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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간 떡밥] 삼천포행 아이폰이야기 2

 

2009. 9. 30
핑키핑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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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행 아이폰이야기 1 

 

 
땅!

 

뭐에 꼽혀서 그랬는지는 몰라. 생일 선물을 골라보라는 여친의 제안에 처음엔 극구 사양을 했었어. 평생 단 한번 뿐 일거라는 다짐을 받긴 했지만 어쨌거나 여친 생일에 그 된장스런 명품백을 지르고, 카드값을 갚아나가는 중이였기 때문에 은근 본전 생각이 났던 건지도 몰라. 아니, 그렇진 않았어. 난 그저 그 소리를 진짜로 들어보고 싶었어. [타짜]에서 조승우가 퉁기던 그 라이터소리. 영화를 보면 뭐 하나씩은 남게 마련인데, 그 영화는 나에게 오로지 그 라이터소리만을 남겼지.

 

그게 무슨 라이터인지도 몰랐어. 라이터란 무릇 짧은 치마 입은 아가씨들이 저녁시간 회사 근처 식당을 돌며 나누어주는 [XX나이트클럽], [XX노래주점] 라이터가 전부인 줄 알았고, 나름 큰 돈을 들인다고 한다면 보통 것 보다 1.5배 두꺼운 철판으로 만들었다는 지포 아모케이스가 다 인 줄 알았으니까.

 

라이터 매장 앞에서, 가격표에 붙어 있는 0이 내가 예상한 것 보다 단지 한 개씩 더 붙어있는 걸 확인하고, 되려 마음 한 구석에 붙어있던 번뇌가 사라짐을 느꼈지. 그래, 난 단지 그 소리가 듣고 싶었던 거야. 추리한 청바지와 운동화 바람이란 게 좀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난 처음부터 그 소리만 들어보려고 했을 뿐 이였고, 점원에게 한 번 꺼내 보여 달라고 했지. 점원은 무슨 예를 갖추 듯 흰 장갑을 끼면서 이렇게 말했어.

 

점원 - “새 제품이기 때문에 라이터를 켜시면 안 됩니다.”
나 - “라이터를 켜면 사야 되나여?”
점원 - “네???..... 네....”

 

“땅!”...... 난 지금도 그 소리가 내 엄지를 망각의 그늘로 이끌었다고 생각해. 이유는 그게 다야. “땅!..... 칙........” 라이터 뚜껑을 연 엄지는 무의식중에 자신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인지하지 못했고, 단지 라이터를 쥔 손가락이라면 가야할 곳으로 갔을 뿐 이였어. 엄지는 죄가 없었던 거야.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여친과 점원의 소리 없는 비명...

 

놀랍게도, 예상가격 15만 8천원에 0이 하나 더 붙은 그 라이터에는 불이 붙지 않았어. 그리고 난, 한 가지 결심을 하며 매장을 나섰지. ‘로또에 당첨되면 제일 먼저 사주마.’

 

 




 
 

팬택에서 ‘듀퐁폰’ 이란게 나왔단다. 불이 켜졌다면 질렀을지도 몰라.


 

 
끼릭!

 

모토로라 스타택(StarTac, 7760모델, 아날로그출시-1996, 디지털출시-1998)의 폴더를 여닫을 때 나는 소리가 그런 식이였나봐. 얼핏 들으면 내장된 스프링이 녹슬어 삐걱대는 것처럼 들리는 데, 그게 사람의 측은지심이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건 아닐까 추측해보긴 했는데, 뭐 알 길은 없지. 출시된 지 10년도 넘은 이 폰이 지금까지 인기를 끌면서 모토로라에서는 스타택2 모델도 만들고, 레이저폰(RARZ)에도 이 삐걱임을 넣기도 하고 했었어. 하지만 스타택 매니아들을 과연 다 끌여들었는지는 의문이야.

 

스타택2에 기대를 걸었던 소비자들은 제품이 출시되자 꽤 실망하는 분위기였어. 이유는 스타택2가 스타택오리지날과 별로 안 닮았기 때문이였지. 결국에 이 모델은 꽁짜폰 행렬에 동참하면서 막장이 되어버렸는데, 난 모토로라 입장에서 할 말은 있다고 봐.

 



이렇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휴대폰으로 전화만 하는 게 아니라 전화선 뽑아다가 모뎀에 꽂고 나우누리, 천리안 하듯이,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도 있게 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걸 어마어마한 돈다발로 생각했어. PC통신에 미쳐있는 사람들이 ‘용건만 간단히’라는 가훈을 무시하다가 전화요금 고지서 날아오는 날 부모님께 싸다구를 얻어맞는 사례들이 그걸 증명했지.

 

PC통신 많이 하면 전화국(지금은 KT)이 돈 많이 버는 것처럼, 휴대폰데이터통신을 많이 하면 이통사가 돈을 많이 벌게 되지. 하지만 제조사입장에서는 네이트/ 매직엔/ 이지아이버튼 누르는 걸 도박장 가는 것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데이터통신 자체를 못하게 이 버튼을 날려버린 모델을 출시하는 것도 좋은 장삿속이였을거야. 그래도 그건 대한민국에선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였지. ‘위피탑재의무화’ 때문에.

 

위피(WIPI)는 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의 약자야. 풀어쓰면 상호호환을 위한 무선인터넷 플랫폼이랄까? (외워봐야 아는 척 안 됨) 간단히 설명하자면, 내가 병따개로 쥐의 머리를 딸 때마다 점수를 따는 폰게임을 하나 만들었어. 당연히 나는 싸이언 가진 사람이던 애니콜 가진 사람이던 상관없이 다운받아 써야 매출도 늘고 좋겠지. 그런데 폰이라는 게 PC랑 많이 달라서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PC케이스 속이 먼지로 가득할 때까지 안 열어보고 쓸 만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관심안두지. (예:편집장님)

 

그러니 PC부품 만드는 회사들은 그냥 여러 컴퓨터에 잘 맞아서 많이 팔면 그만이야. 호환 잘되고 값싸고 질 좋으면 그만이지. 하지만 폰은 전자제품이기도 하지만 항상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다 보니까 악세사리적인 성격(디자인)도 부분적으로는 갖게 되지.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지만 크기가 작다보니 버튼이나 키의 배치, 비쥬얼의 역동성 등 인터페이스의 중요성도 높아지고. 이런 성격 때문에 폰은 호환성에 비해 사용자적합성의 요구가 더 커지게 되고, PC시장에 비해 좀 더 분화될 수 밖에 없어.

 

PC시장이 자동차시장이라면, 폰시장은 튜닝용품 시장하고 비슷하다고 할까? 어쨌거나 폰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쥐머리따기 게임을 만든 나는 이 게임을 다양한 폰의 하드웨어와 플랫폼에 맞춰 각각 달리 적용시켜 팔아야 하는데 이게 말이 쉽지 참 짜증나는 일이거든.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게임 만드는 사람들 모두 그 고생을 하고 있는 게 안쓰러웠는지 정보통신부(지금은 방송통신위원회로 업무이관)에서 모바일 데이터통신의 표준을 만들었어. “이제부터 나오는 모든 폰에는 위피를 무조건 탑재하거라!” 하며 나온 게 위피야.

 



위피탑재의무화 (강제주체 - 정부)
위피버튼 명당차지의무화 (강제주체 -통신사)

 

위피관련 규정은 정보통신부에서 ‘고시’로 나오고 무슨 관보에 실렸다고는 하는데, 잘 안 찾아지더군. 업무를 이관 받은 방송통신위원회는 작은 정부 지향한다며 정부부처를 이리저리 짜깁기한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생겼는데, 예전 건 정리도 안 해놨더라고. 어쨌거나 위피탑재의무화가 처음 시행됐을 때에도 이러쿵저러쿵 말은 많았는데, 한 타이밍 늦은 감은 들긴 하지만 어쨌거나 처음 시작할 때는 나름 명분이 있었지. 아까 말 한 대로 호환성을 높여 인적, 물적 낭비를 줄이고, 여차하면 국제표준으로 띄워서 국내 모바일 컨텐츠/서비스산업의 경쟁력도 높이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위피는 점차 국제경쟁력에서 쳐지게 되었어. 남들도 노는 건 아니였더라고. 다양한 모바일플랫폼이 표준화대전을 치르기에는 기술의 발전속도와 시장상황이 너무 역동적이였던거야. 여전히 춘추전국시대상태일 수 밖에 없었던거지. 어쨌거나 정부는 이렇게 되어가는 흐름을 간파하고 잽싸게 위피를 폐지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모색했어야 했어. 하지만 왠 걸. 정보통신부가 없어져 버린 거야.

 

비록 위피가 헛짓으로 결론나긴 했지만 나름 개념 갖고 시작한 거였는데, 주체가 사라지니 목적도 취지도 간데없이 이제 엉뚱하게도 외산휴대폰의 진입장벽으로서만 기능하게 되었어. 그까이꺼 좀 달고 나오면 어떠냐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위피도 나름 기술이거든. 남들은 위피를 개발하고 적용시킬 인력들을 이미 세팅 다 해놓고 있는 상황에서 성공가능성도 불분명한데, 금형 다시 뜨고, S/W 다시 개발하고 하는 비용 자체가 한국 폰 시장에 초기 진입하는 해외의 폰 제조사들에게는 부담이 되지. 애플도 마찬가지고. (애플은 자신들이 개발한 언어, 인터페이스에 대한 존심에 스크래치 가는 게 더 싫었을 거야. 그 존심하나로 버틴 회사잖아) 어쨌거나 아이폰이 한국에서 출시되지 않는 건 이 위피 때문이라는 게 올해 4월 폐지될 때까지의 공식적인 이유였어.

 

위피만 폐지되면 바로 들어올 것 같았는데, 그게 또 한 반년을 까먹고 이제서야 간신히 출시가 확정되게 되었지. 위피 폐지 이후의 미출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어. 이통사가 방해한다. 애플이 거만 떤다. 등등. 어차피 출시하기로 한 마당에 다 지나간 추억으로 잊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이 부분은 좀 자세히 짚을 필요가 있어. 난 사실 위피보다는 더 깊숙히 내재된 이유가 아이폰이 오랜 기간 출시되지 못하게 했다고 보는데, 통신요금 인하에 관한 이슈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으니 짚어보자고.

 

 

 

이 그림을 보고 발끈할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 우리는 외주지만 월급 따박따박 잘나오고, 상위계급(?) 만날 때도 당당하다. 이러면서. 그런 경우라면 혹시 사장이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 출신은 아닌지, 밥줄을 어디서 어떻게 물어가지고 오는지 좀 따져볼 필요가 있을 거야. 그렇지 않다면, 마음 한 구석에 고이 묻어두었던 왠지 모를 불안감은 없는지도.

 

제조사(삼성전자, LG전자, 팬택 등)가 이통사(SKT, KT, LGT) 밑에 있는 건 손님이 왕이기 때문이야. 물론 제조사들도 직접 사용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하기는 해. 어찌 보면 취향이 상극인 두 손님을 모신 형국이랄까? 넓은 의미에서 삼성, LG도 외주야. 제조사가 이런 폰 만들었으니 팔아달라고 하거나, 이통사가 이러이러한 폰 팔겠으니 만들어달라고 하면 제조사는 폰을 만들고, 이통사는 가격 지불하고, 이통사는 그걸 다시 대리점에 뿌려 색다른(?)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파는 식이지.

 

공짜폰이란 게 그래서 있을 수 있는거야. 폰이란 게 아무리 싸게 만든다고 해도, 어느 정도 가격은 하게 되어 있는데, 이통사에서는 어차피 안 팔릴 물건 떨이하는 셈치고(처음부터 공짜폰으로 기획된 폰도 있음), 가입자 늘여 통화요금으로 충당한단 생각에 공짜폰도 내놓고 보조금도 대주고 하는 거지. 제조사로부터는 제품제조원가에 얼마간의 이윤 얹어서 주고. 싸게. (여기서 오가는 가격은 며느리도 몰라)

 

제조사가 소비자와 이통사 두 고객을 모시고는 있지만, 아무래도 직접적인 고객인 이통사가 더 신경 쓰이게 마련이야. 브라만계급을 알현하려면 그 이하의 계급은 정문에서 무릎으로 기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농담이 진담처럼 퍼져있지. 어쨌거나 이런 계급구조 때문에 다운스펙(본래 만든 제품에서 부품이나 기능을 적출하여 더 질 떨어지는 제품을 내놓는 것) 문제도 나오게 돼. 휴대폰에서 제일 좋은 명당자리를 데이터통신버튼에게 내주는 건 사실 일도 아니지.

 

 

멜론이니 도시락이니 하는 이통사에서 영업하는 음원다운로드 사이트의 밥줄과 관계있다고 해서, 지금은 기능 탑재가 일도 아닌 게 되어버린 MP3파일 재생기능을 날려버린다던가, 데이터통신사용을 유도하기 위해서 와이파이(유선인터넷에 무선공유기 꽂아서 일정 반경내에서 인터넷하는 것)를 날려버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수출품에는 다 들어가 있는 기능이 국내에서만 출시되면 한참 맛이 가서 나오는 일이 아주 일상화 되어 버렸어. 이통사 밥줄과 관계있는 건 무리해서 하거나, 무리해서 하지 않거나. 소비자가 선호하는 물건이 아닌 이통사의 욕망이 전사된 제품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구조인 거지.

 

만약 브라만계급의 구성원들(SKT, KT, LGT)이 무한자유경쟁체제하에 있었다면 아랫 것들이 좀 더 개길 수 있는 여지, 소비자들의 요구가 좀 더 유연하게 소통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그냥 카르텔이야. 물론 카르텔은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로 규제가 되지. 하지만 세상일이 법대로 돌아가지는 않잖아. 특히나 대기업한테는. 브라만계급에 속한 기업들은 다른 계급구성원과 경쟁해서 앞서 가는 것보다 자신들의 계급적 지위를 유지하는 게 훨씬 이익이야.

 

독과점적 지위에 있는 기업들은 단지 그 위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독과점을 행할 수 밖에 없어. 개별 기업은 그저 각각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인데, 그게 그냥 독과점인 거지. 자리가 사람을 만든 다잖아. 몇 년전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요금 비싸다고 소비자들의 원성이 자자했었어. 항상 넘버쓰리를 유지하던 LGT라면 문자메시지 요금을 무료로 하는 것도 괜찮은 프로모션이였지. 중고생들은 싹 쓸어담을 수 있었을 걸.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카르텔이니까. 모여서 회의한 적 없다. 합의한 계약서 같은 거 없다. 그런 건 이유가 안 되지. 눈빛만으로도 카르텔은 가능하니까.

 

모바일시장의 신분제와 독과점이 가능했던 건, 전파가 유한재이기 때문이야. 음성이나 데이터신호를 주고 받게 해주는 전파는 일정한 주파수 대역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데 전화 잘 터지는 주파수 대역은 정해져있거든. 예전에는 800MHz 대역만 사용했었어. 그 주파수 대역에서는 전파가 멀리 뻗어나가고 굴절도 잘 된다더라고. 그러다가 나중에 1.8GHz 대역에서도 이동통신을 할 수 있는 기술이 나왔고, 그게 원샷018, 016프리텔 하던 시절의 PCS야.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
초창기 PCS폰 걸리버 광고

 

800MHz 대역에서 최초로 이동통신서비스를 한 곳은 한국통신(현 KT)이란 공기업의 자회사인 한국이동통신이라는 곳 이였어. 휴대폰이 허벅지만 하던 시절이지. 지금은 100만원짜리 폰 나온다고 하면 뉴스거리지만, 그 때는 그때 돈으로도 폰 값이 300만원이 넘었어. 지금 돈으로 치면 한 1,000만원 할라나? 그렇게 한국이동통신만 있다가 노태우 정권 때 경쟁체제를 만든다며 제2이동통신사업을 추진하게 돼.

 

이 때 선경(SK), 코오롱, 포철(신세기통신)이 뽑혔는데, 타이밍 절묘하게도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이 최태원(현 SK회장)에게 시집을 갔네. 딱 보기에도 상황이 애매모호하게 돌아가니 언론도 그렇고 국민들도 다들 의심을 할 수 밖에 없었지. 재벌가에 딸내미 시집보내고 사업자 선정해준 거 아니냐고. 워낙 비난여론이 들끓으니까 SK는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포기했어. 노태우정권 말기에 레임덕이 심했고, 3당야합으로 김영삼이 다음 대통령 다 된 것 마냥 거들먹거릴 시기였지. 코오롱도 나중에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 제대로 평가받고 사업하겠다며 사업권을 반납했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여기저기 다른 나라에서 1.8GHz 주파수 대역 쓰는 PCS라는 게 나오기 시작하니까, 김영삼 정권은 신세기통신 외에 800MHz대역의 신규사업자를 뽑지 않고, 이번엔 PCS사업자를 선정하게 돼. 아까 말했다시피, 주파수라는 게 쓸 만한 대역은 한정되어 있는 유한재니까 개나 소나 그 사업을 할 수는 없는 거고, 일단 사업자가 되기만 하면 돈벌이는 확실할 것이고 하니 제2이동통신사업자선정, PCS사업자선정을 두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도 했지.

 

다들  PCS사업자 선정에 관심이 쏠려있는 사이 SK는 여론의 뒤통수를 과감히 후려치고 더 큰 걸 먹게 돼. 민영화된 한국이동통신을 먹어버린거야. 이걸 두고도 주식을 싸게 샀네 어쨌네 여태껏 말들이 많은데, 확실한 건 그 정도 사업권이 오가는 거라면 정치권과의 꿍짝은 당연히 맞아야 했다는 거지. (오랜만이다. 정경유착)

 

이후 SK는 신세기통신도 마저 잡숫고. 800MHz를 홀로 다 쳐드시게 되었어. PCS 사업자로는 한국통신프리텔(016), 한솔PCS(018), LG텔레콤(019)이 선정되었고 한국통신프리텔은 KTF로 사명이 바뀌었다가 나중에 한솔PCS를 먹었고 최근에 KT랑 합쳐지게 되었어. 그래서 현재의 SKT, KT, LGT가 된 거야.

 



노태우 전대통령의 딸 노소영씨 (좌측)
이름이 비슷하다고 우측과 헷갈리면 안된다.

 

어쨌거나 이런 식의 구조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다면 아이폰은 영원히 출시되지 않았을 거야. 폰 팔아서 먹고 사는 제조사들이야 아이폰이 팔리는 만큼 자기들 물건 안 팔리게 되니까 당연히 싫어할 것이고. 문제는 이통사들인데, 얘네가 좀 복잡해.

 

이통사는 그동안 이통사-제조사간의 계급차를 십분활용해서 자기들 생각대로 폰의 사양과 규격을 자기들에게 최대한 이익이 남게끔 컨트롤해왔었거든. 그런데 아이폰은 그딴 거 안 통하잖아. 영국에서 온 남작이 인도에 가서 크샤트리아가 되겠냐고. 아이폰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폰으로 데이터통신하면 패가망신하는 걸로 생각할 만큼 때려 매기던 데이터통신과금체계도 무너질 것이고, 멜론이니 도시락이니 하는 음원사이트도 이용안할 것이고, 와이파이로 무선통신에 공짜개념이 전파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고. 이 모든 걸 감수하고 아이폰을 허용하면 문제는 아이폰에만 그치지 않아. 이통사 입장에서는 제조사와의 신분체계가 무너지는 게 더 큰 문제인 거지.

 

삼성, LG도 아이폰만 폰이냐 하며 자기들 폰에 와이파이 달고 음악, 동영상 편하게 쓰게 하겠다고 하면 그걸 어찌 막겠어. 위피도 폐지된 마당에 네이트버튼 안 달겠다고 하면 무슨 할 말이 있겠냐고. 막 아이폰 나온다고 했을 때 삼성, LG에서는 걱정된다 하면서도 요건 내심 반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하더라고. 당장 아이폰 때문에 입을 손해는 걱정이겠지만, 그동안 이통사 정문을 무릎으로 기어가며 당했던 설움이 쬐끔은 북받쳐 오르진 않았을까 싶네.

 


노키아의 한국 재진출 야심작 내비게이터폰
내비게이터폰인데 위치정보법에 걸려 내비게이션이 안 된다.
단군이래 최대 안습폰

 

위피라는 표면적인 이유의 밑바닥에는 이런 식의 카스트제도와 카르텔이 있었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 정통부가 날아가면서 위피는 사실상 정부의 손도 떠나게 돼. 정권 초기에 위피를 재단으로 만들어야 한다느니 하는 이야기도 있다가 그것도 다 흐지부지 된 채로 방치되어 버린 거지.

 

위피라는 플랫폼 표준을 정하기 위한 포럼이 명목상이나마 존재했으니 그 구성원인 통신사와 제조사가 의욕했다면, 그리고 정부를 조금이라도 푸시했다면 위피 없애는 건 일도 아니였지. 하지만 방치가 이익인데 뭐하러 긁어부스럼을 만들겠어. 여론의 압박 때문인지, 이통사 군기잡기인지는 몰라도 (난 후자쪽이라고 봐) 그렇게 질질 끌다 결국 폐지되게 된 거지.

 

행정법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질문 중에 이런 게 있었어. "대한민국 국민들은 건축의 자유가 있을까 없을까?" 한창 멍 때리던 나는 다른 학생들의 대답을 듣고 퍼뜩 정신이 들었어. "없습니다." 어라? 뭔가 이상했어. 건축의 자유라는 걸 들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인데 없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하다 싶었던 거지. 하지만 없다가 정답이였어. 롯데가 아무리 땅 있고 돈 있어도 잠실에 백 몇층 짜리 빌딩을 지을 자유가 없으니까, 이명박이 하례와 같은 성은을 내려 주기 전까지 못 짓고 있었던 건데도 막상 그렇게 표현하니까 되게 어색하더라고.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기술있고 돈 있다고 해서 아무 주파수나 잡아다가 이동통신사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이통사가 활개치고 다니는 건 결국엔 정부의 허가라는 혜택을 입어서 그런 거잖아. 그 혜택 좀 입어보겠다고 박터지게 제2이동통신사업, PCS사업에 선정될라고 했었던 거고. 그게 국가적으로, 그리고 국민들에게 이익이 되기를 바라지도 않아. 공기업도 아닌 마당에 이통사들도 적당히 어느 정도는 벌어먹어야지.

 

그런데 그게 도를 넘어서, 이미 시설투자비는 다 뽕을 뽑아놓고도, 세계에서 가장 비싼 통화료를 받아쳐먹고, 뭐 하나 잘못 다운받으면 고지서에 수십만원씩 찍히는 데이터통화료까지 받아쳐먹어가며 국민들 등골 다 빼먹고. 그 돈으로 보너스잔치에 배당잔치를 벌이기 바쁜 이통사들을 그냥 내버려두는게 맞냐는거야. 그건 시장경제고 나발이고 없는거야. 시장경제면 소비자의 외면을 받아서 퇴출될 수도 있어야하고, 다른 사람이 새로이 사업진출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건데. 이건 그냥 특혜받아 하는 사업인거고, 시장우위의 지위를 활용하고, 독과점까지 형성해서 그럴거면 국민들이 굳이 걔들에게 그 지위를 보장해줄 이유도 하등 없는 거거든.

 

국내산업보호? 이통시장은 무역거래도 제대로 안 돼. 통신시설 없는 나라에 설비해주고 돈 받을 수는 있겠지만, 이동통신사업 자체를 독자적으로 꾸려나가기는 어려워. SKT, KT, LGT말고 AT&T(미국통신사)도 국내에서 이통사업하게 해 줄 수는 없는 것처럼 다른 나라도 다 마찬가지지.

 

어쨌거나 이 구조를 깰 수 있는 주체는 정부 뿐이야. 정부가 준 거니까 정부가 뺏을 수도 있는거고 그런 지위를 가진 당사자만이 통제가 가능하니까. 솔직히 난 이 역할을 이명박 정부에게 기대하긴 어렵다고 봤어.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IT정책이 어떤지 보아왔으니까. 그래서 아이폰도 당분간은 힘들겠거니 했고.

 



무념무상. 이명박정부 전반의 IT정책 컨셉

 

아이폰이 출시되게 된 건, ‘정부의 의지’라고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최근에 발표된 ‘통신요금 인하방안’에 정부의 의지가 개입된 것은 분명해. 이명박이 공약했던 통신요금 20% 감축에는 못 미치고, 이것 빼고 저것 빼면 결국 이통사들의 이익은 그대로 보전되는,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조삼모사식 처방이라고 밖에는 해석이 안 되지만 어쨌거나 변화는 변화인거지. 지금처럼 마냥 천문학적인 이익을 거둬들일 수 있도록, 이동통신시장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나길 바라는 이통사들의 바램에 반한 것도 사실이지.

 

앞에서 이야기한 PCS사업자 선정할 때, 정보통신부 장관이 이석채라는 사람이야. PCS사업자선정 당시 삼성과 현대도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참여했었는데, 원래는 이 컨소시엄이 선정되는 거였음에도, 당시의 이석채 장관이 뜬금없이 채점방식을 바꿔버려서 결국 떨어지고, LG텔레콤이 선정되게 되었지. 결국 이석채 전 장관은 LG로부터 3,000만원의 뇌물을 받고,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게 되고, 이 사건은 소위 PCS비리로 알려지게 되었어.

 

이 재판은 무려 5년을 끌다가 2003년에 마무리 되었는데, 증거가 없다며 무죄판결이 났지. 무죄판결은 났지만 이 사람이 갈 곳은 없었어.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 시절 끝발 날리던 사람을, 무죄판결은 났지만 비리의혹을 받았던 사람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데려다 쓸 이유는 없었지. 그래도 이 사람 그 상황에서 다시 재기를 도모했어. 인생 한방 줄타기 아니겠어?

 

이명박 대통령을 부여잡고 KT, KTF가 통합된 KT사장으로 전격 취임해버린거야. 이 사람 취임시킬라고 KT는 회사정관까지 바꿨다고 하더군. 여튼 이 사람이 취임하고 KT는 올레KT로 변신하게 돼. 내부감찰로 기존 임원들 모가지부터 치고, 주요 요직에 MB맨들 갖다 박는 걸 시작으로 공기업 철밥통 마인드가 여전하던 KT는 대대적인 변화를 하게 되었지. 이건 현재진행형이야.

 



이석채의 등장과 KT의 탄생

 

하지만, 내가 봐도 KT는 그렇게 상황이 좋은 건 아니야. KT의 주된 밥줄인 유선전화는 인터넷전화로 급격히 빠져나가고 있고, 이동통신쪽도 SKT에 밀려 2위 신세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아 보여. TV틀면 밤낮없이 쿡하고 쇼하고 있지만, 기존 임원들 모가지치고, 낙하산부대를 융단폭격하고, 자기 자신도 썩 개운치 못하게 사장이 된 원죄를 씻을 라면 안팎에서 보기에도 ‘올레!’ 소리 나오게 매출도 뛰고 해야 하는데, 많이 뛰긴 했어도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야. 이석채 사장 입장에서는 승부수를 띄워야 할 타이밍인 게지. 화끈한 게 뭐 있겠어. 쿡으로 인터넷전화랑 IPTV 싹쓸이 하는 거, 그리고 이통시장에서 만년 2인자 벗어나는 거.

 

아이폰 출시가 확정되기 직전, 며칠 전이였을거야. 방통위에서 ‘아이폰이 위치정보법에 저촉된다.’는 소리가 삐져나왔지. 아이폰 출시를 고대하던 소비자들은 며칠간 또다시 광분하게 돼. 하지만 이게 뭐 하루이틀 일도 아닌 상황이니, 겉으로는 광분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아이고, 또 한참 시간 잡아먹겠네.’ 하며 번뇌를 지우려 했지.

 

그런데 왠 걸. 방통위에서 ‘아이폰은 괜찮다.’며, 들어와도 된다고 확정지어버려. 아,,, 그래. 나도 잊고 있었어. 이명박 정부와 방통위의 무념무상한 IT정책 컨셉에만 주목했지, 이석채는 잊고 있었던 게야. 그도 MB맨이였던 게지. 미디어법도 날치기할 만큼 두툼한 낯짝을 보유한 이명박 정부와 방통위인데, 네티즌들이 광분한다고, 투표도 안하는 젊은 애들 난리 피운다고 신경이나 썼겠어? 광화문을 수십만 촛불이 뒤덮어도 한 달을 버텼는데, 그렇게 며칠 만에 낯부끄럽게도 신속하게 입장을 번복했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거야.

 

이석채가 KT를 온통 들쑤셔놓지 않았다면, 그리고 이것저것 승부수란 승부수는 다 띄워보려 하지 않았다면, KT는 2인자 자리에서 맨날 하던 거나 하면서 카스트와 카르텔을 유지하는데 일조 했을 것이고, 아이폰은 계속 미출시 상태를 유지했거나, 출시는 지금보다는 훨씬 먼 훗날의 이야기가 되었을 거야.

 

이 과정 전체를 두고, MB정부가 정말 국민들을 많이 걱정해서, 이석채라는 사람이 참 탁월해서 아이폰이 출시되게 된 거라고 보는 건 완전 오버야. 통신비인하방안에서 보듯, MB정부는 공약사항을 지키는 ‘척’에 전심할 뿐 이였지, ‘무념무상’의 기존 컨셉은 여전히 공고히 유지되고 있어.

 

아무리 IT업계에서 피눈물을 흘리며 매달려도, 있는 거 없는 거 다 짜내서 4대강에 들이 부을 거라는 것도 확실하고. 대박 많이 팔려서 SKT를 꺾는 기폭제가 되어 줄수도 있겠구나 싶은 기대감이 들게 할만큼 아이폰이 인기있는 디바이스로 돌출된 상황과 맞물려서 현재의 그 단단하던 시스템에 약간의 균열이 일어난 정도로 보는 게 맞아. 아이폰이 나옴으로 해서 무선인터넷 요금이 싸진 다거나, 스펙다운 같은 게 적어지거나 하는 정도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겠지만, 현재의 체제가 홀랑 뒤집어 질 것처럼 흥분하는 것도 역시나 낚이는 거야.

 



아이폰 나와서 좋아?

 

통신은 유한재이면서 공공재적이야. 그게 국유화나 공기업화를 의미하는 건 아니야. 경쟁이 활발히 일어나고, 요금이 적정수준으로 책정될 기반이 되고, 정부가 통신의 그런 성격을 이해하고 시장을 컨트롤해서 그 성격을 유지할 수 있게 서포트해줄 수 만 있으면 사기업이 통신시장을 나눠 갖던 뭐하던 뭐 어떻겠어.

 

어쨌거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데 공간적, 금전적 장벽은 없어야 하지 않겠어? 서로를 만나지 못하고 소통할 수 없어서 제각각 고립되어 있다면 그건 군집이지 사회가 아니잖아. 사회가 아닌데, 정치가 어디 있겠고 민주주의가 어디 있겠어. 군부독재는 미련하게도 정치와 민주주의를 억눌렀지만, 업그레이드된 독재는 소통로를 끊고 사회를 해체시켜. 아이폰 나온다고 좋아하고 총알 장전만 하고 있는 지금 우리 모습이란 게, 사기도박에 전 재산 다 날리고, 개평 몇 푼에 감지덕지 하고 있는 꼴은 아닐까?

 

영상편집 및 모바일 및 PC수리 및 네트웍설비 및 출세목적 총수님 커피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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