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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9.금요일


허기자


 





지난 2월 10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홈페이지(www.kofic.or.kr)를 통해 ‘2010년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허리우드극장 제3관, 즉 서울아트시네마를 수행할 운영자를 공모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미 2010년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을 둘러싸고 미디액트와 인디스페이스가 그간의 업적을 부정당하며 ‘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 ‘시민영상문화기구’라는 유령 단체에게 운영권을 강제로 넘겨준 상황에서 영진위의 다음 ‘표적’이 서울아트시네마가 될 것이란 사실은 익히 예상된 바였다.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를 공모할 자격을 갖나?


 




그럼에도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가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소유권을 갖지 못한 채 마치 소유주인양 공모를 밀어붙이는 몰상식 때문이다. 서울아트시네마의 1년 예산비 중 30% 정도를 ‘지정위탁’의 형태로 지원하는 영진위가 과연 공모제를 주체할만한 적법한 자격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 서울아트시네마는 교육적?문화적 목적으로 영화를 상영하는 서울 유일의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공공재의 성격이 강한 공간이지만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를 있게 하고 운영한 것은 오로지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모인 순수 민간인들의 노력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시작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디오테크라고 하는 시네클럽을 통해 극장에서 볼 수 없는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새로운 영화보기 모임 활동을 펼쳐왔다. 이것이 점차적으로 확대되고 전국 시네마테크 연합이라는 일종의 비디오테크 연합 활동이 시작됐다. 단순히 비디오를 통해 영화를 상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필름을 극장에서 상영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때마침 부산국제영화제가 새롭게 시작하면서 필름으로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을 엿보게 됐다.


 


2000년부터 소격동에 있는 아트선재센터의 지하에 있는 공간을 빌려 일주일 혹은 10일 정도의 회고전을 기획했다. 에릭 로메르, 루이스 부뉴엘, 프리츠 랑 등의 회고전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왔고 이런 활동들이 주축이 되어 제대로 된 전용관을 만들어 1년 내내 필름으로 고전영화를 상영해보자는 제안을 하게 됐다. 2002년 1월 비영리법인으로써 고전영화와 예술영화를 전문적으로 상영하는 것을 취지로 지역까지 포괄한 시네클럽들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를 발족했다. 그리고 그해 4월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5월에 서울 유일의 시네마테크 전용관인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을 하게 됐다


 


이후 처음 전용관을 마련했던 아트선재센터에서 재임대 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면서 서울아트시네마는 폐관 위기를 겪기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줬던 관객들과 영화인들은 서울의 시네마테크전용관이 계속 돼야한다는 취지를 모았고 결국 2005년 4월에 지금의 낙원상가 건물에 있는 구(舊)허리우드 극장으로 옮겨와 서울아트시네마의 전용관이 마련됐다.


 


그 과정에서 영진위는 단순히 보조자의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1억 5천만 원, 2006년부터 1억 7천만 원여 정도를 지원해온 것이 전부다. 서울아트시네마 측은 이를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의 가장 필수적인 공간 임대료에 써왔지 그 외 1년 예산의 70% 해당하는 프로그램 수급비용이나 행사 비용 등은 철저히 입장료 수익과 영화인들과 관객의 후원금으로 충당해왔다. 다시 말해,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은 중단할 수 있어도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단체는 되지 못한다. 영진위는 서울아트시네마를 공모할 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영진위는 왜 서울아트시네마를 못 괴롭혀서 안달인가?


 



영진위 조희문 위원장


 


영진위가 서울아트시네마의 공모제를 구체화한 건 이미 1년 전이었다. ‘2009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이던 2009년 2월 9일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 중단을 선언하며 대신 지원 사업에 대한 부분을 공모제로 전환하니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며 일방적으로 통보해온 것. 불행인지, 다행인지 결과적으로 공모제 시행은 1년 뒤인 2010년으로 연장됐고 지원금도 중단되지 않았지만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해 한국 영화계의 풀뿌리 산업이라 할 만한 독립영화 기구 전반에 대한 공모제 시행 및 압박이 동시에 진행됐던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일방적인 통보가 있었던 1년 전 그날, 독립영화계 역시 영진위로부터 날아든 비보로 망연자실했다. 한창 <워낭소리>가 폭발적인 인기를 모으며 독립영화 사상 유례없는 당시 40만 관객을 돌파하던 때, 독립영화의 배급을 지원하는 다양성영화 마케팅 지원 제도를 폐지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영화를 제작하고 개봉할 자금이 없어 집문서를 팔고 지인에게 돈을 꾸기 일쑤인 독립영화인들에게 영진위의 마케팅 지원 제도 폐지는 영화를 개봉하지 말라는 그야말로 독립영화의 사형선고였던 셈. <워낭소리>의 이충렬 감독을 비롯하여 독립영화 감독들은 곧바로 ‘독립영화가 살아야 한국영화가 삽니다.’라는 주제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영진위의 정책을 맹렬히 성토했다.


 


여기에는 이른바 영화를 단순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하는 천박한 자본주의가 바탕을 이루고 있다. 영화 한편을 두고 자동차 몇 대를 수출한 성과와 동일한 선상에서 비교하는 논리가 깔려있는 것이다. 이는 다양성영화 마케팅 지원 제도, 즉 독립영화 지원제도를 폐지하는 대신 ‘단편, 중편, 다큐멘터리 제작 지원’으로 돌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워낭소리>와 같이 소위 ‘대박’을 일으킬 수 있는 다큐멘터리에 선별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4기 영진위의 입장을 그대로 대변한다. 그들에겐 서울아트시네마처럼 철 지난 고전영화나 틀어대고 돈 되지 않는 예술영화나 상영하며 비영리를 내세우는 행태가 전혀 이해될 리 없음이 자명하다.


 


안 그래도, 4기 영진위의 첫 번째 수장이었던 강한섭 위원장에 이어 바통을 이어 받은 또 한 명의 ‘시장주의자’ 조희문 위원장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이 이해 안 된다고 말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지난 1월 15일,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했던 조희문 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DVD로 고전영화를 소장하거나 집에서도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 이 자리에 모인 관객들과 영화인들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말해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 또한 2월 5일에는 공모제에 반대하는 1,367명의 서명지를 전달하기 위해 영진위를 찾은 서울아트시네마 관객들에게 조희문 위원장은 ”공모제에 대한 이견이라면 이미 관객의 입장을 벗어난 것이므로 이 자리에서 듣지 않겠다.“며 관객의 기능을 축소하는 발언으로 구시대적 발상의 전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MB정권은 영화마저 ‘철거’하려드나?


 




미디액트부터 인디스페이스, 서울아트시네마까지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영진위의 다음 목표는 한국영화아카데미라고 한다!) 일련의 공모제를 두고 벌어지는 영진위의 태도는 흡사 시계를 과거로 돌린듯하다. 이미 수많은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 결과를 두고 부적격의 심사위원(독립영화나 영상미디어센터에 문외한인 인물), 불공정한 심사(1차 공모 결과에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던 단체가 2차에서 1위를 급부상), 부적절한 단체 선정(공모 접수 10일 전에 급조한 단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뤄지자 영진위는 단순히 ‘공정했다.’는 말만 되풀이 하며 모르쇠로 일관, 더욱 의혹을 키우고 있는 상황이다.


 


시네마테크전용관 공모제 시행 역시도 공모제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만큼 의문점 투성이다. 2월 16일 한국시네마테크 협의회(이하 ‘한시협’)는 ‘영화진흥위원회의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 공모'에 관한 공개질의’를 보도 자료를 통해 배포하며 영진위의 응답을 요청했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2002년 개관한 서울아트시네마는 한시협이 운영하는 시네마테크전용관이며, ‘서울아트시네마’는 해당구청에 한시협 대표자의 이름으로 <영화상영관등록>이 되어 있는 명칭입니다. 그런데 영진위는 ‘2010년 시네마테크전용관 지원사업 운영자 선정 공모’ 내용에서 사업명을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 운영 및 지역 네트워크 활동 지원 사업’으로 명기함으로써 시네마테크전용관사업 운영자가 그 사업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수행하도록 하겠다는 의도를 표명하였습니다. 이는 한시협이 ‘서울아트시네마’라는 상영관 명칭에 대해 가지고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부정경쟁방지및영업비밀보호에관한법률 상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영진위는 어떤 근거에서 ‘서울아트시네마 운영자’를 공모하는 것입니까?
 
2.
주택 임대차의 경우에도 본인이 이주할 곳의 계약 종료 시점이 언제인지 먼저 확인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한시협은 임대인으로부터 계약 해지를 통보받은 적도 없으며 한시협과 허리우드극장과의 계약기간이 2010년 3월 31일까지 남아 있는 상황에서 ‘운영약정기간을 2010년 3월 1일’로 명기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3.
영진위는 지난 2009년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 운영처 선정 시 ‘영화진흥위원회 예산회계규정 제82조(입찰자의 지명), 제83조(지명통지), 제63조(경쟁방법)에 의거, 지명경쟁입찰에 1개사만 등록할 시에는 자동유찰로서 재통보(공고)를 통한 입찰을 진행하여야 했으나 1개 등록사를 대상으로 적격 여부 심사를 진행한 점이 규정에 어긋남을 지적받은 바, 2009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 프로그램 및 마케팅 업무 운영처 선정의 공정성 제고를 위해 재공모’를 실시하겠다고 넥스트플러스 영화축제 관련단체들에 공지한 바 있습니다. ‘넥스트플러스 여름영화축제’ 보다 운영기간과 예산 면에서 규모가 큰 사업자를 선정함에 있어 ‘1개 단체 지원 시 적격여부 판단하여 선정할 수 있음’으로 공지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4.
마지막으로, 본 사업에 관한 공모제 전환 결정 및 공모 내용에 관하여 영진위 9인위원회의 의결을 거쳤는지 질의하며, 이미 위원회 의결을 거친 사항이라면 해당 안건이 논의된 회의차수 및 안건을 공개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영진위의 답변 여부와 상관없이 시네마테크전용관 공모제는 영상미디어센터 및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 선정과 마찬가지로 영진위의 집요하고도 일방적이며, 무엇보다 몰상식적인 사업 의지를 잘 보여준다. 이를 두고 ‘철거’라는 표현을 쓴다면 너무 과한 걸까. 나는 서울아트시네마(를 비롯해 미디액트, 인디스페이스)를 겨냥한 이번 사태가 다름 아닌 MB정부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개발논리가 빚은 참극이라고 생각한다. 절차상의 정당한 진행 과정을 고의로 무시하고 의견 조율에 대한 시간을 갖지도 않은 채 단순히 정부 기관이라는 이유만으로 들이미는 몰아붙이기 식 행정의 피해는 고스란히 영화계 기초 인프라의 파괴로 이어진다. 



 


서울아트시네마 공모제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일방적인 업무집행이 불러오는 것은 결국 영화생태계의 기초터전 파괴다. 겉으론 더 나은 환경을 정당성으로 내세우면서 결국엔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한 MB진영의 천박한 자본주의 논리는 비단 용산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대기업과 지배층의 천문학적 수익 창출을 위해 서민의 기본권이 박탈당한 용산 참사의 개발논리 구조는 보수주의 세력을 등에 업은 영진위가 관객의 볼 권리를 침해하는 구도 속에 고스란히 영화판에서 재현되고 있다.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번 공모제 사태의 해결을 위해 관객들이 직접 나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시네마테크, 관객이 공모한다!’는 표어를 걸고 십시일반 후원금을 모집하고 있는 것. (후원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이 주소를 방문해주세요. 링크) 이를 통해 당장 3월로 다가온 허리우드 극장 측과의 공간임대 계약을 연장해 급한 불을 끄고 관객의 후원으로 얻게 될 앞으로의 1년 동안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정책 당국자와의 협의를 통해 안정적인 공간 확보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아트시네마를 찾는 관객들의 헌신에도 아랑곳없이 영진위는 공모제를 못 박고 사업자 선정에 들어갔다. 그렇더라도 관객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강구해 서울아트시네마를 살릴 것이라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또한 많은 영화인들도 이에 동참하고 있고 또한 동참할 예정이다. 그럼 영진위(를 앞세운 MB정부)는 용산 참사 때 그랬던 것처럼 특공대와 물대포, 그리고 용역깡패까지 동원해 이들을 해산시키려나. 설마 영화계에까지? 그렇더라도 별로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않을 테니까. 바야흐로 영화판 곳곳에도 ‘철거주의’ 유령이 출몰하고 있다.


 



사진제공: 서울아트시네마,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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