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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 가출소녀들과의 동거 3화



2009.7.27.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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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위 나왔다. 거의 마지막 방위 세대다. 자대로 가니 고참들이 득시글한데, 1년 반 동안 들어온 후임은 고작 세 명이었고, 그마저도 다른 부서에 있었다. 대부분 경험하는 고참으로서의 권위를 난 누려보지 못했다. 하지만 홀가분했다. 되도 않는 놈이 으시대는 꼴은 지겹게 봤으니까 그 짓을 내가 하지 않을 수 있었단 걸 다행으로 여겼다.


그러나 아이들과 있으면서 난 그때 고참 짓을 해볼걸 그랬다고 새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한 건 공동생활의 룰을 지키라는 의미였다. 집에는 IPTV가 설치돼 있었다. 3년 약정이라 물릴 수가 없다. 유료 프로는 사절하고, 가끔 지나간 연예프로그램을 보는 용도로 쓰고 있었다. 유미가 여기에 꽂혔다. 유미는 애니메이션 광팬이었다. 한번 TV 앞에 앉으면, 만화 시리즈를 몇 시간이고 틀어댔다. 내가 컴퓨터를 쓰고 있을 때면, 다른 할 일이 없는 애들이 유미에게 불만을 털어놓곤 했다.



"야 대체 몇 시간을 보는 거야? 리모콘이 니꺼냐?"


하지만 유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딴 것 좀 보자는 아이들에게 오히려 짜증을 냈다.


"아씨, 이거 하나만 더 보고."


지친 친구들이 이불을 덮어쓴다. 그러면 유미는 다시 말이 나올 때까지 계속 만화를 보았다. 이 일은 거의 매일 반복됐다. 당연히 친구들의 짜증섞인 목소리도 조금씩 커졌다.


하지만 의아했던 건, 유미의 고집보다도 친구들이 왜 더 적극적으로 요구를 하지 않는가였다. 혼자 TV를 독점할 권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얘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그건 이 그룹에서 유미가 어떤 권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자연스럽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내일에 대한 대책이 늘 막막했다. 어디로 갈지, 뭘 해야 할지, 하다못해 뭘 먹을지 계획된 것이 없었다. 그저 그때 하고 싶은대로 할 뿐이었다. 그리고 당면한 문제의 답을, 그게 맞든 틀리든, 먼저 내놓는 책임은 유미에게 돌려져 있었다.


유미가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 그리 된 것은 아닐 거다. 생각해보면, 친구들 몇이서 뭐하고 놀까를 고민할 때에도, ‘책임’이라는 공은 서로에게 미루어지며 돌아다닌다. 니 말 듣고 거기 갔더니 재미 없었더란 소리를 듣기 싫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는 그 공을 손에 쥐어야만 한다. 유미가 그런 경우였다. 가장 머리가 빨리 돌아가고 말주변이 좋은 유미. 거짓말이라도 해서 위기를 빠져나갈 줄 아는 유미. 지금까지 나와 있었던 때를 돌이켜봐도, 이 그룹의 중심은 유미였다.


하지만 유미는 자의식이 강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되지 않으면 낯빛부터 달라진다. 남에게 배려하기보단 자기를 늘 먼저 챙긴다. 때문에 유미의 리모콘을 뺏기 위해선, 이 자의식 강한 유미와 싸움을 벌일 각오를 해야 한다. 감정과 이성을 분리하기 힘든 이 그룹 – 이 나이 때의 나도 그랬을테지만- 에서, 기분이 틀어진다는 건 곧 책임의 공을 유미가 놓아버릴 수도 있다는 의미이고, 나아가 이 그룹의 와해도 가능하다는 뜻이 된다. 사실 아이들이 정말 두려워했던 건 이 ‘와해’였지만, 당시로선 나도 그것까진 잘 몰랐다.


어쨌든 리모콘을 놓지 않는 유미와 이불을 덮어쓴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이 상황의 책임이 슬슬 나에게로 넘어오는 걸 느꼈다. 내가 가만히 있는 한, 이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난 유미의 리모콘을 뺏을 수 있다. 그리고 은비와 나영이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에는 나에게 향한 책임의 화살이 숨어 있다.


나에게도 고참 같은 권력이 생긴 것이다.


그동안 난 최선을 다해 세 명을 공평하게 대했다. 가장 미운 짓을 많이 한 유미에게도. 밥은 똑같이 주었고 설거지나 청소를 하겠다고 하면 번갈아가며 하게 했다. 음료수가 있으면 반드시 나눠 마셨다. 공평하지 않으면 그건 편애고, 편애는 이 아이들의 고통을 되새기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외 당하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이 리모콘을 뺏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리모컨 줘봐."


내가 손을 내밀자 유미는 얼굴이 굳어졌다.


"솔직히 너 혼자 너무 많이 봤잖아. 딴 애들도 보게 해줘야지."
"그치만 얘들 테레비 안 보잖아요..."


갑자기 은비가 이불을 걷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야 내가 안 보는 거냐? 못 보는 거지. 니 혼자서 리모컨 껴안고 있자나. 지랄하고 안줘놓고선."


은비가 다시 이불을 덮었다.


"리모컨 줘."


내가 다시 손을 뻗치자 유미가 리모컨을 건넸다. 난 그걸 은비 쪽에 던졌다.


"인제 그만 좀 봐. 나도 일하는데 애니메이션 소리 너무 거슬려. 차라리 테레비 소리가 낫겠다. 그리고 4시간이나 봤으면 많이 봤잖아? 내일 또 보라고."
"아이 근데 한참 재밌는데..."


유미가 입을 삐죽였다.


"됐어. 친구들도 보고 싶은 거 봐야 할 거 아냐. 오늘은 애니메이션 금지야. 씨바 나도 지겹다."


유미는 입이 튀어나와서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덥다고 나시 쪼가리만 걸치고 있으면서 왜 이불을 덮어대는지 나는 여자애들이 도통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일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사소한 일이 근본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지 처음엔 알지 못했다.







유미는 차츰, 아이들과 뭔가 이야기를 할 때면 내 앞을 피했다. 거실로 나가거나, 그것도 성에 안차면 밖에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 전부터도 그랬긴 하지만, 좀더 그 횟수가 잦아졌고 눈에 띄었다. 처음엔 자기들끼리 하고 싶은 말이 있겠거니 했다. 하지만 갈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한 시간을 밖에서 보내다 오는 일도 심심치 않았다.


이해할만한 여지도 있다. 이 또래 아이들이 원래 그렇기도 하고, 자기들 생활이 시시콜콜히 다 까발려지는 걸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진 것은, 유미의 초조함 때문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이 집에서의 중심은 나였다.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내가 해결해주기 시작하면서 의존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건 당연하다. 내가 합리적인 태도만 유지한다면, 거리감도 줄어들면서 얘기하는 횟수도 많아질 것이다. 실제로 차츰 아이들은 스스로 자기 얘기를 내게 하거나 뭔가를 물어보기도 했다.


유미는 그게 싫었던 게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맡았던 게 자기였으니까. 친구가 자기한테 물어보지 않고 나한테 말을 거는 건, 유미 입장에선 서운하고 외로운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관계 변화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숨어있었다. 나는 이것이 권력 관계의 변화라고 생각했다. 은비와 나영이를 사이에 둔, 의도치 않은 파워 게임.


그리고 유미는 절대로 그 게임에 져서는 안되었다. 지식, 경험, 성격, 또 얄팍한 경제력까지도 유미는 나와 상대가 되지 않는 처지다. 하지만 여기서 지면 유미는 친구들을 잃게 되고 가출 생활은 끝난다. 친구들이 내 설득에 넘어가 집으로 돌아가버리면 안되니까, 어떻게든 대항하여 자신의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꾸 친구들을 끌고 내가 없는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유미는 기본적으로 나와 적대적 태도로 나올 수밖에 없는 거다. 그래서 나와 가장 많이 부딪치고, 가장 많이 말싸움을 벌이고, 또 셋 중에서 가장 적게 말을 건 사람이 유미였다.


물론 이렇게 생각이 정리된 건 나중 얘기다. 유미의 태도에서 어렴풋이 권력 게임 비슷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당시 나는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합리화했다. 의도치 않게 온 권력을 나는 올바로 쓰기만 하면 된다고 말이다.







아이들은 나눠준 수건을 알아서 관리했다. 밥을 먹은 후엔 설거지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컴퓨터에는 종종 악성코드가 깔렸지만, 그건 캡처 프로그램 때문이었고, 포토샵이 있다는 걸 가르쳐주자 정말 열심히 자기 사진을 보정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돈이 곧 부족해졌고 한 끼는 라면으로 때웠다. 하지만 값싸고 퍼석한 돼지고기 뒷다리살과 계란으로도 아이들은 잘 먹었다. 커피믹스에 얼음 띄워 냉커피를 만드는 것도 수고롭지 않았다. 아이들은 밤에 친구들을 만난다며 나가는 일도 있었지만 그리 오래지 않아 돌아왔다.


내가 바란 평온함은 그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이 불안한 평온함이란 걸 나도 아이들도 알고 있다. 정해진 기한도 있는데다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나는 남자로 태어났다. 거부할 수 없는 DNA가 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서 하룻밤 참는 일, 그보다 더 나아가 한달을 참는 일도 불가능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DNA에 박힌 본능을 초월한 게 아니란 것도 사실이다.


난 또래의 여자랑 같이 산 적이 없다. 누나도 여동생도 없다. 여자애들이 방바닥에 쓰러져 자고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하루 이틀쯤이야 호기심에 힐끗힐끗 보기도 했지만, 나중엔 그냥 주저앉아 나도 아이들도 어쩌다 이 상황이 됐을까 근심만 들었다. 남의 집에서 무의식 중에 허벅지 긁어대며 자는 여자애들. 그리고 이걸 방치하고 있는 나. 양쪽 다 한심하다. 현실을 마주하고 보면, 성욕이란 놈이 얼마나 판타지와 망상에 의존하는가가 새삼스럽다. 아마도 결혼한 친구들이 이쁜 마누라 팽개치고 바람피는 이유가 이래서였겠지. 나 또한 이 어이없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아이들이 헐벗고 돌아다닌들 뭘 어떻게 해볼 마음은 요만큼도 들지 않았다. 생각보다 스스로에게 안심했다.


그러나 DNA가 어디 가버린 건 아니었다.


며칠 후엔가, 세 명은 여기를 나간 후 어떻게 할 건가를 놓고 한참을 얘기했다. 나는 방에서 컴퓨터를 쓰고 있었고 아이들은 거실에 있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신발을 신는 소리가 들렸다.


"잠깐만 바람 쐬고 올게요."


밤 12시는 되었던 것 같다. 멀리 가지 않고 금방 오겠다고 하여, 빨리 들어오란 잔소리만 하고 허락해 주었다.


한 시간은 지났을까. 나는 피곤해져서 컴퓨터를 끄고 누웠다. 문이 열려 있으니 잠글 순 없다. 초인종 소리를 내긴 싫었다. 아이들이 마음에 걸리는 상황에선 어차피 잠도 오지 않는다. 멀뚱멀뚱히 누워 있었다.


누군가 돌아왔다. 은비였다.


"다른 애들은?"
"...아직 얘기하고 있어요."


그리 밝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으려 하는 게 느껴진다.
침묵 속에서 잔잔한 아픔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은비는 한쪽 구석에 누워 말이 없었고, 아이들이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도 모르지만, 이들이 힘들어한다는 건 느낄 수 있다. 답답하다. 나도 힘들다. 이 고통은 아이들이 자초한 거다. 그렇지만 지금, 현재엔, 나 또한 이 아이들의 고통의 사슬에 얽혀 있다.


"무슨 얘기들을 하는 거야?"


나는 은비에게 조용히 물었다.


"......"


은비는 말이 없었다.


"우는 거야?"


은비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어울리지 않는 아이라인을 그린 채로.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유미도 힘들다 그러고, 나영이도 힘들다 그러고, 딴데 혼자 가고 싶다고 그러고...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근데 자꾸 딴데 간다 그러니까, 신경질만 내고... 혼자 남겨지면 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고..."


은비가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은비 옆으로 가서 손을 잡아주었다. 키에 비해서 손이 아주 조그마했다. 은비는 그냥 계속 울면서 말을 이었다.


"나도 힘든데... 지들만 힘든 거 아닌데... 자꾸 딴데 간다 그러구... 진짜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건 결국 자기들 탓. 마음을 바꾸어 그 원인을 없애지 않는 한, 하루하루가 막막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당장의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 정말 아이들은 이 집을 마음에 들어 한 걸까.


현실, 엿 같은 현실. 평온함을 주면 평온하지 않은 게 고통스럽고, 그래서 이 생활을 벗어날 계기가 된다고? 그 고통을 아이들에게 미뤄버릴 수 있다면 그렇겠지.


평온함도 그저 내 입장에서 결론지은 망상이었던 건가.


나는 오직 이곳에 있는 아이들을 보았을 뿐, 다른 곳에서 어떻게 먹고 자는지 모른다. 아이들을 조금씩 알게 되기 전까지, 나는 이런 아이들이 제멋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리라 짐작했었다. 불량 청소년들의 아지트, 고시원, 모텔 같은 곳에서 굶주림과 낭비의 극단을 오가는 생활. 어쩌면 짐작조차 못하는 불안과 공포가 그 생활 속에 있었던 거겠지. 몰랐던 게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의 두려움으로 현실화되지 않았고, 그래서 나도 여태껏 주둥이로나 떠들 줄 알았던 거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건 그 속에 자기 혼자만 남겨진다는 외로움. 좋든 나쁘든 의지할 사람이 없어지고, 자기 딴에도 붕뜬 듯한 장래 희망이 정말 손에 잡을 수 없는 비현실로 결정돼버리는 비참함.


나는 은비의 손을 더 꼭 잡아 주었다. 그것말고 할 게 없었다. 더 있게 해주겠다고, 나를 위해선 가난해도 상관없지만 지금 이 고통을 덜기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돈을 벌고 싶은 의욕, 그런 성스런 마음이 솟아났다.


그리고 정말 비참하게도, 나는 이 애를 안고 키스하고 싶다는 생각이 함께 솟아났다.


이 개조까튼 DNA. 저주스럽고 치졸한 본능. 지옥에 떨어질 위선자. 결국 이 순간을 기다린 거지? 이 야비한 새끼.


성스런 마음은 본능을 이겼다. 나는 한참동안 두 손으로 은비의 손을 포개어 잡고 토닥였다. 이윽고 다른 아이들이 돌아왔다.


"어? 은비 왔네. 뭐야 씨발 한참 찾았잖아."


나는 애들에게 가보라고 하며 똑바로 앉았다. 은비는 일어나 나갔고, 아이들은 거실 쪽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슬슬 위험해지고 있었다. 나와 상관 없던 아이들에게 조금씩 공감하고 해주고 싶은 게 생기면서, 나도 보답을 받고 싶다는 심리가 생겨난다. 그 보답은 처음엔 아이들의 순응 정도였겠지만 이젠 아니다. 다른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리모컨 사례를 통해 알게 된 권력. 그렇다. 아이들은 내가 뭔가를 하라고 하면 대들지 못했다. 싫은 소리를 할 때 반항한 적이 있나? 밥 먹으라고 나오라면 빨리 빨리 나오고, 나중엔 저희들끼리 컴퓨터 끄고 나오라고 재촉할 줄 알았다. 내게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숙소와 식사가 내 수중에 있다. 그리고 결코 없어지지 않을, 여자아이와 남자어른의 관계에서도 권력은 생겨난다. 앞서 말했듯 나는 권력에 둔감했고 행사해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 있다. 내가 요구하면 결코 거부하지 못한다는 걸.


그래. 바보 같이 몰랐구나.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얘기할 땐 온갖 욕지거리를 섞었지만, 나에게 말할 땐 어떻게든 존대를 하고 욕을 안 하려고 애썼었다. 나름 대견했었다. 본바탕까지 나쁜 애들은 아니라고 느꼈고, 은비가 나쁜 물 들까봐서 쉼터 안간다는 얘기도 그래서 믿어줬던 거였다. 그 말들에서 충분히 권력관계를 알 수 있었을텐데, 너무 혼자 오래 산 거다.


거부하지 못한다는 건 폭력에 의해 진압되었을 때도 그렇지만, 피권력자가 권력에 순순히 응하게 됐을 때에도 적용된다. 그래. 내가 잠자리를 요구하며 손을 끌어당기면 반항하지 못한다. 물론 약간의 저항은 있겠지만, 때리거나만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저 오빠는 그때 걔네들보다는 낫고 우리들한테 잘해줬잖냐는 자기합리화가 이어질 거다. 사후에 감언이설로 꼬드겨 더 부드럽게 풀어갈 수도 있다. 분명히 나는 잘해낼 게다. 그리하여 누군가에게 책 잡혔을 때에도 ‘아니에요 오빠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라는 말을 아이들 입에서 자발적으로 나오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의 잔머리는 참으로 빨리 돌아간다. 조까튼 DNA.


나는 아이들이 좋아지려고 한다. 아이들의 힘듬을 덜어주고 싶어한다. 그걸 핑계로 눌러둔 본능이 싹튼다. 이 본능은 성욕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을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라고, 그건 죄가 아니라고 나 자신에게 귓속말을 건넨다. 그 귓속말의 일부는 진실이다. 때문에 거역하기가 어렵다.


마키아벨리가 그랬다. 권력은 비정해져야 한다고. 도덕은 그걸 위선으로 꾸미기 위해 필요한 거라고.


그래, 나에겐 권력이 있다. 그러니 이젠 비정해질 때가 되었다. 나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아이들이 잘되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계속 도움을 주고 싶다면, 이 집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나는, 원래의 약속을 원칙적으로 지킨다는 명목 하에 아이들을 내보내야 한다. 여기 있는 이 아저씨는 자꾸 너희에게 정이 들려 하여 슬슬 본능이 꿈틀대는 참이다, 그 따위 솔직한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너희가 힘들면 나도 힘들다는 드라마 같은 헛소리도 필요 없다. 평온함 따위로 고통을 주어서 미안하단 고백도 하지 말자. 어차피 못 알아 듣는다.


객관적으로도, 식비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혼자 살 때와 비교하면 최소 두세 배는 들었다. 돈은 얼마 있지 않아 바닥날 것이다.


하지만 심정상으로는 남에게 돈을 꾸어서라도 애들을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고통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평온함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이런 나의 생각들이 급격하게 무너져가는 게 느껴진다. 무슨 짓을 했든, 나는 차마 이 아이들을 고통 속에 밀어넣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하는 짓이 어리석어도, 나는 그 순간의 화를 삭일 능력이 있다. 그게 아이들이 새벽 거리를 떠돌아야 하는 합당한 근거가 될 순 없다.


그런데 결국 비정해져야 하는 이유가 내 DNA 때문이라니, 이 얼마나 치졸한가. 아이들에게 잘해주어 나를 따르고 서로 친해질수록 더욱 권력의 유혹을 마다하기 힘들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차라리 누군가가 이 얘기들을 진심으로 들어줄 수 있다면, 그러면 그게 무서워서라도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할 수 없을텐데 말이다. 나는 정말로 내 얘기를 털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앞섰다. 문제는 진실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공감이니까. 나도 남이 이런 얘기를 했다면, 그 사람은 믿어주겠지만 스스로 겪은 일이 아니므로 여전히 공감할 수 없었을 거다.


나는 나 개인의 무력감을 느꼈다. 만약 내가 나를 버릴 수 있다면, 이런 고민을 초월해 아이들을 도울 수 있었을 거다. 일종의 자기 희생이다. 하지만 자기 희생이란 개념까지 마음 속에서 없애지 못하는 이상, 그 말에서 느껴지는 한올의 만족감이 싫지 않은 이상 다시 지금의 고민은 되풀이되고, 무력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튿날, 나는 아침 일찍 마트를 다녀와 부대전골을 해주었다. 스팸이 비쌌지만 그냥 샀다. 그날 아침의 부대전골은 내가 먹어본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설거지까지 다 마친 후에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일주일을 더 있겠다고 했었지. 내일이야. 이제 그 이상은 안돼. 당장 통장에 돈이 없어. 내가 힘이 없거든."


전날에 나는 김밥 가게에서 김밥 넉 줄을 사와 그걸로 넷이서 점심을 먹었다.


"왜 김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는지 좀 이해해줘. 한 줄로는 배가 고파. 당연하지. 그런데 그렇게 안하고서는 식비가 감당이 안 돼. 그렇다고 매일 이렇게 먹을 순 없지. 당연히 나로선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어? 너네들 없으면 난 괜찮게 먹을 수 있다고."
"......"
"어쨌든 힘들어. 하루 온종일 신경을 쓰니까 괜히 감기도 걸리고 말이야."


실제 그랬다.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여름 감기에 걸려버렸다.


"근데요, 그 오빠가 그날까지 딱 안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는데..."


유미의 말이었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전에 얘기했잖아. 분명히 이런 소리 또 나올 거라고 말야. 그땐 내 말 안 믿었지? 하지만 내가 인젠 너무 힘들어. 방법이 없다고. 무슨 소린지 알겠어?"
"근데요, 잠깐요, 저희 상황도 좀 보세요. 오빠 힘든 것두 알고요, 이렇게 얹혀사는 거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진짜 고마워요. 근데 문제는, 저희가 당장 갈 데가 없어요. 그 오빠두 어제는 연락이 안되구..."
"그 오빠가 누군진 모르지만, 네가 그렇게 철석같이 믿고 있다면, 어째서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건데? 그리고 그 오빠가 고시원 못 잡은 책임을, 결국 내가 지게 되는 거 아니니? 내가 너네 있게 해주겠다고 했고, 약속을 지켰어. 그러니까 너도 약속을 지켜. 내일이 되면 일주일이 되니까 그때 나가."


한동안 다들 말이 없었다. 유미는 짤막하게 알았다고 대답했다.


소설 같으면 이때 내 마음은 사실 찢어질 듯 아팠다고 해야 극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분명하게 기억한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훨씬 마음이 아프다. 그때 나는,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그간의 고민에서 해방되어 그랬던 것도 아니다. 아이들이 나가면 원래의 내 생활로 돌아간다는, 평온함에 대한 기대가 나를 기쁘게 했다.


숨겨두었던 욕망은 상황이 바뀔 때마다 제 모습을 드러낸다.
기쁘다니, 우울하다.
나는 그날 집 밖으로 나가, 캔커피 하나를 혼자 마시며 담배를 피웠다.


다음날 나는 아침을 차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갔다.
나는 바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휑한 바닥에 아이들이 쓰던 빨간 색 립 글로스가 떨어져 있었다. 속은 거의 비었다.
나는 차마 그것을 쓰레기통에 넣지 못했다.
TV는 꺼진 채였고, 컴퓨터에선 더 이상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았다.
늘 쿵쿵거리며 다니던 나영이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주 조용했고 평화로웠다.
그날 밤 내 잠을 방해하는 소리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다.


(다음에 계속)


신상공개를 원치 않는 어느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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