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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MB 블루스

2010-02-11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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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화요일


필독


 


 


 


지난 5일 금요일 오후, 수뇌부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발신자는 한양대 안산캠퍼스 학생회 멤버. 캠퍼스에 MB가 떴고, 사복경찰이 함께 떴으며, 시위를 하던 학생들은 두들겨 맞았다는 제보였다.


 


본지는 불철주야 민족정론지의 소임을 다하고 있을 뿐 아니라 가카의 일거수일투족을 쫓는 사생팬의 역할도 소홀이 하지 않고 있는 바, 본 기자는 즉시 안산으로 출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본 기자, 가카의 발자국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캠퍼스의 죽돌이 죽순이인 학생회 멤버들도 경찰의 엄중한 물리적 감시에 의해 가카의 머리카락조차 구경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국 가카의 강림은 요즘 그가 각종 항문질환 치료에 적극 애용하시는 그것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다.


 



(http://media.daum.net/politics/president/view.html?cateid=100012&newsid=20100205162710748&p=yonhap)


 



황망히 도착한 한양대 안산캠퍼스. 방학이라 캠퍼스는 썰렁했고 가카의 방문에 맞춰 계획된 시위도 해산된 상태였다. 경찰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제보자의 안내를 받아 학생회 건물로 들어섰다. 그는 건물 앞의 승합차를 가리키며 조금 전 경찰들의 밥을 실어 나르는 데 저 차가 사용되었다고 말했다.



건물 5층에 있는 총학본부에 들어가자 오늘의 이너뷰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에게 맞았다는 피해 학생 중 하나. 바로 이너뷰를 시작했다.


 



필독(이하 필) : 먼저 자기소개 좀.


황민수(이하 황) : 28대 총학 집행위원장 황민수입니다.


 



 


필 : 지금 한 눈에 보기에도 상처가 있는데... 먼저 상황설명 좀 해주시죠. 맞은 상황 말고, 그 이전 상황부터.


 


황민수 : 이전 상황이라고 하면... 학생회하고 총장이라든지 학교 측하고 원래 좀 대립상황이 있었죠. 캠퍼스에서 청소하시는 어머님들이 지난해 대량해고를 당했어요. 십 년 넘게 일해오신 분들인데, 그냥 갑자기 잘린 거죠. 그거 외에는 생계수단이 없는 분들인데. 학교 측의 입장은 그건 용역업체 소관이고, 우리는 업체를 바꿨을 뿐이라는 거고. 그게 대학이라는 데서 취할 입장이 아니잖아요?


필 : 그야 물론이죠.


 


황민수 : 어머님들 농성하고 투쟁하는 데 저희(총학생회)도 당연히 도와드렸죠. 함께 투쟁하고. 지원하고. 여기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한 거예요. 이때부터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학생회에서 쓰던 방을 빼라고 하고. 왜냐고 물어봤더니 원래 학교의 재산이니까 그건 학교측 마음이라고 하고. 지금까지 지급되던 예산이 막 줄고. 왜 그러는지 별다른 설명은 없는데 사실 이유는 뻔하죠.


필 : 야 치사하다 정말(웃음). 그런 대립상황이 있었군요. 아까 들어오면서 현수막 보니까 지금 등록금 인상도 문제인 것 같던데요.


 




 



황 : 진짜 문제는 그거에요. 등록금 때문에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피켓 들고, 시위하고. 그런데 이게 총장 외의 다른 사람에게 결정권이 있나요. 여기(안산캠퍼스)서 백날 떠들어봐야 총장이 오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니까 소용이 없어요. 그래서 한 번은 서울 본교에까지 가서 총장님을 만나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총장실에서 안 나오면 그만이에요. ‘총장님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하는 피켓을 아무리 만들면 뭐하겠어요. 막상 총장이 안 보는데.


필 : 그렇죠.


 



황 : 그러다가 오늘 MB가 여기에 뜬다는 소식을 듣게 됐어요.


필 : 그러게요. 저도 아까 전화 받고 생뚱맞더라고요. 아니 이양반이 갑자기 웬 한양대 안산캠퍼스에?


 


황 : 이유야 저도 잘 모르고... 어떻게 알게 됐냐 하면, 학교 게시판에 아침 한 여덟시 아홉시부터 아무 이유 없이 게시판의 특정 글들이 지워지는 일이 생겼어요. 한 이삼 분 단위로. 가만히 지켜보니까 대통령에 대한 글들, 대통령이 언급된 글들이 집중적으로 삭제되고 있더라고요. 사이트 관리하는 분한테 전화했더니 ‘위’에서 지시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필 : ‘위’라면?



황 : 총장님이죠. 그런 와중에 아니 그럼 오늘 안산캠퍼스에 대통령이 오기라도 하는 거냐 하는 글들이 달리고, 역시나 삭제되고. 그러면서 MB가 온다는 게 기정사실화됐죠.


 


필 : 아니 대통령이 필요하면 대학 방문할 수 있는 거지 뭘 그렇게 조심스럽게, 그것도 방학인데.


황 : 그 이유야 저흰 모르죠. 사실 무엇 때문에 온지도 몰라요. 중요한 건 대통령을 수행하러 총장도 딸려온다는 거죠. 그 얼굴보기 힘든 총장이. 그러니까 등록금 인상 무효화를 호소하는 피켓을 총장한테 보여주려면, 오늘이 기회였던 거죠.


 


필 : 타겟은 총장이었던 거군요. 저는 당연히 MB에 반대하는 시위였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황 : 네. 타겟은 총장이었어요. 저희의 목표는 총장님한테 피켓을 보여준다. 이게 전부였어요.


 



소박하다. MB의 정책에 반대하는 무슨 대단한 퍼포먼스를 준비한 게 아니다. 총장에게 피켓 한 번 보여주기. 이게 다였다.


 



대학 캠퍼스까지 MB식 신자유주의에 오염된 요즘, 청소 아줌마 해고나 등록금 인상은 흔한 뉴스다. 이에 맞선 학생들의 힘든 싸움도 그렇고. 한양대 안산캠퍼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MB가 왔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엄해지기 시작한다.


 



황 : 오전부터 우리(학생회 임원들)가 어디를 갈 때마다 수위아저씨 분들이 졸졸 따라와요. 그림자처럼... 우리끼리 무슨 대화만 하면 무슨 말 하냐고 묻고, 들으려고 하고. 어디 가냐고 묻고. 편의점에 물건 사러 가는데도 계속 감시하고.


필 : 위(총장 주변)에서 시켰군요.


황 : 그랬겠죠. 평소에 친하게 인사 나누던 분들인데...


필 : 그분들을 뭐라고 할 수는 없죠. 먹고 살려니 어쩔 수 없는 거고... 저도 편집장님이 너 가봐라 해서 바로 왔잖아요.(웃음)


 



황 : 오후가 되니까 갑자기 경찰들이 깔리기 시작하더라구요.


필 : 경찰들 옷차림은...?


황 : 정복경찰도 있었죠. 대부분은 사복차림이었어요. 하지만 한 눈에 봐도 경찰이었죠. 다들 무전기 갖고 있고, 머리에 헤드셋 끼고 있고. 우리 학교에 ‘창업보육센터’란 건물이 있는데, 그 앞에 경찰들이랑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아, 그래서 저기로 대통령이 들어가겠구나, 확신했죠. 대통령이 가는 곳에 총장도 따라 갈 거구요.


 



필 : 어쩌다 맞은 겁니까?


황 : 거기서 총학생회장님이랑 부회장님이 일인시위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저도 같이 준비하려고 가는데, 학생회 동료가 뛰어오면서 큰일 났다는 거예요. 두 분이 경찰들한테 맞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달려갔죠...



 



학생회관 건물 주변을 지키고 있는 사복경찰들. 학생들이 찍은 사진이다. 


 



황 : 달려가서 뭐하시는 거냐고, 지금 왜이러시냐고 소리쳤더니 다짜고짜 경찰들이 달려들어서 사지를 붙잡고... 검은 승합차에 절 태우려고 하더라고요. 아니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유도 없이...


필 : 불시에 그런 일을 당하면 사람이 더 반항하게 되죠.


 


황 : 네, 저도 일단 무섭고 당황스러우니까. 승합차에 안 실리려 발버둥치고, 막 밀어 넣어지는데, 승합차 문간이라든지 하는 데를 손으로 무작정 잡았어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구둣발로 제 손가락을 마구 밟고...


 



 


황 : ... 여기저기서 욕설이 수없이 들려오고. 그리고 저희가 준비한 피켓을 발로 밟아서 막 부수더라구요.


필 : 아니 죄 없는 피켓은 왜.(웃음)


 



훼손된 피켓. 학생들이 찍었다.


 


황 : 그 와중에 목이랑 손에서 피가 막 흐르고... 정말 황당했던 거는, 형사쯤 되는 좀 높아 보이는 분이, 그 중에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분이었는데, 그분이 저한테 다가와서 목에 있는 여기(울대)를 잡고 비트는 거예요.


필 : 엥?


 



이렇게...


 


황 : 기절시키려고요. 아 그건 정말로 괴로웠어요. 숨이 막 끊기고, 눈앞이 흐려지고. 기절은 안 했는데, 결국 차에 실렸죠.


의자 사이 공간에 우리 세 명을 구겨 넣고 고개를 못 들게 해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그래서 숨 좀 쉬게 해달라고, 죽을 것 같다고 하니까 몸을 펴게 해주더라구요. 그래서 바깥을 볼 수 있었죠.


 


필 : 어디로 갔나요?


황 : 경찰서 앞으로 갔어요. 서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니고, 그냥 앞에 얼마 동안 서 있더니 되돌아와서 학교 앞에서 내려주더라고요.


 



그야 죄를 지은 게 없으니.


 



... 이너뷰는 허탈할 정도로 간단히 끝났다. 사건개요도 간단하다. 가카가 출동했다. 세팅 차원에서 학생 몇이 물리적으로 치워졌다. 끝.


 



필자 맘엔 안 들지만 어쨌든 가카는 국가수반이다. 경찰이라면 다소 물리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최고지도자의 신변을 지킬 의무가 있다. 이는 때에 따라서는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다. 따라서 언제든 돌발행동을 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자가 가카가 지나는 길을 지키고 있다면, 만일을 위해 그를 제지하는 일은 합당하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그전에 먼저 양해를 구하고 설득해야 하는 거 아니냐.


 



일인시위는 범죄가 아니다. 가카의 신변에 문제가 생길 만일의 가능성에 골통이 복잡해지는 건, 어디까지나 경찰의 일이지 학생들의 사정이 아니다. 시민의 합법적 권리는 그것대로 엄존한다. 존중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취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게 국민이 세금으로 공권력을 부양하는 이유다.


 



학생들이 말을 들어먹지 않아서 반드시 물리력을 실행해야 했다고 치자.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굳이 피켓(값으로 얼마로 환산되던 시민의 사유재산이다.)을 눈앞에서 밟는 가학적인 행위가 왜 필요한가. 피켓에 대단한 문구가 적힌 것도 아니다. 고작 “총장님 등록금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수준이다. 특히 무슨 강력범 체포하는 것도 아니고, 울대를 눌러 쥐는 건 대체 어디서 배워온 손버릇인가.


 



그리고 대통령이 신이냐 아님 황제냐.


 



가카나 총장이나, 등록금 인상에 책임이 있으면 불만도 듣게 되고 또 들어야 하는 건 당연한 순리 아니냐. 가카의 정책이 등록금 인상을 유발했다고 해서, 등록금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존재가 육안에 포착되면 안 되는 거냐? 혹시라도 심기가 조금 뒤틀릴까봐?




정말 묻고 싶은 건 굳이 학생들을 왜 학교 밖으로 분리수거했냐는 거다. 안전거리만 확보해도 가카의 신변을 보호하는 경호업무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으면 옆을 지키고 있으면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학생들이 ‘치워진’ 이유는 본질적으로 가카의 ‘뷰’, 그러니까 전망을 위해서였다. 학생들이 피를 흘리고 다쳐야 했던 이유가, 가카의 시신경에 혹시라도 불쾌한 자극이 가해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는 말이다. 21세기에 이 무슨 블랙코미디냐.


 



남자들이라면 비슷한 상황을 군대에서 겪게 된다. 사단장이 말단 부대를 방문하기로 하면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제초작업으로 주변지형을 스포츠머리로 통일하는 건 기본이고, 혹여 지프가 흔들려 행차길이 평안하지 않을까 비포장도로에 박힌 돌을 손으로 골라내는 짓까지 한다. 이 무의미한 작업을 훈련보다 더 빡세게 해야 하는 이유. 사단장님의 기분과 옥체에 조금의 누라도 끼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또한 사단장이 심드렁하게 던진 한마디(ex> “경사가 좀 있네.” 며칠 후 그곳은 평지가 된다.)가 사병과 하급간부들에게는 충격과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당한 상황은 필자가 사병 시절 처했던 것보다 한결 골때린다고 할 수 있겠다. 가카는 사단장보다 훨씬 높으신 분이기 때문에, 한양대학교 학생들에게 부여된 의미도 사병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즉 그들은 필자가 군 시절에 속아냈던 잡초와 돌멩이였던 거다.


 


이거 웃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


 


애초 필자는 이 취재를 기사화할까 말까 고민했었다. 기사로 쓰기엔 사건의 사이즈가 애매하다. SF같은 요즘 시국에 이런 사건은 날이면 날마다 일어난다.


 



하지만 문득 기사화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이유는, 합법적 권한을 지닌 시민이 높으신 분의 ‘기분’을 위해 치워질 수 있다는 후진 사실이 영 불편해서다. 당신도 나도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정치를 지배행위로, 국민을 백성으로, 직분을 계급으로 오인하는 사고방식이 만연해 있지 않으면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없다. 우리가 봉건시대를 살고 있단 뜻이다.


 



애초에 가카한테 우리가 뭘 그리 바랐겠냐. 하지만 후진 일이 많을수록 그만큼 많이 화내고 투덜대는 게 국민된 인간의 조건이 아닐까. 그래서 썼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건, 국민이 아니라 백성의 버릇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