 있다.

 

자신이 가진 열정과 에너지를 최대한 발휘하며 진정으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단지 세상에 마지못해 존재할 뿐인 대부분의 우리들에 비한다면, 그의 삶이 비록 좀 짧았다 한들 정녕 불행했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오지는 랜디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랜디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때마다 나는 너무나 슬퍼집니다. 그가 죽은 바로 그날로 돌아가지요. 하지만 그의 영혼은 내 가슴속에 있고, 결코 죽지 않을 겁니다.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어요. 이건 그저 센티멘탈한 푸념이 아닙니다.

 

그는 마치 유성과 같았지요. 짦은 시간동안 그는 나와 함께 음악을 만들고 앨범을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순간들을 경험했지요. 지미 헨드릭스 처럼, 이런 사람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습니다. 불꽃을 갖고 있지요. 랜디도 물론 그랬고..."

 

단순히 오지의 가슴속 뿐만이 아니다. 랜디의 삶은 그가 만든 음악과 레코드들 속에 지금 이 순간은 물론 앞으로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듣고 또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지의 라이브 무대에서도 랜디는 아직 살아있다. 제이크 E 리 에 의해, 그리고 이후의 잭 와일드에 의해 랜디의 오리지널 솔로와 멜로디 라인은 거의 변형없이 이십년간 오지의 매 스테이지에서 카피되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타미 앨드리지의 짧지만 공감가는 한마디로 추모사를 대신할까 한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누구든 결국은 대체되고 잊혀진다고들 합니다. 그건 헛소리에요. 랜디 로즈야 말로 대체될수도, 잊혀질 수도 없는 녀석입니다...

 

 


딴지 전임 오부리 파토 (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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