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통신원] 김치를 김치라 불러다오 2009.7.22.수요일 들어가며 외국에 알려진 한국의 대표적 음식이라고 하면, 요즘은 불고기도 많이 떠올리지만, 아무래도 김치를 첫손에 꼽을 수 있겠다. 우리 입장에선 가끔 애매한 것이, 대표적 한국음식이라고 하면 김치가 맞는 듯한데, 대표적 한국요리라고 하면 왠지 불고기나 비빔밥이 더 어울리는 느낌을 받는다. 밑반찬이라서 그런가. 만들기 복잡하기론 김치가 불고기보다 훨씬 더한데 말이다. 지구상의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중국인들이 김치 안 먹을 리 없다. 우리나라서 유통되는 김치 상당수가 중국에서 온다는 얘기 들었을 것이다. 일부는 중국 내에서도 유통된다. 자신의 학력과 무관하게, 무슨 음식이 어디에 좋고 나쁘고를 중국인이 좔좔 읊어대는 경우를 필자는 자주 보았다. 요리 상식이 풍부한 것이다. 가끔 이 음식에 뭐가 들어가는가 물어보았을 때, 혹여 모르기라도 하면 점원을 불러서라도 재료를 가르쳐준다. 중국 사회엔 음식 상식에 대한 어떤 스트레스가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추측도 해보았다. 중국 내에서 소비되는 우리 김치는 대개 한국 사람들이 소비하지만, 차츰 중국인들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 드라마 탓이다. 드라마 주인공들이 먹고 마시는 게 대체 뭔지 궁금한 게다. 특히나 김치는, 밥 먹을 때마다 빠질 수가 없으니 노출 효과가 컸다. 예전 어느 중국인은, "한국 사람들은 끼니 때마다 김치를 먹는다며?" 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중국에도 밑반찬이 있지만 식사의 필수 요소는 아니다. 그들 입장에선 김치는 한국요리니까, 같은 요리를 늘 먹는다는 게 좀 이상해 보였던 모양이다. 아무튼 요리에 관심이 많은 중국 사람들이니 사서도 먹겠지만, 이게 유통되는 것도 한국사람이 있는 대도시의 경우에 한정된다. 내륙 쪽에선 구하기 힘들다. 그래서 직접 만들어 먹고, 만드는 법을 웹사이트에 올려놓기도 한다.
중국에선 김치를 일반적으로 파오차이(泡菜)라고 부른다. 그래서 맨 처음의 포장에도 한국 파오차이(韓國泡菜)라고 적혀 있다. 이 이름은 대만과 홍콩 등 중국어권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고, 필자도 아무 스스럼없이 중국인들에게 그렇게 김치 얘기를 했었다. 하지만 이제 김치를 파오차이라 부르면 안될 것 같다. 그 이유를 들으면, 우리와 중국 사이에 있는 여러 오해의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치와 파오차이는 당연히 다르다 중국에서도 쓰촨(四川)성은 요리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선 사천요리로 불리고, 흔히 매운 요리가 많은데 이를 마라(麻辣)라 하여 얼얼하고 칼칼한 맛을 특징으로 한다. 함부로 덤벼 들었다간 정말 매운 맛을 본다. 우리나라서 맛을 보려면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锅)를 먹어보라. 거기 나오는 빨간 탕을 한술 잡숴보면 이해가 가실 거다. 사천요리는 광동요리와 함께 중국 요리의 양대 산맥이다. 별의별 음식이 다 있다. 그런데 이 중에 쓰촨 파오차이(四川泡菜), 우리 식으로 번역하면 사천김치가 있다. 용도가 우리의 김치와 비슷해서, 단독 요리라기보다는 밑반찬 비슷하고, 흔히 배추와 무를 소금에 절이고 고추를 넣어 만드는 발효식품이다. 이렇게 들으면 김치와 비슷할 지 모르지만, 만드는 법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 필자도 분명 먹어보았겠지만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국집에서 간혹 짜차이라고 밑반찬 나오는데, 거기서 기름기 뺀 맛 정도 되려나. 쓰촨 파오차이도 우리 김치처럼, 만드는 집마다 방법이 달라서 재료는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주로 배추나 무, 샐러리, 당근, 고추 등을 씻어 단지에 넣고, 거기에 소금물을 부은 후 중국술 약간을 넣어 며칠간 발효시켜 만든다. 그러니까 액젓을 넣어 몇 달이고 모든 재료를 발효시키는 우리 김치와는 맛이 다를 수밖에 없겠다. 간단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원래 제조법으로는 이 소금물을 따로 만들기 위해 며칠간 야채를 절이고 버리기를 거듭해야 하며, 그걸 또 매일 반복해 소금물을 유지하는 게 중국 아녀자들의 일이었다고 하니, 전통 음식을 만만히 봐선 안될 것이다. 입맛 없을 때 중국인들, 특히 쓰촨성 사람들은 이 쓰촨 파오차이를 즐겨 먹는다. 상큼하고 매운 맛이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사천요리는 전 중국에 널리 퍼져 있고 유명하니, 따라서 파오차이라 하면 곧 쓰촨 파오차이라고 해도 그리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 김치가 점점 유명해지면서, 중국의 파오차이 관계자들도 일종의 위기 의식이 들었던 모양이다. 우선 기사를 보자.
여기까지야 뭐 그러려니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에 이어진 분석기사.
그냥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기사인데, 여기서 김치로 번역한 것이 원문에선 모두 파오차이로 기재돼 있다는 걸 알아두시기 바란다. 즉 이 글을 읽는 중국인은, 한국 파오차이가 쓰촨 파오차이보다 잘 팔린다고 읽고 있다는 얘기다. 계속 같은 기사다. 이번엔 파오차이(泡菜)를 김치로 번역하지 않고 원문대로 써보겠다.
감이 좀 오시는가? 중국의 파오차이 산업이 한국을 뛰어넘겠다는 생각에 이런저런 분석을 내는 건 당연하다. 쓰촨 파오차이 팔아 보겠다는데 우리가 말릴 이유도 없다. 하지만 김치를 파오차이로 통칭해 쓰고 있는 중국에서, 저 글을 읽으면 아주 심각한 오해가 벌어질 수 있다. 한국이 파오차이를 먼저 국제식품규격화 했고, 중국은 또 뒤떨어져서 낭패를 보고 있다고 말이다. 우리가 등록한 게 김치(KIMCHI)라고 생각이나 하겠나. 이 기사의 위에는 도표가 하나 있었다. 쓰촨 파오차이와 우리 김치의 비교표다. 이걸 중국인이 읽으면, 세번째 줄에 쓴 대로 탄생시기가 쓰촨 파오차이는 1500여년 전, 한국 파오차이는 1300년전 중국에서 전래됐다고 알게 된다.
당연하다. 김치는 물에 담가 만드는 음식이 아니니까 파오차이와 다르다. 하지만 김치를 줄곧 파오차이로 읽어온 중국인들로서는, 그러니까 한국 것은 중국에서 건너간 짝퉁 파오차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파오차이도 한국에 뺏겼구나, 한국이 또 먼저 국제 표준이라고 선수쳤구나 생각하지 않으면 이상할 거다. 물론 이 기사에서는 이것 말고도 또다른 중국 띄워주기 이야기가 있지만, 필자가 이 글을 소개하는 목적은 혐한이나 혐중에 있는 게 아니다. 이러한 오해의 근본적 원인은 중국의 표기 체계에 있으며, 이것이 바뀌지 않는 한 오해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김치를 김치 발음과 비슷한 다른 표기가 있다면, 애당초 이 기사의 오해도 생기지 않는다. 다들 중국인들이 서울을 한청(漢城)이라고 불러왔다는 걸 알고 있을 게다. 2005년 1월에 이 표기는 셔우얼(首尔)로 바뀌었다. 중국인들의 표기상으론, 서울대학교와 한성대학교의 구분이 되지 않았다. 또 국제화 시대에 전 세계가 서울Seoul로 부르고 있는 마당에 중국만 다른 이름을 쓰는 것도 이상하다. 나름대로는 한청이란 중국식 표기가 무슨 사대주의 유산 같아서 찜찜했던 게 사실이고. 그 뒤에 생긴 실화다. 중국인을 만난 자리에서였다. "왜 근데 한청을 셔우얼로 바꾼 거지?"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아직도 이런 중국인이 많다. 중국식 표기 탈피라는 얘기가 틀린 것만은 아니니까, 딴 건 빼놓고 그 얘기만 중국에서 유통되었던 것이다. 김치도 결국 비슷한 운명을 걷게 되지 않을까? 간단히 말하면, 중국인들은 한자의 음차(音借)가 아닌, 뜻풀이가 가능한 양식의 한자어는 모두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며, 같은 말일뿐 중국과는 다른 무언가가 존재하리란 사실을 모른다. 그러므로 중국 유래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각 지역에서 다른 양상으로 발전되었으리란 짐작을 하긴 더욱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한 게 단오절인지 단오제인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거다. 그 구분이 가능하다면 중국에선 식자층에 속한다고 봐도 된다. 이 사람들의 오해를 푸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웹상에서 다굴 당할까봐 그렇지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중국에 있다. 이런 지식을 갖출 기회가 없는 사람들 말이다. 따라서 그들은 유학, 선불교, 한방, 단오절, 설날, 추석 등이 한국에서 자체적으로 발전하거나 독특한 문화로 변모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저것들이 儒學, 禪佛敎, 中醫, 端午節, 春節, 仲秋節 등의 일상적 한자어로 중국에서 유통되기 때문이다. 솔직히 사람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자기 말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는 생각을 하기가 어디 쉬운가. 하지만 그런 이유로, 중국에는 없는 김치조차도 표기가 泡菜인 이상에는 역시나 중국 것의 모방품이라고 여기게 되는 게 사실이며, 그로써 또한 김치는 중국 것인데 한국이 뺏아갔다는 논리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책은 있나? 우리는 물론 중국인의 표기를 바꿀 방법이 없다. 앞서 들었던 유학이나 단오절 등의 사례를 여우-교우 단-오우-지에루 따위의 발음 표기로 바꾸어 새 말을 만드는 건 코미디다. 하지만 김치를 바꾸는 건 할 수 있다. 김치 업계 종사자와 문화부, 농수산부 관계자의 일이 되겠다. 김치의 국제 표준을 놓고 KIMCHI와 일본의 기무치(KIMUCHI)가 경쟁했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그렇다면 파오차이(泡菜)란 표기도 정정돼야 마땅하지 않은가? 김치 업계 입장에서도 이걸 놔두어 득이 될 일이 없다. 쓰촨 파오차이 측에서 대대적으로 자기 제품을 홍보하게 되면 될수록, 한국 김치에 대한 오해는 깊어지게 된다. 네티즌끼리의 루머 싸움이야 우리 쪽도 꽤 집요하게 강해서, 중국 쪽수에 쉽게 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근거를 마련해주면 훨씬 일이 쉽다.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진치(金齊) 식으로 통일된 안을 만들란 얘기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중국물 자주 먹는 필자 입장에서는, 불고기는 카우러우(烤肉)가 돼 버리고 비빔밥은 까이쟈오판(盖浇饭)으로 불려지면서 우리 양식이 사라지는 꼴을 자주 경험하곤 한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흘러 중국의 위세가 커지면, 우리의 독자성이란 게 침해당하지 말란 법이 없다. 개별 상품은 말할 것도 없고. 이거 나름 웃기다. 아침용 김치라니. 하지만 김치와 파오차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딱히 잘못인지도 모른채 퍼져나갈 거다. 한국을 중국 속국쯤으로 알고 있는 중국인들의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꿔 놓기 위해선, 최소한 국제 표준이 있는 물품부터라도 중국어 표기를 바꿔줄 필요가 있다. 문화적 영향이 당장에는 그리 크지 않지만 한번 바뀌면 복구가 어렵다. 중국인들은 진짜로 저게 김치인줄 알게 될 거란 말이다. 나중에 한국 드라마의 힘이 떨어지면, 우리가 매일 저걸 먹고 있는 줄로 착각할테고. 필자는 파오차이를 먹은 기억이 없으나 김치는 오늘 저녁에도 먹었다. 하지만 중국인에게 있어 나는, 오늘도 파오차이를 먹은 사람이 된다. 이 의미의 괴리감은 놔두어도 괜찮은 것인가. 아홉친구 (ninthpal@daum.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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