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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토의 잡문화 칼럼] 장기하와 선배들

 

2009.8.3.월요일

 


필자, 원래 문화쪽 글 쓰던 사람이란 거 기억들 하실지 모르겠다. 요즘 하도 강성 정치 글을 많이 써서 혁명가(일부 댓글에 따르면) 비슷한 이미지도 생긴 것 같은데, 시절이 이래서 그렇게 된 거지 원래는 극히 조용하고 부드러운 사람이란 사실이다…

 

암튼 그래서 앞으로는 문화 칼럼도 좀 써볼까 한다. 가카와 쥐나라당이 거의 매일 삽질을 해 줘서 기사거리는 많지만, 그렇다고 맨날 쌈질만 하고 사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좀 안 좋다는 거, 요즘 실감하고 있다.

 

그럼 본론으로.

 

 




 

 

 

 

지난 주 모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과정에서 인순이와 ‘장기하와 얼굴들’ 간에 작은 갈등이 있었다. 다들 아시겠지만 ‘얼굴들’의 선글라스 쓴 처자들이 대선배 인순이가 먼저 인사하는데 고개만 까닥하고 말아서 인순이가 열 받아 자리를 박차고 나간 사건이다.

 

이걸 머 그저 건방진 후배와 나이든 선배 사이에서 벌어진 사소한 사건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아무래도 그 행간에는 그것과는 좀 다른 무엇이 있다.

 

현재 울나라의 문화는 거의 모든 면에서 동양 문화와 서양 문화의 짬뽕이다. 마 주제를 너무 확대해서는 곤란하니 문제의 상황과 관련한 부분에서만 이야기를 한다면, 알다시피 동양 문화는 선후배 따지고 나이 따지고 그 와중에 개인적인 관계의 서열이 결정되는 그런 쪽이다. 최소한 한 분야 속에서(음악 연기 미술 개그 스포츠 등등), 이런 서열은 당장의 인기나 돈의 유무에 우선하는 거의 절대적인 것이다.

 

반면 서양 문화는 지위/계급에 대한 개념이 먼저이고 대개 이는 돈과 권력에 의해 규정된다. 이건 아주 현실적이고 ‘here and now’ 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물론 간혹 큰 존경을 받는 원로들도 있지만 그것 역시 그들의 업적에 비례하는 것일 뿐이며 단지 선배라고 인정하고 예의를 차리는 게 아니다. 그래서 스튜디오 옆 방에 톰 존스가 녹음하고 있다고 해서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인사하러 갈 일도 없고, 서로 그런걸 기대하지도 않는다(머 지나치게 간단한 구분이란 건 인정하지만 여하튼 대략 이렇다).

 

이런 문화의 차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인기인, 저쪽 말로는 celebrity 라고 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와 태도다. 예를 들어 무도나 패떳, 1박2일 같은 식의 리얼 버라이어티는 서양에서는 실현이 불가능하다. 이 프로그램들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타가 공인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스타들인데 이들이 그 속에서 하는 행동은 우리들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화장끼도 없는 맨 얼굴에 뛰고 구르고 비 맞고 잡일하고 난리도 아니다. 호칭 역시 인기나 부와는 무관하게 무조건 나이 따라 형 오빠 동생이고, 동네 아줌마는 항상 어머님이고 마을 노인은 무조건 어르신이다.

 

이런 것을 서양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한가? 예를 들어 유재석 대신 제이 레노, 이효리 대신 브리트니 스피어스, 박예진 대신 제니퍼 아니스톤, 김종국 대신 제임스 햇필드, 대성이 대신 리키 마틴… 이런 식으로 출연진을 꾸려서 억지로 가족을 만들어 시골에 잡일이나 하게 보내는 게 말이나 되나 말이다(예전에 패리스 힐튼 등이 출현한 비슷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이건 주로 그네들의 어처구니 없는 비현실적 삶이 소재라 패떳하고는 의미가 좀 다르다).

 

물론 이 사람들은 소위 ‘월드스타’긴 하지만, 이건 단순히 돈과 명예의 크기와 관련된 문제만은 아니다. 인기인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들과 우리의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거다. 서구의 유명 연예인들은 계급적 의미에서 사실상 귀족이나 다름없고 그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그들은 일반인에게는 추앙과 동경의 대상이며, 그들의 삶은 항상 그에 어울리는 포장으로 덮여 있다. 서로가 그것을 원한다.

 

그러나 우리 연예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일반인이나 별 다름 없는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구멍 가게에서 하드 사먹고 떡볶이나 순대 좋아하고 어리버리해서 사고도 치고, 무도에서 퍼뜨린 이미지에 따르면 체력이나 기타 등등 오히려 일반 국민 평균보다 못한 모습들이다. 우리도 원래 연예인의 이미지가 이렇진 않았지만 나이와 경력 등이 우선시되고 쉽게 형아우 하는 사회 분위기 덕에 아주 쉽게 이런 형태로 이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연예인의 특권이 사라지는 지점에서 우리는 그들에게 친근감과 호감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바로 리얼 버라이어티가 몇 년째 대세를 차지하는 이유다.

 

 

그런데 이 와중에 우리가 잊어버리기 쉬운 것은 바로 ‘진실’이다. 이렇게 친근해 보이는 연예인들이 과연 실제로 그런 사람들일까? 패떳에서의 이효리와, 명품으로 치장하고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이효리는 어느 쪽이 진짜인가.

 

특정 개인에 대한 이런 질문은 답하기 어려운 문제지만, 이들이 과거의 고고한 이미지(국민요정 운운)를 버리고 친구나 가족 같은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 이유만은 분명하다. 그러는 쪽이 더 잘 팔리기 때문이다. 음반 시장이 사실상 사라지고, 영화계도 들쭉날쭉 하는 와중에 씀씀이는 더 커진 입장에서 폼 잡고 무게 잡는 것만으로는 벌이가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수나 배우로 폼 나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은, 배용준 같이 될 게 아니면 현실적으로 더 이상 도움이 안 되는 거다.

 

결국 지금 이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과거와는 반대 의미의, 굳이 명칭을 만들자면 ‘역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연예인은 우리와는 다르다는 환상으로 돈을 벌었다면, 이제는 유명 연예인도 실은 우리나 마찬가지거나 오히려 못하다는 환상을 팔아 돈을 번다. 현재의 ‘시장’ 상황에 맞게 연예인의 컨셉이 변한 것이다. 그 속에서 잊혀지는 것은, 고급 아파트에 외제 차를 몰고 원하는 대로 소비와 향락을 즐길 수 있는 특권층으로서 그들의 실상이다.

 

머 오해하지 말자. 이런 것은 쇼비즈의 속성이니 그것 자체로 탓하려는 건 아니다. 나도 유재석 좋아하고 박예진(특히 광팬) 좋아하고 패떳도 1박2일도 거의 매번 본다. 드라마는 선덕여왕 밖에 안보는, 까다롭기 그지 없는 시청자인 나를 티비 앞에 끌어낼 수 있다는 것만 봐도 이들이 그만큼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이 대체 장기하와 얼굴들과 먼 상관이냐?

 
 


인디밴드인(혹은 인디밴드 출신인) 장기하와 얼굴들은 그 태생과 성향이 패떳이나 무도 의 분위기와는 다르다. 사적인 친근감보다는 개성적인 음악과 감각적인 노랫말, 무대의 컨셉을 중요시하고, 그런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차별성이 없어지는 성격의 밴드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똥폼 잡는 이미지가 아니라 밴드의 창조성, 혹은 팬들이 익숙하고 계속적으로 바라는 모습과 관련되는 거다. 배용준이 한 순간의 실수로 김수로 같은 이미지로 변해 버릴 때의 문제를 떠올리면 알만할 거다.

 

그런 그들이, 오버그라운드의 라디오 방송에서 인순이 같은 ‘대선배’를 만나는 순간 이제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거다. 얼굴 한번 보지 못했던 사람과 단지 같은 음악인이라는 이유로 선후배로 묶이고, 철저히 사수하던 이미지와 컨셉을 그 순간이나마 포기하도록 강요 받는다. 선글라스를 벗고, 무표정한 얼굴을 지우고, 고개를 90도로 꺾으며 공손하게 인사하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되고 만다.

 

하지만 예컨대 일본의 유명 프로레슬러 타이거 마스크가, 개인 술자리도 아닌 방송 출연에서 역도산을 만났다고 가면을 벗고 형님, 선배님 해야 했을까. 아 물론 인순이를 탓하는 건 아니다. 이건 그저 한 사회에 공존하는 두 개의 다른 문화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갈등일 뿐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 나는 가수 인순이의 능력과 경력을 최고로 평가한다).

 

실제 방송을 듣지 못해 그날 분위기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만약 장기하와 얼굴들이 이런 자리에 계속 나온다면 조만간 ‘재밌는 이야기’를 하도록 무언의 강요를 받게 될 거다. 진지한 음악 이야기 같은 것도 한 두 번이지 계속 그런걸 듣고 싶은 사람은, 장기하와 얼굴들의 골수 팬이 아닌 한, 아무도 없다. 이미 다른 선배들도 다 망가지면서 웃기고 있는데 굳이 이를 피하고 무게 잡고 있을 특권이 계속 주어질 리도 없다.

 

물론 선배 후배가 알콩달콩 서로 친해지고 놀려먹고 토크쇼에서 농담 따먹기 하는 분위기도 좋다. 하지만 작금의 연예계 현실 속에서, 그런 화목함은 장기하와 얼굴들 같은 밴드에게는 자칫 자신들만의 개성을 꺾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도 있다.

 

그들이 점점 이런 관계 속에 들어갈수록, 돈 벌 기회는 많아지겠지만 아티스트로의 생명력과 흡인력은 약해져 갈 것이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시장의 대세인 패떳이나 무도가 상징하는 분위기 속으로 흡수될 지도 모른다. 한때 반문화 기수나 다름없던 부활이나 백두산도 그렇게 되는 요즘 아니냐(이 분들은 고생도 오래했고 나이도 많으니 애교로 봐 줘도 괜찮을 것 같지만).

 


너바나의 ‘Smells like Teen Spirit’ 은 엔터테이너가
되어 버린 스스로를 자학하는 내용이다. 쇼비즈의
세계에 들어오는 언더그라운드 아티스트는 인기를 얻으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들을 하게 마련이고, 여기에 대한
정체성의 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과거의 오버그라운드화는 대놓고 상업화되는 의미였기에(립싱크 위주의 티비 가요 프로그래 출연 등)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거부하고 고집을 부릴 명분이나 있었지만 지금 연예계의 분위기는 다르다. 무도나 패떳화 되는 것이 사실은 상업화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모호하고, 아무도 이런 것을 문제로 지적하지 않으며 오히려 반가워하고 친근해 하지 않는가.

 

‘가수(혹은 배우) 이전에 사람이 되라’는,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절대적인 경구도 있지만 이것 역시 진짜 인간성보다는 선후배간 예의와 관련되어 회자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 부분도 어느 정도는 허상이 섞여 있다. 소위 예의라는 것이 대면한 상태에서만 성립되는 관계인 경우가 대부분인 탓이다. 실제 현실에서의 삶은 결국은 돈과 권력(인기)을 통해 서열 지워지게 마련이다.

 

돈도 찾는 이도 없이 병석에서 고생하는 배삼룡이나 구봉서 같은 원로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이번 사태에 대해 장기하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퍼포먼스와 일상의 경계를 설정하는 데 있어서 저희가 실수를 범한 것에 대해 질책해주시는 것은 감사한 일이나, 저희가 저지른 실수로 인해 불쾌하셨던 선배님에 대한 예우를 충분히 하지 못했다는 오해는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도 사과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더욱 성숙한 장기하와 얼굴들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맘은 알겠지만, 이건 장기하에게서 나오기에는 너무나 통속적인 말이다. 그들을 그들로 만들었던 모습은 선배한테 공손하고 팬들한테 싹싹한 류의 ‘성숙함’이 아니다. 모두가 대성이와 유재석 같은 관계가 되어야 하는 건 아니며, 그래야 성숙해 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시점에서 그들이 되고자 하는 모습을 명확히 하고 정체성의 수립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머 울나라 현실에서 선후배 관계를 다 버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제 우리도 이런 굴레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자유는 존중해 줘야 한다. 사적인 태도와는 별개로 나름의 실력이나 창의력을 인정하는 풍토가 생겨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선배들이 잘 챙겨주진 않겠지만 그건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비록 장기하가 인순이에게 개인적인 사과는 하더라도, 저렇게 대중을 상대로 ‘성숙한 장기하와 얼굴들로 거듭나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말까지는 안 했어야 했다고 본다. 어느 정도의 생깜을 통해 이들의 엉뚱하고도 특출한 개성을 유지해 가는 게 옳지 않은가 싶다. 물론 당장에 욕은 먹을 수도 있지만 어차피 모두에게 칭찬받을 수는 없는 거다. 우리 모두 국민 오빠나 남동생, 여동생이 되어 살 수는 없는 일 아니냐.

 
 

 
… 얼마 전 정말 오랜만에 나간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 일면식도 없지만 같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나이가 한참 어리다는 점에서 사회 관점에서 까마득한 후배라고 봐도 무방한 사람이었다. 나도 그쪽 이름을 알고, 물론 그쪽도 내 이름을 안다.

 

자리를 잡고는, 내가 먼저 친절하게 인사를 했다. 근데 그냥 멀끔히 쳐다보면서 개무시해 버린다. 나중에 화장실에 가다가 다시 마주쳐 또 인사를 했다. 그런데도 그냥 지나쳐 버린다. 아니 저넘이 왜 나한테 저러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인순이가 그날 들었던 기분이 이 비슷한 거였을 거다.

 

하지만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생각해 보면 그게 이 사람의 개성이고 그렇기에 나름 특이한 작품을 만드는 거다. 내가 그 사람한테 뭐라고, 그만의 개성을 잘 알지도 못하는 나에 대한 예의와 맞바꾸라고 강요할 건가? 나한테 특별히 해꼬지를 한 것도 아닌데.

 

근데 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저쪽에서 먼저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다. 아마도 그에겐 이런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선배라고 의례적인 인사나 나누고 위선떨기 싫은 느낌. 이야기 할게 있으면 하고 아니면 안 하는. 어찌 보면 우리들 모두에게도 이게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욕 먹기 싫어서 그렇게 살지 못할 뿐인 거지.

 

안그러냐.

 


딴지 논설위원 파토 patowor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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