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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해군입니다

2010-04-0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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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하88 추천0 비추천0

2010.04.08.목요일


산하


 


 


772 함(艦) 잔류 병력 보고드립니다.


 





저희를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저희를 두고 나왔노라 머리를 쥐어뜯고 있을 동료들에게
저희 소식에 남의 일 같지 않아 가슴 죄고 계실 국민 여러분께 보고드립니다.  


저희는 해군입니다.
전투가 벌어지면 도망갈 곳도 없고
배가 깨지면 그 이유를 알 틈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거나 
바닷물에 쓸려들어갈 수 밖에 없는 해군입니다. 

그래서 저희는 저희의 귀를 찢는 국민 여러분의 귀환 명령에 응할 수 없습니다. 
배는 저희의 집이었고 성(城)이었습니다. 
반쪽난 배일망정 이 배가 떠올라 제 갈 곳을 찾아가기 전에는
우리는 귀환할 수 없습니다.  


열기로 가득찬 가스터빈실  
기름냄새 떠나지 않던 디젤엔진실 
눈알 빠질 것 같던 유도조정실  
일이 손에서 떠나지 않던 보수공작실

그 모든 곳에서 지금도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해군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몇 달 동안 우리를 품어 준 배가 깨졌습니다. 
1200톤 포항급 초계함이 두부가 썰리듯 반으로 잘려 나갔습니다. 
우리가 여지껏 물 속에 있는 것도 억울하지만 
갑갑하고 원통하고 슬퍼서 미칠 노릇이지만 
또 다른 어머니같았던 내 배가 반쪽이 난 지 열흘이 넘도록 
이유조차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허리를 꺾습니다. 


우리는 해군입니다.
대한민국의 해군입니다. 
배가 반으로 동강나고 우리 목전에 물이 차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위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파악하려고 기를 쓰면서 캄캄한 함내에서 신음하는 동료들을 부둥켜안고 
마지막까지 정신 차리라고 부르짖으면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물 속으로 빠져들어갔습니다. 


특별히 용감해서가 아닙니다.  별나게 군기가 들어서가 아닙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군대에서 훈련받고 임무 부여 받은 병사라면
누구나 그럴 것입니다
하물며 상황일지를 엉터리로 적는 일 따위는 있을 수 없고 
TOD 전탐병이 하필이면 상황을 놓치는 일이 발생할 수 없으며 
최전방 육해공의 촉각이 집중된 바다에서 일어난
우리 목숨같은 배의 최후가 기록되지 않았을리는 만무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두의 눈이 멀었을 가능성은 백령도 앞바다가 사막이 될 가능성보다도 적습니다. 
대한민국 군대 그렇게 엉성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 772함 천안함 승무원들입니다. 
우리의 최후를 정확히 알려 주십시오 
기밀은 드러나지 않아야 할 일을 감추는 일입니다.
드러나야 할 일을 감추는 것은 기밀이 아니라 은폐입니다. 
무엇이 천안함의 허리를 갈랐는지 
대체 어떤 이유가 야차처럼 자리하고 있었던 것인지 
해군 장병으로서
우리를 품은 배에 목숨을 걸었고 
그 배와 함께 사라짐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해군으로서 
우리는 그 이유를 알 권리가 있고 
알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귀환하라 귀환하라는 울부짖음에 가까운 국민 여러분의 명령
여전히 저희 귀를 때립니다. 
정겨웠던 천안함의 엔진 소리보다도 더 크게 들립니다. 
그러나 저희는 아직은 귀환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을 기억하시기 전에
우리의 미귀(未歸)를 애통해하시기 전에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명확하게 알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그 전에는 그 전에는  저희는 배를 떠날 수 없습니다.   
떠나도 떠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일련번호 722 천안함 소속 해군입니다.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로서

하나. 명령에 죽고사는 해군으로서
둘. 책임을 완수하는 해군으로서
셋. 전기를 갈고닦는 해군으로서
넷. 전우애로 뭉쳐진 해군으로서
다섯. 싸우면 이기는 해군으로서 

저희는 아직 배를 지키고 있습니다. 
저희의 조각난 배에 서린 의문 부호가 사라질 때까지 
저희는 이 배를 지킬 것입니다.   

우리는 해군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 해군입니다. 


원사 이창기    상사 남기훈    중사 안경환   하사 서승원   하사 장진선
중사 박경수    병장 이용상    이병 정철희   중사 신선준   중사 김종헌,
하사 박보람,   병장 이상민,   상병 김선명,  일병 강태민,  하사 심영빈
하사 조정규,   이병 정태준 ,  상병 박정훈,  하사 임재엽,  일병 조지훈
하사 김동진,   중사 정종율,   중사 김태석   상사 최한권,  하사 박성균
하사 서대호,   하사 방일민 ,  중사 박석원,  병장 이상민   하사 차균석,
상병 정범구 ,  하사 이상준 ,  병장 강현구,  병장 이상희,  병장 이재민,
상병 안동엽    일병 나현민 ,  하사 조진영,  하사 문영욱,  하사 손수민
일병 김선호,   중사 민평기,   중사 강준,     중사 최정환 , 중사 김경수 
중사 문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