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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익균의 충고

2009-07-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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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익균의 충고

 

2009.7.27.월요일

 

만리장성에 오르지 못한 자는 장부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는 모택동의 말은 중국을 찾아오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최고의 홍보 문구가 되고 있지. 굳이 장부가 될 필요 없는 라이트 헤비급 백인 아주머니나 탄탄한 흑인 처녀도 아등바등 팔달령의 경사 급한 성벽에 달라붙는다. 북경에 온 여행자치고 만리장성을 들르지 않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또 만리장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오다가 가다가 거의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베이징 교외에 있는 명 13릉이야. 만리장성 얘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명 13릉에 들렀던 날의 감회를 들려 줄까 해. 아마 너도 갔다 왔겠지? 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명 13릉은 말 그대로 명나라 황제 13명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이야. 하지만 관광객들이 그 13개의 릉을 모두 관람하는 건 아니고, 일반에 공개된 곳은 3군데인데 그나마도 다 돌아보기엔 벅차서 대개는 지하궁전으로 유명한 정릉만 보고 명 13릉 둘러본 셈으로 마음에 점 찍게 되지. 가 봤다면 기억할 거야. 몇 층 계단 밑으로 무릎이 아플만큼 내려가던 지하의 공간과 그 안의 옥빛 성문과 옥좌들과 관들을.  

 

이 지하궁전의 주인은 명나라의 13대 황제 신종 만력제, 이름은 주익균이라는 사람이야. 중국 학자들이 13릉 가운데 만력제의 유택인 정릉을 찍어서 발굴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만력제라는 인간이 그의 기나긴 치세 (46년....조선왕조로 쳐도 랭킹 2위에 해당하는....) 동안 가장 심혈을 기울인 작품(?)이 이 지하궁전이었기 때문이라고 해. 그 안에 도대체 뭐가 들었을까 하는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거지.   

 


이 사람이 주익균이야. 좀 멍청하게 생겼지?

 

주익균은 정말로 놀라운 기록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무려 25년 동안 신하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거야. 절대권력을 가진 황제가 신하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는 건 신비주의 전략이라기보다는 그만큼 국사에 무관심했다는 거고,  이 사람의 손자대에까지 나라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명나라가 결딴난 건 이 사람 대였다는 것이 정설이야. 우리는 딱 4년만 국민 눈앞에 보이지 않고 좀 쥐죽은 듯이 지내 줬으면 하는 분을 알고 있지. 주익균을 본받기에는 너무 얼굴을 들이미는데 부지런한 것이 흠이시긴 하지만.

 

명나라가 망한 후 중원의 주인이 된 청나라의 사관들이 쓴 평을 보면 신랄을 넘어서 독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야. "기강이 버려지고 군신간에 소통이 막혔다. 소인배들은 권세를 좋아하고 이익을 다투어 도모하는자 분주히 뛰어다니며 문벌이 어지럽게 뒤섞여 난립했다. 명나라의 멸망은 실로 만력 대에 행한 것이다."  

 

허어 읽다보니 문득 명나라에 조공 바치던 동방의 어느 나라의 현재와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이 훌륭한 지하궁전을 짓는데는 아낌없이 돈을 들이부었던 주익균은 민생들을 돌보는 일에는 끔찍하게 인색했다고 해. 심지어 관리의 결원이 있어도 보충을 허락하지 않았대. 중국 13성의 어사 가운데 9명이 결원이었던 적도 있고, 내각의 신하들도 비슷했다고 하지. 이유는 단 하나, 그 급료가 아까와서였어. 이런 이런 또 말하다 보니 사회복지 예산 삭감은 칼로 무 베듯 하면서 자칭 녹색 삽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시겠다며 의지를 불태우는 어느 나라 대통령이 또 눈 앞을 가리네. 지하궁전은 관광지라도 되는데 그 삽질의 위용을 보러는 과연 누가 올는지 모르지만 말이지. 

 

이거 이거 자꾸 삼천포로 빠지지 말자. 마음을 가다듬고 주익균에게 집중해야지.   그런데 이 암울한 황제, 후대의 왕조 사관들에 의해 가차없이 비난받고, 나라를 망쳤다는 힐난을 한몸에 받으며 능 앞의 비석에는 "공이 없다"는 뜻으로 무자비(글자 없는 비)가 세워졌다는 이 주익균 신종 황제가 세상에 다시 없는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은 희한하게도 조선 땅에서였어.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 주시사 나라를 다시 세운 은혜 (再造之恩)을 베풀었다는 것이지. 신종 황제가 죽은 지 수백년이 지나고 그 뒤를 이은 청나라 왕조가 휘청거릴 때까지도 그 숭배는 계속되었어. 이 주익균 때문에 본의아닌 봉변을 당하고 열통을 터뜨린 사람이 있으니 바로 흥선 대원군이지.

 

 

충청도 괴산에 가면 화양동서원이라는 곳이 있었어. 거기에는 만동묘라고 하는 사당이 지어졌는데 그 사당의 주인이 바로 주익균 신종 만력제였어. 송시열이 유언으로 남기고 그 제자가 지은 것이 수백년을 이어내려 온 것인데, 나라로부터 토지도 받고 나라 관리가 직접 제사도 모시고 하면서 무슨 신성불가침의 영역같이 되어 버렸지. 제사 비용 염출한다고 백성들 등치고 토색질하는 건 유도 아니었고, 그 앞에서 버릇없이 굴다가는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다고 해. 200년 전에 죽은 이웃나라 황제에게 불경한 죄로 말이야. 

 

그런데 흥선군 이하응이 화양동을 찾아왔다가 만동묘 앞을 무심코 말을 타고 지난 거라. 이걸 본 빈씨 성 쓰는 열혈한이 흥선군을 말에서 끌어내리고 억지로 절을 하게 했다고 해. 일설에는 두들겨 팼다고도 하고, 예전에 들었던 촌로 말로는 발길질을 당해서 데굴데굴 굴렀다고도 해. 대원군 노릇할 때는 물론 아니었지만 그래도 왕족짜리인데 얼마나 한이 맺혔겠어. 대원군이 눈을 부릅뜨고서 "공자가 살아온대도 이렇게 할 것이다"라고 서슬을 세우면서 전국 각지의 서원들을 철폐할 때 1순위로 박살났던 곳이 바로 이 만동묘였지.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대원군은 자신에게 봉변을 선사했던 빈씨성 가진 사람을 잡아 올리고는 호령을 했다고 해. "너 이놈아 너 네가 했던 짓을 지금도 할 수 있겠느냐?" 고 분통을 터뜨리는데 그 빈씨의 대답은 이랬다고 해. "천자가 명하시면 지금도 하겠습니다." 대원군이 그 용기를 가상하게 생각하여 풀어 주었다는 둥 어쨌다는 둥 후일담이 있긴 한데 솔직히 나는 빈씨의 용기가 가상하기는커녕 절망스럽고 혐오스러워.  
 
신종 만력제 주익균이 군대를 파견하여 조선을 도운 것은 그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즉 자기네 땅에서 싸우기 싫은 탓이었든, 조선을 좋아해서 그랬든 고마운 사실인 것은 분명해. 하지만 자기네 나라를 망친 것으로 유명하고 본토(?) 땅에서도 천대를 받는 사람을 200년 동안이나 모시면서 자기네 백성들 등 치고 왕족까지 무릎 꿇려 절하게 하고 그에 불응하면 곤죽을 만들어버렸던 작태란 의리있다고 칭찬하기엔 너무나 꼴통스럽지 않니. 빈씨 꼴통에게는 지금 이 나라의 실권자보다 200년 전에 죽어 지하궁전에 묻혀 있는 천자에 대한 예의가 더 소중했던 것이니, 과연 지하의 주익균은 이 꼴을 보고 기뻐했을까 기막혀 했을까 동정을 했을까.

 

대원군이 부숴버린 만동묘는 대원군 실각 이후 또 다시 세워진다. 그리고 일제 시대에 들어와서 또 한 번 된서리를 맞아. 일본 입장에서야 자기네 조상의 조선 정벌을 망친 명나라 황제가 꼴보기 싫었겠지. 그런데 유림들은 심지어 비밀계까지 만들어가면서 제사를 계속 드린단다. 글쎄 어떤 사람들은 이걸 항일의식의 소산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3,1운동 당시 단 한 명의 대표도 내지 않은 유림 분위기로 비추어 봤을 때 그 설명을 순순히 납득하기는 어렵네. 오히려 나라가 망하였든 말든, 자기네 왕조가 무슨 취급을 받든 말든, 그들의 머리 속에는 "우리를 도왔던 만력황제"의 은혜만 아로새겨져 있었으며, 그렇게 충성하는 것이 의리를 지키는 일이라고 무작정 믿었을 가능성이 커. 중국대륙의 주인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말이지.  

 

귤화위지라고 했던가. 강남의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의 한자성어처럼, 어떤 사상이나 사조, 종교가 압록강을 넘고 현해탄을 넘어 이 땅에 상륙하면 그것들은 본래의 성질을 잃고 매우 한국적인 (조선적인) 그 무엇으로 변질되곤 했어. 중국에서 성리학이라는 학문의 명패가 낡아 바스라진 뒤에도 조선에서는 성리학의 대부 주자와 해석을 달리하는 사람은 목숨을 내놓아야 했고, 신앙심 좋기로 유명했던 서양 카톨릭 신부들은 "주기도문만 외우면 기꺼이 순교에 나서는" 조선인들의 굉장한 "믿쓥니다~~"에 경악을 금치 못했지.

 

사대(事大)도 마찬가지일 거야. 명나라에 대한 사대를 표방하고 세워진 조선왕조이지만 정도전은 요동 정벌을 계획했고 세조 임금은 명나라의 사신의 입국을 거부하기도 했었어. 즉 실리적인 사대였고 경우에 따른 사대였던 거지. 그런데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무능의 극치를 보였던 임금과 사대부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 "명나라 황제 때문에 우리가 살았다"는 이데올로기가 광범위하게 유포되었고, 그 결과 만동묘는 세워졌으며 주익균은 팔자에 없고 살아생전 이력으로 보아 자격도 전혀 미비한 성인 노릇을 하면서 제삿밥을 얻어먹었다. 

 

지금에사 만동묘의 위세는 자갈 틈에 섞여 있을 뿐이고 그 앞에서 무릎 꿇지 않는다고 도끼눈을 뜨는 사람은 정신 건강을 의심받겠지만, 내 귀에는 자신의 지하궁전을 보겠다고 꽤 비싼 돈 내고 들어온 난차오시엔 (남조선) 또는 한궈런 관광객에게 주익균이 던지는 비웃음 소리가 들려 왔었어. 대충 이런 말이었을 게야.

 


지하 궁전 복도에서 주익균의 소리가...... 음 환청일까

 

의리가 강물처럼 넘쳐 흐르는 해동 조선에서 온 길손이여. 반갑도다. 정말 오랫 동안 배터지게 너희들의 제삿밥을 먹었고 내 과거의 신민들이 나를 짓밟는 동안 네 조상들만큼은 굶어죽어도 내 초상을 받들어 모셨으니 두 손 그러쥐고 사의를 표해야 마땅하나, 양심상 그럴 수는 없음을 양지하라.  

 

바야흐로  내 그림자는 너희 시야에서 지워졌으되 너희는 또 다른 만력제를 섬기고 있지는 아니하냐. 너희 나라 사람들이 너희를 삼킨 일본에 대항하여 일어섰던 날을 기념하는 3월 초하룻날의 한 풍경을 나는 배를 쥐고 웃으며 보았었느니, 이여송 이하 조선에 나갔던 장병들과 만동묘에 나와 함께 모셔졌던 내 손자 의종 숭정제까지도 그 모습을 보고 폭소를 금지 못하였더니라 .

 

 

한성부 건물 앞 광장에서 열린 3.1절 구국기도회의 한 장면이로다. 기미년 3월 초하룻날의 봉기에 저 별 달린 나라가 무슨 일을 하였더뇨. 그 옆의 파란 바탕 깃발은 태어나기는커녕 , 아직 그 애비의 정낭과 애미의 자궁이 무르익지도 않았을 때가 아니었더뇨. 너희 겨레가 단결하여 일어나 압제에 항거했던 날 저 깃발을 들고 하고픈 말이 무엇이었더뇨.   3,1절도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동경으로 일어났던 것이었더뇨? 

 

너희 나라의 건국자라고도 하고 나라 망친 독재자라고도 하는 이씨 성 사진 80노인도 저 사진에는 혀를 찼느니라. 그 노인은 과거 임진왜란 당시 우리 군대의 휘하로서만 기능했던 조선군의 본을 받아 미국에게 작전지휘권을 선사했던 이였지만 반공포로 석방같은 일을 단행하여 미국 대통령을 기절초풍시키고 윈스턴 처칠도 면도하다가 상처를 입지 않았더냐. 궁금함이 가시지 않는 것은, 도대체 너희 족속은 왜 그런 결기는 잃어버리고, 너희 입장은 망각하고, 너희들을 지배하는 자들이 너희에게 유포시키는 생각에 어쩌면 그리도 열렬히 속아넘어가는고?   

 

내가 너희들이 이뻐서 군대를 보내지 않았던 것처럼 미국도 너희가 못견디게 좋아서 피를 흘린 것은 아니리라.  물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미덕일 것이다마는 은혜를 잊지 않는 것과 그 은혜를 숭배하면서 그 은혜를 모른다고 스스로 판단되는 이들을 짓밟는 것 사이에는 만리장성의 끝 산해관과 가욕관의 차이가 있도다. 

 

내가 보냈던 장수 이여송이 압록강에까지 밀려 풍전등화와 같았던 너희 운명을 건져 낸 것은 사실이다. 고마와하라. 엎드려 절하라. 너희 조상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사당을 만들겠다고 깝치고 돌아갔느니라. 하지만 평양성 수복 과정에서 이여송이 조선 백성 수만 명을 대동강에 쓸어넣어 버린 일을 구태여 잊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고, 천병의 대장께 누를 끼칠 소리 하지 말라고 입 틀어막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여송 욕하면 난신적자라고 흥분할 까닭이 전혀 없는 것이다. 너희 나라의 남북 전쟁당시 남쪽을 응원했던 미국의 장군을 기리는 것은 좋다. 그러나 그가 "만주에 100여개의 핵폭탄을 투하하고 우리의 뒷편인 동해와 서해지역에 60~120년동안 효력이 유지되는  방사성 코발트를 뿌리지 못해" 아쉬워했다는 사실을 그렇게 깡그리 무시하고 싶으냐. 잊고 싶으냐. 혹시 그런 말을 맥아더가 했을리 없으니 빨갱이가 회고록을 위조한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는 않으냐

 

 

의리있는 차오시엔 족속들이여. 고마와할 것은 고마와하고 가릴 것은 가리라. 수백년 분에 넘치는 제삿밥을 얻어먹은 처지에 할 말은 아니다마는 수백 년 내 이름을 빌어 제 잇속을 차리고 제 백성을 호령하며 제 비위에 거슬리는 자들을 경 치는 것을 보아온 세월에 속이 뒤틀려 입 밖에 내는 것이다. 명나라 백성들보다 더 명나라를 생각하고, 명나라 장군들보다 더 강경하며 내가 어육이 되어도 명나라의 뜻대로 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결국 너희를 어떤 역사로 몰아넣었는지를 내가 굳이 가르쳐 주어야 하랴? 나 역시 학문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황음의 군주일 뿐이었는데. 

 

 


 

 

 

주익균의 관에 이별을 고하며 뒤돌아서는 뒤통수가 따가왔어. 자신이 다스린 나라의 후손들에게조차  야멸찬 평가 아니 경멸을 받는 사람을 우리는 200년 동안이나 지성으로 섬겨 왔었다는 거...... 내 속에 들어 있을지 모르는 그 유전자가 화가 나고 경멸스러웠기 때문일 거야.

 

산하(nasanh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