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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사기꾼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2009.7.23.목요일

 

 

 

 

몇 달 몇 일 공들여 촬영하고 날밤을 새서 편집하고 자막 넣고 음악 입히고 나레이션 깔고, 가장 중요한 CM 붙여서 방송에 내보내면 한 회차가 마무리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니다. 

 

방송이 끝난 후에도 중차대한 절차 하나가 남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방송 다음 날 아침, CP 책상에 사뿐히 날아드는 A4 용지 한 장을 검토하는 일이다. 바로 시청률표다.

 

하늘에 계신 시청률 아버지는 PD들로부터 거룩히 여김을 받으며 방송사 전체에 임하옵시며 그 여파가 사장실을 흔드는 것 같이 말단 조연출에게까지 여과없이 전달된다.  PD가 일용할 인사고과의 기준을 주며, 시청률만 잘 나오면 모든 죄가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예상 이하의 결과일 경우 PD와 작가와 MC의 모든 머리 위에 영원히 임하는 가시면류관같은 존재다.

 

많은 분들이 대관절 이 신성불가침의 시청률이 어떻게 계산되어 나오는 것인지를 궁금해 한다. PD를 친구로 두었거나 조카 녀석이 PD 노릇을 하는 분들은 우리 아무개 시청률 올려 주시겠노라며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해당 채널을 틀어놓기도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건 전깃세를 올리는 결과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 거룩하신 시청률 아버지는  맹랑하게도 리서치 회사가 표본집단으로 정한 기백 가구의 TV에 달린 기계 장치에 의해 작성된다. 

 

그럼 시청률은 뭐고 또 점유율은 무엇일까. 

 

예를 들어 100가구 가운데 TV를 켠 집도 있고 켜지 않은 집도 있을 것이다. 50집은 켜지 않았고 나머지 50집 가운데 20집이 어떤 프로그램을 시청했다고 치자. 그러면 시청률은 20퍼센트가 된다. 100가구 가운데 20가구가 보았으므로. 그런데 점유율은 TV를 켠 집단을 분모로 하여 작성된다.  즉 50가구 가운데 20가구가 시청했기에 점유율은 일약 40퍼센트로 점프하는 것이다. 즉 시청률 20%는 거의 모든 PD가 꿈꾸며 손에 넣기 원하는 성배라면 점유율 20%는 막사발은 겨우 면한 밥그릇에 불과한 수치가 된다고 보면 된다.

 

경우에 따라 시청률이 강조되기도 하고 점유율에 신경을 쓰기도 하지만 둘을 혼동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제 시청률 뭐 나왔냐?는 본부장의 질문에 15.3에 29입니다 라고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고 시청률이나 점유율 하나만 건성 대답했다가는 제우스의 벼락을 경험하기 십상이다. 부장님이 시청률을 물으시는데 점유율로 대답하는 바람에 부장님 인상을 천국에서 지옥으로 바꿔 놓는 짓은 초짜 PD들이 향용 범하는 과오 중의 하나다.  

 

시청률과 점유율 중에서 평가의 기준으로 활용되는 것은 점유율 쪽이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곯아 떨어진 새벽 프로그램의 시청률은 죽었다 깨나도 고만고만한 수치를 면하기 어렵지만 점유율은 그 프로그램의 위상과 인기를 드러내 주는 직접적인 자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시청률이 5%여도 그 시간대 점유율은 40%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덜떨어진 본부장이 새벽 프로그램 시청률을 독려한답시고 점유율을 무시하고 시청률 10%를 목표로 제시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미션 임파시블이다. 생활의 달인에 시청률의 마술사로 출연할만한 유능한 PD가 세 번 죽었다 깨나도  달성할 수 없는 수치이기 때문이고, 현실을 무시한  일종의 야바위이기 때문이다.
 

 

 




 

 

 

 

어제 날치기된 미디어법에서 바로 이 야바위가 사용되었다.

 

거대 신문의 방송 진출이 여론 독과점을 가져온다는 우려를 안심시켜 드리고자 한나라당은 구독률 25% 이상의 덩치들은 방송에 얼씬도 못하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문제는 대한민국에는 구독률 25% 이상의 덩치는 한강에 사는 괴물처럼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하의 조선일보가 10.1%,  중앙일보가 8.4% , 불쌍한(?) 동아일보는 6.8%의 구독률을 각각 기록하고 있으니 조선일보는 두 배, 중앙일보는 세 배, 동아일보는 네 배는 더 덩치를 키워야 한나라당 보기에 거대언론 자격이 있는, 지금으로서는 가련한(?) 군소언론들에 불과한 것이다.

 

새벽 6시 프로그램 PD들에게 "시청률 15% 기록시 현상금 1억을 주겠다"고 선포하는 것은 곧 돈 1억을 주지 않겠다는 요량이다. "올해까지 시청률 15%를 올리지 못하면 프로그램을 퍠지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프로그램을 올해 안에 막 내리겠다는 뜻이다.

 

동일한 선상에서  한나라당의 의도는 조중동에게 무조건 방송을 선물하겠다는 것이었다. 그 의도를 숨기기 위해 구독률을 활용한 것은 치졸을 넘어서고 졸렬을 벗어나서 연민의 정이 들게 만든다. 조선 중앙 동아의 구독 점유율을 합치면 82.5%에 이른다는 사실에 접하면 뭐라 더 할 말조차 없어진다.  

 

이쯤 되면 야바위의 영역이 아니라  사기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을까.  

 

범죄꾼들도 저마다의 영역이 있어 소매치기는 아리랑치기를 하지 않고 퍽치기꾼은 절도 따위는 눈길 안준는다는데 이 사기꾼은 날치기의 영역에도 거침없이 도전했다. 그리고는 정원이 모자라자 재투표에 대리투표 의혹(일단은 의혹이라 해두자)까지 풍기며 서투른 날치기를 마감했다. 그래서 마침내 가련한(?) 군소신문들은 방송에 자신들의 숟가락을 담글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노영방송 (勞營放送) MBC는 필요없다며 기염을 토한 군소신문 동아일보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겠다"고 했다. 그 군소신문사가 원하는 방송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주의 주가조작 의혹 따위는 화면조정시간에 슬쩍 내보내거나 아예 생까는 센스 정도는 알아서 갖추는 방송?  그 술은 뉘가 담근 술이며 그 부대는 또 어느 실로 짠 것일까?   둘째로 가련한 군소신문 중앙일보가 방송에 참여하고 내가 그 아래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면 나는 과연 이재용 전무의 상속세 포탈 문제를 다루는 기획 프로그램 기획서를 워딩할 수나 있을까?  가장 덜 불쌍한 군소신문 조선일보가 주관하는 방송사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는 무슨 기획을 하여야 할까?  

 

"다시 쓰는 인물 현대사 - 구국의 거인 이승만, 민족지의 수호신 방응모, 경찰의 산 증인 노덕술, "제주도민 다 죽여도 좋다"의 카리스마 조병옥" ...... 아니 아니 이건 어떨까.   "좋은 나라 만들기 운동본부 - 귀족노조들의 실태를 끝까지 추적한다." , "노사화합 1박2일"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좌파 10년의 비극" ?  "자살도 살인이다- 자살방지 캠페인"(전직 대통령은 살인자!)?

 

이제 방송의 새로운 주인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들의 관심은 두 가지다.  사양길에 접어든 본령의 밥그릇을 개선할만한 영업 이익과 신문 시장에서 자신들이 주물렀던 여론. 그들에게 그 두 가지를 선물하기 위해서 한나라당은 사기를 쳤고 날치기를 했고 국민들의 60%에 이르는 반대 따위는 없는 셈치고 밀어부쳤다.  본의를 감추고 , 그 본의를 감추기 위해 허위 사실을 지어내며 그를 믿도록 만들어 자신이 속는지조차 모르게 자신의 권리를 낼름 갖다 바치게 만드는 것을 우리는 사기라고 부른다.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기꾼도 있지만 속임수가 뻔하고 그 속이 1급수처럼 환히 드러나 보이는 주제에 얼뜬 시골 노인들을 후리고 돈 긁어가는 질 낮은 사기꾼도 있다. 우리의 얼치기 사기꾼 한나라씨는 조중동에게 선물을 주기 위해서 일자리 2만개론을 만병통치약 광고처럼 흘렸고 "미디어 산업 발전" 이야기를 "아무개 박사가 보장하고 보건복지부가 인정한" 타이틀처럼 휘감았던 것이다. 졸지에 대한민국 국민은 마실 나왔다가 지갑째 털린 시골 영감님이 되어 버렸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허허 안 살려고 했는디......"  머리를 긁으며 "내가 정신이 나갔나벼......." 한탄하는 일이 남았을 뿐이다. 

 

과연 우리는 이렇게 당하고 살아야 할까.   후손들에게 "도대체 왜 그렇게 당하고 사셨어요?" 힐난을 들으며 방구석 긁으면서 팔자소관이니 할 수 있나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내 돈이랑 내 친구 돈이랑 노인정 식구들 돈 날치기해 간 돈으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면서 돈지랄을 벌이고 있는 사기꾼들에게도 말 한 마디 못하고 속앓이를 하고 살아야 할까.   혹시 만병통치약일지 모르지 먹어나 보자며 벌컥벌컥 들이켜고 행여 몸이 좋아지지 않을까 기대하며 살아야 할까.

 

단  한 번이라도,  "이건 사기여~~~"라고 지팡이 부르짚고 눈에 힘주면서 지갑에서 돈 꺼내 가려는 사기꾼들에게 일갈이나 하고 "내 돈 돌려 줘 이놈들아"라고 뻗대라도 보는 것이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권리요 국민으로서 갖춰야 할 소양이 아닐까.   "이 독한 사기꾼들아.  그 돈으로 누구를 배불릴 것이냐.  이 따위 방식으로  또 누구 눈을 가릴 것이며, 또 어떤 사람들을 사기치고 다닐 것이냐?"라고 물어야 하지 않을까.  어영부영 날치기로 꺼내 간 돈다발에 손을 뻗으며 이건 내 돈이라고 외쳐 보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라도 하지 않을 때 과연 저 사기꾼들은 우리를 뭘로 볼 것인가.   봉으로 볼 것인가 졸로 볼 것인가.  아니면 아무 때나 퍼 쓸 수 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치부하고 팽개쳐 둘 것인가.  

 

 

산하(nasanh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