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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정운찬 라이징 
- 청문회의 결정적 장면들

 

2009.09.25.금요일
필독

 

 

서문

 

현실은 선과 악 중간쯤에 있기에 우리는 최선의 이상보다는 차악이라는 얼터너티브로 만족하고자 한다. 판타지의 스토리텔링은 선과 악의 깨끗한 대립구도에 근거한다. 선이 있으면 악이 있고 선과 악은 싸우는 법. 물론 우리뿐 아니라 화자(話者)는 선의 편이다. 그렇다면 선과 악은 함께 존재하는 걸까 아니면 똥물에도 파도가 인다고, 둘 사이에도 순서가 있는 걸까. 

 

최소한 판타지에는 순서가 있다. 악이 먼저다. 악은 선의 선행조건이고 따라서 이야기의 기본 토양이다. 싸울 대상이 없으면 왜 싸워야 하겠으며 싸움이 없으면 재미가 없지 않은가. 악당은 히어로가 코스튬을 입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다스베이더의 존재는 루크 스카이워커가 우주의 질서를 위해 광선검을 들어야 할 당위를 제공한다. 그는 루크의 생물학적인 아버지이기도 하다.

 

선거는 판타지다. 지난 대선도 물론 판타지였다. 여기엔 크게 두 가지 판타지가 존재했는데 첫째는 다스베이더에 해당될 거대설치류를 히어로로 오인하는 착시현상이었고 둘째는 거대설치류가 퇴치되어 봉인되길 바라는 순진한 이상이었다. 이중 후자를 택했던 많은 사람들은 악을 퇴치해줄 선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또 절망했으니, 그 이유는 이른바 제다이 측의 포스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정치적 포스란 때로 대중의 기대감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개인적 역량과는 상관없기도 하기에.

 

그래서 사람들은 다스베이더의 빨간 포스에 대항할 녹색 포스를 정치권 외부에서 찾기에 이르렀다.

 

그 포스의 주인공은 정운찬.

 

서울대학교라는 성지에 총장이라는 직위로 우뚝 선 아우라. 보기 드문 유능한 학자라는 평판, 청렴하다는 세간의 입소문. 곱게 늙은 준수한 외모에 부드러운 말투까지, 그의 겉모습은 다스베이더의 대척점에 있었다. 거기다 하필 전공분야가 경제라, 다스베이더의 실체 없는 경제지상주의를 분쇄할 최적의 인물로 여겨졌던 것이다. 1차 정운찬 라이징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정운찬은 저항군 측의 러브콜을 받았으나 초야의 삶을 선택, 수많은 사람들에게 탄식을 안겨줌과 동시에 더 많은 존경을 받았더랬다. 허나 어둠의 세력이 득세한 이후에도 다스베이더의 만행에 소신 있(어 보이)는 비판을 던짐으로써, 하늘에 잔뜩 낀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장대비는 아닐지라도 대당 삼십만원 하는 스웨덴산 공기청정기 역할은 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루크 스카이워커는 다스베이더를 만났다. 영화 속의 루크는 다스베이더의 내가 니 아빠다 발언에 충격을 받고, 함께 우주를 지배하자는 생부의 유혹을 뿌리친다. 그러나 운찬 스카이워커는 저들의 잔칫상에 껴준다는 유혹에 현실적으로 반응한다. 네, 아빠.

 

이런 전차로 우리는 인사청문회라는 이름의 2차, 아니 진정한 정운찬 라이징을 목도하게 된다. 사슴처럼 순진한 눈망울과 잘 모르겠습니다와 신중히 생각해 보겠습니다를 뻐끔대는 붕어입으로 무장한 정운찬, 그가 왔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말 뚜껑이 열리는 그 현장. 포스가 독자여러분과 함께하길.

 

본론

 

정운찬 라이징 1 - 21일 오전

 

이번 정운찬 총리후보 청문회의 결정적 장면을 짚어보라는 편집장의 지령을 받고 잠시 욱했더랬다. 팔짱끼고 욕해가며 봐도 한심할 청문회를 뭐 이틀이나 뚫어져라 쳐다봐야 한단 말인가. 필자 아무리 중국집에서 총수가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시키라고 했을 때 샥스핀을 주문했다 하더라도(맛있었다.)... 그런데 결정적 장면은 다시보기 할 필요도 없이 초장부터 터졌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들먹이며 서민 운운. 그가 읽은 선언문은 이 언급 외에는 아무런 특징도 없는 평범하고 고루한 언사였다. 따라서 이 대목에 그의 전략이 노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전략은 간단하다. 난 가난했으니까 서민을 잘 이해하고 가난했지만 성공했다는 것이다. 국정에 관한 철학과 정책에서 유리된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히어로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이 표를 긁어모은 방법이다. 이명박은 삽을 든 현장 히어로, 정운찬은 펜을 든 이론 히어로. 그런데 그 실체가 무척이나 부실하다.

 

이명박은 현대건설이 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개인의 능력치를 넘어 성공하기 위해 십수 번의 전과를 올려야했다. 정운찬은 서울대 총장까지 올라가기 위해 논문중복게재로 학술적 능력의 한계를 벌충해야 했다. 그런데 논문중복게재는 별 문제도 아닌 것이, 이 양반이 털어보니까 먼지가 꽤나 많은 사람이었던 거다.

 

사실 청문회 직전 뚜껑은 반쯤 열려져 있는 상태였다. 내용물의 실체는 사람들을 실망시킨 걸 넘어 놀라게 했는데, 이 사람도 똑같군이 아니라 이 사람 정말 심하네였으니까.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굵직한 먼지만 나열해도 현 정부 인사들에 못지않은 백화점이다. 

 

1 병역비리의혹
2 논문중복게재
3 위장전입
4 세금탈루
5 자녀 이중국적 의혹
6 (예스24) 겸직으로 인한 공무원법 위반
7 (영인모자 등) 부당소득 의혹
8 재산축소신고

 

여기서 <있을 건 다 있다>는 한국식 표현은 삼가고 싶다. <있어선 안 될 게 다 있다>고 고쳐 쓰고 싶다. 그런데 정운찬은 위에 나열된 사항들을 조사하고 온 저격수들을 앞에 두고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나 가난했다. 나도 고생 많이 했다.” 이것은 청문회의 궤도를 안드로메다행으로 이탈시켜버리는 이명박식 전회다. 이게 꽤나 효과가 있다는 걸 이명박이 증명했고, 정운찬이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역경을 극복한 경험이 비슷한 대통령님의 뜻을 살펴”라는 대목은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정운찬이 이명박의 수동적 클론이 될 수 있음을 강력히 암시한다. 다음 대목이 진정 걸작이다.

 

“춥고 어두운 구석을 두 팔로 보듬고 삶에 지친 이들의 등을 두드려주고...”

 

보듬고 두드린다는 것은 실체가 없는 감정적인 말이다. 대체 어떻게 보듬고 두드린다는 말인가? 정말 괘씸한 것은 이 말이 수직적이고 계급적이라는 데 있다. 이명박의 어묵꼬치 쇼처럼, 인자하게 ‘강림’하겠다는 게 아니면 이 불편한 표현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나는 높으신 분이 내 등짝에 손길을 하사해주길 원하지 않는다. 나는 백성이 아니라 국민이기 때문이다. 이명박의 재래시장 강림을 보며 문득 노무현을 추억했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더라도, 어떤 의도가 있을지라도, 노무현이 그려내는 선은 수평이었을 것이다.

 

 

왜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을 지키지 못하는 권력자는 그 사회에서 더 권위적일까? 봉건적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반칙을 시민적 소양의 부족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카스트의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장바닥에서 그렇게 인자한 웃음을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가 은혜를 베풀고 있다는 확신이 없으면, 착하다는 확신이 없으면, 그런 표정은 나올 수 없다.

 

정운찬은 가난하게 자랐을지는 몰라도 군부의 유력한 장성의 딸과 결혼하면서 기득권에 편입된다. 그때부터 그는 빠르게 기득권의 반칙을 학습하고 또 답습하게 된다. 결혼 후 병역면제 판정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그는 인생을 쉽게 살아왔다. 위장전입도 하고, 기업인에게 용돈도 천만 원씩 받아가며.

 

정운찬은 이후 청문회에서 제기된 각종 비리의혹을 예상했던 만큼 적극적으로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잘못된 건지 몰랐습니다.’, ‘아 그게 문제가 있는 건가요?’하는 태도로 의혹의 상당부분을 사실로 확인해주었다. 청문회 내내 해맑게 껌벅이는 눈망울은 그의 기만적 선의를 반증한다. 한마디로 자기가 뭘 잘못한 건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봄바람에도 부끄러워”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진 노무현과의 본질적 차이는 바로 그의 봉건성에 있다. 그는 노무현처럼 공직을 공복(公僕)의 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사람이 총리가 되겠다고 한다. 그래서 강부자, 고소영은 부르주아가 아니라 상위카스트이며, 우리가 사는 체제는 아직 앙시앙 레짐이다.

 

정운찬 라이징 2 - 21일 오후

 

21일 오후는 도덕성에서 바닥을 쳤던 정운찬이 실력의 바닥까지도 드러낸 시간이다. 민주당 의원들에게 집중포화를 받던 정운찬에게 지원사격이 들어온다. 한나라당 이혜훈 의원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을 질문했다. 경제학 박사로 서울대 총장까지 오른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은, 경제적 식견을 마음껏 피력해보라고 멍석을 깔아준 것이다. 즉 도덕성은 됐으니까 너의 능력을 보여줘. 적절한 지원사격이었다. 그런데 정력적으로 달려들어 점수를 확 당겨야 할 정운찬은 멍석 위에서 숨만 쉰다.

 



 

“최근 10년간의 세계 금융시장의 변화는 정말 복잡합니다... 참여자들도... 금융 감독인들도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간만에 날아온 구명조끼를 멀뚱히 쳐다보는 정운찬을 이혜훈은 포기하지 않는다. 결국 설명을 질문자가 한다. 그러면 정운찬은 뭐가 뭔지 잘 모를지라도, 이혜훈의 의견에 적극 동의하기라도 해서 일정한 소신과 정책이 있다는 점이나마 과시했어야 한다. 경제학적 식견은커녕 줘도 못 먹는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후 벌어질 상황들의 프로토타입이다.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지 좀...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보고를 받았습니다만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지원사격 및 저격에 대응하는 정운찬의 태도는 어리버리와 자유방임으로 일관된다.

 

정확히 확인한 바는 없지만...특별한 복안은 없지만...제가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혹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열심히 하겠습니다...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혜훈의 질의가 결정적 장면의 하나인 이유는 질의 직후부터 벌어진 상황 때문이다. 이 사람이 포장만 그럴듯했지 지원사격도 제대로 못 받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민주당 의원들은 김종률을 시작으로 윽박지르기, 말 자르기, 협박하기, 내 맘대로 훈계하기 등의 저질 기술을 마음껏 시전한다. 우아하진 못한 방법이나 정운찬의 바닥을 공개하기엔 효과적이었다. 정운찬은 초딩적 공세에 쩔쩔매면서 시청자들을 어이없게 했다. 총리를 해도 되는지를 떠나 총리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한나라당 정옥임의 2차 지원사격은 막장일 수밖에 없었다.

 



 

“두 분 다 찢어지게 가난하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모친은 국화빵 장수를 하시고, 정운찬 후보의 모친은 삯바느질을 하면서...”

 

이 패스를 이어받아 정운찬의 과거사 연대기가 구술된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다는 얘기는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명절하고 제삿날 빼고는 밥을 먹어본 적이 ‘한번도’ 없다는 얘기나, 아침에는 옥수수떡을 저녁에는 옥수수 죽을 먹었다는 얘기. 점심시간에 도시락이 없어 뒷동산에 가서 혼자 노는데 비가 오고...

 


씨바, 눈물이 앞을 가린다. 잠깐 눈물 좀 닦고...

 

그런 정운찬을 바라보는 정옥임의 숙연한 표정에 나는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나 서민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 것이라고 주장하는 그의 입에서 실업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서민을 이해하면서 서민을 죽이는 각하를 2년 가까이 경험하고 있는 우리는 바로 이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 철학과 능력, 도덕성의 부재를 과거사라든가 강림 이벤트 같은 개인적 사건으로 메우는 말장난에 더 이상 속아선 안 되니까. 억울해서라도.

 

정운찬 라이징 3 - 22일 오후

 

22일 오전은 바닥을 드러낸 정운찬을 묻으려는 야당과 일으켜 세우려는 여당의 자료싸움이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날 고착된 이슈는 바로 병역. 법적인 하자가 없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한나라당 측과 아니 사실 있을 것이라는 민주당 측의 공방을 보며 국민들은 기본 전제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 불법이 아니면 편법은 괜찮다는 말인가? 알바 면접이 아니라 총리 후보자 청문회란 말이다.

 

22일 오후의 결정적 장면은 다음 아고라 정치게시판의 아이돌인 민노당 이정희 의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정희는 4대강 사업이 대운하와 어떻게 다른지, 그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해 정운찬을 더듬거리게 했다. 그러니까 뭐가 다르냐고요. 근거를 대라고요. 근거가 있을 리도 없거니와 있어도 똑바로 대답할 정운찬이 아니다. 좋은 전략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흠집 내기가 아니라) 흠집 비추기에 주력했다. 흠집은 어차피 그득한지라, 이정희는 다른 바닥을 팠다. 4대강의 허구성, 그리고 아무 생각도 말주변도 없는 정운찬의 실체.

 

“저의 짧은 지식으로는... 깊이 공부 안 해봤습니다.”

 

또한 서민경제에 대한 민주당 의원들의 접근법은 감정적이었다. (영인모자 회장으로부터 받은) 천만 원을 ‘용돈’이라고 하면서 서민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그는 이해 못할 것이다. 어린 시절의 고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는 있어도. 그러나 서민의 취향에 흥미가 없어도 올바른 정책을 수립하고 이끌어 가면 되는 거 아닌가. 외제차를 몰아도 정직하게 축적한 부로 모는 거면 상관없지 않은가. 서민은 어르신들이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그런 이해는 동정이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신의 삶이, 땀과 땀의 결과가 설득력 있기를 원한다. 그런 설득력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공직자들은 ‘이해’할 시간에 졸라 일하면 되는 거다. 이정희는 바로 이 부분을 팠다. 정운찬, 서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똑바로 일할 능력이 안 되는 사람.

 

그래서 이정희가 용산참사 유족을 청문회에 참석시켜 정운찬과 대면하게 했을 때는, 전략적으로 훌륭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약간 서운했다. 정운찬의 이거 어쩌지 하는 표정과 검은 상복을 입고 눈물을 흘리는 미망인. 미망인을 바라보는 이정희의 슬픈 눈과 떨리는 목소리. 좋고 나쁘고를 떠나 전형적인 감정공세다. 그러나 미망인을 상대로 한 한나라당 차명진의 헛소리에 분노하면서, 이정희에 대한 나의 감정적 지지는 다시 급상승하고 말았다.

 

 

 

딱 잘라 결론만 끄집어내면 ‘충분히 보상해주려고 하는데 왜 아직도 버팅기냐’는 말에 미망인이 사실무근이라고 하자 차명진은 드디어 시청자의 뚜껑을 열어버린다.

 

“...문제가 안 풀리고, 시신을 차가운 냉동고에 6개월씩이 방치하고 있다는 거는 유족의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얼른 마무리 짓고 이제 우리 상생합시다."

 


얼마 전까지 딴나라당의 대변인이었던 분 답게
청문회에서도 화끈하게 삽언난사를 해주신 딴나라당 차명진 의원

 

국가적으로 고착 혹은 강요된 구조적 폭력을 가정사의 문제로 치환해버리고 거기다 충고질까지 하는 그 야비함을 우리는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지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반 이명박 운동에 촛불을 들고 나온 유모차 부대. 아무런 고민 없이 국민을 위험에 빠트린 자들이 그들의 모성을 비판했다. <제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려서 되겠는가.>

 

제 도리를 다하기는커녕 헐거운 인두겁 관리도 제대로 못한 정부와 경찰에 분노해있는 유족 앞에서 ‘어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 인간의 도리를 이야기한다. 여기에 정운찬의 예의 그 내용 없는 답변까지 더하면 분노를 넘어 차라리 허탈해진다.

 

“적극적으로 (용산 문제를) 푸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 유족들과 한번 만나서 위로를 해 드리고”

 

어떻게 문제를 풀 건지, 대체 그에 대한 고민은 있었는지의 차원을 넘어, 막걸리 한잔 하러 가나? ‘풀면’ 되는 것이 아니잖은가. 애초에 꼬이지 않게 해야 하지 않은가. 상생은 피해자가 폭력을, 용서라는 형태로 수긍하면서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다. 용산참사처럼 곤권력과 자본이 결탁해 자행한 구조적 폭력은 총리후보자가 눈물을 보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상생은 강자가 약자에게 제멋대로 폭력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가 갖춰질 때 가능하다.

 

그러나 저들은 상생을 명령과 복종으로 하나 되는 단체행동으로 이해하고 있다. 반항하면 상충이요, 닥치고 따라오면 상생이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수긍할만한 구석 하나는 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소수의 기득권을 위해 다수의 국민이 닥치고 희생하는 게 상생이고 통합이고 화해라면, 그 기득권이 반칙을 일삼는 자들이라면, 나 국민 안 한다. 그러나 국민 안할 순 없기에 뚫린 입이라고 떠들어 본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반칙 플레이어 정운찬은, 아무 생각 없다.

 

결론 - 정운찬 라이징 리뷰

 

그 나물에 그 밥, 그놈이 그놈이라는 말이 있다. 본 기사에서 확인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정운찬이 그저 그런 나물이나 밥 내지는 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운찬은 그 밥만 못한 밥이다. 공직자로서 평균 이하이며, 국정 2인자인 총리로서는 택도 없다. 한나라당은 왜 정운찬이 총리가 되면 안 되는지 항변한다. 하긴 전과가 화려한 대통령을 모시고 있는 인간들 눈에 그 정도 허물은 허물로 보이지도 않을 게다. 정운찬이 돌을 맞아야 하면 자기들은 총알을 맞아야 할 테니까.

 

거대설치류의 삽질이 국민들을 당황하게 하면서 웹에 ‘도덕성이 곧 능력이다’는 말이 돌았다. 이게 극단적인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도덕적 기준에 대한 그 사람들의 극단적인 불감증이 두렵다. 도덕성은 능력의 구성요소가 아니라 그 상위에 존재한다. 도덕성은 공직자에게 요구되는 기본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양보에 양보를 무한히 거듭하여 영혼이 조금 회색이더라도 능력이 도덕성에 우선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런데 정운찬은 능력이 없다. 그는 이틀간의 청문회동안 단 한 번도 유능한 모습을 보인 순간이 없다. 그가 아무리 어눌했을지라도 정말 청렴했다면 야당의 저글링러시에 피 흘린 선량한 희생자로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때가 묻었을지라도 그가 제시하는 정책과 비전에 설득력이 있었더라면, 도덕불감증에 마비된 이 사회에서 소정의 지지를 받을 명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둘 다 아니다.

 

서문에서 언급했듯이, 정운찬의 포스는 이명박의 반대급부로 형성되었다. 애초의 그의 포스는 청문회에서 잃은 것이 아니다. 그의 포스는 이명박의 콜에 콜을 외치는 순간 이미 깨끗하게 증발해 버렸다.

 

적장을 포섭해 덩치를 불리고 적진을 고립시키려는 청와대의 의도는, 그래서 시작부터 실패일 수밖에 없다. 그 실패를 덮기 위해 정운찬은 지난 대선에서 ‘검증된’ 이명박의 전례를 따라야 하고, 따라서 그는 복제 쥐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운찬이 이명박을 견제하며 균형을 찾으리라는 일부의 기대는 그 전제부터가 망상이다.

 

그러니까 요는 한나라당이 떼쓰는 것처럼 이 양반이 왜 굳이 총리를 하면 안 되느냐가 아니라, 왜 굳이 총리씩이나 되어야 하느냐는 거다.

 

결론. 거대설치류가 조그만 클론을 뱉어냈다. 모체를 감당하기도 괴로운데 클론까지 생겼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클론의 역할은 앵무새가 될 전망이니까. 시정잡배가 하나 늘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저질 개체가 품질검사를 통과하고 공적으로 인증 받는 사태는 좀 많이 걱정해야 되지 싶다.  

 

필독(the.dog.on.the.fie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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