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마태우스의 기생충 얘기] 엠비네이터(3)


2009.7.31.금요일







[돌아온 마태우스] 엠비네이터 제 1화 보기


[돌아온 마태우스] 엠비네이터 제 2화 보기


지난 줄거리


대운하 건설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온 송정호는 마태우스를 찾아 도움을 요청한다. 마태우스는 양박사가 훈련시킨 말라리아 감염 모기를 청와대로 날리지만, 말라리아에 걸린 건 전여욱 의원을 포함한 한나라당 당직자들뿐이었다. 과연 심판의 날은 막을 수 있을까?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
경호실장 차지철은 뭉툭한 턱을 어루만졌다.
"청와대엔 원래 모기가 없어. 그런데 모기가 떼로 나타났다니, 그게 우연인 것 같아?"


차지철의 말에 안기부장 김재규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그렇다면 역시 북에서 모기를 보낸 건가?"차지철이 한심하단 표정으로 김재규를 쏘아봤다.
"이봐, 김부장. 자네도 가끔은 머리를 좀 써보게. 북에서 여기까지 얼마나 떨어져 있지? 그 거리를 모기들이 날아오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그것도 정확히 청와대를 노리고?"


김재규는 큰 눈을 깜빡거렸다.
"그렇게 어렵게 얘기하지 말고 좀 쉽게 설명해 줘. 우연도 아니고 공작도 아니면, 모기는 도대체 어디서 온 거야?"슬슬 그가 귀찮아진 차지철은 적당히 얼버무리기로 했다.
"조사 중이니 조금만 기다리게. 나도 지금은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고."


김재규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난 또 나만 모르고 있는 줄 알고."


김재규가 나간 뒤 차지철은 청와대 회의실로 향했다. 사건 발생 후 3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붉은 띠가 둘러져 있었다. 차지철은 문을 열고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청소부가 대충은 치웠다고 하지만, 회의장은 여전히 어수선했다. 순간 차지철의 눈이 독사처럼 번뜩였다. 그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떨어진 모기 한 마리를 집어들었다. 잠시 모기를 관찰하던 그는 천천히 모기의 주둥이 부위를 핥기 시작했다.






"그것 참 신기한 일이군."
양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모기가 사람의 피부를 뚫지 못하다니, 그건 좀 이상한데?"

마태우스가 물었다.
"그런 경우가 가능은 한 거야?"
"그렇긴 하지. 경피증(scleroderma)을 앓고 있는 환자에서 모기 주둥이가 부러진 일이 있다는 보고가 있긴 하지만, 각하가 그런 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니잖아?"


송정호가 끼어들었다.
"저, 이번 작전이 실패했다고 한탄만 하고 있을 거예요?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고요!"


마태우스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 얘 말이 맞아. 모기 작전이 실패했으니 이제 다른 방도를 강구해야지. 당장 쓸 수 있는 게 있어?"


양박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모기보다 좀 더 센 게 필요하겠군. 자네 혹시 체체파리(tsetse fly)라고 들어봤나?"






이멍박은 청계병원에 입원 중인 전여욱 의원을 문병하고 있었다.


"어서 나아서 예전처럼 국민을 위해 일하셔야죠. 같이 물린 다른 의원들은 다 퇴원했는데, 전의원은 아직도 누워만 있으니 의사당이 텅 빈 것 같소."


전여욱은 각하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각하,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이멍박은 곁에 있는 주치의를 째려보며 말했다.
"도대체 무슨 치료를 하기에 여태 전의원만 누워 있는 거요? 당신, 돌팔이 아냐?"의사가 황급히 두 손을 내저었다.
"대통령님, 말라리아균은 이미 다 치료됐습니다만 의원님이 우겨서...."


전여욱이 화를 벌컥 내며 몸을 일으켰다.
"뭐야, 그럼 당신은 내가 지금 꾀병이라도 부린다는 거야 뭐야? 그리고 대통령님이 뭐야, 각하지! 당신 혹시 좌파야?"


행동이 빠른 전여욱은 이미 억센 팔로 의사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켁켁, 그런 뜻은 아니고...."


문병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각하가 말했다.
"전의원 손을 잡아 보니 양손 엄지와 검지에 굳은살이 심하더군.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서 그런가 봐."








‘아프리카 수면병은 감비아파동편모충(Trypanosoma gambiense)에 감염된 사람에서 중추신경계 증상이 나타나 생기는 질병이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에 유행하는 풍토병으로, 체체파리에 의해 매개된다. 매년 약 10,000명의 환자가 발생한다. 수면병에 걸리면 전신무력감, 불면증이 생기고, 림프절 종대와 고열이 난다. 병이 악화되면 전신쇠약, 무력감, 코마 상태에 빠지고 언어장애와 혀, 손이 떨린다. 몸을 흔들면 눈을 뜨기도 하다가 다시 잠드는 상태가 된다. 결국 영양실조, 뇌염, 혼수로 사망하게 된다(임상기생충학 358-362쪽).’


“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대통령을 보낼 생각인가요?”


책을 들여다보던 송정호의 말에 마태우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냐. 증상이 나타나면 약을 가져다 줄 생각이야.”


송정호는 이해가 안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꼭 대통령을 살려야 하지요? 지금 대통령만 없다면 다른 대통령은 절대로 대운하 같은 멍청한 짓은 하지 않을텐데.”
“그건 말이지.” 마태우스가 두 팔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내가 아는 어느 분의 안전 때문이지.”
“안전이라뇨?”마태우스가 송정호 쪽으로 다가앉았다.
“지금 대통령은 모든 면에서 80년대를 생각하게 한다고. 물론 그때만큼 폭력적이진 않지만, 최소한 지난 정권에 비해서는 후퇴했다고.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도 그렇지만, 시국 선언 참가자들을 징계하는 걸 보라고. 87년에는 적어도 시국선언에 대해서는 어쩌질 못했는데 이건 뭐.”


송정호가 계속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죠? 그거랑 대통령을 살리는 게 무슨 상관인데요?”
“내 말은.” 마태우스가 송정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대통령을 죽이려고 해봐. 아무리 가정이라 해도 이게 계속 연재될 수 있겠어? 내가 전에 얘기했던 미네르바라는 사람 있지? 그가 몇 달이나 갇혀 있었던 이유는 그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맞는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지금은 당장의 혈기보다는 수위를 조절하면서 비판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송정호는 그제야 수긍하는 듯했다.
“아하, 이제야 이해가 가요. 그래요, 제 생각이 짧았어요. 대통령은 한 나라의 국부이신데 암살하려 들면 안될 일이죠. 하하하”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미래는 어떠니?”


마태우스가 물었다.
“어떠냐니요?”
“그러니까 내 말은, 미래의 삶은 어떠냐는 거지.”


송정호가 한숨을 쉬었다.
“끔찍하죠. 기생충 감염률이 90%를 넘을 정도니. 말라리아로 죽는 사람이 매년 1만명이 넘어요.”
“그 시대에는 잘사는 사람들이 없어?”
“왜 없겠어요. 있지. 하지만 그 사람들은 자기네끼리 요새를 만들어 살아요. 다른 사람들은 출입하지 못하게요. 그 사람들만 잘 먹고 잘 살뿐, 나머지 사람들은 다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어요.”


마태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근데 민중들의 삶이 그렇게 어려운데, 왜 들고 일어나지 않는 거지? 그게 아니면 선거 같은 걸로도 정권을 교체할 수가 있지 않아? 숫적으로 따지면 상대가 안될텐데 말이야.”


송정호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언론에 의해 세뇌가 되기 때문이어요. 그 시대 사람들은 상당수가 조선뉴스를 시청해요. 조선뉴스는 늘 나라가 어려운 건 좌파들 때문이고, 부자들이 잘 살아야 나라가 잘된다고 주장하는데, 사람들이 그걸 믿는다니깐요.”
“조선뉴스?”
“조선방송에서 하는 뉴스죠. 조선방송은 원래 거대 신문사였는데 미디어법이 통과되는 바람에 방송계로 진출했대요. 뉴스 시청률이 50%를 넘는, 제일 잘나가는 방송사예요. 늘 거짓말만 하는데도 사람들이 보는 이유는 문화면은 제법 쓸만하거든요. 그래서 계속 보다가 세뇌당하는 거죠.”


그때 마태우스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양박사였다.






TV에서는 전여욱 의원의 퇴원식이 생방송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네, 지금 전여욱 의원님께서 병원 정문을 나서고 계십니다.”


현장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감격에 겨운 듯 떨리고 있었다.
“전 의원님께서는 의정활동을 지나치게 열심히 하시다 북한의 표적이 되셨고, 그로 인해 말라리아라는 몹쓸 병에 걸려 한달이 넘게 입원하셨습니다. 핼쑥한 얼굴과 야윈 팔다리가 그간의 고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네, 지금 전 의원님께서 환영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계십니다. 여러분, 전 의원님은 다시 건강을 찾으셨지만, 북한의 만행만큼은 절대 용서를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전여욱이 타자 운전기사는 황급히 문을 닫고 운전석으로 갔다.
“어디로 모실까요?”


전여욱은 짧게 말했다.
“의원회관으로 가세. 병원에 있으면서 어찌나 손가락이 근질근질한지, 꿈에 새 다섯 마리가 나오더라고. 가다가 현금을 좀 찾아야 하니 은행 좀 들르고.”


그날 전여욱은 육백만원을 땄다.






“이게 사하라 지역에서 잡은 체체파리일새. 주둥이에 수면병 원충이 득실대고 있지. 덥고 습한 기후에서만 사는지라 키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지만, 요즘같이 날씨가 덥다면 임무 수행에는 별 어려움이 없을 거야.”


둘은 유리병 안에 들어있는 체체파리를 들여다봤다.
“와, 말이 파리지, 정말 무섭게 생겼네요. 저기에 한번 물리면 무지하게 아플 것 같아요.”



송정호의 호들갑에 마태우스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꼭 성공해야 할텐데.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벌레를 통한 공격은 더 이상은 어렵거든.”


양박사가 마태우스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무 걱정하지 말게. 아무리 피부가 두꺼워도 체체파리의 이 강력한 주둥이를 당해내진 못할 걸새. 혹시 몰라서 두 마리를 넣었네.”
“이놈들은 어떤 단어에 반응하나? 또 ‘오해’인가?”


양박사가 두 손을 내저었다.
“이번엔 좀 다르게 훈련시켰네. 대통령 말고도 오해란 말을 쓰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서. 대신 이번엔...”


양박사가 책상 위에 있던 사진을 들어올렸다. 사진 속의 인물은 대통령이었는데, 볼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체체파리가 이 사람의 외모를 알아보도록 연습시켰네. 이번엔 틀림없이 성공할 걸새. 음하하하하.”





 
청와대 앞에 도착한 마태우스는 창문을 내린 후 차를 출발시켰다. 청와대 정문이 보였다.


“지금이야.”


송정호가 가지고 있던 병의 마개를 열자 체체파리 두 마리는 연습 때 했던 것처럼 청와대 건물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해태제과 대리 김준태는 청와대 영빈관에서 대통령과 마주앉아 있었다.
“내가 닮은 사람을 많이 봤지만, 자네는 정말 나처럼 생겼어. 마치 거울을 보는 기분이야. 허허허.”


김준태가 겸연쩍은 웃음을 지었다.
“날 닮은 걸로 보아 자네도 여자한테 인기 꽤나 많았겠어. 허허허.”


다시금 어색한 웃음을 지으려는 찰나, 김준태는 볼에 통증을 느끼고 얼굴을 찡그렸다.
“아야! 죄송합니다. 파리가 제 볼을...”


이멍박이 뭐라고 말하려는 찰나, 다른 파리가 김준태의 반대쪽 볼을 물었다.
“아야!”


이멍박도 반사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봐, 아무도 없어?”


경호원들이 달려왔다.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 파리 떼가 날 공격하고 있다고! 어서 잡아!”
대통령이 공중을 가리켰지만, 그곳에는 이미 아무것도 없었다. 그날 청와대에는 5톤이 넘는 살충제가 살포됐다.





마태우스는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높이 3미터의 안테나를 세웠다.
“이게 뭔가요?”


마태우스가 이마의 땀을 닦았다.
“이건 말이지, 일종의 음파 발생기야. 체체파리는 10만 헤르쯔 정도의 음파에 반응해 그곳으로 모인다고. 모기야 그냥 버려도 되지만, 체체파리는 양박사가 아끼는 거라고 꼭 다시 데려오라 했어. 어, 저기 오는 것 같군.”


잠자리만한 파리 두 마리가 윙 소리를 내며 안테나 쪽으로 다가왔다. 마태우스는 솜씨 좋게 그네들을 유인해 병에 넣었다.
“자, 이제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대략 2주 정도면 반응이 올 거야. 슬슬 출발해 볼까?”


경호실장 차지철은 CCTV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해. 아무래도 뭔가가 있어. 저 큰 파리가 각하와 김준태를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달려들잖아?”


게다가 곤충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그 파리들은 우리나라에 존재하지 않는 파리라고 했다. 한참을 골똘히 생각하던 차지철은 인터폰을 눌렀다.
“오늘 오후 청와대 앞길 CCTV 자료를 부탁하네. 지금 당장 좀 가져오게.”






“이야호!”


체체파리를 관찰하던 양박사가 환호성을 질렀다.
“지금 확인해 보니 수면병 원충이 제대로 들어간 것 같아. 남아 있는 원충이 별로 없어.”


마태우스와 송정호가 두 손을 잡았다.
“이야,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양박사, 정말 고마워.”
“우리 사이에 뭘. 비용 청구는 톡톡히 할 거니까 각오하라고.”


자취방에 돌아가자마자 마태우스는 TV 화면을 켰다. 대통령이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광경이 생중계되고 있었다.
“야, 이것 좀 사먹어라. 뻥튀기.”


노점상을 한 적이 있어서인지 재래시장에 간 대통령은 시종 거침이 없었다.
“빵집이 안돼?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어서 그런가보다. 방학을 줄여주면 되는 건가?”


상인들은 마트 때문에 장사가 안된다고 아우성이었다.
“그거야 재래시장도 인터넷으로 직거래를 하면 되잖아. 근데 여러분은 그렇게 안하고 있으니 그게 문제라는 거지. 내가 노점상 할 때는 말야 이렇게 대통령을 만나서 하소연하는 건 꿈도 못꿨어. 그렇게 본다면 여러분은 운이 좋은 거야.”


순간 마태우스가 송정호의 팔을 꽉 잡았다.
“아야! 형! 갑자기 왜이래요?”


송정호가 바라보니 마태우스의 얼굴이 굳어져 있다.
“형! 혹시 큰 거 마려우세요? 왜 사람 팔을 꼬집고 그래요?”
“저거 지금 생중계 맞지?”


마태우스가 TV를 가리켰다.
“네, 생중계라고 써 있잖아요.”
“체체파리에 물리면 말야, 물린 부위가 붓고 빨갛게 돼. 근데 지금 화면을 보면 대통령의 볼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잖아?”


송정호의 눈이 커졌다.
“정말 그러네요. 하지만 수면병원충은 분명히 주입됐다고 했잖아요?”
“체체파리가 표적을 잘못 고른 걸까? 하지만 양박사가 훈련시킨 파리라면 그런 실수를 할 확률이 없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다시 돌려 봐. 그래! 거기서 스톱!”
차지철은 CCTV 녹화필름을 확대했다. 화면에 비친 검은색 아반테 승용차의 창문은 열려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기생충 전문의
마태우스(bbbenji@freechal.com)

Profile
딴지일보 공식 계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