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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한복, 한글 등과 함께 태권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문화 콘텐츠로 선정되었다. 태권도라는 무예 종목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상품 중의 하나라는 사실은 무예인으로서 대단히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의 중심에 지금은 케이팝(K-Pop)이 있지만, 훨씬 그 이전에 코리아(Korea)라는 국호조차 생소하던 시절에 태권도는 대한민국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 태권도야말로 진정한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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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가 본격적으로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전후였다. 이미 세계 무술 시장은 뛰어난 파이터였던 최영의(崔永宜, 1923~1994) 선생에 의해 일본의 가라테(空手道)가 주를 이루고 있었고, 뒤를 이어 세계적인 액션 스타 이소룡(李少龍, 1940~ 1973)에 의해 중국의 쿵푸(Kung-fu)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그러나 동양 무술로써는 비교적 늦게 해외로 진출한 태권도가 점차 모든 무술들을 제치고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는 세계 태권도 인구를 약 1억 명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니 단일 종목으로는 최대 회원 수를 확보한 세계적인 무술이 된 것이다. 

 

이런 결과는 우리 문화로써는 태권도가 아마도 단군 이래 손꼽히는 최대의 문화상품이 아닌가 한다. 태권도가 한국을 대표하는 10대 문화 콘텐츠로 선정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면 세계시장에 늦게 진출했고 그 당시는 국력도 보잘 것 없었던 조그만 나라의 태권도가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무술 종목이 되었을까?

 

 

태권도는 어떻게 인기 있는 무술이 되었나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첫 번째는 태권도 사범들의 각고의 노력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태권도 사범들은 태권도를 전파하기 위해 언어도 잘 안 통하는 미국이나 유럽으로의 진출은 물론이고, 치안이 불안정했던 남미의 여러 나라와 저 멀리 아프리카의 오지까지 나가지 않은 곳이 없으니, 태권도 사범들의 피와 땀으로 인해 오늘날의 세계적인 태권도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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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진 사범이 에티오피아 어린이들에게 무료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태권도 사범들의 지대한 공헌과 더불어 태권도가 세계 제일의 인기 무술이 될 수 있었던 두 번째 이유는 어느 무술보다도 가장 빨랐던 태권도의 경기화라고 볼 수 있다.  

 

해방 후 태권도가 이 땅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던 1950년대부터 태권도는 겨루기 중심의 경기화를 실시했다. 그 이전에 다른 무술들도 겨루기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극히 제한된 경기가 있을 뿐이었다. 

 

유술기(柔術技) 계통의 무예와는 달리 항상 큰 부상의 위험이 뒤따랐던 타격기(打擊技) 계통의 무예들은 관원들의 보호를 위해 겨루기보다는 자세 위주의 수련을 했고, 겨루기를 하더라도 아주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본격적인 겨루기로 이루어진 경기대회는 활성화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태권도는 샅(낭심)보호대와 호구라는 몸통보호대를 착용하고 이런저런 경기 규칙을 만들며 태권도의 경기화에 주력했다. 보다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권투와 같이 선수들의 체중에 따라 체급을 나누고, 체계적인 심판 교육을 실시했으며 금, 은, 동의 시상방식 등과 같은 현대적인 경기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태권도가 이렇게 경기화를 시도하자 기존 동양의 전통무예들은 일제히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전통무예의 경기화는 무도(武道)의 품위를 추락시키고, 정해진 규칙 때문에 기술에 제한을 가져오며, 참된 정신수련보다는 승리에만 집착하게 만드는 등 한 마디로 무도의 정신을 해하는 짓이라며 비난을 했다. 

 

그러나 태권도계는 이런 비난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태권도 경기를 발전시켜 나갔다. 지속적으로 많은 태권도 경기를 진행하자 태권도 코치들과 선수들은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범들이 가르치지도 않은 여러 가지 뛰어난 기술들을 개발해 나가며 태권도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기 시작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모든 무술인들이 즐겨하는 뒤돌려차기(몸을 돌려 상대를 가격하는 발차기), 일명 회축도 태권도 경기에서 점점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발전시킨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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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회축을 하는 차동민 선수의 모습.

 

70년대에 회축을 시작으로 80년대에 팽이차기, 90년대에 나래차기 등 기존의 전통무술계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화려하면서도 효과적인 멋진 발차기 기술들이 쏟아져 나왔다. 한 마디로 그것은 태권도 경기화의 승리였다. 

 

이렇게 뛰어나고 멋진 발차기에 매료되어 세계적으로 태권도 열풍이 불면서 많은 사람들이 태권도를 수련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태권도의 경기화에 냉소를 보내던 다른 동양의 전통무예들도 부랴부랴 경기화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가라데도 본격적인 공식 경기를 만들어 태권도를 밀어내고 올림픽경기에 가입하려고 엄청난 노력 중이다. 특히, 스스로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며 품위(?)를 유지하던 중국의 전통무술들도 산타(散打)라는 격투기 경기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겨루기 경기화에 뛰어들었다. 

 

 

태권도의 발전을 막고 있는 요인

 

허나, 태권도가 경기를 통해 기술적으로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태권도의 원로들을 비롯한 많은 태권도인들은 아직도 태권도의 전통적인 원형 동작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면서 전통의 방식대로 움직이는 것이 태권도의 참된 동작이라고 믿고 있다.  

 

무릎을 깊게 구부리고 어깨너비보다 양발을 넓게 벌린 기마식(騎馬式) 자세에서 주먹을 지르면 다른 손은 반드시 허리에 붙이고 수련하는 기본자세부터, 앞발을 깊게 구부린 앞굽이 자세에서 발차기를 실시하는 등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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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식 자세에서 주먹을 내지르는 ‘정권 지르기’를 수련하는 사람들의 모습. 

 

빠르게 움직일 수 없는 넓고 낮은 보폭의 자세, 상대의 펀치(Punch)를 피하면 될 것을 굳이 막으려고 하는 몸통막기, 주먹을 지르고는 멈추어 서 있는 동작 등 전통적인 수련방식을 답습하며, 이렇게 움직이는 것만이 정통 태권도라고 강조하고 있다. 

 

잘 알다시피 태권도에는 품새라는 것이 있다. 품새는 태권도의 전형적인 틀이긴 하지만 이것은 일본 가라테의 카타(型) 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70년대에 들어 태권도에서는 한국형 품새인 태극 품새를 만들기는 했으나, 이 역시 가라테 카타(품새라고 이해하면 된다)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태권도의 기본 품새인 ‘태극 1장’만 보더라도 20여 개의 동작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중에 발차기는 단 2회만 나오며 나머지는 모두 손기술이다. 일본 무도는 손 기술 위주로 되어있지만, 태권도 선수들은 발차기를 위주로 경기를 하며 심지어는 손으로 인한 타격은 제대로 점수도 주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와는 완전 동떨어진 품새를 수련을 하고 있는 셈이다. 

 

▲품새 <태극 1장> / 출처-유튜브<빛나라태권키즈>

 

그러다보니 태권도의 경우 ‘품새 따로, 경기 따로’라는 이상한 수련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품새 수련이 경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니 태권도 선수들은 평소에 품새를 전혀 수련하지도 않다가 승단 심사 때만 심사에 맞는 품새를 며칠 동안 급하게 외워서 심사를 보는 기형적인 수련이 반복되고 있다. 

 

품새란 같이 연습할 상대가 없을 때, 가상의 적을 만들어 놓고 혼자서 수련할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현대적 의미로 본다면 이미지트레이닝(Image training)인 셈이다. 권투에서 가상으로 상대를 이미지화하여 혼자서 연습하는 섀도우복싱(Shadow Boxing)과 비슷한 것으로 보면 된다. 

 

다시 말해, 품새는 무용(舞踊)의 춤동작과 같이 예술적인 움직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전을 대비할 수 있는 수련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경기나 실전에 전혀 적용되지 못하는 품새를 여전히 가르치는 것은 태권도가 아직도 전통의 굴레에 갇혀 있다고 본다. 일본 무술과의 유사성도 강하고 실전에도 맞지 않으며 현대적 감각도 뒤떨어지는 것을 굳이 고집하며 태권도의 전통이라고 할 필요가 없다. 

 

이미 수많은 뛰어난 태권도 지도자들과 선수들이 셀 수 없이 많은 태권도 경기를 통해 빠르고 효과적인 스텝을 만들어 놓았고, 이를 바탕으로 태권도의 기술들은 엄청나게 발전하였다. 태권도 경기는 이미 체계적이고 실용적이며 멋진 무술 경기가 되었다. 좀 더 공정한 판정을 위하여 전자호구의 도입 문제와 데미지보다는 득점을 위한 발차기만 많이 하여 발 펜싱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이는 발전의 한 단계이고 과정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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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로마 'WT 월드태권도그랑프리'에서 경기하고 있는 이대훈 선수.

 

이제는 태권도가 경기를 통해서 이룩한 수많은 노하우(Know-how)를 바탕으로 그런 기술들을 충분히 활용한 현대적인 품새로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태권도의 품새가 전통의 굴레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심사에만 필요한 장식품이 아니고 가장 현대적이며 효과적인 동작들이 집약된 것이어서 권투 선수가 쉐도우복싱을 하듯, 태권도 선수들도 즐겨하는 수련 방법이 되어야 한다. 

 

지난 편 <변하지 않으면, 전통무예도 없다 링크>에서 필자는 배구 경기의 예까지 들면서 전통무예의 변화와 발전을 역설했다. 배구가 언더핸드 서브에서 점프 서브로 변화된 것처럼 태권도도 과감하게 과거의 전통적인 동작에서 현대적인 움직임으로 바뀌길 희망한다. 

 

태권도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룰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다른 부분들은 이미 많은 무예를 좋아하는 국민들 사이에서 많이 얘기가 되고 있어, 여기서 굳이 그 부분까지 다루진 않는다. 이 기사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논의되고 있는 품새에 초점을 맞춰 다뤄봤다.   

 

이 기사가 나가면 전통을 중시하는 태권도인들의 엄청난 반발과 공격이 예상되지만, 태권도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과감히 말하고자 한다. 태권도가 현재에 받는 사랑을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받으면서 세계인의 전통무예로 존재하려면 우선 품새부터 변화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