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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09.금요일


다찌마와 FEEL


 


하이킥의 결말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가카의 독도발언, 천안함 사건 등 우울하면서도 슬픈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허나, 김병욱 PD 말대로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일상의 비극도 때론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잘못된 건 고쳐야겠지..(선거때 하련다.)


 


누구 말대로 인생의 희비극이 동전 한면 차이라고 하지 않나...  인생의 해피엔딩을 위해 모두 다 발악 하지만, 어차피 죽는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근데, 그 죽음이란 것을 어떻게 맞이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오늘 리뷰하게 될 두 영화는 극과 극의 인생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쪽은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는 비극을 겪었다면 다른 편은 절망의 늪에서 우연히 내려온 금 동아줄 잡은 꼴이라 해야 할까? 누군가에겐 영원히 끔찍한 기억으로 남는 비극. 한편으로는 희망을 이야기 하는 희극. 희비극이 이리저리 오가는 우리의 인간사가 담겨져 있는 것이 이 두 작품의 공통점 이다.


 


두 영화들은 유형상 극과극의 위치에 있기에 각각 지지자들이 많은 편이다. 반대 하는 거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영화에 대한 평가도 독자 제위들의 냉정한 시각으로 판단했으면 한다.



 


 


1.작은 연못


 





 



영화는 이미 알려진 정보대로 6.25가 일어난 와중에 벌어진 1950년 7월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에 있었던, ‘노근리 철교 학살 사건’ 을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촬영은 2007년에 끝났지만, 여러 사정 끝에 이제야 개봉한다. 하여튼 자본의 논리가 영화판에까지 뻗은 이 드러운 세상~~~


 


어쨌건 이제야 개봉하게 된 작은 연못은 주 조연 할것 없이 모든 배우들이 노 개런티로 출연한 영화다. (송강호의 등장은 그 점에서 참 반갑다.) 기존 계획된 제작비의 4분의1밖에 투입 할수 없었고, 소재와 영화 의도 또한 배급사와 극장의 입장에서 찜찜하게 보였는지 배금과 상영에 비협조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마 이 사건이 처음 대대적 으로 뉴스로 알려 졌을 때가 필자가 철없이 휴식 시간과 방과후에 공부 대신 공만 차던 중학교 때였던것 같은데, 당연히 공만 차고 다녔으니 자세히 알려고 했겠나... 철없이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으로 살았던 그때와 달리 지금이라도 이렇게 다시 언급함으로써 나와 같은 사람들 에게 관심을 갖게 해준다면 영화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영화의 원작이 3편의 책들로 구성되었을 정도라면 나머지 사료들도 그에 못지 않게 방대 했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이젠, 문제는 ‘어떻게 이 영화를 만들 것이가?’ 이다. 사실 필자, 이 사건 영화화 한다는 소식에 내심 기대도 했었다. 근데 그 기대가 좀 허세적인 기대였다. 뭐랄까? 이왕 만들어졌으면 하는거 헐리웃 과 함께, 합작을 해보는 게 어떨까 싶었다. 일본 애들이 한때, 태평양 전쟁 소재 영화들인 <도라도라도라><전장의 메리크리스마스><유황도에서 온 편지>을 합작한 것처럼 만든다면 우리 영화도 좀 해외로 크게 알려지지 않을 까란 기대 아닌 기대도 했었다......


 


말로는 이를 통해 우리의 아픔을 세계인과 함께 공유하면서 평화를 이야기 하는 반전 영화로 널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우리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야 한다>는 마인드와 같은 거랄까? 우리 영화가 언젠가 세계 3대 영화제 나 아카데미 외국어 상을 수상해야 한다는 어딘가 모를 1등주의 마인드가 이 분야에도 알게 모르게 존재하니 말이다.


 



...씨빠 나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보다.


 



이런 생각과 함께 스필버그의 <뮌헨>처럼 본 사건 후에 이어지는 숨겨진 사건들을 통한 테러의 후유증과 타인들의 시선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되돌아 본다는지, 폴 그린그랜스 의 <블러디 선데이>처럼 리얼한 영상을 통한 철저히 주관이 배제된 채 관찰자 적 시선으로 사건을 정의하면서 방향을 불러 일으킬 작품으로 할지... 에이젠슈타인의 <전함포템킨>에서의 오데사 계단 학살 장면과 같은 의미 심장한 컷들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아닌 기대를 했었다.


 



<더도 말고 요렇게 만들어지나 했다.>


 



.....그래서 이렇게 허세적 시각으로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작은 연못>은 실망으로 다가 올수도 있겠다. <작은 연못>은 소박하면서도 순수한 영화다. 영화는 주 배경인 노근리의 경계를 절대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소박한 마을의 분위기로 시작해서 마지막도 소박하게 끝내듯 특유의 소박한 정서와 분위기를 버리려 하지 않는다.


 


내가 아닌 사건 당사자인 생존자들과 타인들이 느꼈을 아픔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제작사에게나 감독에게나 위험한 시도이다. 그토록 유명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이 완성되고 나서 현실을 왜곡했다며 법정소송과 분쟁 등 또 다른 아픔을 남겼던 사례는 수없이 많았다. 아마 그 점에 있어서는 감독의 양심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가 아무리 이 사건을 자신의 시각을 통해 걸작으로 만든다 해도 유족과 증인들의 시선을 조금이라도 왜곡 하거나 쓰라리게 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과 죄책감은 매우 클 수도 있다. 그만큼 필자 와 같은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려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 사건을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거다.


 




<고고 70도 당사자들이 왜곡이라며 소송 걸 정돈데...>


 



<작은연못>은 철저히 우리의 시각, 아니 당시 사건의 생존자들의 시각과 증언을 영화로 극화해 가상의 캐릭터들이 연기하며 진행된다. 즉, 사건의 장본인인 미군은 영화 속에서도 장본인으로 등장하는데, 그들의 시선은 배재되었다. 그렇다고 “그때 왜 그랬냐?”라고 따지려 하지도 않는다.


 


오직 한국적 정서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인들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이끌게 되면 영화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나 생각되겠지만, 영화는 피해자들의 시선을 끝까지 유지함으로써 전쟁이 아무 상관 없는 민간인들에게 주는 실제적인 피해가 얼마나 끔찍한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보면 게오르규의 소설 ‘25시’에 더 가까운 듯 하다.


 


<내 마음의 풍금><화려한 휴가>로 넘어가게 되는 상황이라고 할까... 초반의 순수함과 소박함을 본 관객들이 곧 이어지는 기습적 학살 장면을 맞이하게 되면, 그 다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대략 30~40분 정도 이어지는 학살 장면과 처절한 생존의 몸부림을 통해 관객을 피해자들의 아픔과 동화 시키려 한다.


 



그 점에 있어서 학살장면을 보면, 고증과 생생한 현실적 화면을 통해 보여주는 공중과 육지의 폭격씬 은 어느 정도 <블러디 선데이>, <전함포템킨>등의 정석들을 어느 정도 차용한듯 보인다. 물론 현장감의 정석이 된 핸드헬드(들고찍기) 는 이젠 기본이 되었고, 폭격 속의 한 가운데에 어린 아이를 세워둔 씬은 새롭지 않지만, 나쁘진 않다. (굳이 비슷한 게 있다면, <화려한 휴가>의 금난로 학살 씬...)


 



이 아픔을 진정으로 느끼고 이에 참여하고자 한 관객이라면, 과연 얼마나 동화될지는 관객의 몫이다. 단순한 메시지나 울림을 원했거나 실험적인 시도를 원했다면 그런건 기대하지 마시라... 전자에서 언급했던, 사건 영화들과도 비교도 하지 않는게 좋다. 감독은 폴 그린그랜스 가 아니다. 능력 없다는 말이 아니라... 감독은 야심 없이, 사건을 조금이라도 왜곡하려고 하지 않는 데 중점을 두며 있는 그대로 그들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진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


 



원작 제목과 같은 이 물음은  한국 현대사의 잊혀진 사건들과 지금의 용산참사, 천안함 참사 들과 우리의 외면으로 인해 앞으로 발생할 사건과 참사들이 우리에게 계속 묻게 될 질문이다. 또한 누군가 에겐 평생 짊어질 짐일 테고...


 




<그 누군가와 난 취향도 똑같다. >


 



ps1. 고(故) 박광정의 등장은 참 반가웠다.


 



ps2. 이 영화는 필름 구매행사를 하고 있다. 행사에 참여하면, 영화 시작 전 10초 동안 구매를 한 사람들의 이름이 뜬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찾고 싶은 사람은 홈피에 가보면 알 수 있다 한다.


 



ps3. 출연진 명단에 문소리와 유해진이 있었는데 필자는 보지 못했다. 혹시 본 사람?


 



ps4. 이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박찬욱 감독은 인혁당 사건을 영화화 한다고 했었다. 꼭 만든다 했는데 이번 작품을 통해 기대해 볼 수 있을까?


 



ps5. 순수하게 제작을 지원해준 분들이 많다고 하니 끝나면 박수한번 쳐 주시길...갠적으론 영화의 제작과 CG를 아낌없이 지원하고 담당한 모팩 스튜디오장성호 대표에게 쳐주고 싶다.


 



ps6. 시사회 때는 영화가 끝난 후 영화의 제작과정을 담은 7분 짜리 다큐가 상영된다. 일반 상영에도 나올지 모르겠으니 끝까지 앉아 보시길... 싫음 말구.












 


               



<작은연못 예고편>


 


 


2.블라인드 사이드


 





 



한편, 사건의 장본인들이 사는 USA 산(産) 실화 영화가 같은 날 개봉하니, 그 주인공은 NFL(미식축구리그) 팀인 ‘볼티모어 레이븐슨’ 에서 태클 포지션을 맡고 있는 마이클 오어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동명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 ‘블라인드 사이드’ 이다.


 


무엇보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여러 기사들을 통해 들은 바대로 산드라 블록이 오스카상의 패러디 격인 최악의 영화 시상식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에서 <올 어바웃 스티브>로 최악의 여우주연상을 직접 방문하여 수상한데 이어 다음날 82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안겨주어 하루만에 인생역전을 시켜준 영화이다.



 


주인공인 155kg이 넘는 18살의 흑인 거구 청년 마이클 오어 또는 빅 마이크(퀸튼아론)가 레이 앤 (산드라 블록) 가족의 헌신적인 도움과 무한한 애정을 통해 변화되게 된다는, 구차할 수도 있는 이상적인 이야기가 영화의 줄거리다. 하지만 이게 실화 라는 점에서 좀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다.


 



(1) 잔잔한 분위기에 유머가 많은 영화


 


영화는 마이클 루이스의 동명소설 <The Blind Side Evolution of a Game>에 바탕을 두고 만들었다. 원작이 어떤 분위기로 쓰여졌는지는 읽어봐야 알겠지만, 일단 이 영화는 지금의 사회 분위기 상으로 볼 때, 잔잔해 보이면 서도 안정된 영화다.


 


아마도 이 영화의 연출방식과 이야기 진행에 90년대 미국식 가족 영화의 전형적인 정서가 베어 있기 때문이다. <나홀로 집에>, <개구쟁이 데니스>, <케빈은 12살>등과 같은 가족영화와 TV물 류 의 영향을 받은 지금 세대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와 설정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한 정서는 영화 내내 이어지는 유머러스한 장면들에서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유머 방식이 독창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진부하게 설정된 것 같은 잔 유머들은 자칫 우울하고 심각할 수 있는 영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요소로 작용한다. 미국식 유머 중에서도 특히나 가족영화에 많이 적용되는 개구쟁이 꼬마 아이 유머가 주축이 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가족 코미디물 같은 느낌이다.



 



<요 꼬마의 입방정을 가만히 감상하시라. >


 



영화를 이끌어가는 잔잔한 정서적 분위기속에서도 이러한 잔 유머들이 잘 활약하고 있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마이클의 어두운 과거 장면이 몽타주처럼 작용하며 마이클의 또 다른 면을 부각시켜주려 하지만, 영화의 기존 분위기 에는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마이클 오어란 캐릭터가 실제로도 이랬는지 모르겠지만, 방황하고 떠돌고 다니는 친구치고는 꽤 침착하면서도 덩치에 비해 순수하면서 조용한 면이 강한 쪽으로 설정한 것도 영화의 잔잔한 분위기에 부합하고 있다. 이 분위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 될 수 있는 것은, 영화가 내내 보여주는 가족들의 무한한 애정이 한 몫 하지만 또 하나의 정서적 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 기독교 사회에 대한 실천적 메시지


 


이 영화가 갖고 있는 틀은 뜻밖에도 기독교적이다. 영화는 미국인들의 기본적 가치관인 크리스천주의(Christianism)를 초반부터 언급하며 건드리기 시작한다. 초반부 풋볼 코치의 발언과 마이클과 레이의 가족들이 다니는 크리스천 학교와 레이 앤의 대사 부분들이 이러한 점을 내포하고 있다.


 




<학교 교문 앞 글씨. 기억 안 나지만 대충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다.>


 



때로는 이러한 얌전해 보이는 기독교식 정서가 영화가 좀더 일탈 할 수도 있었던 설정들을 막게 되지만, 오히려 감독이 의도하는 계몽적인 의도가 눈여겨지기도 한다. 특히나 흑인들이 사는 슬럼가와 백인 상류층이 사는 동네를 보여주는 장면과 흑인 학생이 처음 들어 왔다며 의아해 하는 크리스천 학교 선생들의 반응으로 볼 때, 계층적 갈등을 표현하고 있는게 영화의 특징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사회적 문제를 심각하게 언급하려 하기보다는 상류층에게 기독교적인 정서를 통한 자기 반성과 실천을 촉구하고 있다. 즉, 계층적 갈등은 만든 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이며 어떻게 바로 잡을 수 있는지를 기독교 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려 하고 있다. 아마도 레이 앤이 보여준 행동이 기독교의 아가페(조건없는 절대적인 사랑)적 사랑과 닮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듯 하다. 이러한 정서가 가족영화의 틀과 함께 형성 되었기에 보수적 가치관의 미국 관객들의 기준에서 영화는 한없는 건전영화 이고, 온 가족이 볼수 있는 편안한 영화였기에 별다른 제약 없이 볼수 있었을 거다.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흥행 이익을 벌어 들인 영화다.)





아마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같은 경제 위기 상황일수록 가족주의 강조하려는 경항도 함께 하지 않았을까? 그 점에서 블라인드 사이드는 사회 계몽적인 교훈 영화로 보였을 것이다. 물론, 이런 정서가 비 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주거나 영화 감상을 방해 하는 요소는 절대 아니다. 다만 '틀'이라는 것을 전제로 할뿐, 일반적인 헐리웃 식 가족 드라마가 영화의 기본적인 스타일이다.


 



<요런 거와 정서가 180도 다르니 안심할 것.>



 


 


(3)But...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자면 소재에 비해 동화스러우면서 지나치게 가족영화 관람등급을 추구하려고 한 것이 문제였을까? 현실에 비해 지나치게 가볍게 다루고 있지 않나 생각되는 부분들이 많으며 생략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일단 이 영화의 결정적인 문제는 전체적으로 영화의 정서적 분위기를 잘 유지해온 유머에 있다. 때론 우울한 분위기를 막아줬던 이 유머는 후반으로 넘어갈수록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위에서 말했듯, 영화는 레이 앤 가족의 막내 꼬마 캐릭터가 유머를 이끌어 내어 한층 흥겨운 분위기를 이끌어 내지만, 요 녀석을 중점으로 둔 유머가 너무 늘어나면서, 드라마적인 정서를 느끼는 시간은 줄어든 것 같다. 결국 유머가 감동을 앞지른 상황인데, 그 설정은 영화의 조연으로 등장하는 케시 베이츠가 마이클에게 농담을 하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장면이 왜 나한텐 이상하게 ‘맨발의 기봉이’에서 김수미 아줌마가 “전구에 불이 안나와서...” 하는 식의 유머와 연상 된건 왜 였을까?)


 


 




<뭣이여?>


 


 



또한, 영화 특성상 굳이 하류층와 상류층의 계층간 문제를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만, 그래도 소재상 조금이라도 건드릴 필요가 있었지 않았을까? 아무리 레이 앤 가족이 착하고 헌신적 으로 마이클을 지원해왔어도, 아버지를 한 번도 못 보고 마약 중독 어머니와 슬럼가에서 살아온 소년이 전혀 다른 환경을 맞이했을 때에 벌어진 혼란과 갈등이 없었을까?


 


그래서 이 영화는 하드할 수 있는 분위기를 현실과 다르게 너무 밝게 마냥 소프트 하게 이끈 것 같다.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만, 적어도 영화로 만들어진 이상 어느 정도 영화적 요소도 고려해 봤으면 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요런 생각을 한 내가 나쁜 넘이 겠지만..) 원작소설도 과연 이렇게 영화 마냥 밝은 분위기로 진행되지는 않았을 거라 본다. 그런지 아닌지는 나중에 국내 발매가 된다면 읽어봐서 확인해야 겠다.


 



영화는 걸작까지는 아니어도, 가족의 날 4,5월에 가족과 연인이 봐도 무방한 편안한 가족 영화라는 점을 밝혀 두는 바다. 요즘 같은 분위기에 좀 활기를 찾고 싶다면 이런 영화를 봐주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두 실화 영화는 같은 날인 4월 15일날 개봉한다.


어쩌면 지금의 현실을 볼 때 이 두 영화들은 연결이 되어 있는 듯하다. <작은연못>과 같은 타인의 아픔과 슬픔엔 <블라인드 사이드>와 같은 무한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


 



<블라인드 사이드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