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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미래소설] 2029년, 마지막 딴지스

 

2009.7.23.목요일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2009년 7월 22일이었다.

 

 


북두의 일곱 별이 여덟이 되지 않는 한, 미실을 대적할 자는 없으리라.
미실을 대적할 자, 북두의 일곱 별이 여덟이 되는 날 오리라.

 

처음에는 드라마에 너무 심취한 탓이라고 여겼다. 연일 계속되는 과로에 환청을 들은 것이거나. 

 

"태양이 달에 가리지 않는 한, 太鼠에 대적할 자는 없으리라.
太鼠를 대적할 자, 태양이 달에 가리는 날 오리라.
그리고 그들은 모두...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2009년 7월 22일. 너무도 많은 일이 일어났던 날. 그래서 그 계시의 의미를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날은 한나라당 경기도의회 의원 92명 전원 찬성으로 경기도의회 무료급식 예산이 100프로 삭감되던 날이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게 아니다. 배고픈 아이들이 급식대신 수도꼭지로 주린 배를 채워야 할 판국에, 강원도의 모 육군부대에서는 인면수심의 파렴치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를 지켜야할 군바리들이 후라이드치킨, 양념치킨,양념반 후라이드반, 닭백숙, 닭도리탕, 닭강정, 데리야끼치킨, 치킨샐러드 등 삼시세끼에 간식에 전투식량까지 오만가지 닭요리를 지들끼리만 즐겼다는 사실이 폭로되며, 어쩌면 그들에게 위문편지를 보냈을지도 모를 배고픈 아이들의 염장에 씻을 수없는 기스를 냈던 날이 이날이었다.

 

이런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르고도... 아 가만있자. 기억에 착오가 있었다.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니 그 닭이 유통기한 지난 폐기닭이었다. 2만마리던가. 혼자 열폭해서 미안하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그때나 지금이나 초코파이와 라면 하나면 개종도 마다 않는 군바리들의 강철위장이, 미친 쇠고기, 상한 닭 등의 유해식품으로부터 국민들을 안전하게 보호했던 것을 잠시 망각했다. 노여움 푸시라.

 

평택의 쌍용자동차 공장은 또 어떠했는가. 특공대에 컨테이너에... 헛갈리지 마시라. 용산 철거민 얘기가 아니라 쌍용자동차 상황이다.

 

국회에서도 큰 소란이 벌어졌다. 미디어법 통과를 둘러싼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치열한 공성전과 그 와중에 은근슬쩍 묻어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통과. 아,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금산분리 완화를 골자로 한 법안인데 쉽게 야그해서 삼성, 현대, LG 이런 대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법안이라고 보면 된다. 지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성은행, 현대은행 등의 법적 설립 근거가 이때 만들어졌다.

 

그리고 일식...

 

정확히 <삼하보살, 모리시타 쿠루미> 기사를 편집할 때였다. 온몸으로 육보시를 실현한 그녀의 살신성인에 감동의 눈물을 키보드에 뿌릴 찰나, 계시가 왔다.

 

" 태양이 달에 가리지 않는 한, 太鼠에 대적할 자는 없으리라.
太鼠를 대적할 자, 태양이 달에 가리는 날 오리라
그리고 그들은 모두...다."

 

이 계시의 의미는 무엇인가. 태양이 달에 가린다라... 밖을 나가보았다. 그래 그러고보니 오늘이 몇십년만에 찾아온다는 일식이었지. 그렇다면 태서는 또 무엇인가. 계시의 의미를 생각하느라 멍한 시선으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고길 한참여... 마치 매직아이처럼 너부리 편집장의 마우스 관련 기사가 두둥 떠올랐다.

 

 

옳거니. 태서는 큰쥐니까 필경 마우스를 뜻하는 것이렷다. 그것과 일식이 무슨 관계가...

 

.

 

.

 

.

 

허걱!

 

다음 일식 사진을 유심히 보라.

 

 

무엇이 연상되는가. 잘 이해가 안간다고? 그럼 이 사진을 보라

 

 

그렇다. 익명의 독자가 너부리 편집장에게 보낸 쌍마우스. 그 광경을 지켜보며 원인모를 복통에 시달리길 그 며칠이던가.

 

공포의 쌍마우스에 대적할 자라는 게, 취재 때마다 본기자의 연약한 허리를 절딴냈던 무거운 데스크탑을 대체할 그 무엇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라고 며칠간 착각했었다.

 

비록 착각이지만 약간의 긍정적 효과도 있었다. 물론 그 수혜자는 내가 아니라 (주)딴지그룹이었지만. 한동안 전직원중에 제일 먼저 회사에 출근하고 제일 나중에 퇴근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택배가 올때마다 버선발로 제일 먼저 뛰어나간 것도 본 기자였다. 그러나 본 기자의 택배는 영원히 도착하지 않았다...

 

계시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미디어법과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 통과. 세상은 예상대로 돌아갔다. 대기업과 거대언론사의 날개에 터보엔진을 달아줬으니, 그 결과야 뻔하지 않겠는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은 모두 재갈이 물리고, 방송은 정권의 입맛에 맞는 거대언론사와 대기업이 장악했다.  

 

그리고...

 

오직 딴지만이 살아남았다. 계시의 진정한 의미, 태서에 대적할 자는 바로 딴지였다.

 


국회에서 레슬링 하는 동안 태양이 달에 가리는 풍경을 보고 있는 분.
이분이 바로 太鼠시다. 

 

정권에 비판적인 모든 언론들이 압살당한 가운데, 포탈에도 안뜨고 시스템이 하도 선진적이라 제대로 펌질하기도 지랄맞고 그 흔한 알바 한마리 안쓰는 사이트라 상대적으로 탄압의 강도가 미약했던 것이다.

 

다른 분석으로는 주로 반어와 패러디로 이루어지는 본지의 기사 속성상 그들이 딴지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설도 있다. 실제로 과거 보수단체의 집회가이드 관련 기사를 쓰고 난후, 단체 관계자로부터 감사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관심 가져줘서 고맙다고. 다음부턴 기사 참고해서 제대로된 집회를 하겠노라고. 기사 작성 후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순간으로 기억된다.

 

계시의 마지막 문장이 여전히 해독이 안되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건 일단 넘어가자. 중요한 건 딴지가 태서에 대적할 자라는 사실이다. 

 

한편 딴지의 위기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처음엔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그런데 털 게 없다. 번게 있어야 포탈을 하던 횡령을 하던 하지. 유일하게 걸린 게, 몇년 째 밀린 세금. 담당공무원에게 사자후를 토하던 총수의 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가난이 죄는 아니잖아요 흑흑 한번만 봐주셈"

 

그외 편집부 컴을 뒤져서 나온 수십기가의 야동. AV 관련기사의 편집을 위한 참고자료일뿐이라고 열심히 설명했고 결국 별 탈 없이 넘어갔다. 뒷면에 웹하드 ID가 적혀있는 담당공무원의 명함을 받아두는 것으로.

 

딱 한번, 몇 개월 사이트 정지를 받은 적이 있다.

 

 

 

본 기자의 이메일은 이럴 때 사용하라고 있는 것이다. 차후 알바분덜은 본 기자의 이메일을 이용해 주시라. 요새 좀 바쁘다.

 

태서에 대적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과업이었다. 딴지의 주특기가 역사의 뒷북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안 그래도 계시를 받기 몇달 전부터 본의 아니게 일보가 되어버려 격무에 시달리던 딴지스들이 과로로 픽픽 쓰러져갔다. 아무도 할 사람이 없기에, 역사의 앞북까지 맡아야 했던 것이다.

 

그제는 20년째 100분 토론 사회자를 맡고 있는 김똥길 옹을 취재하고 왔다. 2029년 현재 한국나이 100세.

 

그날의 토론주제는 노인공경, 이대로 좋은가였다. 대략 80은 족히 넘어보이는 패널들이 갑론을박을 벌이는 가운데, 급기야 열에 받친 한 패널이 "어디서 이런 젖비린내 나는 쉐이가 싸가지 없게스리... 민증 까봐" 초식을 날렸다. 이에 격분한 상대 패널이 "니미뽕, 엄창(니 엄마 창녀)" 초식으로 반격에 나섰고, 보다 못한 김똥길 옹이 예의 "이게 뭡니까를 날리며 사태를 진정시켰다. 역쉬 노련한 김똥길 옹이었다. 막말에 관한 한 수십년간의 절륜할 내공을 쌓은 사회자의 일갈에 듣보잡 패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나중에는 몸소 민증을 까려는 사회자를 패널들이 말리는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토론이 끝나고 수많은 취재진들 사이에 본 기자도 합류했다.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재래식 홀로그래프 장치로 3D 영상을 내보내는 다른 취재진들 사이에서 30년된 최첨단 장비로 취재에 임하는 본기자를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취재의 목표는 오래된 속설의 과학적 근거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것이었다.

 

기사제목은 [본지단독특종] "욕 먹으면 오래 산다, 실체적 증거 공개

 

 

이외에도 기사꺼리는 너무도 많았다. 방송국의 다큐멘터리는 죄다 대한늬우스라 그거 패러디하기 바빴고, 이달의 삽질인물은 이날의 삽질인물로 심지어 나중에는 오전의 삽질인물 오후의 삽질인물 1일 2회 업데체제로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면부족 시간부족, 재벌회장들 위인전이 되어버린 사극 드라마는 아무리 까고 또까도 끝도 없이 만들어댔다.

 

그 결과, 그 많던 딴지스들이 과로사로 하나둘 죽어갔다.

 

어제는 너부리 편집장이 독자께서 보내주신 소중한 마우스로 마지막 분노의 클릭질을 한 채 숨을 거두었다. 움켜쥔 마우스를 손에서 떼어내자 평화로이 잠든 너부리 편집장의 표정이 보인다. 부디 고이 잠드시라. 그리고 그 표정만큼이나 고요히 화면보호를 하던 모니터에 화면이 떴다. 어찌된 일인지 20년전 불기둥의 제나 제임슨 기사 속 야릇한 사진이 뜬다. 그 밤, 아무도 없는 빈 사무실에서 무려 20년 전 기사의 사진을 보며 그는 무슨 짓을 아니 생각을 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나 혼자 남았다.

 

불현듯 오래 전에 읽은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좀비로 뒤덮힌 세상. 마지막 남은 호모 사피엔스는 주인공뿐이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다 결국 최후의 순간을 맞게 되는 주인공. 그 순간 주인공은 근본적인 인식의 전환을 맞게된다. 내가 보기엔 저들이 비정상이지만 저들이 보기에 나는 또 얼마나 비정상이며 공포스런 존재겠는가. 나의 죽음은 곧 호모 사피엔스의 멸종. 나는 종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그야말로 전설이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 딴지스로서, 이 세계에서 철저히 비정상적인 존재. 나의 소멸과 함께 나 역시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주인공처럼 외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전설이다.

 

P.S 평생을 이고 다닌 데스크탑 때문에 절딴난 허리를 부여잡고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간신히 이 글을 마친 지금, 계시의 마지막 문장이 눈앞에 선연히 드러났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과로사로 죽는다 

 

신짱(woolala7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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