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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1.목요일


아홉친구


 


공한증을 드디어 풀었다는 기쁨에 중국은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중국의 유명한 해설가 황지엔샹(黃健翔)은 이 기쁨을 시기에 맞추어 짧고 굵게 표현했다. “이제 새해가 밝는구나!”


 


수많은 분석과 평가가 나올줄로 믿지만, 필자의 관심은 그게 아니다.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에 32년간 이기지 못했다는 거, 그게 진짜 실력 차이 때문이라곤 다들 생각 안했지 않나. 필자가 작년에 쓴 중국 축구 기자 이야기에서도 나왔었고 말이다. 더군다나 우리 대표팀 실력이 2002년을 기점으로 내려가면 내려갔지, 올라가진 않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고.


 


축구 자체의 분석, 허정무에 대한 재고, 중국 찌질이 네티즌들의 잡소리… 이런 건 필자의 관심 분야가 아니다. 다른 분들이 더 잘 아시거나, 혹은 볼 필요도 없는 것들이다.


 


필자의 관심은 여기서 출발한다. 네티즌들 사이에선 ‘짱깨메시’로 신격화되고 있는, 수비수 세 명을 제껴버린 덩줘샹(鄧卓翔)의 세 번째 골 장면.


 



앞으로도 덩줘샹(鄧卓翔)이란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중국 선수의 재간에 많이들 놀랐겠지만, 이미 리웨이펑의 경우에서 보듯, 중국 선수들의 기량은 우리보다 처지지 않는다. 국가대표쯤 되면 저 정도 실력 보여주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드는 건, 무엇이 이렇게 중국 팀의 정신상태를 바꾸어 놓았느냐다. 이 문제는 이미 작년의 중국 축구 기자 이야기 에서 꺼낸 적이 있다. 중요한 상황에서 위축되어 버리는 중국인 전반의 심리적 문제가 공한증의 본질이라고. 이 지적을 맞다고 인정한다면, 2월 10일 도쿄에서 중국 애들이 날라다닌 건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가.


 


동아시아대회에 임하는 마음가짐에서 중국이 남달랐다는 지적도 있다. 그건 맞다. 홍콩은 워낙에 전력이 딸리니까 논외로 치고, 일본과 한국은 월드컵 엔트리 확정과 경기력 점검 차원에서 이번 대회에 임했다고 볼 수 있었다. 꼭 이겨야 한다는 것보다도, 국내파끼리의 포지션 경쟁 차원에서 자기 기량을 보여줘야 하는 시험무대의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 않는 중국은, 월드컵 때문에 상당 기간 국제 축구 대회가 없는 관계로, 이번 동아시아대회가 아니면 체면을 세울 기회가 없었다. 한국과 일본을 이겨서 승전보를 날려야 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뭐 그래서 중국 선수들이 날라다녔다… 이것만으론 허전하지 않나.


 


필자가 생각하는, 중국 선수들이 초사이어인이 된 진짜 이유는, 중국 축구계의 내부문제다. 중국 축구의 부패 문제라는 오랜 고름이 터졌고, 이것이 지금 중국 축구인들을 거의 사지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희안하게도, 이번 동아시아대회는 중국 관영 CCTV에서 중계하지 않는다. 국가대표 경기를 관영 방송사가 하지 않는다? 보도에 따르면, 2월 6일에 방송될 예정으로 편성표에도 들어가 있던 중국 대 일본 중계가 갑자기 취소되었다고 한다. CCTV는 이미 판권을 구입한 상태였지만, 공식적으로 이번 대회 중계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지역에 따라서는 TV로 경기를 볼 수 없었고(일부 지방 방송사에서 중계했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시청해야만 했다. 2월 11일 자정에 본 자료에 따르면 인터넷 방송으로 한중전을 본 사람들이 37.7%에 달한다. (☞관련기사)


 


마침 중국이 한국에 이겼으니, 관심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상황이지만CCTV는 축구 방송을 재개할 의사가 없음을 다시 밝혔다. 도박 수사가 마무리되기까지는. (☞관련기사)


 


여기서 말하는 도박 수사는, 작년 11월 심양에서 잡힌 뇌물 공여 일당을 시작으로, 지난 1월 중국축구협회 최고 실세인 부주석 난용(南勇)이 체포된 일련의 수사를 말한다. 체포된 사람은 난용 이외에도 또다른 부주석 양이민(楊一民), 전 국가대표 감독 쟈셔우췐, 여자축구부 주임 장지엔챵 등의 고위직을 포함해, 프로팀 단장 및 코치, 선수 등 축구계 전반에 이르고 있다. 수사는 아직 종결되지 않아서 용의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부패 혐의에 연루되어 체포된 축구인들


 


CCTV의 축구 중계 중지는 동아시아대회에 한정한 게 아니라 프로리그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이것이 누구의 결정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설에 의하면 후진타오 국가 주석이 축구 부패 문제를 거론하며 화를 냈다고 하는 말도 있다. 어쨌든 중국 중앙 지도부가 이번에 확실하게 칼을 빼들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고, 축구 중계 금지는 그 의지의 표현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를 계기로 중국 언론에서는 그간 다들 쉬쉬했던 중국 축구의 부패 실상을 전부 까발리고 있는 중이다. 다른 나라 문제일지도 모르나, 필자는 작년 만났던 그 중국기자가 조심스럽게 “한국에서도 심판 휘슬이 공정하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걸 기억하고 있다. 필자는 축구 문외한이라 그게 사실인지 모르겠다. 필자가 할 수 있는 건, 시스템상 차이가 있겠지만 중국 축구계가 어떻게 부패해 있는지를 보여주어 독자들의 판단을 돕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령 한 매체에서는(그 중국 기자가 속한 매체였다) ▲국가대표 되는데 10만 위안 ▲중초공사의 스폰서비 떼어먹기 ▲축구협회 주관으로 갑A팀 모두를 동계훈련에 보냄 ▲청소년팀 성적을 위해 선수 연령 낮추기 ▲리그 선수들의 공식 체력측정(이런 걸 왜 하냐?) 명분으로 뇌물 수뢰 ▲심판 비용만 시합당 3만 위안 ▲2류 국가대표와 허접 시합, 전지훈련시 고액의 비용 지불 등의 내역을 세세히 지적하고 있었다.
(☞ 원문 
아래 도표들 포함)


 


하나하나 설명하기는 어려우므로, 필자가 몇 시간 동안 고쳐 만든 중국 축구 조직도를 통해 위 사항을 이해하시기 바란다.


 



클릭해서 선명한 그림을 본다는 건 딴지인의 상식


 


도표를 보면, 이번에 체포된 난용, 양이민은 축구협회를 통해 뒷돈을 챙길 수 있는 노른자위 자리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서 ‘중국 축구선수의 일생’을 구성해본 그림도 있다. 


 



 


조금 엇나간 얘기 하나. 난용은 국가대표 단장도 역임한 바 있는 인물이어서 우리 축구계에도 제법 알려진 인사다. 그가 2006년 국가대표 단장을 맡았을 때 대표에서 내쳐버린 인물이 바로 리웨이펑이었다. 그리고 우리로 치면 축협 사무총장쯤 되는 자리를 난용 부주석이 겸직하면서 중국 축구계 최고실세로 올라선 게 2009년 1월이다. 바로 그 1월에 리웨이펑은 중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K리그에 입성하며 중국을 떠났다. 그 후 리웨이펑의 기량이 화제에 오르자 중국 국가대표로 다시 불러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으나, 정작 본인은 심드렁해 했고, 새로 대표팀 감독이 된 까오홍버(高洪波)도 그를 부르지 않았다. 이제는 그 이유를 알만 하다.


 


아무튼, 중국 축구계가 부패 수사로 완전히 판이 뒤엎어지면서, 어쩌면 중국 축구의 본실력이 제대로 발휘된 것인지도 모른다. 학연과 지연, 뇌물과 편애가 개입되지 않은 중국 축구 대표팀의 선발은 이번이 사상 최초일 수 있다.


 


또한 최악의 국내 여론이 형성된 상황에서, 만약 이번 동아시아대회에서 죽을 쑤고 돌아갔다간 무슨 꼴을 당할지 모르는, 그야말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어야 하는 상황을 중국 대표팀은 마주하고 있었다. 그 정점이 하필 2월 6일, CCTV의 축구 중계 포기였다. 이건 축구 문제에 중앙 지도부가 개입하고 있다는 아주 명백한 증거였으니까 말이다. 2월 6일 일본전을 마친 후 선수들은 이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고, 그 다음 경기는 2월 10일 한국전이었다.


 


마지막으로 추측이지만, 이미 몇몇 선수들이 체포된 상황이니까, 국가대표팀 스태프와 선수 중에도 밤잠을 설친 인물이 있을 수 있다. 팀 전체도 그렇겠지만, 특히나 그 선수 입장에선 실력 발휘가 유일한 정상참작의 기회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안드로메다에서 지구의 평화를 위해 뛰느라 영원히 만날 수 없다는 일본 대표팀 1군 대신에, 다시는 못볼 중국 1군의 경기력을 경험한 것일 수도 있다.


 


필자는 중국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이 그들의 실력이라고 믿는다. 최대의 위기 상황에서 보여준 진짜 실력, 그런 거. 마치 2002년 우리 대표팀의 실력이 진짜였듯이 말이다. 하지만 문화가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어쩌면 얼마 안가 수사가 흐지부지될지 모르고, 시간이 흐르면 고약한 전통인 뇌물이 다시 살아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또다시 심약하고 거친 파울만 일삼는 중국 대표를 만나게 될 것이고.


 


중국 축구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32년간 이겨줬으면, 이럴 땐 축하와 격려도 좀 해주자.



삼대빵은 조낸 속쓰리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씨바 당장 우린 어쩌냐… 정말 허정무 이동국은 갈아야 되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