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0.

 

CHAA.jpg영국의 주력전차, 챌린저 2

 

얼마 전 영국은 자신들의 주력전차인 챌린저 2 277대를 어떻게 할 건가에 대해 고민을 했었다.

 

(지금 유럽, 특히나 영국의 군사력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EU 탈퇴에 의한 군사비 삭감에 코로나 사태에 따른 경제 상황 급락 등등으로 군사비는 계속 깎여 나가고 있다. 해병대를 비롯해 수많은 부대의 감축과 군사장비 프로젝트 취소 등등, 찬바람이 격하게 불고 있다)

 

원래부터 섬나라 국가이고, 전통적으로 육군을 바라보는 시각이,

 

“해군이 쏘아붙인 탄환.”

 

이라는 개념이었다. 즉, 바다를 철통같이 지키고, 육군이란 해군이 육지로 쏘아붙이 탄환 정도라는 거다. 즉, 2류 군대 같은 느낌으로 육군을 바라봤다는 거다. 하긴, 섬나라에게 가장 중요한 군대는 해군이다. 영국 역시 해가 지지 않는 제국 시절에 5개의 바다. 즉, 도버해협, 지브롤터 해협, 남아프리카의 희망봉, 수에즈 운하, 태평양과 인도양의 길목인 싱가포르를 장악함으로써 전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이었기에 육군에 대해서는 전통적으로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주력 전차가 277대 수준까지 줄어든 건 아무리 봐도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수치다(그래도 한때 대영제국이 아니었던가?). 더 큰 문제는 이 챌린저 2가 지난 20년간 아무런 업그레이드 없이 그냥 굴려졌다는 거다. 

 

원래부터 챌린저 전차는 나토 내에서도 그닥 좋은 평을 받는 전차는 아니었는데, 20년 간 아무런 업그레이드를 하지 않아서 그 성능은 더 떨어지게 됐다. 이 상황에서 영국은 갈림길에 서게 된 거다. 

 

“우리가 전차를 계속 운영해도 될까?”

 

전차의 종주국 영국에서 전차 탄생 104년 만에 내놓은 의문이다. 

 

 

1.

결국 영국은 갑론을박 끝에 277대의 챌린저 2 전차 중 148대만 업그레이드하고(대당 30억이 훌쩍 넘는 비용을 들여서), 나머지 전차들은 치장하기로 결정을 내린다. 그러니까, 사용하지 않고 걍 보관만 하겠다는 뜻이다. 

 

전차의 종주국이자, 군사 선진국, 온갖 기괴한 물건들을 다 만들어 낸 영국군이 전차를 포기할지도 모른단 소식은 전 세계 군사 관계자들을 술렁이게 만들었다. 

 

“영국마저 전차를 포기한단 말인가?”

 

냉전시절에 전차는 그 위상이 ‘위협’받긴 했지만, 그래도 지상전의 왕자였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경제 한파가 불어 닥치자 돈만 잡아먹는 장비 정도로 폄하됐던 거다. 이러다 보니 전차부대를 폐지하는 나라가 속출했다. 대표적인 예가 네덜란드였다. 

 

2012년, 네덜란드는 마지막 남은 2개의 기갑연대를 해체했다.

 

LT8.jpg

 당시, 마지막 전차 훈련에 울먹이는 네덜란드의 전차병

 

 

대신, 전차병들은 계속 양성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줬기에 이웃나라 독일에 네덜란드 전차병들을 보냈다. 결국 네덜란드와 독일군으로 편성된 414 전차대대가 편성돼서 독일군 레오파르트 2 전차에 네덜란드군 전차병이 탑승하는 형식으로 전차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전차는 돈 먹는 하마였다. 

 

우선 그 장비 자체가 비싸고(전차 한 대 가격이 수 십 억은 호가한다. 한국군 최신예 전차인 K2 흑표는 대당 100억원을 넘어간다), 유지비도 비싸다. 리터당 몇백미터 수준의 연비를 보면 알겠지만... 기름 먹는 하마다. 장비 무게가 무거울 수록 비용은 더 많이 들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렇게 비싸더라도, ‘돈값’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테러와의 전쟁 이후 전차는 그 설자리를 계속해 잃어가고 있다는 게 문제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비정규전 양상으로 전쟁이 흐르면서 전차의 설자리가 줄어들었다. 문제는 그나마 설 자리에서 전차가 제 몫을 다 못해줬다는 거다.

 

값싼 IED(Improvised Explosive Device : 급조폭발물) 한 방에 전차가 날아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했고, 진화된 대전차 미사일, 대전차 로켓에 격파되는 일들이 터져 나왔다.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전쟁을 보면, 드론이 탱크를 잡는 영상을 계속 확인할 수 있다. 수십억짜리 전차를 드론이 날린 미사일 한방에 손쉽게 날려버리는 영상들을 보면서 전 세계 기갑부대 관계자들은 경악한다. 

 

 

00001.JPG

아제르바이잔 국방부가 공개한 동영상 중, 아르메니아 포대 공습 장면.

드론 공습은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 

 

 

대전차 로켓과 대전차 미사일, 여기에 새로 등장한 드론은 전차에게 엄청난 위협이 됐다. 긴 체공시간을 자랑하는 드론(10시간은 기본으로 날아다닐 수 있는)들은 이제 적외선 감지센서를 장착하고는 상공에서 전차들을 감시한다. 

 

전차가 수십킬로미터의 속력으로 회피한다 하더라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순간 부처님 손바닥 안이며, 손 위에 올려놓은 거북이 같은 존재가 된다. 회피할 수는 없다. 이걸 막기 위해 방공부대를 확충한다고 하더라도 그 위협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이미 십년 전부터 IED같은 값싼 무기에 당하는 전차들의 영상이 유튜브에 풀리기 시작했다. 이제 전차는 동네북이 됐다. 다시 한 번 전차 무용론이 불거지기 시작한 거다. 

 

 

2.

“전차는 필요 없는 걸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사람은 많지는 않을 거다. 언제나 그렇지만, 지상에서 쓰이는 무기들은 화력, 기동력, 방어력의 3박자를 두고 조합해 나가며 만들어졌다. 우리가 잘 아는 군토나의 경우는 기동력에 방점이 찍힌 거고, 소총은 화력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장갑차는 일정 수준의 방어력에 기동력을 더한 거다. 

 

전차는 화력, 기동력, 방어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무기체계이다. 이걸 섣불리 버리긴 어려울 거다. 형태는 바뀔지라도 그 개념 자체는 바뀌지 않을 거다. 

 

당장 시가전을 생각해 본다면, 보병들에게 장갑과 화력을 제공해주는 전차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한국과 같이 전선이 명확히 구분돼 있는 전장에서 전차는 ‘전략예비’로 꼭 필요하다. 전선 한 군데가 뚫렸을 때 이를 메워주고, 방어해 줄 긴급 대응팀으로 전차만한 게 없다. 당장, 스스로 이동할 수 있고, 그 자체로 방어력을 가지고 있으며, 강력한 화력을 달고 다닌다. 구원투수로 이만한 녀석이 없다.

 

 

K2 흑표.JPG

 K2 흑표 전차

 

(전차가 기동전에서도 활약하지만, 방어전에서 전선 사수나 구멍을 메워 주는데 이만한 능력을 가진 무기도 드물다. 문제는 앞으로의 전쟁이 ‘전선’이 명확히 그어진 상태에서의 대규모 전면전이 가능하냐는 거다. 만약 그렇다면 전차는 계속 필요한 존재가 되겠지만, 전쟁의 성격이나 형태가 계속 바뀌면서 점차 전차의 효용이 떨어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자, 문제는 계속 대두되고 있는 가성비 문제다. 드론의 등장에 대해서는 방공부대의 확충으로 보강을 한다 치고, 대전차 미사일의 공격에는 능동방어체제를 장착해 극복해 나간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차는 무겁고, 비싸고, 유지비가 많이 든다. 

 

이걸 해결해야 한다란 목소리가 계속해서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온 대안이, 

 

“몸무게 60~70톤 단위의 중(重) 전차 대신 가벼운 경(輕)전차를 생산해야 한다.”

 

란 대안부터 시작해서, AI 시대에 발맞춘 무인전차, 그리고 가성비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장갑자와 전차 등등 모든 플랫폼을 하나로 만들어 버린 경우도 나왔다(러시아의 아르마타 플랫폼이 그건데, 전차, 장갑차, 공병전차, 구난전차 등등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통일해 버린 거다. 이런 식으로 비용절감과 전투력 개선에 나선 거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변화해야지만 살아갈 수 있는 게 무기체계다. 2차 세계대전 초반까지 기병은 당당히 하나의 병종으로 존재했다. 물론, 창을 꼬나 쥐고 돌격하는 기창돌격이 먹히지 않는다는 건 그 당시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다. 기병은 기마보병의 형태로 진화했다. 이들은 기관총과 대전차포 등등으로 무장한 상태에서, ‘빠른 발’을 무기로 우회하거나 기동해 적을 공격했다. 

 

“말탄 보병”

 

이라고 해야 할까? 전간기. 그러니까 2차 대전이 터지기 전까지 전 세계 기병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병종이 어떻게 될지 고민하고, 연구했다. 전차병 쪽으로 넘어가든지, 이 둘이 결합하든지, 아니면 기존의 병종을 유지하든지 별별 연구와 고민, 시도가 있었지만, 결국 전차의 등장 앞에 기병은 사라지게 됐다. 

 

아마 지금의 전차도 그러할 거다. 끊임없이 그 생존을 위해 움직이겠지만, 위협은 계속 이어진다. 20세기 전쟁사에 한 획을 그었고, 2차 대전의 양상을 바꿔버린 두 주인공 전차와 항공모함.

 

그러나 이들 무기체계는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끊임없이 그 존재가치를 의심받고 있다. 너무 비싸고, 너무 크고, 너무 무거우며, 유지비가 비싼 무기체계.

 

이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의의와 활용방도를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차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테니 말이다.

 

어째, 우리네 인생사와 닮아있지 않나?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