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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척 매뉴얼 번외편]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2009.09.28
충용무쌍

 

선정 취지
 인간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 지는 걸까? 생물학적 사람은 태어나지만 사회학적 인간은 만들어 진다 해도 여전히 궁금하다. 사회적 인간의 성격 또한 선천적 기질이 좌우하는지, 후천적 교육이 중요한지 묻고 싶은 것이다. 지난 20세기 동안 많은 이들이 인간은 만들어 지는 존재 임을 확신했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나는 교육이라는 개념 속에 담긴 확신이 아직도 낯설다.

 

교육학 교과서를 펼쳐보면 소크라테스부터 피아제에 이르기 까지 수많은 이름들이 명멸하고 행동주의부터 전 연관주의를 아우르는 방대한 이론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서로 백가쟁명 하는 이들도 한 가지 대전제 앞에선 뜻을 같이하는데 바로 반복적인 학습을 통해 인간 행동의 변화를 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교육이라는 말속에 담긴 확신이란 바로 그 것이다. 사실 이 믿음 덕분에 교육이라는 말도 존재 하는게 아닌가. 아무리 가르친다 한들 알아듣질 않는다면 인지주의며 구성주의가 대체 무슨 소용이 있을리.

 

그래서 인간이 로크의 말처럼 티 없는 백지와 같이 태어나든, 데카르트의 말처럼 날 때부터 정해져 있든 교육은 개의치 않는다. 백지와 같다면 선(善)으로 수놓고, 나쁘고 거칠어도 행동변화 를 이끌어 낼 수 있다는 믿음. 이것이 교육의 믿음이다. 교육이라는 말은 실로 거대한 확신과 인간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즈음 세태를 바라보고 있자면 그 역시 인류의 오만이 아니었나 하는 회의가 들곤 한다. 예를 들어 한 때 용식이라 불리던 청년, 전원에서 태어나 야망의 세월과 삼김시대(三金時代)를 헤쳐 온 그도 결국에 야인이 되고 말았다.

 


찍지마!!  내가 성질이 뻗쳐서..

 


야망의 세월 (1990, KBS, 박형섭 역)
삼김시대 (1998, SBS, 김대중 역)

 

 양촌리의 건실한 농군 김용식, 이명박을 모델로 한 박형섭, 그리고 본명을 내세운 김대중. 셋 다 혼자 맡은 배역이지만 그중에서도 유달리 박형섭을 연기하며 큰 감화를 받았다는 유인촌. 다양한 자극과 환경이 주어져도 받아들이고 싶은 것 만 선택적으로 수용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이럴 때 교육환경(In Put)을 아무리 바꿔도 결과(Out Put)는 이미 정해진 것처럼 나온다. 이것을 뒤집어도 흥미로운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유사한 조건에 놓여져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듯이, 교육환경(In Put)이 일정해도 결과(Out Put)는 제각각인 경우다. 가령 둘 다 편부모 가정에서 자라, 어머니에게서 큰 가르침을 얻었고, 차별과 설움을 견디며 대학에 진학하여 입신양명하고, 출세가도를 달려 대통령 자리에까지 오른 두 남자. 그러나 누구의 책은 어머니고 다른 누구의 책 제목엔 아버지 가 들어간다. 이제 그 두 남자가 서로 누구인지 다들 아셨으리라.

 


공통점도 있긴 하다. 둘 다 출판사는 랜덤 하우스

 

인간이 후천적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는 존재라면 왜 다양한 인풋 속에서도 한결같은 아웃풋이 나오는 걸까. 반대로 똑같은 인풋이 주어져도 아웃풋은 각기 다른 사람들은 왜 생기는 걸까? 이 질문의 답을 모색해 보기위해 서로 닮은 듯 다른 두 남자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고 싶다. 그리고 앞서 본지의 [읽은 척 매뉴얼 번외 편]을 통해 이명박의 자서전 두 권 (신화는 없다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이 소개된 적 있는 바, 이번 순서는 바라크 후세인 오바마(Barack Hussein Obama)의 자서전,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Dreams from My Father) 되겠다.

 

 들어가며
본격적인 읽은 척 세부스킬로 들어가기 앞서 몇 가지 짚고 가자. 먼저 이 책이 쓰여진 시기.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초판은 1995년 나왔다. 오바마가 아직 대통령 후보도 상원의원도 아닌, 갓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시절의 일이다. 일반적으로 자서전이라면 대외적으로 큰 족적을 남겼거나 삶을 정리할 시점에 선 이들에게 어울리는 책이다. 헌데 고작 서른다섯에 쓴 오바마의 자서전은 분명 이른 감이 있다. 자신의 결혼식 장면으로 끝을 맺는 자서전이라니, 필히 별도의 해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아마도 그들은 자기들 멋대로 무엇이 나를 괴롭히는지 알려고 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추측할 것이다. 혼혈, 분열된 영혼, 두 개의 세상에 다리를 걸치고 있는 비극적이면서도 유령과 같은 이미지 등으로 나를 해석할 것이다. 하지만 이 비극은 나의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니다....(중략).... 그럼에도 이 책의 모든 면을 채우고 있는 것들은 나의 개인적인 내면의 여행, 아버지를 찾는 아들의 여정이다. 아울러 이 과정을 통해서 흑인 미국인으로 살아가는 내 삶에 유용한 어떤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여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서전이라는 형식이 되었다."

 

초판 저자 서문 中

 

 그것은 자기자랑을 위해 써재낀 무용담도, 대권 시즌을 노린 홍보책자도 아닌 자아 정체성을 위해 자기 자신과 한번쯤 나누고 싶었던 대화였던 것이다. 그 자아 찾기에 관해선 오바마의 범상치 않은 성장과정이 크게 관여했다.

 

먼저 오바마의 생부는 케냐에서 온 유학생이었고 생모는 하와이 토박이다. 그러나 오바마가 태어나고 오래지 않아 그는 장학금문제로 하와이를 떠났고 이것이 사실상 이별이 되고 말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쯤 인도네시아 유학생과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자카르타에서 유년기를 보낸 오바마에겐 계부와 생모 사이에서 태어난 여동생이 생긴다. 이후 교육 문제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면서 오바마는 자신과 피부색이 다른 어머니, 여동생, 외가 식구들 틈에서 자라난다. 거기에 아버지의 고향 케냐에서 만난 할머니와 아버지의 또 다른 부인들과 그리고 두 자릿수에 달하는 이복 남매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식 전통에 따라 일부다처혼을 했으며 오바마의 어머니와 헤어진 후에도 재혼했다.) 까지 모두 합쳐 이른바 “미니UN" 이라고 불리는 오바마 패밀리가 형성되었다.

 


말레이시아 사람인 계부 롤로, 어머니, 여동생과 오바마

 

표준적인 미국식 핵가족에서 한참 벗어난 식구들 틈에서 예민한 사춘기의 소년이 겪어야 했던 방황과 혼란. 오바마의 독특한 가족 구성은 단순히 유색인종으로서 느끼는 소외와 분노이상의 고민을 소년에게 남겼고 이렇듯 남다른 환경 속 에서 처한 소년은 소년은 라이프지에서 백인이 되고 싶다며 자기 피부를 벗기려한 흑인의 기사를 본 순간 (106p) 여기는 어디인가, 나는 또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사로잡힌다. 그렇게 오바마는 이제 막 장가들 나이에 이미 자기 생을 돌아봐야 할 정도로 많은 고민과 사유를 품게 되었다.

 

 본격적인 읽은 척
본서의 구성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혼돈의 유년기와 방황의 청년기를 고백한 1부, 짧은 직장생활을 접고 시카고에서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는 2부, 그리고 아버지의 유고 후 케냐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떠난 3부.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3부라 할 수 있다. "케냐, 화해의 땅"이라는 부제는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이라는 큰 제목과 맞아 떨어지며 주제를 압축하고 있다. 대체 무엇과의 화해일까? 답은 의외로 3부 시작과 함께 바로 나온다. 케냐 여행에 앞서 유럽을 둘러본 오바마는 다음과 같은 말로 불편함을 토로한다.

 

"마치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낭만 속을 거니는 기분이었다. 내 역사의 불완전함이 나와 내가 바라보는 풍경들 사이에 두꺼운 유리벽처럼 가로놓여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유럽에 들른 것은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기 싫어서 미적거리기 위한 핑계였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즉 노땅(아버지)과의 화해를 회피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언어와 일 또 모든 일상적인 것들, 심지어 이제는 익숙해져서 내가 그만큼 성숙했다고 생각하는 지표였던 인종적인 편견 까지도 모두 사라지고 없는 상태에서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거기에 커다란 공허함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케냐 여행이 과연 이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을까?"

 

본문 495p

 


케냐에서 난생처음 할머니 사라와 만난 오바마
사실 이 양반과 오바마는 피한방울 섞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거창한 기대를 품고 도착한 케냐에서 그가 만난 것들은 낭만적 아프리카, 따뜻한 가족 공동체, 유구한 전통과 긍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백인에게 더 친절한 음식점, 패배주의에 빠진 동포들, 복잡하다 못해 구질구질했던 아버지의 흔적들, 자신을 그저 돈 많은 미국인으로 대하는 먼 친척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기에 결정타는 할머니가 가했다. 오바마는 할머니의 입을 통해 자신이 그려왔던 할아버지의 이미지와 전혀 달랐던 자신의 진짜 뿌리를 전해 듣는다.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배신감을 느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온양고 할아버지에 대한 내 인상은 비록 희미하긴 해도 줄곧 잔인하고 엄격한 독재자였다. 나는 할아버지에 대해 독립심이 강하고 백인의 규칙에 저항하는 당당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도 가졌었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에 대한 근거가 실제로 아무것도 없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있다면 딱 하나, 할아버지가 하와이로 보낸 편지가 있었다. 당신의 아들을 백인 여자와 결혼시킬 수 없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그 편지와 할아버지가 무슬림이었다는 사실은 내 마음속에서 미국의 이슬람 연합이라는 조직과 연결되어 그런 이미지로 내 머리에 그려졌을 것이다. 할머니의 이야기는 할아버지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완전히 뭉개버렸다. 대신 고약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뇌리를 스쳤다. 엉클 톰, 반역자, 백인 주인에게 간과 쓸개를 다 빼주고 사는 밸도 없는 흑인 하인......"

 

본문 655-656p

 

오바마에게 "후세인"이라는 이슬람식 이름을 물려준 할아버지는 기대와 다른 사람이었다. 백인들이 나타나자 자발적으로 굴신하여 동포들 앞에서 마름노릇을 했던 할아버지 후세인 온양고. 그에게서 루오족의 전통이나 아프리카 정신 같은 것을 기대하긴 어려웠다. 거기에 조국 발전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품고 이역만리 땅으로 혈혈단신 유학 온 명석한 젊은이 정도로 막연히 그려온 아버지의 초상 또한 같이 무너져 내린다. 모난 성격 탓에 제대로 학교를 마치지도 못해서 구멍가게 점원 노릇을 했던 아버지. 그러다 구걸하다 시피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찔러서 얻은 장학금으로 하와이에 왔고, 케냐로 돌아가 한 때 정부 요직도 앉기도 했던 아버지. 그러나 줄 한번 잘못서 일선에서 밀려난 뒤 폭삭 기울은 가세와는 아랑 곳 없이 내가 미국에서 학위 받아온 박사야! 엣헴! 하는 식의 큰소리만 쳤던 노땅. 그렇게 뒷방영감처럼 늙어가다 교통사고로 비명횡사한, 그 사람이 아버지였다.

 

할머니의 구술을 통해 반쯤 그로기 상태에 빠진 오바마를 확인 사살 한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유품이었다. 가사 하인 포켓 고용 등록부 라고 적힌 작은 수첩은 이른바 할아버지의 노비 문서였다. 거기엔 백인들이 남겨준 영어를 읽고 쓸 줄 알며 요리 솜씨가 좋다, 부지런하며 일을 잘 한다는 식의 칭찬 아닌 칭찬들과 할아버지가 받은 몸값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수첩사이에는 젊은 날의 아버지가 불안과 기대를 담아 미국의 여러 대학과 재단에 보낸 편지와 추천서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이를 읽던 오바마는 결국 큰집 뒷마당에 있는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무덤을 부여잡고 대성통곡한다.

 

"나는 오랫동안 무덤 앞에 앉아서 울었다. 얼마나 울었던지 눈물마저 말라버렸다. 그제야 정적이 나를 감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구분하는 동그라미가 완전히 닫히는 걸 느꼈다. 내가 누구이고, 또 내가 누구를 돌보고 보살피는 것은 지성이나 의무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그것은 말로 규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보낸 내 삶을 돌아보았다. 흑인으로서의 삶, 백인으로서의 삶, 소년 시절의 자포자기적인 절망, 시카고에서 목격했던 분노와 희망... 이 모든 것들은 대서양 건너 멀리 떨어진 이 작은 곳과 이어져 있었고, 내 이름이나 피부색을 훌쩍 뛰어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본문 687-688p

 

 사실 "내 아버지로 부터의 꿈" 은 정치인의 자서전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소박하다. 집필 당시의 오바마가 정계의 주류와 거리가 멀었던 점을 감안해도 그렇다. 그의 회고는 각종 사회 현상에 다른 명쾌한 해석이나, 사회 문제에 대한 남다른 복안을 자랑하지 않는다. 정말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소한 한 인간의 생애와 가족사다. 수긍하기 어려운 사실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천한 피를 부정하지 않으며 부모와 주변 사람들을 이해해 나가는 이야기.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는, 어찌 보면 참으로 평범한 이야기다.

 

 읽은 척 실전 테크닉
이제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상황에서의 읽은 척 응용기술을 소개해 보겠다.

 

(1) 호신을 위한 방어적 읽은 척 - 가족 관계를 열거하라!

 

이봐, 오바마 자서전 읽어봤어? 라는 상대의 일격이 들어왔을 때 가장 정석적인 방어법이다. 본문에 등장하는 지엽적인 팩트 들을 열거하며 자신이 짐승만도 못한 평균 독서량의 소유자가 아님을 은연중에 흘린다. 뭐니뭐니해도 이럴 땐 숫자놀음과 고유명사 외우기가 효과 만점인 법.

 

"사실 오바마의 아버지는 케냐에 아내가 있었고 오바마의 생모와 이혼한 뒤 또 다른 백인 여자하고 결혼했었지. 그러다 보니 이복남매의 숫자만 8명이야. 할아버지도 아내를 여럿 두었는데 케지아라고 오바마의 아버지를 낳은 아내와 사라라는 아내가 있었잖아. 어? 기억안나?  저런...그런데 케지아가 아이들을 버리고 친정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오바마의 아버지는 의붓어머니인 사라를 친어머니처럼 여겼다지. 덕분에 지금 오바마가 케냐에 사는 내 할머니 라고 부르는 사라 할머니는 사실 오바마와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사이야. 참 그 집 족보 복잡하지? 허허허" 이러면 성공.

 


대학 시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오바마

 

(2) 보다 적극적인 읽은 척 - 외갓집을 칭찬한다.

 

뻔한 팩트를 나열하는 (1)의 전술이 너무 뻔하다, 확실하게 읽은 척을 하고 싶다! 이럴 땐 보다 적극적인 읽은 척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방법으로 오바마의 외갓집 식구들을 칭찬하면 좋다. 이 책의 주된 주제는 아버지와의 화해지만 그 과정에서 돋보이는 것은 오바마와 유년기를 함께한 외가댁 식구들의 지원이다.

 

인종차별이 거의 관습법처럼 자리 잡은 1960년대, 아프리카에서 날아온 유학생에게 대뜸 시집가겠다고 선언한 어머니. 말 없이 딸의 선택을 지지한 오바마의 외조부와 외조모. 아직 젖도 안뗀 젖먹이를 떼 놓고 도망가다시피 한 오서방(오바마의 아버지)이 원수 같아 보일 법도 하지만 손주 앞에선 항상 푸념대신 그래도, 오서방이 참 성격이 대쪽 같았지. 우리 동네에서도 아주 유명했다 는 식의 덕담으로 감싸준 아량. 60년대 미국에서 피부색이 다른 손주를 기르는 사람으로서 오바마 만큼이나 큰 혼란과 갈등은 겪은게 외갓집 식구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고 오늘날의 오바마가 있기까지는 외갓집의 버팀이 컸다.

 


(3)공격적인 읽은 척 -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

 


미합중국 대통령의 초상을 무단 도용하는 대륙의 담대한 기상
중국의 한 짭퉁 블랙베리 폰 광고

 

어디까지나 호신용 이라는 읽은 척 매뉴얼의 본래 취지에서 다소 어긋나는 방법이라 조심해야 한다. 이럴 땐 ‘읽은 자의 자신감’을 연기해야 하는데 적절한 방법이 있긴 하다.

 

먼저 [버락 오바마] 가 아닌 [바라크 오바마 ] 로 그를 지칭하면서 밑밥을 던진다. 이윽고 누군가 응? , 버락(Barack)을 왜 자꾸 바라크라고 발음하는 거지 하고 미끼를 물으면 성공.

 

아.. 이 친구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도 안 읽었어? 이게 삐, 에이, 아~ㄹ, 에이, 씨, 케이 라고 써놓으니까 미국식으로 버락이라고 읽은 거지 원래는 바라크야 바라크. 할아버지가 무슬림이라 그쪽에서 내려온 아랍어 이름이잖아. 아랍어로 [아름답다]는 뜻의 바라크. 그래서 어릴 때 이름에 거부감도 있고 해서 주변사람들이 그냥 [배리]라는 애칭으로 오바마를 줄곧 불렀다지. 그래서 오바마가 블랙베리폰을 유달리 더 좋아한다는 설이 있어, 검은 배리. 흑인배리 오바마. 딱 동질감이 생기잖아?

 


오바마가 블랙베리폰의 열성 유저인건 사실이지만
위의 야부리는 그냥 음모론 수준의 썰 이다.

 

대개 이 정도로 초장에 기선제압을 당하면 분위기는 책을 읽은 자와 안 읽은 자로 확 갈리게 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좌중의 준치를 보다 아무도 읽은 척을 하지 않는다면 이제부턴 나의 독무대요 서로 어 나도 읽었어 하는 이들이 치고 나온다면 이제 그들을 부채질하며 한발 빠져 있는다. 이 정도로 선수를 친 내가 설마 읽은 척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4) 가급적 피해야 할 읽은 척
노파심에 이런 읽은 척은 피하길 권한다. 먼저 기선 제압을 한다며

 

"야.. 이게 원래 원서로 읽어야 제 맛이 사는 책인데. 번역도 잘 나왔긴 하지만 각운이나 표현중에 영어가 아니면 맛깔나지 않는 부분이 좀 있어."

 

이런 말을 덧붙이는 것은 오버다. 영어에 풍부한 소양을 갖춘 이들이 오바마의 유려한 문장과 글재주를 칭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읽은 척의 특성상 이야기가 깊이 들어갈수록 불리하기 마련이다. 영어 이야기가 나오면 야코가 죽겠지..하는 마음에 섣불리 시도했다간 되려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심도 있는 읽은 척을 한다며 오바마의 정책 비판등을 곁들이는 것도 썩 권하고 싶지 않다. 사실 내 아버지로 부터의 꿈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불량 써클에 가입해 술 먹고 대마초피던 질풍노도의 청년이 마침내 아버지와 화해를 통해 정신적 사춘기를 벗어나 성숙한 어른 이 되어가는 내용이다. 일단 정치인의 자서전이니 기본적인 틀은 있겠지..하고 섣불리 읽은 척 했다가 자폭하기 쉽다. 거듭 말하지만, 이 책은 애늙은이 같은 새신랑이 서른다섯살에 쓴 이야기다. 그냥 고삐리때 대마초 피고 진짜 장난 아니게 놀았구만. 그런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밝히기 어려웠을 텐데 좀 의외였어.... 이 정도로 충분하다.

 


어설픈 아는 척을 하느니 차라리 사춘기 소년의 성장 드라마,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연관시켜 오 신선한 해석 이라는 반응을 얻는 게 좋다.

 

 마무리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을 관통하는 가장 큰 화두는 "화해와 용서" 다. 작게는 아버지와의 화해이고 크게는 세상 전체와의 화해다. 사회적 약자이며 소수로 태어나 방황하던 소년이 이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 자기 자신의 상대화 와 객관화 ] 였다. 

 

스스로를 둘러싼 환경과 사람들을 혼자 반추하면서 그는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갔고 마침내 그 멀고도 험하게만 느껴졌던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와 할아버지도 결국 몸부림치던 작은 인간’ 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눈물을 흘린다. 한편으로는 항상 아버지를 두려워하던 아들이 어느 순간 아버지보다 키가 커지면서 아버지를 내려다보게 되는 순간 콤플렉스와 분노에서 해방되는 프로이트적 장면이기도 하다. 

 

할아버지의 노비문서와 아버지의 비루한 젊은 날을 기록한 유품 앞에서 대성통곡한 오바마는 어른이 되어 간다.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아픔과 상처, 다양한 풍경 등을 긍정할 수 있는 더 큰 사람이 되어가는 마지막 장면. 그의 눈물은 자신을 괴롭히던 것들과의 화해와 분열되었던 여러 자아의 통합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다른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공감 할 수 있는 능력을 얻었음을 넌지시 내비친다.

 

" 우리는 이 진리들이 자명하다고 생각한다.(미국 독립 선언문의 표현) 이 표현에서 나는 프레드릭 더들라스(탈주노예 출신 흑인 운동가)와 마틴 델러니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제퍼슨과 링컨의 목소리도 듣는다. 그리고 마틴 루터와 말콤엑스 들과 함께 행진한 사람들의 목소리도 듣는다. 또한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시 철망 너머에 억류된 일본인 가족들의 목소리를 듣고, 저임근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하는 로어 이스트사이드의 러시아 유대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박살나버린 삶의 유해들을 트럭에 담는 미시시피 황야의 농부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또 앨트겔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 나라 국경선 밖에서도 그 목소리는 들린다. 무리를 지어서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 국경 지대의 그란데 강을 건너는 깡마르고 허기진 사람들의 목소리..."

 

701p

 

그렇다. 시작은 가카와 닮은 점에서 시작했지만 내 아버지로 부터의 꿈 은 오히려 노무현의 여보 나 좀 도와줘 와 닮았다. 훗날 자기가 얼마나 큰 거물로 성장할 지도 몰랐던 변호사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가장 희망에 부풀어 있던 시기에 쓴 자기 반성문.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과 여보 나 좀 도와줘는 쓰여진 시기나 맥락을 공유하고 있다. 자전적, 회고적이라는 말은 붙었지만 자신의 업적을 돌이켜보는 과거를 자랑하기 위한 회고가 아닌, 앞으로의 삶을 위해 과거를 정리한 책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자신의 불완전하고 부끄러웠던 모습들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엊그제 노무현이 쓰다 만 미완성의 회고록이 출간되었다. 마음이 착잡하다. 최소한 오바마가 퇴임 후 쓰게 될 회고록이 미완성본으로 나올 일은 없을 것이다. 부럽다. 미국인들은 참으로 매력있는 남자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그가 하얗게 탈색된 W.A.S.P.들의 악센트로 치장하고, 백악관에 들어가기 전에 비해 온건한 행보를 보인다며 오레오쿠키(오레오 쿠키는 검은색 과자 두겹속에 발라진 흰색 크림으로 이루어져 있다.)라고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조금 더 기다려 보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이것은 조급해하다 한 사람을 너무 빨리 보낸 경험자로서의 충고다. "내아버지로 부터의 꿈" 전체에 녹아있는 오바마의 처절한 몸부림과 진정성은 이 남자, 믿어볼 만하다는 신뢰를 심어준다.

 

왜 인풋은 같아도 아웃풋은 다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보류다. 애초에 가카와 오바마는 인풋 자체가 달라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난 아직 사람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말에 조금 더 희망을 가져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권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어딘가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있는 것 같다면 한번쯤 자신의 슬픔을 상대화, 객관화 시키는 여행을 떠나 볼 것을.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에게로 그 반대라면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에게로. ‘군대 빼면 내가 안 해본 것 없고 정말 뼛골 빠지게 살았다’는 식의 자기 자랑인지 넋두리인지 모호한 말보다 더 확실하게 다른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는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아 어느 특정인을 지칭한 게 아니라 독자 제위 모두에게 권하는 말이다. 아시다 시피 위 문장에 특정한 주어는 없다.

 

                           
주어는 없다니까, 일단 한번 해보셔!

 

 

 

충용무쌍(dbscnddy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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