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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자의 장르야 놀자] <브이 포 벤테타>는 한국의 미래다


2009.7.30.목요일


사실 이번엔 국내 신종 플루 감염자가 심각한 수준으로 늘어났다는 기사를 접하고는 독감바이러스가 세상을 멸망시키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스티븐 킹의 <스탠드>를 소개하려 했다. 근데 국민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지켜보면서 <브이 포 벤데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브이 포 벤데타>는 <왓치맨> <젠틀맨리그> 등의 원작자로 유명한 앨런 무어의 만화(Comics)다. (앨런 무어는 DC코믹스와 같은 대형 출판사들이 마케팅을 목적으로 지어낸 용어라며 그래픽 노블이라 불리는 것을 거부한다!) 강력한 통제사회로 변모한 영국을 배경으로 시대의 혁명아 V가 홀연히 나타나 순한 양처럼 국가질서에 순응하는 시민들의 정신을 각성해 체제를 전복한다는 이야기. 국내에서는 워쇼스키 제작의 영화를 통해 <브이 포 벤데타>를 접한 사람이 많지만 V(휴고 위빙)의 슈퍼히어로적인 면모를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만화의 정수를 제대로 재현하지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만화 <브이 포 벤데타>는 한마디로 혁명교본이다. 앨런 무어는 권력의 광기가 민중을 압제하는 시대에 혁명이 어떻게 이뤄지고 성공에 다다를 수 있는가를 데이비드 로이드의 느와르풍 그림을 빌어 300페이지 분량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브이 포 벤데타>가 묘사하고 있는 시대적인 상황, 즉 탐욕스러운 정치가가 공포정치 및 언론 통제 등을 통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설정이 지금의 한국과 어쩜 그렇게 닮았는지. 권좌를 잡은 다수당이라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정권에 반하는 움직임이 생기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응징하는 MB적 진압까지, <브이 포 벤데타>는 배경을 지금의 한국으로 옮겨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흡사한 면모를 지녔다.


앨런 무어는 극중 V의 대사를 통해, "누구든지 한 번쯤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면서 (지금의 대통령을 선출한 건 정말 국민의 실수라고밖에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다!) 다만 "당신은 그저 안 돼라고만 말하면 된다."고 선동한다. 사회가 이 지경인 상황에서 대다수가 침묵해서는 우리의 자유와 인권을 지킬 수 없으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반대 의사를 밝히자는 것. 물론 그렇게 행동하는 시민들을 향해 소통을 거부한 지도자는, 그런 지도자에 머리 조아리는 측근들은 무질서를 좌시할 수 없다며 불법적인 시위는 단호하게 처벌하겠다는 경우를 우리는 TV를 통해, 신문을 통해, 인터넷을 통해, 그리고 거리에서 매일, 매시간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광장에 모인 촛불의 무법은, 용산 철거민 사태에 따른 경찰의 과잉진압에 항의하는 민중의 목소리의 무법은, 기득권 세력을 제외하곤 누구도 원하지 않는 미디어법에 분노하는 거리 시위의 무법은 말 그대로의 무법(無法), 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의 법과 동등한 의미와 지휘를 갖는 진정한 리더의 부재라는 뜻에서의 무법인 것이다. 그래서 <브이 포 벤데타>에 따르면, 무법과 함께 새 나라, 새 질서의 시대가 도래하나니, 그들만의 제국을 붕괴시키고 그 잔해 위해 깨끗한 캔버스를 만들어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도록 하잔다.  


말은 쉽지만, 그 과정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혁명이란 계급을 갈아엎는 폭력과 같아서 지적이고 교양적인 방식으로는 절대로 이뤄질 수가 없다. <브이 포 벤데타>가 많은 장(章)을 할애해 공들여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 작품에서 또 한 명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비는 방송국에 근무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인권말살의, 자유억압의 부조리한 상황을 맞이해도 그저 나 하나쯤이야 혹은 우린 안 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침묵하는 다수 중의 하나인 것이다. 앨런 무어는 그런 보통 사람들의 각성이야말로 이 사회를 바꾸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거의 인간 개조에 가까운 과정을 겪으며 혁명전사로 거듭난 이비를 통해 자유는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가치라는 것을 역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혁명은 필연적으로 폭력이 따를 수밖에 없기에 고통스럽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자유 수호를 위해, 민중해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브이 포 벤데타> 속 독재자의 이름은 아담이다. (아담하니까 하느님께 수도를 봉헌한 누군가가 생각난다) 광기의 어둠에 휩싸인 아담은 결국 이비, 바로 이브가 창조한 새 질서의 아침에 항복하고야 만다. 태초에 아담이 (먼저) 있고 이브가 있었지만 이제 이브가 있고 아담이 있다. 국민이 있어야 정치가 작동하는 것이지 정치가의 이득이 민생을 우선할 수 없다. 극중 V는 이렇게 말했다. "무법과 함께 질서의 시대가 온다. 진실한 질서는 자발적인 질서를 말한다." 승리의 V는 안 돼라고 외치는 순간 비로소 이뤄진다. 


덧붙여, 이 기사는 절대 혁명을 선동하는 글이 아니다. 그렇게 이해하셨다면 오해다. 강조하지만 이 기사는 <브이 포 벤데타>를 소개하는 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이란 단어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신 분들이라면 원래 이 만화가 그런 것이니 <브이 포 벤데타>의 한국어판을 출간한 출판사를 원망하실 일이다.


친절하게 알려드리자면, 전 재산 29만원 밖에 없는 전직 대통령의 자제분이 운영하는 거기다.   


허기자(www.hernamwo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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