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아홉친구 추천0 비추천0

 

 

 

 

[돈오점수] 그럼 대안이 있냐고?
- 지금 당신은 구라 당하고 있다

 

2009.7.27.월요일

 

 발단

 

이 이야기의 시작은, 딴지의 너부리 편집장과 신짱 기자를 만나 술 한잔을 하기로 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다. 총수가 자리에 없어서 근태가 느슨해지더라도, 회사는 역시 회사, 빨랑 퇴근해버리고 싶은 마음은 월급쟁이의 공통사다. 이날 너부리 편집장은 필자더러 5시까지 오라고 했다. 퇴근시간 맞춰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찍도 아닌 5시. 왜 그랬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해서 10분 더 일찍 갔다.

 

이들은 옳다구나 서둘러 업뎃을 마무리짓고 사무실 사람들에게 ‘나 나간다’며 퇴근 사실을 주지시켰다. 그 순간 직원들은 필자가 함께 나가는 광경을 목격했다. 그러니까 너부리는 이른 퇴근이 자기 의사가 아니며 순전히 필자 때문임을 보이기 위해 짐짓 말을 건넸던 것이다. 이는 주도면밀이 아닌가.

 

‘사생결단 다이어트 KOREA편’에 나가도 부족함이 없을 너부리와 필자, 그리고 봉하마을과 천성관 사건 취재로 진기가 바닥난 신짱은 채 몇 걸음을 가지 않아 ‘아무데나 가자’란 대국민적 합의에 이르렀고, 진짜로 서 있던 그 자리 바로 옆에 있던 삼겹살집에 들어가 버렸다. 각하께서 미디어법 통과에 별 말씀이 없으셨다는데 우리도 이 결정에 아무 말이 필요 없었다.

 

각자 생각하는 바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딴지에 글을 올리고 있는 한 글쟁이의 본분을 벗어날 수 없다. 글쟁이는 스스로 자기 글을 칭찬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칭찬받고 싶은 욕망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른다. 너부리 편집장이 요즘 읽고 있다던 <분노의 포도>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의 연재물 ‘읽은 척 매뉴얼’ 얘기를 꺼낸 것도 그래서일 게다.

 

“아유 정말 그 책들 읽으려면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거기다 글까지 쓰시려면…”

 

이런 사탕발림을 필자는 안 했다. 왜?

 

필자가 기억하는 ‘읽은 척 매뉴얼’은 최근의 몇 편뿐, 예전에 뭐가 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더군다나 출간된 책을 사지도 않았다. 딴엔 딴지 가면 한 권쯤 으레 건넬 줄 알았는데, 신짱이 봉하마을에 지고 갔던 데스크탑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걸 보고서야 저간의 힘든 사정을 짐작했던 것이다.

 

그 즈음 너부리 편집장이 날카로운 한 수를 던졌다.

 

“근데 친척 모임이 있어서 갔는데, 세상에 내 피붙이가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은 척 하더라니까… 으하하…”

 


 
읽은 척 매뉴얼을 읽은 척… 강호에는 고수가 많다.

 

허와 실을 겸한 쾌속의 발검(拔劍)!

 

그는 필자가 읽은 척 매뉴얼을 읽지 않은 게 아닌가 의심의 한 초식을 의뭉스럽게 던졌던 것이다. 서둘러 삼겹살을 한 쌈 싸서 입에 넣었다. 먹는 동안엔 개도 안 건드리는 법. 이 한 쌈을 삼키기 전에 할 말을 생각해내야 한다. 이미 초식을 시전한 너부리는 다른 한 손으로 레종 한 개피를 들어 주화입마를 즐기고 있는 중이다.

 

여러분들께 보여드릴 아래의 이야기는 그 한 쌈을 우물거리는 동안 정리된 초식들이라 할 수 있다.

 

 정말 원하는 말이 무엇인가

 

감히 이런 자리에서 운위하긴 죄송스럽지만, 돌아가신 숭산 큰스님이 이런 선문답을 남기셨다.

 



 
 

“…태어나기 전에 당신은 0이었습니다. 이제는 1이지요. 이후에 죽게 되면 다시 0이 돼요. 그렇기 때문에 0이 1이기도 하고, 1은 0이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1 더하기 2는 0입니다. 선 학교에서는 이걸 가르칩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자, 묻겠습니다. 1 더하기 2는 3이에요. 1 더하기 2는 0이에요. 어떤 게 옳습니까? 둘 다 옳아요. 알겠습니까?
그러나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다음 교과과정에서는 어떤 게 옳으냐라는 질문에 대해 둘 다 옳다 하더라도 30방을 맞을 것이요, 둘 다 그르다 하더라도 30방을 맞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 <부처를 쏴라> 중에서, 현각 엮음, 김영사

 

개념이 생기고 이것과 저것의 이분법이 생기면 진실을 놓친다는 말씀이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면 그냥 모르는 마음을 간직하시라.

 

 

옳다 해도 30방, 그르다 해도 30방이여 허허…

 

그러니까 읽었느냐 안 읽었느냐에 집착하면 해결이 안 된다. 지금 너부리가 필자에게 바라는 것이 매뉴얼을 읽고 안 읽고의 사실일까? 그것 자체는 그를 기쁘게 하지 못한다.

 

글쟁이뿐만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서 그 사람의 성취(책이든 보고서든 뭐든)에 관해 면전에서 언급을 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정말 바라는 건 자신의 성과물을 경험했는가 아닌가가 아니다. 더군다나 솔직한 얘기를 한답시고 ‘그걸 저도 보았는데 이러저러한 한계가 있지 않은가 합니다만…’ 식의 말을 건네면, 겉으로야 허허허 그랬군요 하지만 속마음까지 같을 리는 없다.

 

최선의 초식은 상대의 마음을 직접 가리키는 것이다. 그 말의 뜻은? 너부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칭찬이다. 칭찬.

 

글쟁이 부류에 국한한다면 그들이 늘 스스로 괴로워하는 점이 있다. 자신이 사회 부적응자는 아닌지, 자기 글이 정말 읽을 가치가 있는 것인지, 혹여 이 세상에 오해를 더하는 짓을 하는 게 아닌지 말이다. 글쟁이들이 끼리끼리 만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욕망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소설가와 비평가들이 서로를 치켜세우듯, 메마른 가슴에 단비를 적셔주는 말들을 서로에게 건네는 것이다. 별 쓰잘데기 없는 댓글 때문에 매일매일 초췌해져 가는 딴지스들은 더욱 그런 욕망이 가열찰테고.

 

따라서 필자의 경우 쌈을 다 먹은 이후에 할 수 있는 말은 뻔했다.

 

“그 책이 진짜 효험이 있죠. 정보도 주고 재미도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난 읽었단 소리 안했다. 그러나 담배를 피우던 너부리의 얼굴이 빙그레 보살의 웃음을 짓는 건 확인할 수 있었다. 초식을 맞받아치기보다 흘려내는 방법을 터득한 장삼봉의 위대함이 새삼 떠오른다.

 

 방어했으면 선수를 쳐라

 

그러나 여기까지는 방어수단. 상대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양하는 재야 고수다. 곧 허식을 간파할 것이 분명하다. 공세를 취하지 않으면 다시 예리한 수가 날아올 터.

 

한때 예술영화 보는 게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누벨 바그의 고전들, 표기법이 아직도 모호한 레오 까라스, 졸지 않으면 다행인 타르코프스키, 그보다는 좀 재미있는 키아로스타미, 멋있다곤 하는데 주제의식은 영 잡기 힘든 왕가위의 영화 등등. 여자애들 앞에서 이런 정도는 썰을 풀어줘야 깡통 신세를 면할 수 있었다.

 

여기서 써먹던 ‘척 매뉴얼’을 딴지에 와서 쓸 줄은 몰랐다.

 

완전 맹탕이면 이 매뉴얼을 쓸 수 없다. 감독이나 배우, 혹은 예술 사조 같은, 적어도 그 작품에 해당되는 한 가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물론 제일 쉬운 건 배우다.

 

이를 테면 필자는 소위 ‘삼색 시리즈’로 불리는 키에로프스키의 <블루> <화이트> <레드>를 하나도 보지 않았다. 비디오방 가서 주인에게 사정해 한국시리즈 6차전을 보았던 필자다. 하지만 얘기에 끼거나 심지어 화제를 주도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중요한 건 ‘선수(先手)’를 잡느냐 아니냐다. 현재 상황이 일단락되었다고 느낄 때 먼저 말을 꺼내야 된다. 그럼으로써 주도권을 잡는다.

 

“줄리엣 비노쉬가 <블루> 찍기 전에 뭘 찍었더라?”

 

 

한때는 이거 보는 게 문화인의 상징이었다

 

다시 자수한다. 난 <블루> 안 봤다. 보았다고 거짓말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주위 사람은 이미 그 사실은 안중에 없다. 줄리엣 비노쉬의 출연작 리스트에 골몰하고 있을 테니깐. 하지만 누가 그 리스트를 연도별로 기억하고 있겠는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에 미리 한 수를 더 친다면, 효과는 배가 된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한참 뒤고… <데미지>도 나중이고… <퐁네프>가 더 전이겠지? 레오 까라스랑 일하고 나서 떴으니까… 그럼 <퐁네프> 찍고 그 다음이 <블루>인가?”

 

역시 마찬가지로 위 영화들을 안 봤어도 말은 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오직 선수(先手)다. 이 말을 들은 주위 여학생들은 부지불식중에 자신이 어떤 영화를 보지 않았는지를 먼저 알아차리고 찔끔할 것이며, 이 말을 꺼낸 내가 <블루>를 보지 않았다는 결론에 이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물론 그 중에 열혈 영화 마니아라도 있어서, 진짜로 연도별 리스트를 꿰고 있다거나, 필자의 허식을 알아차릴 수도 있다. 아님 상황에 무심했든지. 어쨌든 바로 반격해올 수 있다.

 

“근데 <블루> 봤어요?”

 

당황하지 말자. 다시 이전의 가르침을 떠올리자. 이 사람에게 중요한 건 <블루>를 보고 아니고가 아니다. 지금껏 말을 꺼낸 필자에게 알맹이가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것. 이분법의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러므로 거짓말쟁이가 될 필요는 없다. 사실을 인정하되, 자신에게 알맹이가 있다는 인식만 시켜주면 되는 것이다.

 

“아니. 안 봤어. 근데 줄리엣 비노쉬는 아우라가 너무 강렬해서 말이지.”

 

사실 이렇게 반격을 당한 경우는 드물지만, 만약 상황이 들켰다면 이때부터는 ‘척 매뉴얼’을 쓰지 않는 게 현명하다. 경험이 쌓이면 복선도 잘 깔 수 있다. 줄리엣 비노쉬의 아우라… 얼마나 주관적인가? 영화 한 편 안보고 포스터만 봤어도 그쯤은 썰을 풀어줄 수 있다.

 

본 주제로 돌아와, 읽은 척 매뉴얼에 대해 이 초식을 응용한다면, 이런 말을 건넸을 수 있다.

 

“<보바리 부인>보다 <채털리 부인> 류가 훨씬 재미있지 않나요?”

 

다시 자수한다. <보바리 부인>따위 본 적도 없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케이블 TV에서 새벽에 틀어준,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영화였다. <채털리 부인>이란 소설이 진짜 있는지는 모른다. 혹 있을 수 있으니 ‘<채털리 부인> 류’라고 포장한 거다. 두 작품이 상관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른다. 전회의 ‘읽은 척 매뉴얼’을 찾아보면 언급이 있겠지만 그 자리에선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남자들끼리 모인 술자리에서 <채털리 부인>을 언급하게 되면, 필경 <엠마뉴엘>이 연상되기 마련이고, 그 다음에야 큭큭대며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된다. 이때 너부리는 필자가 <보바리 부인>을 읽었거나, 아니면 자신이 쓴 그 글을 읽고 기억했기에 이런 말을 꺼냈을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 내심 ‘이 자는 소설을 다 읽고 내 글에 한마디 덧붙이려는 건가’라는 방어심리가 작동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성공한 거다. 필자의 말이 의도한 것은 ‘공세’의 초식 자체이지, 상대를 무너뜨리는 데 있는 게 아니고 그럴 수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때 정의감에 가득찬 신짱이 미디어법 얘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필자의 그 초식은 써보지도 못하고 소주 한 모금과 함께 삼켜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선수(先手)는 중요한 거다.

 

 스킬의 이해와 응용

 

사실 이 이야기를 꺼내게 된 건 너부리나 신짱이 아니라, 나경원 의원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미디어법을 둘러싼 논란이, 필자의 ‘척 매뉴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랄까.

 

 

나경원 의원은 미디어법 추진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민주당과 6월 이후 재논의하기로(한나라당에선 6월내 통과로 봤지만) 결정된 후에 줄곧 민주당 측에 ‘대안도 없으면서 계속 논의를 질질 끌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7월 들어서야 민주당이 대안을 내놓겠다며 시간을 끌었는데, 이때는 비교적 수용적인 자세를 보여주었다. 혹시 나 의원이 민주당 대안을 무조건 반대했다고 생각하셨나? 민주당이 안을 내놓은 7월 9일 이후엔 실망스럽다는 코멘트를 했지만, 최소한 이전 태도에선 상당히 유연한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 글의 결론이 되겠지만, 민주당의 대안이 흡족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
2009년 07월 08일 (수)

 

손석희 / 진행 :
…한나라당의 입장은 완전히 끝났나요, 정리가?...

 

나경원 / 한나라당 의원 :
예, 저희가 내부적으로는 한나라당 문방위 의원들의 회의를 통해서 내부적으로는 일정한 수준의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사실상 거의 한나라당의 입장은 정리가 되었는데요. 또 민주당이 대안을 내놓는다니까 저희가 조금 더 살펴보려고 하고 있고요…

 

 

 

 

그리고 얼마 있다가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내부에서 다른 대안을 내놓는다며 한바탕 내홍을 치르는 듯했다. 근거야 어찌됐든 박근혜 의원에게 호감을 가진 사람들도 꽤 많은 줄 안다. 이 사건이 그 호감을 더 높였을지도 모를 일이고.

 

 

하지만 대안이라.

 

 

앞서 말한 것 기억 나시는가. 이분법의 개념으론 진실을 놓친다, 읽고 안 읽고가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말.

 

 

“그러니까 대안이 뭐야?”라는 말은, 일종의 선수(先手) 치기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대안을 생각하려 애쓴다. 대안이 없으면 저쪽 주장대로 될 것이니, 어떻게든 대안을 짜내야 하지 않겠는가란 초조함에 온 정신을 쏟는다. 그 때문에 미디어법이란 진짜 알맹이를 놓친다.

 

 

이거, 필자의 ‘척 매뉴얼’과 본질적으로 같다.

 

 

지금 당장, 아무 것이나 하고 싶은 걸 말해보시라. 갑자기 필자는 ‘똥이 싸고 싶다’고 말하고 싶어졌다. 나 지금 여기 똥싸고 싶어. 지금 내 주위엔 아무도 없지만, 누군가 그 말을 들었다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 거다. 그럼 위에서 본 저 말을 살포시 던져보자.

 

 

“그럼, 대안이 뭐야?”

 

 

그럼 그 말을 들은 사람은 화장실에 가라든지 하겠지. 화장실은 어디 있는데? 저기 방 나가면 있잖아. 에이 어두워, 불 좀 켜줘. 그리고 휴지가 없는데? 그럼 신문지를 갖다 줄지도 모른다. 아 신문지는 똥꼬 아프잖아 하고 짜증을 내면, 씨발 없으니까 대충 싸라고 욕지거리가 돌아올지도 모르고.

 

 

하지만 결과를 보자. 어쨌든 똥은 싼 거 아닌가? 게다가 잘하면 휴지도 갖다 줄지 모르는데?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나 의원의 말을 듣고, 민주당이 대안도 없이 허송세월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그 순간, 이미 나 의원이 하고자 하는 미디어법 통과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똥 쌀 테니 대안을 마련하라는 얘기에 화장실 불이며 휴지며 마련해주게 되는 상황처럼 말이다.

 

 

그러니까 박근혜 의원의 진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대안이란 것도 본질적으로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통과 자체를 반대하는 취지가 될 순 없다. 그냥 연장선상, 혹은 쇼 정도로 해석해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국민이 잘 알 필요가 없다고 하는 미디어법에 대해, 주요 발의자였던 나 의원은 잘 알고 있었을까. 뭐 그랬겠지만, 사실 그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위에서 얘기했듯 ‘아는 척’만 해도 된다. 중요한 건 오로지 선수(先手)였을 뿐이다.

 

 

그러니까 정치판에선 이 선빵이 대단히 중요한 거고, 그것이 선빵임을 환기시켜주는 매체의 힘이 또한 중요한 것이다. 당신이 선빵을 날렸어도 그 사실을 사람들이 모른다면 소용 없다. 그게 여당인지 야당인지도 어쩌면 상관 없을 거다. 그런 점에서 미디어법으로 여론 독과점이 형성된다면 실로 무서운 것이고.

 

 

이런 사실을 민주당에서도 모르지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결국 대안 내놓기 쪽으로 갔다면, 애초에 그놈이나 저놈이나 한통속이든지, 또는 바보든지, 아니면 대항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당신이 힘이 있다면, 똥을 싸고 싶다는 놈은 엉덩이를 걷어차야 한다. 미친놈, 니가 또라이짓을 하려면 해라. 근데 내가 왜 거기에 맞춰 춤을 춰야 하냐.

 

 

하지만 민주당은 힘이 없고, 많은 사람들은 선수와 대안의 ‘척 매뉴얼’에 속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나경원 의원의 미모 때문에 오판하고 있는 것 같다. 똑똑한 여자가 왜 저럴까 하고 괜히 동정표를 던진다. 그렇지 않다. 나 의원은 대단히 똑똑하다. 언변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관철시킬 줄 아는 정치가다. 직설적 화법을 쓰는 전여옥 의원처럼 쓸데없는 비난까지 끌어들이지 않는, 좋은 의미에서 아주 영리한 정치인이다. 화보 따위로 인해 나 의원의 정치 레벨을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정책이 이모양인데도 무조건 한나라당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 의원 정도의 행동이면 최소한 그런 지지자들의 이탈을 막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어쨌든 결론은 간단하다. 미디어법을 둘러싼 상황의 ‘척 매뉴얼’에 휘둘리지 마라. 필자 같은 간교한 구라쟁이에게 놀아나는 꼴이 된다.

 

 

그저 무심하게 당신은 물어야 한다. “미디어법이 뭔가요?” 그 물음을 앞에 놓으니, 미디어법 통과에 거품 물던 필자도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방에서 똥 싸려는 놈에게 주어야 할 건 휴지가 아니다. 발로 차서 주저앉혀 버리리는 것, 그것이 주인의 에티켓이다.

 

 

 

 

 

 

저작권 위반 사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나경원 의원의 미니홈피
시간되는 독자들은 순례 한 번 하고 오시라. 지금 난리가 났다.

 

 

http://www.cyworld.com/KyoungOne/

 

 

 

 

 

아홉친구 (ninthpal@daum.net)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