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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와 공부하기(2)

2010-04-08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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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4.9.금요일

 

먹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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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이와 공부하기(1)

 

 

 

 

 

 

 

 

 

 

 

 

 

 

 

"뭐부터 해야 돼요?"

 

 

 

 

 

나영이는 앉은뱅이 책상을 펴고 책과 노트를 올려놓았다. 샤프를 째깍거리면서.

 

 

 

 

 

“일단 국어. 여기 봐봐.”

 

 

 

 

 

국어 교과서는 1-2였다. 이중섭에 대한 일대기가 첫 장이었다.

 

 

 

 

 

“이 글을 읽어.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 단어를 동그라미 쳐 놓고, 노트에 옮겨 적어. 다 하고 나면 내가 그 단어들을 설명해줄게.”

 

 

 

 

 

“어디까지 해야 되는데요?”

 

 

“그럼 우선은 1장만 하자. 여기 2장… 요전까지가 1장이야. 모르는 단어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보고.”

 

 

 

 

 

“알았어요.”

 

 

 

 

 

 

 


나영이는 국어 교과서를 손바닥으로 눌러 펴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하기론 나영이가 무언가를 읽는 모습은 이게 처음이었다. 아이들은 하루종일 인터넷을 했었지만 뉴스 같은 것은 보지 않았었다. 구어체와 이모티콘 투성이고 내용은 극히 짧은, 미니홈피 따위에 있는 신변잡기류만 읽었을 뿐이다. 내가 가출소녀 글을 게재하면서 읽어보라고 했을 때 나영이는 거절했다. 굳이 사이트의 글을 읽게 했을 때에도, 얼마 못 가 쓱 내려버리곤 댓글 몇 개만 읽었다.

 

 

 

 

 

“어른들은 어려운 말만 쓰는 줄 알았는데, 욕 쓰는 사람도 많네요?”

 

 

 

 

 

나영이의 반응은 그 정도였다. 그런 나영이가 지금 국어책을 읽고 있다. 내 입장에선 너무나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구 허리야. 아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나영이는 허리를 두드리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20분쯤 지났을 때였다.

 

 

 

 

 

“다 했어?”

 

 

“아직요. 모르는 말이 너무 많아요.”

 

 

“일단 시켰던 데까진 하자. 시간 얼마 안 지났어.”

 

 

“알았어요.”

 

 

 

 

 

나영이는 입을 삐죽 내밀면서도 다시 책을 읽었다. 그렇게 해서 한 시간 가량을 끝내 채웠다.

 

 

 

 

 

“아이구야. 다했어요.”

 

 

 

 

 

나영이는 벌러덩 뒤로 누우며 한마디 내뱉었다.

 

 

 

 

 

“수고했네. 어이구. 어디 보자.”

 

 

 

 

 

나영이가 교과서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노트에 써놓은 단어를 살펴보았다.

 

 

 

 

 

“오산학교… 이런 건 고유명사야. 따로 안 써도 돼.”

 

 

 

 

 

“고유명사가 뭐에요?”

 

 

“사람 이름, 도시 이름 같은 건데, 이런 건 가리키는 게 하나밖에 없거든. 나영이는 너밖에 없으니까 ‘나영이’는 고유명사지. 근데 샤프는 여기 있는 것도 샤프지만 문방구에 있는 것도 죄다 샤프라고 부르잖아? 그러니까 샤프는 고유명사가 아니야. 그런 건 일반명사라고 해.”

 

 

 

 

 

“어 들어본 적 있는 거 같은데.”

 

 

“그치? 그러니까 고유명사는 그냥 그런 거구나 하고 넘어가면 되고, 여기 쓸 필요는 없어.”

 

 

 

 

 

“알았어요.”

 

 

“’독창성’은… 새롭고 색다르다는 뜻이야. 남들하고 똑같지 않고 그 사람만 가진 개성이 있다는 거지. 가령 다들 미니홈피가 있어도 특히 잘 꾸며놓는 사람이 있잖아? 스킨도 잘해놓고 노래도 잘 깔아놓고…”

 

 

 

 

 

“도토리가 있어야 하죠. 전 도토리 없어서 안돼요.”

 

 

“도토리 있다고 해도 다 똑같은 건 아니잖아? 니 주위에도 그런 애 있지 않니?”

 

 

 

 

 

“그거야 그렇죠. 아는 언니 있는데 사진 진짜 잘해놨어요.”

 

 

“그래. 사진도 그렇지. 셀카도 잘 찍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거잖아.”

 

 

 

 

 

“음음, 알겠어요. 새롭고... 색다르다...”

 

 

 

 

 

그렇게 노트의 단어들을 설명해주면 나영이는 그걸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아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스트레스 받는 줄 몰랐어.”

 

 

 

 

 

노트에 써놓았던 단어 설명이 끝나자 나영이는 대자로 뻗어 누우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시켜서 하는 거 아니잖아. 니가 하겠다고 해서 내가 도와주는 거야.”

 

 

 

 

 

맘속으론 한 시간 동안 떠들며 가르친 내가 더 힘들다고, 쉬운 단어 가르치는 게 훨씬 힘들다고 생각했다. 해본 사람은 안다. 어려운 문제보다 쉬운 것 설명이 힘들다는 걸. 하지만 나영이에게 말해봤자 소용 없는 일이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가르쳐줄 때마다 투정까지 받아줘야 한다면 꽤나 속상한 일이다.

 

 

 

 

 

“잠깐 쉬고 수학 해야지.”
“또요?”

 

 

 

 

 

나영이의 눈이 똥그래졌다.

 

 

 

 

 

“이거 길게 하는 거 아냐. 학교에서 수업할 때에도 50분 정도 하고 10분 쉬고… 그렇게 하잖아? 여러 과목 하는 것도 아니고… 수학을 꼭 해야 되는지는 나도 모르겠다만 니가 도와달라니까 그렇게 하는 거야.”

 

 

 

 

 

“그래도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오랜만에 해서 그런가? 수업시간보다 더하는 거 아닌줄 아는데 무지 힘들어요.”

 

 

“그래서일 수도 있지. 어쨌든 한 과목에, 하루 한 시간은 해야 되지 않을까? 난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설명하는 시간 더하면 두 시간은 되잖아요.”

 

 

 

 

 

나영이 말에 갑자기 울컥했다. 지금 따지는 거냐? 어쨌든 참았다.

 

 

 

 

 

“니가 혼자 공부할 수 있으면 괜찮은데, 그게 힘드니까 내가 필요한 거고, 그 때문에 시간이 더 드는 건 어쩔 수 없어. 무엇보다도 니가 습관이 들지 않으면, 한번 시작해서 한 시간 정도는 눌러 앉아 버릇하지 않으면 공부를 시작할 수가 없어. 사실 검정고시를 봐도 그렇고, 학교 다니는 애들이 수업 말고도 공부하는 시간이 있잖니? 만약에 수학까지 이렇게 해서 하루 4시간이라고 치자… 과목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정도 시간을 공부하느라 앉아있겠다는 게 중요해. 지금으로선 내가 도와준다고 하면 그런 습관을 들게 하는 거야.”

 

 

 

 

 

“진짜 학생들이 그 정도로 공부해요?”

 

 

 

 

 

“4시간만 하겠니? 하지만 너한테 그렇게 시킬 생각은 없어. 나도 어렸을 때 진짜 싫어했던 게 무작정 공부 시키는 거였거든. 다만 니가 하겠다니까, 나는 과목 하나 할 때 한 시간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고, 니가 단어 찾고 있을 때엔 내가 뭘 해줄 수 없으니까 그 다음에 설명해야 되는 거고…”

 

 

“알았어요. 그럼 수학 다 하고선 놀아도 되죠?”

 

 

 

 

 

이 부분이 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나영이는 하루종일 컴퓨터 게임을 했다. 늦게 일어나 새벽까지 컴퓨터만 한다. 여기에 계속 신경쏟는 아이가 공부를 계속할 수는 없다.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것도 본인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강요한다고 바뀌진 않는다.

 

 

 

 

 

“컴퓨터도 줄여야 돼.”

 

 

“아 왜요.”

 

 

 

 

 

나영이는 불만어린 표정을 지었다가 말했다.

 

 

 

 

 

“자꾸 딴 데 신경 쓴다고 그러는 거죠? 전에도 말씀하셨던 거 같은데.”

 

 

다행히 나영이는 전에 아이들 있을 때 했던 얘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뭔가 바뀌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던 거다.

 

 

 

 

 

“기억하니까 다행이다. 솔직히 내 맘대로 한다면 당장 미니홈피 따위는 탈퇴하고, 네이트온 끊는 게 맞다고 생각해. 학생들이 무조건 그래야 된다는 건 아니지만… 너는 그쪽에 너무 습관이 들어버렸단 말이야. 조절할 줄을 몰라. 니가 뭐 학교서 1등하는 그런 공부할 건 아니니까, 또 심심하기도 할 테니까 컴퓨터를 무조건 안해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아. 다만 우선 눌러앉는 습관이 없다는 게 문제라서, 지금 시기엔 줄이는 게 낫다는 거야. 그리고 싸이나 네이트온에서 사소한 거 갖고 싸우고 악플 달고… 친구들이랑 이런 게 너무 많잖아? 니 생각에도 그게 중요한 일이라곤 생각 안 들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어느 정도나 해야 되죠?”

 

 

 

 

 

“하루에 한 두 시간?”

 

 

“에엑? 그렇게는 못해요.”

 

 

 

 

 

나영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

 

 

 

 

 

“아 그 정도론 게임할 시간도 안 돼요.”

 

 

“그렇게 얘길 했는데 게임을 꼭 몇 시간이나 해야 되겠어?”

 

 

 

 

 

“해야 돼요.”

 

 

 

 

 

나영이의 얼굴이 조금씩 굳어져갔다.

 

 

 

 

 

“그럼 어느 정도 했으면 좋겠니?”

 

 

 

 

 

“… 새벽 두 시까지?”

 

 

 

 

 

“뭐야, 그건 줄인 게 아니잖아.”

 

 

“세네 시까지 하던 거 줄인 건데요?”

 

 

“내가 줄곧 열두 시나 한 시까지는 자야 된다고 했잖니. 안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고.”

 

 

 

 

 

“컴퓨터도 줄여야 되고, 자는 시간도 그렇고, 이럼 너무 힘들어요.”

 

 

 

 

 

“이거 너가 하자고 해서 하는 거야. 내가 시키는 게 아니라고. 새벽까지 컴퓨터하는 건 공부 안하더라도 좋은 일이 아니잖아.”

 

 

“… 일단 알았어요. 좀 해보고요.”

 

 

 

 

 

일단은 휴전이었다. 그걸 가지고 힘들다고 하면 안된다고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참기로 했다. 도와달라고 했으니 도와주는 것만 생각하자.

 

 

 

 

 

수학 공부도 기본적으론 국어와 같았다. 수학 맨 처음에 있는 단원은 집합이다. 합집합, 교집합, 여집합 등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야 한다. 원소나열법이 무슨 말인지 모르면 진행을 해나가기 어렵다. 일단 용어들은 앞장에 따로 정리해놓은 후 복습하도록 시켰다. 그리곤 기본적인 문제를 풀어주고 예제를 풀어보게 하는 식으로 진도를 나갔다.

 

 

 

 

 

나는 왜 나영이가 수학을 하려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현실 생활과 가장 연관성 없게 느껴지는 것이 수학 공부니까 말이다. 어쩌면 나영이는 그나마 수학 점수가 좋았던 기억이 있는 게 아니었을까. 아니면 뭔가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 가장 강해서 그랬던 걸까. 어쨌든 나영이는 수학 공부를 굉장히 힘들어했다.

 

 

 

 

 

수학을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는 현실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 관념의 세계가 수학이다. 직접 경험만으로는 그걸 배울 수가 없고, 그러다 보면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세계를 유추해내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어떻게 보면 나영이에게 제일 필요한 영역일 수 있다. 나영이가 모르는 단어는 대부분 추상적인 개념들이다. 이를테면 ‘독창성’도 그렇고, ‘일시적’도 ‘능동’도 그랬다. 본 적도 없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배우는 일은 당연히 고통스런 인내를 수반한다.

 

 

 

 

 

훨씬 나중 얘기지만, 나영이에게 구구단의 비유를 해준 적이 있었다. 구구단을 외게 시킬 때, 아이들은 그게 뭐에 도움이 되는 지 전혀 알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곱하기의 원리와 구구단의 효용을 모두 이해시킬 순 없다. 그때엔 무조건 외는 수밖에 없고, 그게 자신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선생님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구구단이 뭐에 도움이 되는지 이해하려면 먼저 구구단을 다 외워야 한다. 나영이에게 이게 좋다 저게 나쁘다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설명해주겠지만, 니가 지금은 완전히 이해가 가지 않더라도, 나를 믿는다면 구구단 욀 때처럼 일단 하는 게 먼저라고 나는 나영이에게 얘기했었다.

 

 

 

 

 

생각해보면 나영이에겐 관념적인 어휘들, 집합, 책상에 눌러 앉는 습관, 싸이와 네이트온 끊는 일 등등 모두가 구구단과 같았다. 왜 그래야 되는지를 나영이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고, 스스로 인내하지 못할 때엔 약간의 강제력도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론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했기 때문에 나영이는 자신을 바꾸기 위해 어느 정도 인내가 필요하다고는 알고 있었다. 문제는 참기 어려울 경우다.

 

 

 

 

 

“30분만 하면 안돼요?”

 

 

 

 

 

공부를 시작하고 나흘쯤 지났을 때, 나영이는 굳은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었다.

 

 

 

 

 

“왜?”

 

 

“너무 스트레스 받아요. 컴퓨터도 더 하고 싶어요.”

 

 

“왜 이렇게 하는지 얘기 했었잖아.”

 

 

“아는데요. 이해하는데요. 근데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요. 하기 싫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공부하기 싫니?”
“네.”

 

 

 

 

 

다시 정적.

 

 

 

 

 

“니가 하자고 시작한 거 알지?”

 

 

“알아요.”

 

 

“근데 이젠 하기 싫다?”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그럼, 어떻게 하고 싶어?”

 

 

“공부 안 할래요. 그냥 컴퓨터만 할 거에요.”

 

 

 

 

 

나영이는 딱딱하게 답했다.

 

 

 

 

 

물론, 물론… 나는 학교 선생도 아니고, 꼭 한 시간씩은 해야만 된다는 법도 없다. 나영이는 며칠을 꾹꾹 참았는지도 모른다. 그걸 칭찬해줄 수도 있다. 문제는 도와주겠다는 사람에 대한 태도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의 책임을 돌린다. 자신의 잘못 때문에 생긴 스트레스를, 그 잘못을 지적한 사람 때문에 생겼다고 착각하는 거다. 그렇지 않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어느 순간 화가 나기 시작하면 앞뒤를 가리지 못한다.

 

 

 

 

 

화난 사람과 이유를 따지면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우선은 물러서서 우회로를 찾아야 한다.

 

 

 

 

 

“알았어. 좀 있다 얘기하자. 니가 싫다면 나도 할 수 없지. 일단 알았어.”

 

 

 

 

 

나영이는 아무 말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나는 거실로 나와 담배를 한 대 피웠다. 답답하다. 환기구가 닫힌 느낌, 만성두통. 묻어놓은 물음이 다시 스물스물 기어 나온다. 젠장, 뭣하러 이 꼴을 당해야 하나?

 

 

 

 

 

 

 


아니다. 나까지 감정적이 되면 결말은 뻔하다. 차분해지자.

 

 

 

 

 

나영이에게 옳은 일이라고 믿는다면 약간의 강요는 괜찮은 것일까? 가령,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다고 겁줘도 되는가? 치사하고 권위적이더라도?

 

 

 

 

 

누군가 답을 내려줬으면 좋겠다고 수없이 생각했었다. 권력의 행사 자체가 악은 아니다. 처음부터 무조건 악한 건 없다. 그러나 내가 권위의식을 느끼고 있고, 약자에 대한 권력 행사에 죄의식을 느낀다면 그건 악이다. 알면서 행하는 건 양심에 어긋난다. 그리고 아무도 이 상황에서의 판단을 대신할 수 없다. 도와줄 때엔 대가를 바라지 말아야 한다. 처음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사줄 때 그랬던 것처럼.

 

 

 

 

 

나영이에 대한 기대가 있다. 옳은 길로 들어섰으면 하는. 그 기대에 의존해 행동하는 건 나영이에게 나쁜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기 힘들다. 하지만 행동이 나영이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욕심 때문에 시작되고 계속돼선 안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핑계로 남을 억압한다. 다 너 잘되라고 이런다고. 그리고 억압에 적응한 사람들은 자기를 바른 길로 이끌어준 웃어른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으로 다시 억압을 시작한다.

 

 

 

 

 

이 순환의 고리에는 끼어들고 싶지 않다. 선생으로서 공부하라고 다그칠 순 있어도, 같이 있기 힘들다는 건 다른 문제다. 별개로 생각하자. 어쨌든 나영이 스스로가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담배 한 대 피우자.”

 

 

 

 

 

나는 방안에 있던 나영이를 불렀다. 나영이는 아무 말 없이 나와서 담배를 물었다.

 

 

 

 

 

“니가 싫다면 어쩔 수 없지. 그래.”
“기분 나쁘게 하려던 건 아니에요. 죄송해요.”

 

 

 

 

 

나영이가 입을 열었다.

 

 

 

 

 

“그냥 전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으니까, 자꾸 컴퓨터만 하고 싶구 그래요.”

 

 

“알았어. 나 억지로 시키려는 거 아니야.”

 

 

“… 정 그럼 30분만 해요. 조금만.”

 

 

 

 

 

나영이는 타협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니 생각을 알았으니까 그건 해도 소용없어. 니 마음은 지금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는 거지 30분을 하고 싶다는 게 아니잖아? 30분을 해도 스트레스는 또 생기겠지. 그때도 시간 줄일 거니.”

 

 

 

 

 

나영이는 후우 하고 담배연기를 내뿜었을 뿐 말이 없었다.

 

 

 

 

 

“만약 공부를 하고 싶다면, 그리고 그걸 도와달라고 한다면, 무슨 얘기를 해도 참겠다는 자세가 있어야 돼. 의지가 보이지 않으면 앞으로도 널 도와줄 사람은 없어. 다른 애들은 집에서 부모가 붙잡아놓고 공부를 시키겠지. 그것도 나쁘진 않아, 부모니까, 그리고 자기 생각해서 한다고 믿으니까. 하지만 넌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 니 의지가 있어야 돼. 그러니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해봐. 나한테 물어봐도 얼마든지 얘기해줄 수 있어. 그렇지만 어쨌든 시작은 니가 해야만 되겠지.”

 

 

 

 

 

“알았어요. 제가 마음의 준비가 덜 됐었나 봐요.”

 

 

 

 

 

나영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보단 훨씬 가벼워진 말투였다.

 

 

 

 

 

“생각해볼게요. 그래서 준비가 되면 다시 공부 시작할게요. 그때 다시 공부 시켜주세요.”

 

 

“그래. 대신 확실하게 해.”

 

 

 

 

 

나는 더 이상 화제를 잇지 않았다. 이 집에 있으려면 나 스스로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 했고, 그래서 시작한 공부였다. 언제 재개할 지 모르지만 이제 그 이유는 없는 상태가 됐다. 그럼 나는 나영이와 있을 이유가 없는 거겠지? 그렇게 이어지는 생각을 난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기대가 남았기에 그랬었는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날 이후로 다시 나영이는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나와의 인연에서 그런 거지, 언제 어떻게 생각을 다잡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아마도 그때가 되면 나와 책상에서 머리를 맞대고 앉았던 시절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나영이가 째깍대던 샤프 소리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듯이.

 

 

 

 

 

하지만 오늘날의 환경에서 나영이 본인이 의지를 갖는다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늘 권력과 부를 바래왔지만 요즘은 돈 쪽이 더 강한 목적이 되었다. 자본의 시대에는 계산기를 두드려 비용 대비 산출을 따진다. 경제학의 입장에서 비교해보라. 아무 성과가 없을 리스크를 감수하고 나영이에게 각종 명목의 투자를 할 때 얻는 효용과, 그 돈으로 지금 당장 옷이나 장신구를 사줄 때의 효용을. 투자자와 나영이 모두 전자를 택하기 힘들다. 힘들게 알바를 해서 미래를 기약하는 사람보다, 무슨 짓을 해서든 당장의 지출이 많은 사람을 이 사회는 우대하고 있지 않던가. 가난한 학자보다는 돈 많은 조폭이 이 사회의 주류에 좀더 가깝지 않던가. 그러니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 나중에 얻을 더 큰 효용을 감안해서 미래를 대비할 이유를 나영이가 어떻게 찾겠는가. 그리고 누가 거기에 투자를 하겠는가.

 

 

 

 

 

내가 줄곧 나영이의 공부를 염두에 두었던 이유는, 검정고시조차 치르지 않았을 때 받게 될 사회의 편견이나 불이익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자기 삶에 대한 의지를 가지기 위해선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직접 경험을 통해서도 배울 순 있다. 그러나 그 뼈저린 모멸감보다는 미리 배우는 편이 훨씬 낫다. 하지만 의지가 생기지 않으면 배울 수 없고, 배우지 못하면 의지가 생기기 어렵다. 입구가 없다. 그 안타까움이 내가 나영이를 계속 붙잡고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겠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의 초중등 교육은 근대의 산물이므로 그걸 극복하고 포스트모던한 현대에 적응하기 위해선 우선 근대적 사유의 틀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 실제 인간의 삶 앞에선, 이런 관념적 논의는 나를 아무데도 데려다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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