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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vs 유리

 

독소전 당시 소련군은 물자 부족으로 나무함에 폭약을 넣고 만든 ‘목함지뢰’를 대량생산하게 된다(철이 부족했던 소련군은 뭐든 끌어와서 무기를 만들어야 했다). 이 작은 나무 상자는 독일군은 꽤 난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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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상자라고 우습게 봤지만, 안에는 TNT가 200그램이나 들어가 있었다. 언뜻 이해가 안 가겠지만, 지금 우리나라에 어마무시하게 매설된 M14 발목지뢰 안에는 TNT가 28그램 들어가 있다. 이거 한방이면 발목뿐만 아니라 잘하면 생명도 앗아갈 수 있다. 그런데 그 10배가 넘어가는 폭약이 들어간 이 목함지뢰의 위력은 어떠할까? 

 

바바롯사 작전(독일의 소련 침공작전)에서 소련은 시간을 끌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미친 듯이 지뢰를 매설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상황이 역전됐다. 이제 독일군이 수세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이때 독일군이 생각해낸 지뢰가 바로 ‘유리 지뢰’이다. 

 

소련군의 목함지뢰는 급조해서 만들었지만,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지뢰탐지 장치에 걸리지 않는다는 거다. 지뢰탐지 장치는 ‘금속’에 반응하는 거였는데, 이건 나무로 만든 거다. 그러나 이 목함지뢰에는 결정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재질이 나무란 거다. 습기에 부식이 되는 거다. 

 

독일군은 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유리’란 재질을 생각해 낸 거다. 게다가 이 유리는 일단 터지고 나면, 그 파편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또 다른 장점이 있었다. 쇠나 나무 재질은 그나마 좀 확인이라도 가능하겠지만, 유리는 도무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이동이나 보관할 때 파손의 문제가 있다는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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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등장한 지뢰가 바로 “Glasmine 43”이다. 바로 유리지뢰다. 처음엔 신관은 철이었지만, 이게 지뢰탐지기에 걸릴 수도 있다고 판단했는지 후기형은 신관도 유리와 화학물질로 바꿔버렸다. 즉, 이건 탐지기에 걸리지 않는 지뢰란 소리다. 

 

독일은 이 지뢰를 1천1백만 개나 생산했다. 그리곤 대전 말기 독일 군경지대인 몬샤우 북쪽의 아이펠 국립공원에 잔뜩 매설하기 시작했다. 

 

(유리 지뢰는 130만여 개가 매설된 걸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75년이 흘렀다. 아이펠 국립공원은 지금도 많은 곳이 접근 금지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왜? 언제 어디서 유리 지뢰가 터져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목함지뢰는 나무가 썩기라도 하겠지만, 유리 지뢰는 특별한 외부충격이 없는 한 땅속에서 4천 년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악마의 정원이 된 거였다. 

 

지뢰를 없애기 위한 노력

 

1997년 12월 3일 캐나다의 오타와에서 <대인지뢰의 사용, 비축, 생산, 이전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 줄여서 대인지뢰금지협약(Mine Ban Treaty) 혹은 오타와 협약(Ottawa Treaty)이라 불리는 대인지뢰 금지협약이 체결됐다. 

 

비운의 왕세자비인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생전에 가장 힘썼던 게 바로 이 대인지뢰 사용금지 운동이었다. 

 

이 협약은 현재 전 세계 164개국이 비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이스라엘, 대한민국, 북한 등등 33개국이 이 협약에 서명도 비준도 하지 않고 있다. 

 

미국은 1991년 걸프전 이후 대인지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오타와 협약 비준 거부는 의미심장한 게, 2014년 미국은 대인지뢰 사용을 ‘한반도에 한정’한다고 선언했다. 즉, 북한의 남침을 대비해 대인지뢰를 계속 사용하겠다는 건데, 대신 대인지뢰의 사용과 저장을 한반도에 한정하겠다고 말한 거다. 당시 미 국무부의 코멘트는 이러했다. 

 

“한국의 방어에 필요하지 않은 지뢰들은 적극적으로 파기하겠다.”

 

이래저래 한반도와 지뢰는... 복잡한 관계다.  

 

한국의 경우는 눈앞에 ‘북한’이란 적을 두고 있다. 3일 안에 남한을 해방시키겠다고 말하는(그 방법론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명백한 위협이다) 북한을 보면서,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휴전선에서 서울까지는 자동차로 1시간도 안 걸리는 거리다. 이 짧은 거리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국방부는 포방부로 불릴 정도로 미친 듯이 화력에 몰빵 하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다) 적의 발을 묶는 데는 지뢰만 한 게 없다. 한국에게는 나름의 명분과 현실적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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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한국은 단위면적당 지뢰 매설 개수만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무서운 건 미확인 지뢰지대만 97제곱킬로미터나 된다. 이게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비무장지대뿐만 민통선 지역에서도 심심찮게 지뢰 사고가 터진다는 걸 알고 있어야 한다. 최근까지도 민통선 지역에서 민간인이 유실된 지뢰를 밟아서 발목이 절단되거나 생명을 잃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여름철 홍수가 나면 북에서 떠내려오거나 비무장지대에서 유실된 지뢰가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지만, 한국은 결코 지뢰에서 안전한 땅이 아니란 의미다. 

 

그렇다면 이 지뢰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우선 비관론은 접어두기로 하자. 오타와 협약 직후인 1999년 전 세계에는 약 1억 6천만 발의 대인지뢰가 묻혀 있는 걸로 추정됐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지난 2017년 그 숫자는 5천만 개까지 줄어들었다. 상당한 성과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면 된다.”

 

는 거다. 대인지뢰를 금지하고 이걸 제거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고 난 뒤의 ‘구체적인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대인지뢰를 없애기 위한 수많은 방법론이 나왔는데, 대표적으로 로봇을 활용한 방식과 아프리카 주머니쥐를 활용한 방법이 있다. 로봇의 경우엔 영화 <허트로커>의 그것처럼 <EOD : Explosive Ordnance Disposal>팀이 활용하는 로봇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다. 쥐의 경우는 쥐를 훈련 시켜 지뢰탐지에 투입하는 경우다. 효율은 사람보다 20배 이상 높으며, 지뢰 제거 비용은 지금의 20% 이하로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지뢰제거를 위한 방법론의 고민을 보면, 일본의 노인 돌봄 시스템을 위해 간병로봇을 사용할 건지, 원숭이를 사용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걸 보는 듯하다)

 

지뢰를 파나가는 시간

 

세계에서 지뢰가 가장 많이 묻혀있다는 캄보디아. 베트남전과 폴 포트 내전을 거치며 무려 500만 발의 지뢰가 매설됐을 거라  추정 되는 이 지옥의 땅에서는 지뢰와 불발탄으로만 6만 4,853명의 민간인이 죽거나 부상을 입어야 했다(부상이라고 하면 대부분 발목이나 다리가 날아갔다). 그나마 다행인 건 NGO와 협력해 100만 발의 지뢰를 제거했다는 거다. 남아있는 지뢰가 더 많지만, 그래도 진일보한 상황이다. 

 

대만 역시 중국과의 최전선인 금문도에 매설한 지뢰 13만 발을 모두 제거했다. 

 

그럼 한국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지뢰에 의해 피해를 입은 민간인의 숫자는 2018년 기준 608명이다. 이중 목숨을 잃은 사람이 239명, 다친 사람이 369명이다. 

 

이 숫자가 가리키는 게 뭘까? 

 

“한국은 지뢰에서 안전한 땅이 아니다.”

 

라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에 약 38만 발의 대인지뢰가 묻혀있다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요청한 것에는 이런 배경이 숨어 있었다. 지뢰지대를 개척해야지만, 비무장지대를 활용하든 말든 할 수 있을 거다. 문제는 그 전제다. 

 

비무장지대에 있는 지뢰를 제거한다는 건 북한과 일정 수준 이상의 ‘긴장해소’를 전제로 한다(평화협정 같은 거창한 거까진 바라지도 않는다). 이미 지난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비무장지대의 지뢰 제거를 말했지만, 600발 정도 제거한 다음 개점 휴업 상태가 됐다. 

 

북한과의 관계가 틀어졌기 때문이었다. 2018년에 판문점에서 정상들이 만나고, 싱가포르로 김정은이 달려갈 때만 하더라도 뭔가 전향적인 결과가 있을 거 같았지만, 보다시피 지금 결과는 이러하다. 

 

예상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뢰 제거에 대해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환기해야 하는 것이,

 

“단위면적당 지뢰 매설 숫자만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이다.”

 

란 명제 때문이다. 지뢰 때문에 한국은 반도 국가가 아닌 ‘섬나라’가 됐다(북한이란 전제가 있기 때문이지만). 그리고 다시 반도 국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이 지뢰지대를 개척해야 하는 게 선결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