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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로 세상살기] 조용히 살지 왜 커밍아웃은 하냐고?

 


2009.7.27.월요일 

 

 

내친 김에 커밍아웃에 대해 더 이야기 해야겠다.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하는 이유? 개인별로 차이가 있겠고 그래서 다양한 답들이 나오겠지만 대체로 거짓말하기 싫어서 일 것이다. 죄지은 것 마냥 감추며 괴롭게 살기 싫어서. 자, 내 얘기를 들어 보라.

 

다들 그랬겠지만 나도 어릴 적 엄마께 혼난 적이 많았다. 난 혀를 내두를 정도의 개구쟁이는 아니었지만 조용한 범생도 아니었기 때문에 엄마의 매를 피할 수는 없었다. 우리 엄마의 매는 매섭기로 치면 거의 동네 최고 수준이었다.(만약 대회가 열렸다면 금메달은 우리 엄마 거였을 게다.)

 

그렇다고 매번 매를 드시는 체벌의 여왕은 아니셨다. 정말 큰 잘못을 했을 때 엄마는 매를 드셨고 그 매는 참 많이 아팠다. 그 중에서도 엄마를 제일 화나게 한 건 거짓말. 엄마는 거짓말 하는 걸 제일 싫어하셨다.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거짓말은 용서 못한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셨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들과 밤늦도록 놀다 들어와서는 선생님 심부름을 갔다 왔다고 거짓말을 했었다. 선생님이 집에 전화하신 것도 모르고 말이다. 그때 나를 보시던 엄마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엄마는 정말 모진 매를 드셨고 난 울면서 약속했다. "엄마 다시는 거짓말 하지 않을 게요."

 

하지만 엄마와의 약속은 오래가지 못해 깨지고 말았다. 그 이듬해 난 같은 반 친구(물론 남학생이다)를 좋아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엄마께 계속 거짓말을 해야 했다. "엄마 사실 저는 게이에요."라고 솔직하게 털어 놓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30년 가까운 세월을 이성애자로 속이거나 최소한 동성애자는 아닌 척 하고 살아왔었다. 몇 번이고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내 마음 속에서 용기와 두려움이 싸우다가 항상 두려움이란 놈이 이겨 버렸다고 할까? 결심을 하고 나섰다가도 막상 입이 떨어지지 않아서 발길을 되돌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망설이다가 10년 전쯤에 가까운 친구에게 고백을 하게 되었고 그러고도 10년이 지난 2006년 겨울이 되어서야 대중을 향해 커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어제 만난 후배도 커밍아웃을 못해 전전긍긍 하고 있었다. 녀석은 최근에 결혼을 하라고 다그치는 엄마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녀석의 위로 있는 형과 누나가 결혼을 한지는 이미 오래 되었고 어느새 동생마저 결혼을 해서 남은 건 달랑 자기 하나뿐이라 엄마의 성화가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다. 독신으로 살겠다고 여러 번 얘기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고 "너 때문에 내 명을 못 산다"는 얘기를 듣다 못한 녀석은 급기야 선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소개팅도 아니고 선이라니. 이성애자 연기(?)를 하며 맞선녀 앞에 앉아 있을 녀석을 생각하니 한편으로 우습고 한편으로 짠하고 한편으로 화가 치밀었다. "너는 그렇다 쳐도 상대방 여성은 무슨 봉변이냐"며 뭔가 수를 내라고 얘기했지만 당장 커밍아웃을 하라고 다그치지는 못했다. 쉬운 일 이 아니라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녀석은 이번 주말에 또 선을 보러 나간다고 했다(또 어떤 여성이 봉변을 당하게 될지 맘이 아프다. 당당하지 못한 게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결국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주인공들을 보라. 그들 때문에 여러 여자가 울지 않는가! 만약 그들이 일찍 성정체성을 깨닫고 커밍아웃하여 게이로 살았다면 다른 이들에게 피해 안주고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얘기가 잠깐 옆으로 샜다. 하던 얘기로 돌아간다). 그 말을 하면서 녀석은 또 깊은 한숨을 뱉어 냈다. 녀석의 가장 큰 고민도 거짓말이었다. 평생 거짓말을 하면서 살 수는 없는 노릇. 녀석도 언젠가는 용기를 내야 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녀석도 그 누구도 모른다.

 

이런 보고 사례가 있다.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를 비롯한 성소수자 인권단체 등은 레즈비언(133명), 게이(150명), 양성애자(52명), 성전환자(37명) 등 372명을 대상으로 한국 성소수자 사회의식 조사를 실시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5.5%가 주변의 누군가에게 자신의 성(별)정체성을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그 중 56.8%는 가족에게는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는 하는 말을 가족에게 하지 않았다(혹은 못했다)는 얘기다.

 

이유가 뭘까? 다른 질문에 대한 응답을 살펴보면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성(별)정체성 때문에 가족에 대한 죄의식이나 사회에 대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응답자의 71.4%가 그런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으며, 특히 성소수자이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30%에 이르는 사람들이 가족으로부터의 소외와 차별 이라고 답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죄의식을 느끼고 또 그들에게서 소외될까 두려워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세상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인 가족에게 마저 버림 받을까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에 사는 성소수자들이 겪는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커밍아웃을 한다? 결코 쉬울 리 없다.

 

 
[편집자 주: 미국의 문제도 심각해서 일부 기독교인들은
게이 남성들이 ‘게이 마귀’에 빙의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관련 사이트는 게이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상담에
엑소시스트를 찾아가 마귀를 쫓아내야 한다고 답하고 있다.
위는 문제의 게이 마귀를 표현한 실제 그림]

 

누구나 거짓말을 해봤을 것이다. 동시에 양심에 찔려 죄의식을 가져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알 것이다. 평생을 거짓말하며 죄인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짐작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거짓말 하지 말고 이성애자로 살면 되는 것 아니냐고? 그리 쉬운 것이었으면 평생 죄인처럼 살겠는가?

 

많은 이들이 아직도 모르고 있는데, 성소수자로 사는 건 병에 걸린 것이 아니다. 치료가 되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동성애를 정신질환으로 보기도 했지만 정신질환 목록에서 동성애가 삭제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또한 동성애(를 비롯한 성소수자들)는 선택하는 것도 아니다.

 

생각해보라. 이성애 중심의 사회에서 동성애자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들지. 그런데 동성애를 선택해서 평생 힘들게 산다고? 동성애자들이 메조키스트라도 된단 말인가? 단언컨대 선택의 범주에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힘들고 괴로울 때가 많지만 성소수자로 사는 것이다(물론 성소수자들이 항상 괴롭게 살고 잇는 건 아니다. 난 커밍아웃한 이후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한 가지만 더! 가족이나 친구들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성소수자가 있을 수 있다고.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가 남 얘기였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 내 가족일수도 내 친구일수도 있다(협박처럼 들리는가? 절대 협박이 아니다. 그냥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다. 나도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다. 그들은 내가 게이라는 걸 알았을까? 얘기가 또 잠시 옆으로 샜다. 다시 돌아간다).

 

내 가족 혹은 친구가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왜? 언제 누군가가 커밍아웃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커밍아웃은 대체로 가장 가까운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하게 마련이다. 수백 번을 망설이다가 하게 되는 커밍아웃을 누구에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친구가 1순위고 종국에는 가족에게 털어 놓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커밍아웃을 하면 내민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으면 좋겠다. 아니, 매몰차게 내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최소한 수백 번을 망설이다가 내민 손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거짓말쟁이로 살지 않으려고 내민 손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 지난 번 내가 쓴 글에 달린 댓글을 보고 느낀 게 많았다. 평소에 딴지가 좀 마초적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예상보다 더 많이 마초적이었다. 게다가 호모포비아적 발언을 서슴없이 하는 것에 좀 놀랐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나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은 거의 없었다는 것. 마초는 마초이되 성숙한 모습이어서 좋았다.

 

딴지에 글 쓰는 것, 생각보다 재밌는 일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댓글 단 사람들이여 또 만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

 

철없이 사는 영화쟁이
& 커밍아웃한 게이 김조광수 (ceope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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