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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화요일


김지룡


 


언젠가 딸아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아빠, 계백 장군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가족을 모두 죽이고 나갔대. 아빠라면 어떻게 할 거야?”


“아빠라면 가족들 데리고 도망갔을 거야.”


“아빠는 나라보다 가족이 더 소중해?”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 하지만 아빠는 의자왕 같은 사람에게는 충성하고 싶지 않고, 무엇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에 5천 명이나 희생시킨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단다. 싸움을 하려면 이기는 싸움을 해야지.”


 



 


나라든 가족이든 남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지킬 ‘가치’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남자들은 대의나 명분에 약하다. “선비는 자기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건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선비는 ‘진정한 남자’ ‘남자다운 남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여성들은 이 말에 별로 공감하지 않을 것이다. “도대체 왜?”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며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대개 남자들이다. 남자의 습성이나 본능이기 때문이다.


 


‘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 그래서 ‘목숨을 걸고 충성을 다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선배와 상사와 보스와 사장을 만났고, 회사와 조직에 몸담은 적도 있지만,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목숨을 걸 대상을 못 만났기 때문인지 항상 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되면서 목숨을 걸고 싶은 ‘가치’를 발견했다. 바로 가족이다. 가족을 위해 아빠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가족이야말로 목숨을 걸기에 딱 좋은 대상이라는 말이다. 목숨을 걸 ‘가치’를 발견한 뒤로 허전함이 없어지고 사는 것이 무척 재미있어졌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남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빠가 된 것이 너무 행복한 것은 남자는 남자다울 때 가장 멋지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 전체적으로 남자의 위상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남자답다’는 말이 낡고 고루하고, 때로는 폭력적이고 저질이라는 뉘앙스로도 들린다. 그간 남자답다는 것을 잘못 이해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대개 무법자 기질이 있다. 그래서 보안관이 주인공인 영화보다 무법자가 주인공이 영화가 훨씬 더 많다. 그러다보니 깡패나 무법자 기질을 ‘남자답다’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주먹을 쉽게 휘두르며 남을 공격하는 것은 남자다운 것이 아니다. 단지 인간성이 더러운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모하게 일을 벌이는 것도 남자다운 것이 아니다. 단지 멍청한 것이다. 혈기가 넘쳐 곧잘 ‘울컥’하는 것도 남자다운 것이 아니다. 인격이 덜 성숙한 것이다.


 


남자도 인간이다. ‘남자답다’는 것은 먼저 ‘인간답다’는 것, 즉 ‘사람이 되었다’는 기반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에 대해 기본적인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그 위에 자기 힘으로 강인하게 세상과 맞서 싸우고, 어려움에 직면해도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대범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관계를 맺는 것. 이런 것이 ‘남자답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이런 덕목이 남자만의 것이 아니다. 여자에게도 요구되고 있다. 실제로 그런 여자들도 많고, 내 자신도 딸아이를 그런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정한 남자가 되려면 여자에게는 요구되지 않는 두 가지 덕목을 더 갖추어야 한다. 하나는 ‘약간’의 돈키호테 기질을 갖추는 것이다. 여자는 신중하고 현명할수록 좋지만, 남자는 때때로 저돌적일 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가치’있는 것을 위해 목숨을 걸 줄 아는 것이다.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키고, 필요할 때는 목숨을 걸고 싸울 줄 아는 것이다. 남자에게는 누군가에게 보호받으며 살아남는 것보다, 누군가를 지키다가 죽는 것이 더 멋진 삶이라고 생각한다.


 


13년 전 3억 원짜리 종신보험을 들었다. 내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은 이 말 한마디였다.


자살해도 돈이 나옵니다.


실제로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때의 일을 되새길 때마다 기분이 무척 좋아진다. 내가 가족을 위해 무척 멋진 일을 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면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남자들이 나온다. 과연 내가 현실에서 그럴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내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연예 시절 ‘내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라는 물음에 가능성은 50% 이하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아이를 낳고 난 뒤에야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는 아빠보다 엄마가 더 필요하니까.


 


아빠가 된다는 것은 목숨을 걸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일이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멋진 남자로 다시 태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격정적이지 않다. 내가 가족을 지키는 멋진 아빠라는 즐거움은 일상에서 발견하고 느껴야 한다.


 


음식점에서 잘 익은 고기를 아이들 입에 넣어주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굶더라도 가족은 먹여야 한다.” 밤에 문단속을 하면서 창문에 손이 끼어 피가 날 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피를 흘리더라도 가족은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


 


자기 최면을 걸면 일상의 작은 일도 영화 속의 비장한 장면이 되고, 나는 비장함을 수행하는 멋진 아빠, 즉 멋진 남자가 된다.


 


P.S. 딴지일보에 가입하면서 불신검문의 “외딴 섬에 고립되었을 때, 같이 하룻밤을 보내고 싶은 상대”에 ‘남자’를 적어놓았다. 그것이 내 성정체성이냐고 묻는 사람이 간혹 있다.


 


‘남자’를 적은 이유는 “여자와 함께 외딴 섬에 고립 된다면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거나 미적미적 미룰 것 같아서”다. 남자와 단 둘이 있게 된다면 당장 팔 걷어붙이고 뗏목 만들 나무 구하러 다닐 것 같다. 애가 둘인데 새살림 차릴 궁리하지 말고, 빨리 탈출해서 가족의 품으로 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