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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속 코시국 경기

 

2020년을 정리하는 키워드는, 분야를 막론하고 고민할 게 없다. 단연 코로나19다. 코로나 사태와 그로 인한 영향을 떼 놓고서는 올해 한국 총선과 미국 대선의 결과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그만큼 코로나 바이러스는 올해 전 세계 정치, 사회, 경제를 관통한 가장 중요한 이슈였다.

 

크게 봤을 때, 코로나 방역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정부(대표적으로 한국)는 국민들로부터 강한 지지를 받았다. 또한, 방역 성공은 경제를 정상화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여, 빠른 경제 회복을 이끌었다. 반면, 코로나 방역 초기 대응의 실패한 정부(대표적으로 미국)는 선거를 통해 철저히 응징당했다. 또한 실물경제에서도 지속적인 악영향을 받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가 끼친 영향들이 모두 이처럼 예상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았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 있어서 코로나19가 휘저은 영향은 매우 졸라 불확실했다. 피부로 느껴지는 실물경제의 여파와 지수 등으로 드러난 금융시장의 결과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멍든 실물 경제

 

미국에서 회사에 다니는 우리 부부는 지난 3월 초 이후로 재택근무 중이다. 회사에서 내년 4월까지는 전면 재택근무를 실시하기로 공식 방침을 정했기 때문이다. 이미 9개월가량 재택근무를 해왔고, 적어도 6개월은 추가로 집에서 일할 것으로 보인다.

 

처음 재택근무를 시작할 때만 해도, 한 달 정도 뒤에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짐도 사무실에 남겨둔 채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회사로 복귀할 낌새가 없다. 잠시 외출인 줄 알았는데, 얼떨결에 피난을 가게 된 것이다.

 

나 같은 회사원들의 재택근무가 길어진다는 것은, 출장과 통근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언제나 차가 붐볐던 대도시 도로들은 출퇴근 시간에도 한산하다. 출장러들이 붐볐던 공항, 호텔에서도 넥타이부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사람들이 덜 돌아다닌다는 것은, 항공업계, 석유업계, 호텔업계가 작살이 났다는 의미다.

 

뿐만 아니다. 사무실 주변 상권이 파괴되었다. 사무실 인근에 직장인을 주 고객으로 한 식당, 세탁소, 술집 등이 줄지어 폐업했다. 온갖 경제 불황을 다 겪어봤다는 노포들도, 코로나 3달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았다. 식당 일로 와이프를 대학교육까지 시키셨던 장인 장모 두 분이 평생 일하던 식당도 문을 닫았다. 음식을 서빙해주고 팁을 받아 생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자영업자, 단순 서비스 노동자들은 코로나 사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되었다.

 

연말 즈음하여, 백신에 대한 희망이 생긴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당장 일자리를 잃어 소득이 없어졌거나, 어린이집이 문 닫아서 아이를 맡길 곳이 없게 된 맞벌이 부모들에게는 그저 먼 미래의 일일 뿐이다. 미국 사회의 부족한 사회안전망을 메워주던 경기부양안은 아직도 하원에 계류 중이다. 이렇게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는 사이, 실물경제에 발생한 어두운 구멍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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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타오르는 금융시장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일상생활이 위협받고, 실물경제가 암담한 와중에도 금융시장만은 활황이다.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 코스피 지수는 2700을 돌파했다. 오랫동안 박스권에 갇혀있던 종합지수가 마침내 이를 돌파하고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이다. 박스권이라는 건 언젠간 깨지기 마련이다. 다만, 코로나 사태가 전 세계를 혼돈으로 몰아넣고 있는 올해, 그 일이 일어나리라 예측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전 국민의 주식에 대한 관심이 유례없이 올라갔을 정도로, 올 한해 코스피는 역대급 랠리를 기록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확진자가 매일 20만 명씩 쏟아져 나오고 있는 와중에도 미국의 나스닥 증시는 연초 대비 40% 가까이 올랐다. 전 세계 주요 증시들 또한 모조리 올랐다.

 

그동안 세계적인 랠리가 있을 때마다, 박스권에 갇혀 상대적으로 소외되어왔던 한국의 코스피가 올해 코로나 랠리에 참가했다는 것은 특기할만하다. 코스피는 그동안 악재마다 남들보다 더 많이 내려가고, 호재 때는 덜 올랐었다. 하지만, 이번 랠리에서만큼은 달랐다. 여기에는 중국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방역에 상대적으로 성공적으로 대응했다는 것, 그리고 빠른 정상화를 통해 코로나 사태 속에서 믿을만한 공급처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영향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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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연합>

 

연준과 미국 정부의 치어리딩

 

암울한 실물경제와 뜨거운 금융시장의 괴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엔 3가지 원인이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연준과 미국 정부의 치어리딩이다.

 

코로나 사태가 처음부터 금융시장에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아니, 급격한 코로나바이러스 확산은 금융시장의 심각한 악재였다. 코로나가 미국과 유럽을 강타하던 지난 3월, 전 세계 증시는 한 달 만에 20%가 떨어졌다. 대공황을 떠오를 정도로 가파른 역대급 하락이었다.

 

하지만 3월 이후 증시는 V자로 반등했다. 뿐만 아니라, 전 고점을 뚫고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면서 달리고 있다. 이러한 역대급 반전을 직접적으로 이끈 것은, 개인투자자들이었다.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의 진격이 이처럼 성공적일 수 있었던 이면에는 연방준비은행과 미국 정부의 치어리딩이 있었다. 개인투자자가 전쟁에서 직접 깃발을 꽂는 보병이었다면, 미 연준과 정부는 엄호사격으로 보병의 진격을 도운 공군이었다.

 

연준과 미국 정부는 시장에 무차별적인 유동성 폭격을 가했다. 수년 동안 서서히 올려왔던 기준금리를 단숨에(불과 2주) 제로로 만들어버렸고, 추가로 700조를 풀어 금융자산을 매입해주었다. 연준은 선제 대응을 위해 제로금리 + 자산매입 콤보를 시전했다. 모든 투자자가 코로나 공포에 질려 자산을 던지고, 고개를 처박고 있는 와중에, 미국 연준은 돈의 폭격을 가한 것이다.

 

여기에 미국 의회는 경기 부양을 위해 무려 3천조에 달하는 부양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전례가 없는 규모였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천 불이 넘는 현금을 쥐여줬고, 긴급 대출 프로그램을 통해 죽어가는 자영업자 그리고 기업들에게 산소 호흡기를 달아줬다. 방역에 대한 미국 정부의 초기 대응은 어설펐으나, 경제적 후속 조치는 준수한 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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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로의 진입

 

이러한 일련의 경기부양 정책들은, 공포가 한창이던 3월 동안에는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했다. 연준의 선제 조치들은, 시장에게 위안을 주기보단

 

“아니 도대체 얼마나 심각하길래?”

 

라는 의문만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경기부양책은 분명 긍정적이었으나, 공포가 지배하던 시기였다.

 

지난 몇 년간 꾸준히 올랐던 지수들이, 마이너스로 전환하는 데 불과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 지금보다 상황이 얼마나 더 ㅈ될 것 인지 알 수 없다는 공포, 반등이 영영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이는 투자자에게 망망대해 혹은 우주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은 압도적 막막함과 공포로 주었다. 이처럼 공포가 지배하는 도중에는, 금리 인하나 경기부양안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이처럼 급격한 지수 하락을 막고, 반등을 이끈 것은 ‘시간’이었다. 시간은 기업들로 하여금, 코로나 사태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코로나 사태로 엉망이 된 공급망 속에서, 기업들은 생산 품목을 줄이는 대신 수량을 늘리는 식으로 생산량을 회복했다. 사무직은 재택근무가 일상화되었으며, 생산직은 방역 규정이 추가되었다. 사람들 또한, 코로나 사태에서 일상을 찾아가는 법을 배워나갔다. 모두가 마스크 쓰는 일상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공포심에 생필품을 사재기하는 일도 잦아들었다.

 

코로나를 극복했다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 사태에 적응하지 못한 수많은 기업이 파산했다. 셀 수 없이 많은 소상공인들의 점포가 문을 닫았고, 대다수는 아마 되살아나지 못할 것이다. 코로나는 비즈니스 환경 또한 영구히 바꿔놓았다. 코로나 이전만 하더라도, 영업을 하려면 꼭 고객을 직접 대면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화상회의 기술은 수년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실제로 영업에서 사용해본 적은 없다. 하지만 이제 화상회의는 필수가 되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전되더라도, 비즈니스 출장은 감소할 것이고 영구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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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의 영향은 매우 모순되고 불균질적이다. 코로나 사태는 기술이 도입되는 시기를 앞당김과 동시에, 기존 기업이 도태되는 속도 또한 촉진시켰다. 아주 빠른 속도로 패자와 승자를 만들어냈다. 코로나 사태로 한번 들쑤셔진 세상은, 편리한 방향에 맞추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카페인 경제

 

코로나 사태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우리는 여기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최악이 아닌 것 또한 사실이다. 적어도 서구 문명이 무너져내릴 것 같았던 3월에 비하면, 어떻게든 적응해서 살아가는 중이다. 최악만큼은 비껴간 것이다. 기업과 개인들이 코로나 시국에 익숙해져 감에 따라, 시장을 지배했던 공포도 서서히 잦아들게 되었다.

 

공포가 잦아들자, 반등이 시작되었다. 이미 바닥을 쳤으니, 지수가 반등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 폭과 속도다. 나스닥은 3월 말 저점으로부터, 지금까지 약 80% 이상 올랐다. 코스피 또한 1,400대까지 떨어졌던 지수가 2,800대까지 올랐다. 순식간에 종합지수가 저점에서 최고점으로 반등했다.

 

극적인 반등의 이면에는,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이 있었다. 앞서 연준과 미국 정부가 코로나 사태 초기에 취했던 조치들은, 공포가 한창일 때는 주목을 덜 받았던 것일 뿐, 효과가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공포가 한번 지나간 지금까지 그 효과가 강하게 남아, 금융시장의 인위적 상승을 부추긴 면이 있다. 졸음이 쏟아지는 초저녁에 마신 커피 한 잔의 각성효과로 밤잠을 못 이루듯이, 경기부양책의 부작용이 뒤늦게 금융시장 과열로써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 사태 초기, 미국 정부와 연준은 경기부양 삼신기라 할 수 있는 금리 인하, 양적완화 그리고 재정지출을 한꺼번에 다 때려 박았다. 앞서 말한 대로, 수년간 서서히 인상해왔던 기준금리를 단숨에 제로로 낮췄을 뿐만 아니라, 경기부양책으로 무려 3천 조를 썼다. 이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캡틴 아메리카 혼자서만 이렇게 돈을 찍어낸 것도 아니다. 지금까지 각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무려 1경이 넘는 돈을 경기부양에 썼다. 이는 지난번 2009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각국 정부가 쓴 돈의 10배가 넘는다. 이렇게 많은 돈이 풀렸고, 기준금리도 낮게 유지됐다면, 어떤 형태로든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기대했던 실물경제 회복보다도 금융시장 과열이 먼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에는 (1) 코로나 사태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매우 불균질적인 데 반해, (2) 정책들은 대부분 국민 모두를 대상으로 이뤄진다는 데 그 원인이 있다.

 

불균질의 불안

 

코로나19가 야기한 불균질한 경제적 영향은 매우 심각하다. 우리 집안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장인인 우리 부부는 소득에 비교적 타격이 작지만,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장인 장모는 소득이 아예 사라졌다. 코로나는 잔인하게도 약자에게 더욱더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사태 덕에 내가 받은 지원금과 장인어른이 받은 지원금의 액수는 같다. 어떤 사람에게 1,200불은 꼭 필요한 생계지원비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1200불은 주식투자자금일 수 있다. 기준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공급이 늘어났다는 조건 또한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낮아진 금리는,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자영업자에게 도움이 되겠지만, 주식투자나 부동산 투자를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도 도와준다.

 

현재의 금융시장 과열의 상당 부분은 저금리와 유동성 공급의 영향으로 봐야 한다. 지속적인 유동성 공급 속에 넘쳐나는 여유자금들이 저금리로 갈 길을 잃자 금융시장, 부동산 등으로 몰렸다. 그 의도는 분명 실물경제를 되살리는 데 있었으나, 금융시장이 실물 경제보다도 먼저 과열되어버린 상태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연준과 정부가 금융시장을 견제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섣불리 금리 인상이나 유동성 회수에 나섰다간, 자칫 취약 계층에게 전해지는 부담이 가중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 금융시장이 역대급 랠리를 기록할 수 있었던 데에는, (1) 시기적절하게 연준과 정부의 지원이 이뤄졌다는 점과, (2) 증시 회복 이후로도 (의도치 않게) 이때 풀려간 돈이 회수되지 않아, 그 영향이 금융시장 전반에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어떻게 모멘텀이 만들어졌는지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가령, 투자자들이 공포에 질려 주식을 던질 때 누가 그 주식을 사 갔는데, 어떤 종목 혹은 투자자가 반등을 이끌었는가 하는 문제 말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올 한 해를 빛낸 개인투자자와 IT주들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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