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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16.화요일


화성


 


원래는 지난주 금요일, 이른바 '듣보잡' 소송에 대한 판결이 나온 걸 보고 이번 월요일에 맞춰 기사를 쓰려 했으나 월요일 아침, 갑자기 엄기영 사장의 굴욕적인 사퇴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에 대한 기사를 먼저 쓰느라 할 수 없이 오늘에서야 뒷북성 기사를 쓰게 되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나. 그렇게 이리 차이고 저리 밀리며 지하철 짐짝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이땅 듣보잡들의 숙명인 것을. 그래도 굳이 원망을 해야 겠다면 하필이면 그날 사퇴를 결정하신 엄사장님을 탓하시라 할 수 밖에.


 


인터넷 기사의 생명이 시의성에 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필자가, 한참 뒤늦은 감이 드는 이 글을 그래도 꼭 써야겠다고 결심하고 졸린 눈 비비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설이 코앞인데 그동안 가려지고 소외된 불우 이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자.


 



이 기사가 뒷전으로 밀린 건 이 분 때문이다.


 


 


변희재로선 억울한 '듣보잡' 호칭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희재란 이름 대신 '듣보잡'으로 그를 기억한다. 검색창에도 '변희재' 보다 '듣보잡'을 넣었을 때 뜨는 뉴스나 글들이 더 많음은 물론이다. 그가 정말로 '듣보잡'이기 때문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니다. 그는 사실 진중권 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인터넷에서 활동해 온 논객이자 '대자보' 등의 인터넷 신문을 만든 발행인이기도 하니까.


 


물론 지금도 '빅뉴스'를 운영하면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 매체에 기고도 하고, 매 정치적인 사안에 논평도 내는, 나름대로 그 바닥에선 꽤 '유명한' 사람이란 뜻이다. 생각해 보라. 천리안과 하이텔의 모뎀 시절을 간신히 벗어나던 시절에, 20대의 나이로 인터넷 신문을 창간한다는 사실이 그리 쉬운 일인가.


 


그로부터 십여년간 인터넷상에서 꾸준히 글을 쓰며 <대자보>, <서프라이즈>, <브레이크뉴스>, <빅뉴스>, <미디어워치> 라는 매체를 만들고, 때로는 주축으로 활동한 그의 이력이 그리 하찮은 일로 여겨지는가.


 


진중권도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면서 <아웃사이더>와 <인물과사상>, <안티조선> 등에 참여하긴 했지만 그런 그의 이력이 변희재 보다 앞선다고 단정짓기는 힘들다. 오히려 인터넷에 대한, 인터넷 논객으로서의 열정 만큼은 변희재가 진중권 보다 더 강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진중권은 알아주고 변희재는 몰라주니 그로서는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어쩌면 평생동안 안고 살아야 할지도 모를 낙인처럼 찍힌 '듣보잡'이란 호칭이 그로선 얼마나 분하고 열받는 일이겠는가.


 


 



서울대 미학과 선후배 사이인 진중권과 변희재


 


 


진중권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알다시피 진중권과 변희재는 동문 선후배 사이다. 둘다 나란히 서울대 미학과를 나왔으니 학력도 같고, 비슷한 활동들을 했으니 겉으로 드러난 것 만으론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진중권은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저자로서, 주요 대학의 교수로서(지금은 잘렸지만), 진보 쪽을 대변하는 독설 논객으로서 세간에 많이 알려진, 한마디로 '뉴스를 달고 다니는' 유명인사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변희재는 어떤가. 위에 열거한 그의 버라이어티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열정적으로 글을 써도 기사화조차 되지 않을 뿐더러(빅뉴스만 빼고) 어쩌다 간혹 어렵게 기사화 되어도 그다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의 글쓰기는 갈수록 자극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노 전 대통령 장례, 국민세금 단 1푼도 안돼', 지적 수준 안된 김민선과 소속사 퇴출시켜야' 등..)


 


그렇게라도 해야 사람들이 '그가 있음을' 알아주니 - 물론 악플이 훨씬 많지만 그래도 무플 보다는 낫지 않은가 -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인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인터넷 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로서도 별다른 선택이 없었을 터,


 


변희재의 독설 가지고 뭐라 하지 마라. 그를 그렇게 만든 건 그에게 무관심했던 당신들 탓이니. 물론 '유명세'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 자체가 유치하고 비열한, 저질스러운 발상임엔 틀림없으나 세상이 그런걸 어쩌겠나. 더구나 그의 주업이 '유명해야만' 하는 인터넷 논객인 것을.


 


아무튼 누구는 한마디 말만 해도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드는 뉴스가 되고, 누구는 A4지 몇장이 넘어가는 장문의 글을 써도 단 한줄도 소개될 때가 많으니... 잘난 것들만 스타가 되는 세상, 이쁜 것들만 사랑 받는 세상, 진중권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의 책임이다.


 


 



그림을 누르면 '빅' 해진다. 


 


 


그는 변절자가 아니다.


 


혹자는 그가 진보에서 보수로 변절했기 때문에 진보 쪽에서도 미움을 받고, 보수 쪽에서도 지만원이나 조갑제 같은 '원조 보수'에 밀려 크게 환영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지 않은거라고도 하는데, 이는 변희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하는 소리다. 그는 그가 빅뉴스에서 직접 밝힌 것처럼 변하지도 변절하지도 않았다.


 


대자보와 서프라이즈 등에서 진보적인 글을 쓰고, 안티조선에서 조선일보를 까다가, 이젠 빅뉴스와 조선일보에서에서 보수를 대변하는 글을 쓰는 것이 변절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반박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그는 '그가 변한 것이 아니라 대자보가 서프라이즈가 안티조선이, 민주당이, 진보 세력이 노무현 세력 등에 의해서 변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옮긴 것이라고 했다.(이렇듯 자신은 결코 변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걸 안 믿어주면 어떡하나.)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변희재를 그렇게 만든 건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를 알아주지 않고, 인정해 주지 않은 세상이 그를 그렇게 만든 것이다. 무릇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을 바친다고 했다. 알아주지 않는 곳을 떠나 알아주는 곳으로 간 그에게 누가 짱돌을 던질 것인가.


 


 


같은 듣보잡으로서의 무한한 연민과 동정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의 글쓰기는 진중권의 그것과 비교할 때 비교적 평범하고 딱딱하다. 더 논리적일 수는 있으나 그만큼 부연설명이 길고 그래서 가끔은 지루하기까지 하며, 남들과 확연히 구별되는 그만의 아우라가 있는 것도, 번뜩이는 재치가 묻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글을 못 쓴다는 것이 아니다. 잘 쓴다. 하지만 그의 잘 쓴 글들에선 '읽는 재미'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가끔 빅뉴스에 들어가 그의 글을 읽곤하는 나 조차도 그의 글을 끝까지 다 못읽을 때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듣보잡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져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가 좀 덜 유명하다고 해서, 그의 글이 특별하지 못하다고 해서 무시당해서는 결코 안된다는 말이다. 잘난 사람 보다, 유명한 사람 보다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더 인정받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듣보잡'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나같은 허접 찌꺼기들도 글 나부랭이라도 쓰며 살 수 있지 않겠나.


 


 



 지난 5일 판결 선고를 받고 나오는 진중권 전 교수. @ 뉴시스


 


 


'변희재가 이겼다'가 아니고 '진중권이 졌다'라니...


 


그런 의미에서 변희재를 개무시한 진중권의 행동은 분명 인간적으로 잘못된 처사였으며, 이를 반영하듯 변희재의 손을 들어준 법원의 판결은 나름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의 결과를 보도하면서 보인 언론의 작태에는 다시 한 번 분노할 수 밖에 없었으니 대부분의 뉴스가 '변희재가 이겼다' 가 아니라 '진중권이 졌다'는 식으로 제목을 뽑았기 때문이다.


 







  


   ▶ ‘듣보잡’ 표현 사용 진중권씨에 벌금형 (경향신문)


 


    ▶'듣보잡'조롱 진중권씨 벌금형 (조선일보)


 


    ▶ 진중권씨 ‘듣보잡 변희재’ 발언 벌금 300만원 (중앙일보)


 


    ▶ 진중권 씨 ‘듣보잡’ 발언… 벌금 300만원 (동아일보)


 

    ▶진보논객 진중권 `듣보잡'에 유죄 선고 (연합뉴스)


 


     물론 예외도 있다.


 


     ▶변희재, 진중권에 대해 민사소송 준비 착수 (빅뉴스)


 



 한결같이 '진중권'만 부각시킨 각 언론의 기사 제목


 


제목 뿐만이 아니라 기사의 내용도, 사진도 온통 진중권만을 집중 조명했을 뿐 변희재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아니, 역사는 늘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는 것이거늘, 왜 패자의 입장에서 기사를 쓴단 말인가. 그렇지 않아도 억울하고 분해 죽겠는데... 이건 변희재와 나같은 듣보잡들을 두 번 죽이는 일이 아닌가. 안습도 이런 안습이 없다.


 


논객이면 '글빨'로 말해야지 무슨 소송을 또 준비하냐고(민사 소송) 나무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상황이 이렇다보니 고소를 안 할 수가 있겠나. 기댈 곳이라곤 법 밖에 없는데... (그리고 이번 판결 건으로 인해 듣보잡과 함께 변희재라는 이름도 어느정도 알리는 성과가 거두었으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려 먹어야 하지 않겠나)  


  


민속의 명절 설이 다가온다. 무슨 때만 되면 고아원이나 양로원 같은 곳을 찾아서 생색 내는 사람들이 많은데, 올해는 그마저도 드물다고 한다. 다 가카의 경제 살리기 덕분이리라.


 


간만에 가족과 친척들을 만나 차례를 지내고 행복한 한 때를 보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런 때일수록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버려진 이웃들에 대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부탁이다. 잘난 그들에게만 관심을 주지 말고 저기 저들에게도 관심을 나눠주잔 말이다. 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