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코끼리를 밀어낸 개미

 

공포가 시장을 지배하던 지난 3월, 각국 증시는 일제히 폭락했다. 3월의 금융시장은 정말로 “미친” 시장이었다. 2월 고점으로부터 3월 저점까지, 다우지수는 무려 38.3%가 폭락했다. 이는 역대 단기하락 3위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기록이다 (역대 1위는 1929년 대공황, 2위는 1987년 블랙먼데이).

 

주식시장만 폭락을 경험한 것은 아니었다. 분산 효과가 무색할 정도로, 원유는 전대미문의 마이너스까지 다녀왔으며, 회사채, 심지어 안정자산으로 분류되던 금까지 한꺼번에 가격이 하락했다. 무차별적인 대폭락. 지난 수년간의 금융시장이 쌓아 올렸던 수익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는 데는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이러한 대폭락을 견인한 것은 기관투자자들이었다. 모든 자산의 가격이 일시에 하락하고, 코로나 사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악화될지 알 수 없는 상황.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은, 주식을 팔고 현금을 비축하는 것이었다. 소위 ‘스마트 머니’라고 불리는 대형 기관 투자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보유 비중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갔다. 일단, 공포와 리스크가 팽배하니, 피하고 보자는 생각이었다.

 

B20201217064858963.jpg

출처 - <연합>

 

이 생각 자체는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아니 단순히 합리적인 것을 넘어, 당시로서는 옳아 보았다. 펀드매니저들은 뛰어난 상황 판단 능력을 인정받기 때문에, 운용보수를 받는다. 또한, 리서치를 통해 훨씬 많은 정보를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자산운용에 있어 ‘프로’인 셈이다. 그런 그들이, 기관투자자들 대부분은 지난 3월 추가 하락을 예상했었다. 주식을 팔고, 현금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들이 운용하는 자산의 규모는 크다. 큰손들이 앞다투어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하자, 실제로 주식시장은 급락을 거듭했다. 기관투자자들의 예측은 당시로서는 합리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는 이러한 예측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적으로, 남들보다 먼저 주식을 정리했던 투자자들이, 지난 3월장에서는 투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이처럼 위태로운 시기, 추락하는 시장에 돈을 집어넣었던 것은 개인투자자들이었다. 소위 주식 전문가들이 “대폭락은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경고할 때, 개인투자자들은 반대로 주식을 매수했다. 기관투자자들이 객기를 부리는 것이라고 조소할 때도, 개인투자자들은 계속해서 돈을 밀어 넣었다. 코끼리(기관투자자)와 개미(기관투자자)의 싸움이었다.

 

놀랍게도 올해의 승자는 개미였다. 절체절명의 시기, 개인투자자들의 신규 매수는 주식시장의 폭락을 멈추는데 크나큰 기여를 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자금 유입이 없었더라면, 주식시장은 더 크게 폭락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처럼 심한 낙폭이었다면, 지금처럼 반등하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사실, 과거 하락장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이 매수세로 돌아서는 일은 종종 있었다. 다만, 시장을 지탱하는 것을 넘어, 수익을 보는 일은 지극히 드물었다. (추격은 하되 역전은 하지 않는다는 한화 이글스처럼). 개미들은 코끼리 좋은 일만 해왔던 셈이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달랐다. 올 한 해 주식시장을 완전히 캐리한 것은 개미였다. 3월 이후 주식시장이 역대급 반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투자자들의 덕분이다. 기관투자자들이 잠시 관망세로 돌아선 사이, 개인투자자들은 멱살 잡고 증시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이러한 개인투자자들의 과감한 투자는, 이후 상승장에서 소외될 것을 우려한 기관투자자들이 뒤늦게 추격매매에 나선 덕에 더욱 큰 수익으로 보상받았다. 올 한 해 동안, 개인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들보다 한발 앞서 행동했고, 이로 인해 좋은 수익을 보았다.

 

올해 주식시장을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앞장선 개미 (개인투자자)들이 발이 무거운 코끼리 (기관투자자)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었다.

 

개미는 어떻게 코끼리를 밀었는가

 

그 원인 중 한 가지는 지난 글에서 다룬, 연준과 미국 정부의 개입이다. 금융시장이 반드시 안정되어야 (혹은 반등해야) 한다는 면에서, 연준, 정부, 그리고 개미투자자들은 같은 배에 올라탔다.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책임져야 하는 연준 입장에서, 급격한 증시 하락은 피해야 한다

 

반대로, 연준은 지금처럼 증시가 과열 양상을 띠는 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연준이 관심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장이 안정되는 것이지, 주식 부자가 얼마나 많이 생겨나느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실물경제가 미처 회복되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에, 현재의 과열을 방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23698_26662_2014.jpg

출처 - <연합>

 

또한, 재선을 노렸던 트럼프 행정부도 증시가 하루빨리 안정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 결과, 아주 강력한 경기부양 안이 탄생했다. 경기부양 안은, 개인투자자들이 증시를 끌어올리는 데 있어 강력한 우군이 되어주었다. 제시된 경기부양책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했을 뿐만 아니라,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추가로 개입할 수 있다는 여지까지 남겨놓았다. 낙관을 예상했던 개인투자자에게는, 장외에서 연준과 미국 정부가 훌륭한 뒷배가 되어준 셈이다.

 

주식시장 극적 반등의 또 다른 원인은, 기관투자자들 스스로가 제공했다. 너무 많은 기관투자자들이 일시에 주식시장을 탈출하려다 보니 약간의 혼란이 발생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1) 지난 3월을 기준으로,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경제가 더욱 나빠질 것을 예측했고,

2) 당시에는, 이러한 예측에 따라 주식을 매도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3) 일방적으로 (매수 혹은 매도)로 투자자들이 몰릴 경우, 시장은 그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이 한쪽으로 몰리면 배는 반대로 뒤집어진다. 투자자들의 의견이 한쪽으로 모이게 되면, 주식의 가격도 다수의 의견을 따를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한쪽으로 의견이 몰렸다는 사실이, 그 의견이 실현되는 것을 방해한다. 주식시장은 꼭 합리적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다수결에 따라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식투자가 어렵다.

 

결과론이지만, 지난 3월 이후에 있었던 일도 이러한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아주 확실한 악재 앞에서, 거의 모든 기관투자자들은 주식시장이 더욱 폭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특정 섹터 (제약, IT)가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지만, 섣부른 투자는 경고했다. 적어도, 전체 주식시장은 앞으로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이런 부정적인 전망 속에서, 투자자들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은 주식을 팔고,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들의 우려가 실현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하락을 예상했었다는 것이다. 이미 3월에 역대급 하락장을 겪으면서, 주식시장에 껴있던 거품은 어느 정도 빠진 상태였다. 주식 보유 비중이 지나치게 높았던 투자자들도 포트폴리오 조정을 마친 상황. 마지막으로, 앞으로 주식이 더 떨어질 것을 예측한 투기꾼들은, 보다 공격적으로 공매도를 쏟아낸 상태였다.

 

고대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는 것은, 전면전이 아닌 퇴각 섬멸전에서이다. 갑작스러운 복병을 만나 패배한 군대는, 퇴각도중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기 마련이다. 비슷한 일이 지난봄 주식시장에서 벌어졌다. 기관투자자들이 주식 하락에 ”올인”하고 있었던 상태에서, 갑자기 유입된 개인투자자의 매수자금은 강력한 복병이었다.

 

어째서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일시에 유입되었는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연준과 미국 정부에 대응책을 신뢰해서 돈을 걸었다는 썰 (기관투자자들은 보통 생각이 지나치게 많다), 저금리로 갈 곳 없던 현금을 다 때려 박았다는 썰, 지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 당시 반등을 기억하는 많은 투자자들이, 하락장에서 사면 언젠가는 오른다는 믿음이 충만해졌다는 썰, 마지막으로 코로나로 생겨난 잉여력 (현금 + 시간)이 주식시장으로 유입되었다는 썰 등 여러 가지다.

 

보다 중요한 것은, 개인투자자들의 매수는 어쨌든 간에 아주 시기적절했다는 것이다. 당시 시장은 매도 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었던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의 매수는 평소보다 강력한 효과 (반등)을 가졌다.

 

평지에서 개미는 코끼리를 절대 밀 수 없다. 하지만, 길바닥이 온통 빙판이라면? 그것도 코끼리가 무리를 지어 가파른 절벽을 올라가는 상황이라면? 개미군단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개미군단의 습격

 

가장 먼저 공매도 투기꾼들이 일격을 당했다. 공매도꾼들은 구입한 주식의 가격이 상승할 경우 손실을 본다. 주식시장이 극적으로 반등에 성공한 탓에, 공매도꾼들은 많은 돈을 잃었다. 투자 손실로 인해 슬슬 똥줄이 타기 시작한다. Short Squeeze. 공매도꾼이 추가적인 손실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본인이 가진 포지션 (공매도)를 청산해야 한다. 눈물을 머금고, 올라버린 가격에 매수 주문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그동안 주식시장을 눌러왔던 힘 (공매도)가 일시에 시장을 상승시키는 힘 (매수세)로 전환되어버렸다.

 

주식시장이 반등하면서, 주식시장에서 발을 뺐던 기관투자자들의 속도 타들어 가기 시작한다. 3월에 주식 비중을 줄일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많은 펀드매니저들은 시장 반등하자, 수익률이 시장 평균수익률보다 낮아졌다. 이들은 자신의 의견을 재빨리 접고, 슬그머니 주식의 비중을 다시 늘리던가 ㅅㅂ내가 틀렸다, 아니면 자신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해 커리어를 걸어야 했다 ㅅㅂ시장이 틀린 거다!. 주식시장 하락에 베팅했던 기관투자자들 간에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빨리 자신의 의견을 접고 시장에 다시 참여하는 것이 옳은 선택이었다.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갔던 기관투자자들의 자금이 부메랑처럼 복귀하면서, 주가 상승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되었다.

 

최초의 하락을 멈추고, 반등을 이끌어낸 것은 온전히 개인투자자들의 힘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후 시장이 더욱 크게 반등할 수 있었던 데에는, 기관투자자들의 포지션 변화가 있었다. 개인투자자들이 유입되기 이전에 기관투자자들은 주식의 보유 비중을 너무 많이 낮추고, 공매도를 늘려놓은 상태였다. 이로 인해 개인투자자들의 반격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termos-usados-no-mercado-financeiro-29-termos.jpeg

 

결국, 손실이 늘어가는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고, 주식 보유 비중을 회복해야 했다. 문제는, 이들이 주식을 팔았던 가격 (3월 가격)보다 이들이 다시 주식을 구입했을 때 지불한 가격 (반등 이후의 가격)이 훨씬 높았단 것이다. 이미 개인투자자들이 반등을 이뤄낸 상태에서, 기관투자자의 갑작스러운 매수세가 더해지자, 이후 시장은 역대급 랠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개인투자자들은 절정의 무림 고수처럼, 매도 쪽으로 일방적으로 몰린 기관투자자의 힘을 역이용하여 반등을 이끌어낸 셈이다.

 

이러한 개인투자자들의 활약이 뽀록꾸였는지, 아니면 실력이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올 한 해를 결산하는 자리에서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는, 축하해주는 것이 맞다. 올 한 해 많은 수익을 거둔 개인투자자들에게 모두 축하를 전한다. 정말 멋진 뒤집기 한판이었다.

 

강약약강 코로나

 

하지만, 모든 투자자가 무난하게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내 주변에는, 보유 중인 주식이 거의 오르지 않았거나, 아예 3월 하락장에서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은 투자자도 있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민 대부분의 삶은 경제적으로 이전보다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자영업자나 직장인들이 노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이 줄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액을 주식에 베팅할 만큼 여유자금이 있었던 사람은, 코로나 이전부터 경제적 여유가 있었던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다시 말해, 코로나 사태는 자산(주식, 부동산)을 보유한 자와 보유하지 못한 자 간의 경제적 격차를 더욱 벌어지게 했다.

 

AA.21914215.1-1200x.jpg

출처 - <한국경제>

 

가진 자는 자산의 가격 상승을 통한 금융 소득을 올릴 여지가 존재했다. 하지만, 못 가진 자에게는 자산의 가격 상승은 내 집 마련 (혹은 주식) 하기가 더 어려워졌을 뿐이다. 만약 후자가, 코로나 사태로 직격탄을 입게 된 자영업자 혹은 서비스직 근로자라면 근로소득마저 줄어들었을 것이다. 쌩양아치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는 약자에게는 더욱 잔인하고, 강자에게는 관대했다.

 

주식시장 내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은 매우 불 균질적이었다. 종합지수가 연초 보다 오른 것은 맞지만, 대부분의 종목이 사이좋게 오른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1) 올 한 해 주식시장에서 상승한 종목은 소수이고, (2) 그 외 종목들의 주가는 하락 혹은 정체되었으나, (3) 소수 종목에서의 상승 폭이, 나머지의 하락을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컸기 때문에 전체 증시는 올랐다. 결국, 오를 종목만 올랐다는 말이다. 이들 종목에 골라 투자했거나, 이들 종목이 포함된 인덱스 상품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은 높은 수익을 거뒀겠지만, 그 외 종목에 투자했던 투자자들에게 올해 주식시장은 그리 좋은 장은 아니었다.

 

약진과 도태

 

당연한 얘기지만, 코로나바이러스는 대부분 기업들에게 있어서도 악재였다. 그것도 기존의 영업방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영향이 컸다. 수많은 기업들이 올 한 해 동안 도산했다. 직격탄을 맞은 여행사, 항공사, 호텔들은 줄줄이 폐업했다. 코로나바이러스 이전부터 오랜 불황에 시달려오던 오프라인 소매점, 자영업자들 그리고 에너지회사들도 문을 닫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사람뿐만 아니라 병든 기업들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반면, 코로나바이러스를 기회 삼아 도약한 기업들도 눈에 띈다. 가장 대표적으로 IT 업체들. 기업들의 재택근무가 보편화됨에 따라, 그에 필요한 기술을 제공하는 화상회의, 클라우드, 데이터 기업들의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또한, 사람들이 오프라인 활동이 위축되자, 온라인쇼핑 기업, 게임업체, 스트리밍 기업등 언텍트 주 가 수혜를 입었다. 그래픽카드, 모니터 같은 하드웨어나 닌텐도 스위치 같은 게임기가 품절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사람들이 집콕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전자제품을 구입하거나 업그레이드하는데 보다 많은 돈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전 세계인들의 일상을 유례없이 바꿔놓았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IT기업들의 기술을 급속도로 채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인류사적 재앙이었던 세계대전이 내연기관, 비행기 등 수많은 기술을 촉진한 것처럼 말이다.

 

급속한 변화에는 많은 것들을 도태시킨다.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는 게 일상이 된 세상에서 수많은 오프라인 소매점들이 설 자리를 잃었다. 넷플릭스의 약진으로 전 세계 영화관 체인들이 부도 직전에 내몰렸다. 코로나 이전부터 조짐을 보였던 이러한 현상들은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고 있다.

 

netflix-3733812.jpg

 

한국 기업의 선방

 

증시 상승의 이면에는, 또한 시총 상위 기업들의 선전이 있었다. 올 한 해 코스피 지수 상승의 약 절반가량을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이 견인했다. 이는 주가 상승 대부분이 시총 상위 대기업들에게 편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덩치가 큰 대기업들의 주가가 많이 오른 덕분에, 종합지수 자체는 많이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머지 종목들의 수익률은 이에 훨씬 못 미쳤다는 것을 뜻한다. 올 한 해 시장이 아무 종목에나 투자했어도 돈을 벌 수 있는 쉬운 장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나라 시총 상위 대기업은, (1)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 혹은 기술을 갖추고 있거나, (2)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기업들이다. 현금은 기업에게 있어 중요한 전략예비 자산이다.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위기 상황에서 현금은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경쟁자를 압도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쓰인다. 경쟁자들이 위기로 멈칫하는 동안, 공격적인 투자로 격차를 벌릴 수 있다. 한국 대기업들이 높은 가치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데에는, 코로나바이러스 이전부터 많은 현금성 자산을 비축하고 있었고, 코로나 사태 이후로도 안정적인 현금 창출 능력을 입증했다는 점이 큰 역할을 했다.

 

수출 부분에서도 한국 대기업들은 선전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그간 긴밀하게 연결되어온 국제 공급망을 송두리째 뒤집었다. 방역을 위한 격리조치, 광범위한 락다운 그리고 항공편 감소 등이 물류를 위축시켰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한국은 생산라인이 안정적으로 돌아간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였다. 동아시아 국가 (한국, 대만, 중국 등) 들은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성공적으로 통제한 덕분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 또한 최소화할 수 있었다.

 

아주 간단히 말해서, 미국인들이 1년째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우리나라 직장인은 공장과 직장으로 출퇴근을 해왔다. 또한 미국에서 아이폰 12를 구입하면, 놀랍게도 인천을 거쳐서 날아온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아이폰이, 미-중 항공편 감소의 영향으로 한국을 거쳐 미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쪽 인터넷에는, 도대체 인천이 뭐 하는 곳인지를 물어보는 아이폰 구매자들의 질문이 줄을 잇는 진풍경도 펼쳐지고 있다.

 

1233025.jpg

출처 - <연합>

 

늘어난 화물 운송수익 덕분에 대한항공은 전 세계 항공사 중 거의 유일하게 흑자를 기록 중이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악조건 속에서 국내 대기업들은 지금까지 잘 버텨 오고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미중 무역 갈등 심화이다.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기업에 대한 각종 경제 제재를 취해왔다.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서 먹고사는 한국 기업들은 중간에서 상당히 난처한 처지에 놓였으나 지금까지는 매우 선전 중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겨냥하여 내놓은 조치들은 (대표적으로 화웨이 수출 금지) 한국 반도체 기업들에게 결과적으로 득이 되었다.

 

부질없지만, 2021 전망

 

여러 지점을 훑다 보니 이야기가 좀 갈라졌다. 2020년 경제를 한마디로 결산하자면, “뭘 해도 될 놈은 된다”가 되겠다. 코로나바이러스와 미중 무역 갈등이라는 거대한 외부환경 변화가 몰아쳤던 올 한 해 동안 대기업들은 선전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대양에는 거함만이 배를 띄울 수 있다. 위기 대응능력을 가진 자 와 못 가진 자 간의 격차는 더욱더 벌어졌다.

 

올 한해 주식시장이 좋을 수 있었던 것은, 연준 등의 외부 개입과 개인투자자들의 여유자금 유입 등 여러 가지 상황 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조금이라도 삑싸리가 있었더라면 상황은 지금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처참했을 수도 있다. 투자자로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부분이다.

 

이미 미국 연준과 정부는 각각 제로금리와 경기부양 안이라는 카드를 소진한 상태다. 더욱이 연준은 증시가 과열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만약 내년에 증시가 다소 하락하더라도, 올해처럼 연준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않을 것이다. 여기에 앞으로 추가로 유입될 수 있는 여유자금도 그리 많지 않다. 사람이 한쪽으로 기울면 배가 뒤집어지는 원리는, 증시가 과열될 경우도 같이 적용된다. 어쩌면 현재 상황은 생각보다 위태로운 것 인지도 모른다.

 

다만, 최근 미국 의회는 추가 경기부양 안을 통과시켰다. 나 같은 조빱도 걱정하는 것을, 이들이 모를 리 없다.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를 예상하기 힘든 이유는, 이처럼 기관투자자, 개인투자자, 연준, 그리고 정부 등 여러 참여자들이 계속해서 서로의 예상에 대응책을 내놓기 때문이다. 앞으로 시장이 더 폭락할 것이라는 기관투자자들의 예측은, 연준의 개입과 개인투자자들의 유입을 불러일으켰다. 다시 말해, 나 같은 비전문가가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부질없다. 어차피 틀린다.

 

코로나는 신체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약자에게 잔인한 바이러스다. 누군가는 올 한해 폐업을 하고 직장을 잃었다.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대다수는 아마 소득이 줄거나 전보다 궁핍한 가계에 허덕였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경제적 불황과 그 회복을 K자 그래프로 설명하기도 한다. 가진 자들의 소득은 K자의 윗부분처럼 빠르게 회복하는 한편, 못 가진 자들의 소득은 그 아랫부분처럼 계속해서 하락한다.

 

올 한 해, 경제 지면을 보며 느낀 것은, 그 아랫부분에 대한 이야기들은 자극적으로 혹은 단편적으로만 다뤄진다는 것이다. 반면, 코로나 사태 동안 급등한 기업, 주식투자의 귀재들 이야기는 소상히 소중히 지면을 채우고 있는 것을 종종 본다.

 

사회적 관심은 한정된 자원이다. 코로나가 삶을 할퀸 사람들의 내몰린 일상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집중될 수 있는 2021년이 되길 바라본다.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