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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가출소녀들과의 동거 4화(최종회)


2009.8.3.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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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롭게 우울한 날들이 일주일쯤 지났을 무렵, 문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유미였다.



정말 급해서 그런데요 하루만 좀 재워주시면 안돼요 부탁드릴게요 TT


그럴 줄 짐작하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더 있었으면 내가 먼저 전화를 걸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먼저 그러지 못한 건, 과연 뭐가 달라질까 의문이 들기도 했고, 처음과는 달리 이제는 아이들과 있으면 어떤 광경이 펼쳐지리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TV나 컴퓨터, 식사, 청소 등의 외부적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돈이 중요하지만, 그것도 결국 외부의 문제, 정말 필요하다면 아쉬우나마 융통할 방법이 없지도 않을 거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이 되는가?


만약 아이들이 제대로 된 생활을 찾기 위해 조금이라도 노력한다면, 그런 의지라도 보여준다면, 나는 아이들을 도울 명분이 있다. 담배를 끊고 푼돈 버는 알바라도 하며, 검정고시 보겠다고 책 한 줄이라도 읽고 있다면 누구라도 도와줄 마음이 날 것이다. 오해는 어차피 피할 수 없다. 진실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은 아이들의 노력뿐일테니까.


그러나 그럴 리가 없다. 내가 가진 최대의 능력은 먹물끼다.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얘기는 셋 다 했었다. 그러니 중학교 수준의 공부라면 얼마든지 가르쳐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 집에 있는 동안 그러려고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학교 공부를 시험 공부와 혼동하고 있는 이상에야, 대체 공부가 인생살이에 뭐가 도움이 되는지 모르는 이상에야 배울 마음이 들리 없다. 그게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으려면 일정 정도의 지식을 갖춰야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구구단을 외워야 하는 시기가 있듯이, 이해가 안 가더라도 참고 책을 읽어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허나 아이들은 때를 놓쳤고 붙잡아줄 사람도 없다.


아이들과 있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들이 참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본인이 필요로 하지 않을 때엔 도와줄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배부른 애에게 치킨을 줘봤자 퉁명스러운 반응만 돌아온다. 치킨이 정말 도움이 되는 건 그 애가 배고플 때다. 아이들에게 공부가 필요하고 평온함이 주어져야 하는 게 당연함에도, 그게 뭔지도 모르고 왜 해야 되는지도 모른다면, 그저 고통 하나를 더할 뿐이다.


그걸 알게 하기 위해선 선의의 권력과 강제가 필요하다. 부모가 집에 붙들어 놓고, 제 시간에 밥을 먹이고, 제때 학교에 보내야 한다. 부모가 아닌 다른 권력은 선의가 유지되기 어렵다. 내가 몸소 느꼈듯이. 또한 부모나 되니까 자기를 희생해서 뒤치다꺼리를 할 수 있는 거지, 하루에 몇 번씩이나 나는 화딱지를 참아내는 건 수도승이나 할 짓이다.


대개의 개인은, 물론 테레사 수녀 같은 사람도 있긴 하겠지만, 이런 자기 희생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올리버 트위스트의 상황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다. 나도 아이들을 데리고 있다간 결국 권력을 함부로 쓰게 될 거고, 응분의 보답을 바라며 하나씩 잠자리로 끌고 들어갈지 모른다. 나중엔 하나씩도 아니겠지. 나아가 애들이 원조교제해 벌어온 돈으로 밥먹고 영화보는 사태가 생기지 말란 법이 없다. 처음에야 몰랐지만, 지금은 아이들로선 고정된 숙소가 얼마나 얻기 어려운지를 알았고, 굶주림보다 외로움을 무서워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니 안락함과 친근함을 가장해 자기합리화란 놈이 곧 본색을 드러낼 게 분명하다.



그래서 사회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나의 결론이었다. 감정이 없고 사무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그러나 선의를 가진 권력 기관이 아이들에겐 필요하다.


이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이유는, 아이들과의 두 번째 만남에서 세세히 기록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체력 저하된 선수의 연장전일 뿐이다.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허락을 했고, 유미 은비 나영이는 예전처럼 잔뜩 화장을 한 채 집으로 들어왔다. 다시 만나 기쁘긴 했지만, 예상되었듯 유미는 열흘 정도만 머물게 해달라고 이야기를 했다. 일주일도 아니고 열흘.


앳된 얼굴의 유미, 그러나 영악하고 욕심 많은 유미. 내가 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했듯이, 유미도 그랬던 거다. 유미는 나란 사람이 어떤 성향인지를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들을 다시 만난 첫날에 그런 얘기를 꺼냈을 때, 내가 차마 그 자리에서 내치지 못할 거란 걸 짐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약속한 것을 어떻게든 지키려 한다는 것도 이미 보았다. 배고프다고 하면 그냥 못 넘어가는 것도 안다.


유미는 정말 머리가 좋았다. 유미는 아예 내가 의심한다고 했던, 자신들의 최대 취약점을 스스로 까발렸다.


"있잖아요, 저번에 돈 어디서 났냐고 그랬을 때요, 기억나시죠? 그거 사실 친구한테 돈 빌린 거 아니에요. 그 왜 있잖아요. 조건만남. 저희 그걸로 돈 벌었어요."


나는 그때 놀라서 뭐라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저희도 그거 하기 싫은데요, 딴 방법이 없으니깐 말이죠. 저희 알바 뛰어서 돈 제대로 못 받는 거 아시잖아요. 오빠도 저희 그런 거 하는 거 싫으시죠?"
"그야 그렇지..."
"그러니깐, 저희 앞으로 그거 안할게요! 저희도 오빠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거든요. 밥도 아껴 먹고요. 컴퓨터도 딱 쓰라고 할 때만 쓸 게요. 그니깐 좀만 있게 해주세요. 저희도 약속 지킬게요."


공은 유미의 손에 있었다. 나는 너희들이 책이라도 좀 읽으면 좋겠다고 했고, 아이들은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지만, 하루도 못 갈 거란 것은 나도 아이들도 알았다. 그땐 그냥 내가 진 거였다. 내가 자기들을 쫓아내고 싶어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유미는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원칙을 얘기하기엔 너무 물렀다.


그리고 다시, 이전에 있었던 상황은 반복됐다. 물론 아이들은 이제 TV와 컴퓨터 음악 소리를 줄였다. 가끔은 알아서 청소도 했다. 나도 전보다는 덤덤해져서, 전처럼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진 않았다.


하지만 두 가지 크게 다른 점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만 앞서 아이들을 들였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아이들을 돕고자 한 이 길의 끝이 막혀있음을, 개인은 그저 무력하다는 것을. 두 번째로 아이들이 왔을 때엔, 그래도 이 집이 평온했음을 깨달아 그리하여 뭔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 기대감이 망상이란 걸 아는 데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열흘 후엔 그럼 어떻게 할 생각이니?"
"아는 친구가 방 잡아준다고 했어요. 서울은 아니고 인천 쪽인데, 원룸 잡아줄 것 같아요."
"그 친구가 누군데?"
"제 남자친구요."
"걔는 몇 살이야?"
"어려요. 저보다 두 살 더. 그럼 열 다섯이네."
"열 다섯 살이 원룸 잡아준다고?"
"걔네 아빠가 해준다고 했대요. 방도 보러 다닌대요. 걔도 알바하면서 돈 잘 벌어요."


유미는 상황이 전과 다르다고 얘기하려 애썼지만, 기가 찼다. 어느 아빠가 그런 식으로 방을 잡아준단 말인가. 보나마나 여자애 홀리려고 잔뜩 허풍을 떨었을 게다. 여자 꼬시기 위해 수컷들이 어디까지 허풍을 떨 수 있는지는, 수컷인 내가 잘 안다.


"진짜로 방을 얻을 수 있다고 믿니?"


어느 날 유미와 나영이가 TV와 컴퓨터를 쓰고 있을 때, 나는 거실로 나와 은비에게 물었다.


"유미가 된다니까, 그런가 보죠."
"상식적으로 그게 말이 돼?"
"안 되죠."
"그럼 어떻게 하려구? 내가 봤을 땐 이게 가능할 리가 없어."
"방법이 없잖아요. 안되면 또 터미날에서 자든지."
"... 정말 집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거야?"


은비는 잠시 가만히 있더니 말을 꺼냈다.


"저는 가도 되는데, 쟤네들은 못 가요. 눈칫밥 먹는다고. 또 금방 나올 거에요."
"그럼 넌 왜 안 들어가고 사서 고생을 하는데?"
"쟤들 들어갈 데 있으면 갈 거에요. 근데 혼자는 싫어요."


이것도 의리에 속하나. 애들 고생하는데 나만 집에 있기는 싫다는 생각. 하긴 상황이 다르다 뿐이지 나도 저 나이 때엔 그랬다. 친구들과의 우정은 정말 소중했고, 부모가 거기에 간섭하는 걸 싫어했다. 다행히 나의 경우엔, 그 친구들과의 어울림이 부모의 기대치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았으니까, 어쨌든 성적이 좋았으니까 괜찮았을 뿐이다.


십대 청소년의 감성.
학교에 다니든 안 다니든, 별의별 경험을 했든 안했든 애들은 애들이다.


그걸 새삼 알게 해준 사례도 있었다. 어느 날 둘이 컴퓨터를 하며 말을 나누던 때였다. 무슨 맥락에서 말이 나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야. 여자들도 자꾸 하면 좋아하는 거 맞지."
"뭐야. 뭘 자꾸 해."
"있잖아, 여자들도 자꾸 하다보면 그거 즐긴대. 좋아가지구 자꾸 하게 된다고. 근데 그럼 걸레 되는 거야? 그게 걸레야?"


예전에 싸이에서 걸레년이라고 써놓은 걸 보고 무진장 화냈던 적이 있었다. 정작 아이들은 그게 무슨 뜻으로 통용되는지를 몰랐다. 그리고 여자들이 즐긴다는 게 뭔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아이들이 했던 수군거림과 행실을 감안할 때, 나는 어째서 저런 말을 하는지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었다. 즐기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야 왜 남자랑...


그제서야 알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왜 나를 경계했는지도. 나 역시 남자들의 인식, 그리고 원조교제 하는 아이들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을 좋아했지만 역시 보통 집에서 얌전히 공부하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헤프게 놀 것이라고 봤던 거다. 그러나 아이들은 헤프다는 게 뭔지도 모른다. 별의별 경험을 벌써 겪었지만 정작 여자들이 뭐가 좋아 그걸 하는지 모른다. 남자애들이 그 무렵에 거시기에 손이 가면서 진짜는 무슨 느낌일까 궁금해하는 것처럼, 이 여자애들도 그게 뭔지를 모르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진짜 사랑하는 사람과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 그럴 것이다.


"우리 때는요, 사랑이 아니라 그냥 감정적인 충동이래요."


은비와 나영이에게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어봤던 때였다. 은비는 있었고, 나영이는 얼마 전에 헤어졌다고 했다. 보기 드물게 유식한 말이 나왔었다.


"그렇겠지. 만약에 남자가 진짜 너를 사랑한다면, 너가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걸 그냥 놔두지 않을 걸. 그리고 너희 또래의 남자애들은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만, 대개 그 정도 생각이 돌아가지도 않아. 나도 그때엔 한 마리 원숭이 같았거든."
"진짜요?"
"어. 그럼."
"그럼 어떻게 해서 변하는 거에요? 오빠는 안 그러잖아요."
"...나도 딴데 가선 얼마든지 그래. 니네는 미성년자잖아."
"또 그놈의 미성년자."
"그러니까 공부를 해야 된단 말이야. 공부하면 생각도 바뀔 것이고 또..."
"그럼 그러지도 못할 거면서 남자애들이 왜 사귀자고 하는 거에요?"
"뭐 이유야 뻔하지 않냐?"
"... 야한 짓 하려고?"
"그렇지 뭐. 안 그러면 또 남자가 아니구."
"거봐, 그렇다니까."


17세 소녀들. 어리석음 때문에 고생을 자초하고 편견의 대상이 되었지만, 외로움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이성에 호기심이 싹트는 건 다른 아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법적으로가 아니라, 정말로 미성년자인 것이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 관공서의 표어 같은 그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


평온함에서 뭔가 배우리란 내 기대감이 엇나간 건, 이 아이들이 진짜 애들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 애들을 맡을 책무가 없지만 설사 주어진다고 해도 그럴 능력이 없다. 이기심은 되살아나 나를 화나게 만들테고 권력과 본능의 유혹은 순식간에 사람을 지배한다. 체험했기 때문에 안다. 설사 쉼터 같은 곳이 내키지 않더라도 사회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을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었다.







그리고 예전과 다른 또다른 점은 유미였다. 유미는 첫날부터 새벽에 몰래 문을 열고 밖에 나갔다. 처음엔 친구를 만난다고, 다음엔 남자친구를 만난다고 들어오지 않았다. 나갈 때는 아이들과 얘기 좀 할게 있다고 했지만 말이다.


유미는 정말 이 집을 숙소 자체로써 이용했다. 솔직히, 꼴사나웠다. 집에서 밥을 먹고는, 보일러를 틀어 샤워를 하고, 드라이기와 고데기(갖고 다녔다)로 머리를 단장한 후 화장을 하곤 남자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새벽에 나가 다음날 오후에 들어와서는 찜질방에서 잤다고 했다.


이 집에 온 후 은비나 나영이의 태도는 꽤 바뀌었다. 유미가 아니었다면 아이들과의 생활이 좀더 길어졌을지도 모른다. 나가서 고생하는 게 싫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잘 설득시켜 은비는 집에 돌려보내고, 나영이가 그게 어렵다면 복지사에게 데려가 있을 곳을 찾아주고 자주 밥이라도 사주며 아이들이 변화할 시간을 벌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그럴 곳이 있는지는 둘째치고 말이다.


하지만 유미의 행동은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었다. 유미는 결국 나가던 날까지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에 나갔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유미는 내 말을 들으려 하거나 뭔가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화도 냈고, 합리적으로 따져 문단속의 문제로 설득해보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묶어놓지 않는 이상엔 자는 도중에 나가버리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나갈 때마다 친구들을 꼭 데리고 나갔다. 안 나가겠다는 친구를 두세 시간이고 어르고 치대어, 한 시간만에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친구만 돌아오고 자신은 날이 밝을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4일째 지났을 때부터 나는 유미에게 얘기하는 걸 포기했다. 이때쯤 나는 유미에 대해 평정심을 잃었다. 개인적인 이유도 하나 있었다. 유미가 들어오지 않던 날, 나는 어렵사리 가불을 해 온 참이었다. 전날에 돈이 없어서 김치 말고는 반찬이 없는 꼴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미가 휑하니 나가버린 상황을 보곤 더 마음을 다잡을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날부터 유미를 마음 속에서 쳐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행동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을 예전처럼 대할 것인가? 아니면 이제 조금씩 기미가 보이는 은비와 나영이에게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이쪽 세계로 끌어들일 것인가? 어느 쪽이 올바른 권력 행사인가?


판단을 해야 했다. 만약 은비나 나영이에게서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명분은 족했다. 사실 아이들이 두 번째 왔을 때엔, 몇몇 지인들에게 집에 아이들이 있다는 얘기를 해두었었다. 상담의 목적도 있었지만 본분은 나 자신에 대한 감시였다. 지인들은 모두 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그와 동시에 어떻게든 도울 방법이 있다면 돕고 싶다는 말도 해주었다. 아이들을 실제 체험하진 않았지만 마음이야 나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이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다. 만약 내가 아이를 억지로 눌러 앉히거나 어디로 보내버린다면, 그건 폭력과 다름없고, 결국은 다시 거리로 나와버릴 것이다. 정작 이후에 도움을 청할 마음이 생기더라도 다시 연결되진 않을 것이다. 강제는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나는 마음을 다졌다. 그리고 어떤 결론을 얻을 것인가도 알고 있었다.


은비에게는 이미 물어봤었고, 사실 꽤 여러 차례 에둘러 얘기를 했었다. 결과는 같았다. 그건 나영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은비를 좋아했고, 이 집에 있으면서 유미와 다툼이 많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은비와 나영이는 친구를 떠나고 싶지 않아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서 나는 급작스럽게 친척이 올라오신다는 전갈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흘 후에 오시니 그 전에 방을 비워야 한다고. 당연히 거짓말이다. 아마 눈치채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유미는 방을 알아봐준다던 남자친구에게 급하게 연락을 취했다. 장시간의 통화를 통해, 유미는 이 남자애가 아무 것도 알아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하루 여유를 주어도 아무 진전이 없자 남자친구와 헤어져 버렸다. 이틀이 지난 뒤 새 남자친구를 만들긴 했지만.


어쨌든 떠나는 날까지 아이들은 새 숙소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어차피 시간이 더 흘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 집을 떠났다. 아이들을 다시 보게 될 거란 생각은 들었지만, 이 집에서의 인연은 이제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1423. 글을 쓰면서 나는 이 숫자를 떠올렸다. 기승전결을 1234의 숫자로 바꾼다고 하면, 나는 아이들과 있던 이 기간의 사건들이 마치 기결승전의 순서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시작이 있고 끝이 뻔한 상태에서, 숱한 사건들이 전개되고 또 해소되었다. 어차피 아이들은 내보내야 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그것이 어떤 식으로 유도되는가에 있지 않은가? 내가 아이들을 내보내야 하는, 아이들과 거리를 두어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무엇인가, 난 그걸 말하고 싶었다.


나 역시 그냥 보통 사람들 중의 하나고, 아이들은 쉼터로 가야 한다는 결론에 힘입어 가출청소년을 재단했었다. 하지만 옳은 결론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 자체는 아니다. 그렇게 되면 폭력은 옳지 않으므로 시위자들은 잡아들여도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리고 그 논리로는 시위의 이유를 해결할 수 없다.


나의 결론도 뻔했다. 가출청소년은 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 그 결론이 어떻게 도출되는지, 그 과정에 설득력이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는 이 글을 썼다. 당시에도 그랬지만 이 글을 쓰는 중에도, 나는 스스로 무력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경제력도 없었고, 성품으로도 아이들을 끌어들이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버렸다.


그 무력감에 결정타를 날린 건 바로 사회였다.


아이들이 나가고 일주일쯤 뒤, 밤 12시가 넘어 다시 유미에게서 예전과 같은 문자를 받았다. 하루만 재워달라고. 근처 고시원을 잡으려 했는데, 갑자기 방값을 높게 부른다는 거였다.


난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집중 호우로 천장에서 물이 샜고, 누전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집주인과 공사 인부들이 아침부터 집에 드나드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는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만났다. 다들 긴 머리 가발을 뒤집어 쓰고 있었다. 고시원에 들어가려고 일부러 나이든 티를 내려 했다는 것이다. 나는 돈을 좀 주고는, 정 고시원을 잡을 수 없으면 근처 모텔에라도 가서 자라고 말했다. 유미와 나영이는 저희들끼리 말할 게 있다면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은비만 남겨둔 채.


나는 은비에게 다시 예전의 레파토리를 꺼냈다.


"...그 얘기잖아요. 근본적 해결이 안된다는 거."


은비는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 알바해서 고시원 방값을 해결 못한다는 거 알잖아. 쫓겨난 적도 있었고, 치한이 문 열고 들어오려고도 했다면서. 너희가 성년이 되면 부동산 계약할 수 있으니까, 정 나오고 싶으면 그때 나오라고. 쉼터든 어디든 견뎌야 돼."
"쉼터는 가기 싫어요. 말했잖아요."
"만약에, 나쁜 애들 없고, 좀 편안한 쉼터가 있다면 갈 거냐?"
"그럼요. 우리 바라는 거 별로 없어요. 먹고 자고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내가 한번 알아볼게. 좀 버텨봐. 어쨌든 알아볼 테니."
"근데요, 제 생각엔 그런 데 없을 거에요."


나는 은비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데가 꼭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인터넷에서 쉼터나 청소년 보호소를 찾아보면 여러 곳이 검색된다. 그중 대부분은 단기이며, 한 달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하지만 대기자가 많기 때문에 즉시 들어갈 수 없으며 대개 1주일에서 열흘 정도면 다시 나와야 한다.


이것 말고 장기 쉼터도 있다. 하지만 단기든 장기든, 10명 이상을 받는 쉼터는 아주 드물다. 정부 시설이든 사립 시설이든. 그래도 인터넷에 나온 게 다는 아닐 테니, 한번 상담을 받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공적 청소년복지서비스 전달체계


나는 구청 청소년복지과를 찾아갔다. 담당자들은 다들 행사 때문에 출타 중이었고, 과장이나 계장쯤 되는 소위 윗사람만 있었다. 그는 관할 구역에 쉼터가 없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그럼 어디에 가봐야 하는지를 물었지만 그는 줄곧 입맛만 다셨다. 괜히 쉼터 현황 자료 같은 것만 뒤적이면서. 그에겐 여긴 없다는 말밖에 들을 게 없었다.


20분쯤 그렇게 있었을까. 담당자가 마침 돌아와서, 사정 얘기를 듣고는 청소년 상담사와 얘기해보는 게 낫다고 권해주었다. 안 그래도 그럴 참이었다. 담당자는 해당 청소년 수련원의 위치와 상담사 이름을 가르쳐주었다.


상담사를 만나려면 원래 예약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 중일지 모르니 말이다. 다행히 내가 간 시간에 상담사는 자리에 있었다. 30살쯤으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녀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금방 알아챘다.


"장기 쉼터에 가기 위해서는, 보호자에게 돌아갈 수 없다는 객관적 입증이 필요해요. 가령 저희에게 아이들을 데려다 주면, 저희는 경찰에게 연락하게 되어 있고, 경찰은 부모를 호출합니다. 그런 식으로 보호자에게 인계하는 거죠."
"그럼 다른 말로 하면, 객관적 입증이란 게 폭행이나 성추행 같은 범죄를 얘기하는 걸텐데, 그런 위험이 없다고 하면 장기 쉼터에 갈 수 없다는 말이겠군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보호자에게 인계가 안되는 경우, 우선 단기 쉼터에 데려가고, 거기서 그런 입증 절차를 거쳐서 장기 쉼터로 가게 되거든요."
"제가 찾아보기로는 쉼터의 수용인원이 10명이 채 되지 않던데요. 그렇다면 제가 말씀드린 경우, 아이들 보호자가 어쨌든 있고, 게다가 부정기적으로 연락도 하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집하고 연락을 하나요?"
"예. 전화비도 내주고, 뭐 언제 한번 보자는 식으로 통화하는 것도 들었고요. 부모 입장에서도 다급하게 찾는다거나 그런 상황이 아니죠. 어쨌든 그럼 장기는 힘들겠죠?"
"힘들 거로 봐요."
"애들이 갔던 데는 그럼 단기 쉼터일텐데, 거기서 1주일 있으면 나와야 되고, 나쁜 애들한테 물들까봐 안 간단 얘기를 들었어요. 애들 말이 사실일까요?"
"...그럴 수 있어요."
"들어오려는 애들 줄서있다는 얘기도 맞나요?"
"그것도 그래요."
"그럼 이 아이들이 바라는 그런 쉼터는 사실상 찾기 힘들겠네요?"
"그렇죠."


맥이 풀렸다.


"...어쨌든 아이들을 돕고 싶으시다면, 이쪽 상담시설에 데리고 오셔서 보호자 인계시키는 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하지만 애들은 결국 다시 나오고 말텐데요. 부모도 딱히 붙잡아두려고 조바심내지도 않는데."
"본인께서 위험할 수 있어요. 애들 원조교제 한다고 그러셨잖아요. 그것도 그렇고요. 우선적으로 절대로 집에 들이지 말아야 돼요. 그랬다가 문제 소지가 생기면, 부모들도 그렇고, 굉장히 안 좋아질 수가 있어요."


경험에서 나온 얘기 같았다. 부모 중에도 이상한 사람들 있었을 것이다. 만약 의도적으로 엮으려 든다면, 내가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골치 아프게 되겠지.


"...그래서 방법이 없다는 거에요. 개인적으로 하실 수 있는 게. 밖에서 밥 한번 사준다야 가능하겠지만, 더 개입해서 좋을 게 없어요. 보호자나 기관에 넘기셔야 돼요."
"애들이 오려고 하지 않을텐데요."
"명함을 드릴게요. 애들보고 여기 사무실로 연락하라고 하세요. 우선 상담이라도 받게 하세요. 여기선 취업 교육 같은 것도 무료로 해줘요."


하지만 이 지역엔 쉼터가 없다. 아까의 공무원이 연실 강조했던대로. 아이들이 쉼터에 갔었다고 하면 이런 상담도 거쳤을 것이다. 이 명함이 새삼스럽게 반갑지는 않으리라.


상담사는 아주 친절하게 상담에 응해주었다. 어쩌면 나 같은 경우를 많이 봐왔는지도, 그 실패를 숱하게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피해를 자초하지 마라, 내게는 상담사의 말이 그렇게 들렸다.


그 이후에 아이들과 다시 연락한 적은 없다. 내가 먼저 연락하는 건 부질없는 짓,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다시 연락이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땐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이 무력감은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그저 너희들 책임이니 알아서 해야 한다고 그래야 되나. 그 무책임한 소리를.


1423. 고민은 아직도 전개 중이다.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비를 홀딱 맞고 걸어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연상된다. 사람 많은 데를 지나노라면, 예전엔 알아채지 못했던 가출 소녀들의 모습을 이제는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짙은 아이라인, 떡칠한 화장, 낡은 옷차림 하나하나가 유미, 은비, 나영이로 보인다. 철모르는 아이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지금의 생활이 어떤 회한으로 올지 모르는 아이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그리고 사회가 생까고 있는 아이들.







이제 글을 끝맺으며 묻고 싶다. 나는 어떻게 하는 게 옳을까. 아니, 어떻게 할 수나 있을까.


아이들이란 그런 거다. 난 유미가 하는 짓이 정말 싫고 미웠지만, 그애가 밉지는 않다. 여러분들도 가출청소년을 만나면, 물론 그녀석들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겠지만, 그것 또한 애들의 천진난만함이란 걸 곧 알아차릴 수 있을 거다. 상황만 조금 달랐다면, 연예인 수다나 떨며 아이스크림 홀짝이며 다니는 보통 애들처럼 살았을 거다.


그러니 바라건대, 애들 생까지 마시라. 돈을 주란 소리도, 나처럼 데려가란 얘기도 아니다. 진짜로 그 순간에 도움을 줄 마음이 있다면, 꼰대 소리라도 좋으니, 그 마음을 표현해주시라. 이 글을 읽고서 그런 마음에 조금이라도 동조한다면, 내 글의 일차 목적은 달성된 거다. 도움을 얻고자 한 아이는 분명 도움을 얻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이 글을 쓴 또 하나의 목적, 그건 돈이다. 난 원고료가 필요했다. 아이들을 만나면 맛있는 걸 사주고 싶었다. 어느 날 뭐가 먹고 싶냐고 물었더니, 나영이가 회 먹고 싶다고 했었다. 그때 내 수중에 2만원 있었다. 9900원짜리 회 파는 데 없나 한참을 돌아다녔는데 없었다. 정작 우리 집 바로 앞에 횟집이 두 군데가 있었는데, 다들 2만원은 훌쩍 넘었다. 그 처참한 기분, 알 사람은 알 거다. 돈이 생기면 반드시 맛있는 모듬회를 사주고야 말겠다고 그때 다짐했었다. 돈 밝힌다고 욕하지 마시라.


마지막으로 댓글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셨기에 한마디 하고 싶다.


나는 그냥 보통 서민이다. 도덕적으로만 살아온 거 아니다. 날 보고 대단하다느니, 어떻게 참았냐느니 하는 댓글들이 있었는데,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누구나 똑같았을 거다. 별의별 생각이 오가는 건 나도 다르지 않다. 시시콜콜하게 안 써서 그렇지, 나도 무심코 허튼 말 지껄였다가 기분 상해해서 사과한 적 있었다. 칭찬이 어울릴만한 사람이 못 된다.


선정성으로 독자를 끌어드리려는 의도는 없었다. 내 의도는 아이들의 실상이 주는 충격, 그것 뿐이었다. 나만 충격을 받았지, 다른 분들은 새삼스럽지 않았던 걸 수도 있겠다. 아이들을 성적 대상으로 보게 했다면 내 잘못이다. 아이들은 내 앞에서 한번도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잘 보시면 다 내가 훔쳐 들은 말들이다.


제일 말 많았던 헤라 글에 대해선, 솔직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난 쿨한 인간이 아니다. 지금까지 글 보신 분들이라면 성격을 짐작하실 거다. 내가 제대로 행동한 건지 쓰면서도 수시로 헷갈려 하던 상황에, 그 글들이 결코 도움이 되진 않았다. 하지만 다굴은 잘못인 것 같다. 딴지가 마초 동네라고 하는데, 마초는 맞장을 뜨지 다굴질 같은 거 하지 않는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어쨌든, 아이들이 잘되기를 빌어 주시길.


신상 공개를 원치 않는 어느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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