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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민

 

‘구조적 문제.’

 

필자가 자주 쓰는 단어다. 세상에는 다양한 현상과 현안, 문제들이 있다. 더러는 약간만 투자하거나 지원하면 해소될 문제도 있고, 더러는 돈은 좀 들지만 그래도 한쪽으로 꾸준히 밀고 나가면 해소될 문제도 있다. 또 일부는 그냥 놔두면 시대 흐름에 따라 자연히 희석되거나 소멸되는 문제도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문제가 누적됐을 뿐 아니라 구조적인 체계 속에 지속적으로 문제가 악화되고, 그 체계를 해체하기 매우 어려운 문제들이 있다. 부동산, 한반도 평화, 격차해소,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외과적으로 팔다리가 다치는 것은 비구조적 문제지만, 당뇨병은 구조적인 문제다.

 

도지사라는 자리는 이런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정도의 자리는 아니다. 물론 말로써 ‘이 문제는 이리저리해서 풀어야 한다’고 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 문제는 본질적으로 대통령과 국회 정도의 힘과 권한이 있어야 접근 가능한 문제다. 하지만 김경수 도지사는 구조적 문제를 깨기 위해 정면으로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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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울경(동남권) 메가시티. 부산과 울산과 경남을 묶어 경제, 문화, 생활을 묶고 집중 육성해 이 지역을 제2의 수도권처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타 지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아마 경남도민이나 경남지역 공직자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지사가 처음 취임했을 때는 이런 내용이 전혀 없었다. 취임 직후 내건 슬로건은 ‘스마트 경제’였다. 스마트 산단과 스마트 공장 보급으로 IT와 결합시키고, 경남의 제조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겠다는 것이다.

 

2018년 당시 경남 제조업은 암담한 상황이었다. 새로운 동력이 없는 상태에서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산업기반이 내려앉고 있었다. 산업단지 가동률은 갈수록 떨어지는데 홍준표 도정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경제비전이나 전략을 내세우지 못했다. 설혹 내부적으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진주의료원 폐업, 학교급식 지원 중단으로 주민소환 위기에 놓여 있었고, 싸우느라 정신없는 시기였다.

 

그러다 김경수 도지사가 왔다. 선거 내내 ‘힘있는 도지사’라고 규정지었다. 과연 그 힘이 어느 정도일까? 

 

일단 국책사업은 상당 부문 유치했다. 서부경남 KTX(남부내륙고속철도), 진해신항(12조 원 스마트 항만), 동남권 광역교통망, 스마트국가산단, 소부장(소재 부품 장비) 특화단지, 강소연구특구, 방위산업혁신클러스터, 수소생산기지, 창업생태계(메이커스페이스, 창투사) 구축, 남해-여수해저터널, 스마트팜 사업, 스마트양식 사업, 무인선박 규제자유특구 등을 유치·지정했다.

 

이와 연계해서 스마트국가산단으로 인한 제조 빅데이터가 쌓이고, 이를 토대로 제조업과 IT산업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프랑스 다소 시스템, 독일 지멘스, 삼성SDS, NHN, 네이버 등은 이를 위해 경남에 본부를 꾸리거나 R&D센터를 설치하고 있다. 

 

솔직히 이만큼만 해도 엄청난 성과다. 다른 도지사가 10년을 해도 얻지 못할 성과를 3년 안에 달성했으니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했다. 김경수 도지사가 ‘힘있는 도지사’라는 것에 경남 안에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다.

 

경남 경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스마트 경제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은 ‘구조적 문제’까지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힘있는 도지사와 함께라면 분명 해법이 나올 법 보였다.

 

필자의 생각은 틀렸다. 이 또한 구조적 문제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것을 일깨워준 사건이 하나 있었다.

 

사건은 2019년 3월에 벌어졌다. 도지사는 당시 1심 재판 이후 법정구속된 상태였다.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후보지로 경기 용인시와 경북 구미시가 경쟁 중이었다. 120조 원을 들여 축구장 500개가 넘는 초대형 반도체 클러스터였다. 클러스터란 공장 외에도 관련 기관과 연구, 교육, 연계산업까지 포함된 종합단지를 말하는 것이다. 해당 지역의 입장에서는 선정만 된다면 그야말로 최소 수십 년 지역의 미래가 보장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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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북도민일보>

 

이를 위해 구미는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제안했다. 용지 중 10년 간 30만 평은 무상임대, 70만 평은 부지계획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부지로 제공, 직원 사택, 체육관, 수영장 등 편의시설, 상하수도, 고순도 공업용수 공급, 전력 지원 등 지방정부가 가능한 것을 모두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용인시는 구미에 비해 크게 내건 혜택이 없었다. 또한 구미는 오랫동안 전자공단이 있는 곳이었다. 도지사는 당연히 구미가 될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는 용인이었다. 

 

옥중에서 이 소식을 들은 도지사는 믿을 수 없었다. 후에 SK하이닉스 경영진에게 왜 용인으로 갔는지 물어봤다고 한다. 돌아온 답변은 단순했다. 

 

“(구미에 가면)직원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도지사에게는 엄청난 ‘구조적’인 고민이 던져졌다. 

 

‘그렇다면 과연 지방이 앞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슨 사업을 할 때 수도권은 인구가 충분하기 때문에 경제성이 앞선다. 그리고 인적 인프라 또한 앞선다. 따지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수도권 규제완화로 이미 첨단·제조업 공장도 상당수 있다. 수도권은 그 자체로도 유기적인 협업과 시너지 효과 등을 기대하기 충분하다.

 

 

2. 방향

 

도지사의 고민은 컸지만 일단 당장 표면적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도지사는 보석 석방(2019년 4월 18일) 이후 2019년 상반기 내내 통합교육과 민관협업을 지속적으로 주문했다. 교육청, 대학, 민간, 행정이 따로 노는 교육체계로는 미래교육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애플 교육부문 부사장 사례를 들면서 교육운영주체들의 통합을 주문했다. 그리하여 2019년 10월, 전국 최초로 경남도청에 ‘통합교육추진단’이 구성되었다. 도청, 교육청, 대학교 직원들이 한 부서에 모여 각자 본래 속해있던 기관의 계급장은 떼고 함께 일하는 곳이었다.

 

민관협력의 요지는 이러했다. 공공영역은 아무리해도 국가 경제의 30%를 넘지 못한다. 70%는 민간이 갖고 있다. 민간과 함께 협업하지 않고서는 경제나 산업의 전망을 열기 어렵다는 논리였다. 

 

그리고 2019년 7월 12일. 거제 삼성호텔에서 도지사는 경남도청 간부워크숍을 통해 속내를 처음으로 끄집어냈다. 비공개 행사였다. “이렇게 터놓고 얘기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것 같다”며 도지사는 말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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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수도권을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겁니다. 이렇게 되면 비수도권은 어떤 수를 쓰던지, 무슨 노력을 하던지 간에 수도권에 밀릴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적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과연 이렇게 해서 대한민국에 미래가 있을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나 최근에 (고민)하게 된 겁니다.”

 

“이제는 (박정희 식으로) 중앙정부에서 인위적으로 산업을 지역에 나눠줘도 기업이 정부의 뜻에 따라 안 움직입니다. 도시계획 전문가들과 협의해보면, 한 권역이 발전하려면 그 권역 안에 대도시 메가시티가 있고, 그 메가시티를 중심으로 권역이 확대되어 가는 방식으로 권역이 발전을 합니다.”

 

“권역별로 스스로 자기 특색에 맞는 산업·경제 발전계획들을 만들어내고, 중앙정부에서 볼 때, 발전가능성이 있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거나 지원해주는... 각 권역은 권역 내에 있는 주요도시를 중심으로 발전해 나가는 그런 계획들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경남도 앞으로 경남권 계획도 중요하지만, 갈수록 부산과 울산, 그리고 대구경북과 연계되는 경제권 사업들을 집중적으로 (간부들이) 고민해주셔야 합니다.”

 

“여기에는 단순 경제 산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도권이 발전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토대가 1970년대부터 지하철을 깔기 시작해서 서울 폭발이 주위로 확대되면서 서울 경기 인천이 공간이 압축되었기 때문에 수도권 발전이 가능했던 점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광역교통망을 기본으로 하고, 환경이나 사회적인 영역, 광역 푸드 플랜(먹거리), 관광 문화 산업도 부산과 경남을 연계해서 부산에 왔다가 통영이나 거제로 오게 하고, 지방대 문제까지 포함한 평생 학습 체계까지 모든 걸 광역 단위로 협의해야 합니다. 부산과 울산은 지금처럼 경쟁상대로만 생각해서는 서로 어려워 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낯선 얘기였다. 과거 경남과 부산만 하더라도 얼마나 싸웠던가? 부산신항 명칭을 진해신항으로 할 것이냐를 두고 싸웠고(그래서 대안으로 지역명을 안 붙이고 그냥 ‘신항’으로 하자는 말도 있었다), 동남권 신공항을 밀양이냐 가덕도냐 놓고 20년 간 싸웠고, 부산 물 문제 해소를 위해, 부산은 줄기차게 남강 물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고, 경남은 줄기차게 반대했다. 그 외에도 각종 정부 공모사업이나 기관 유치를 할 때에도 경남과 부산은 원수지간이었다. 그런데 산업부터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협력을 하라니. 더 나아가 ‘다소 우리 경남이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과 함께 뭉쳐야 한다’는 취지까지 읽혀졌다.

 

아마 이 얘기가 그 시점에서 정제 없이 그대로 밖에 흘러나갔다면 경남은 뒤집어졌을 것이다. 경남도지사를 하라고 뽑아 놨더니 부산시장이나 울산시장을 뽑았다고 관변단체를 시작으로 온갖 집회와 지역 정치권의 공격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물론 필자는 2010년 김두관 당시 경남도지사에게 ‘수도권 중앙집권화와 맞서기 위해 영호남을 묶어 아예 남부연합으로 가자’고 했던 사람이므로 도지사의 말에 공감하지만, 도민들에게 과연 먹힐 것인가? 우려는 컸다. 기껏해야 ‘이해는 하되, 동의할 수는 없는’ 비전에 그칠 가능성이 있었다. 그냥 지금 하던 대로 ‘힘있는 도지사론’으로 국책사업 따내고, 예산 받아오고, 그래서 몇 가지라도 성과를 내면 도지사 재선은 떼어 놓은 당상인데, 왜 어려운 얘기를 꺼내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자가 무턱대고 “자, 오늘부터 동남권 연합, 메가시티로 갑니다. 언론에 때리고, 광고 하고, 총력을 다해서 알리십시오”라고 할 사람은 아니었다. 

 

도지사는 신중하게 기회를 기다렸고, 2019년 8월, 기회가 왔다. 일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