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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수함 거래를 둘러싼 양국 간 외교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시간이 걸리고 행동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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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커스(AUKUS)가 결성되고, 77조 원 규모의 잠수함 계약이 파기된 상황. 이때 스쳐 지나간 한 마디가 있었다.

 

“아베가 신났겠는데?”

 

호주가 프랑스와 맺은 잠수함 건조 계약(44조~77조 사이의 어딘가에 있을)이 미국의 ‘핵잠수함’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상황.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복잡다단한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이런 표현이 옳은지 모르겠지만,

 

“호주 잠수함 전쟁의 2막이 오픈됐다.”

 

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중국을 때려잡겠다고 미국이 칼 빼들었네.”

 

“호주가 프랑스 뒤통수쳤네.”

 

라며, 가볍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의 정치적 암투와 거래들은 훨씬 복잡하고 정교하다. 겉으로 보면 단순히 잠수함 계약 파기 같지만, 그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2014년까지 이어진다.

 

0. 호주 잠수함을 사기로 했다

 

카누도 제대로 만들지 못할 회사이다.”

 

- 당시 호주 국방장관이었던 데이비드 존스턴(David Johnston)의 발언 중 발췌

 

모든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말이다. 여기서 지목된 ‘회사’가 바로 호주의 ASC다. 이 회사가 그 유명한(?) 콜린스급 잠수함을 만든 회사이다.

 

한때 세계 최대의 디젤 잠수함이란 타이틀을 가졌던 이 콜린스급 디젤 잠수함은... 망했다. 잠수함은 소음 감소가 성능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인데, 별명이 ‘락 콘서트장’인 콜린스급은 쓰레기 중에 쓰레기 잠수함이었다.

 

데이비드 존스턴 국방장관은 콜린스급 뿐만 아니라 호바트급 구축함마저도 쓰레기로 만들자 화가 나서 했던 발언이다. 물론, 국방장관은 이 발언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노조를 까기 위한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게 바로 호주의 방산업계를 말할 수 있다. 2천5백만의 인구를 가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입김이 센 이익 단체 중 하나가 방산업계의 노조이다. 문제는 군사장비란 게 기본적인 기술 토대와 축적된 경험을 통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가 뭔가를 만들어 내야 하는데, 호주는 그런 시간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노조는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켜내야 했다. 그 결과 무리한 국내생산을 추진하게 됐고, 콜린스급이나 호바트급 같은 ‘쓰레기’를 양산해 내게 됐다)

 

민주주의는 곧 시민의 표로 움직이는 시스템이다. 아무리 옳은 말을 하더라도 내 ‘이익’과 반대되는 말이라면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데이비드 존스턴은 ‘카누’ 발언 이후 노조와 조선업계의 압박에 의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콜린스급이란 악몽을 겪은 호주는,

 

“기술도 안 되는데 국내 생산하지 말고, 수입해서 쓰자.”

 

라고 결론을 내리고, 여기저기 잠수함을 알아보게 된다. 이때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일본이었다.

 

1. 아베 축배를 들었다

 

2014년 무렵 일본은 분위기가 좋았다.

 

1967년 당시 사토 에이사쿠 총리가 내세운 “무기 수출 3원칙”의 족쇄에서 벗어나게 된 거다. 전범국가로서 주변국의 시선을 의식해야 했고, 자위대가 성장해 나가면서 문민통제의 일환으로 생각해 낸 무기 수출에 대한 족쇄는 그동안 일반 방위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었다. 아베는 보통 국가 일본으로 나아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평화 헌법과 그와 부속된 족쇄들이라 생각했고, 자신의 임기 내에 차근차근 이 족쇄들을 벗겨 나갔다.

 

무기 수출 3원칙도 그중 하나였는데, 2014년 4월 1일 방위 장비 이전 3원칙이란 걸로 대체됐다. 이제 일본도 해외시장의 무기를 팔수 있게 됐다.

 

그리고 이 방위 장비 이전 3원칙 제정 직후 가장 큰 ‘거래’로 주목받은 게 바로 소류 급 잠수함의 호주 수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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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당시 아베 내각에서는 ‘고류급’이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호주의 일본 발음의 앞 글자와 소류를 붙여서 ‘고류급’이라 붙인 거다. 그만큼 소류급의 호주 판매를 믿었던 거다)

 

당시 일본은 호주에 잠수함을 파는 걸 낙관했다. 소류급 잠수함의 성능에 자신했고, 미국이 함께 한다는 사실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었다.

 

(근 반세기 넘도록 해외 무기 시장에 얼굴을 비치지 않았던 일본이 호주에 잠수함을 팔 수 있다고 믿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측면 지원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일본이 이 당시에는 좀 순진했다... 해외에서 무기 팔아본 경험이 없어서)

 

국제정치학적으로 보자면, 이 당시 호주는 대중국 포위망의 한 축을 얼떨결에 떠안게 된 상황이었다. 원래 호주의 가상 적국은 인도네시아다. 서로 붙어 있다 보니 해역의 영토 문제도 있고, 동티모르 독립 당시에 호주가 이걸 지지해면서 인도네시아 뒤통수를 때리는 통에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중국이 치고 올라온 거다.

 

규모로 보면 호주군은 정말 작은 군대다. 상비군 숫자가 불과 6만 명 수준이고, 그 큰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지만 인구는 고작 2천5백만 명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은 나라가 호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중국이 튀어나온 거다.

 

“호주야, 우리 저 중국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 그런가?”

 

“저, 중국 놈들이 태평양으로 치고 나오면 너희들 어떻게 할래?”

 

“......막아야겠지?”

 

“그래! 막아야지.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중국을 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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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4자 안보 대화(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 즉 쿼드(Quad)다. 2007년부터 당시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죠,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딕 체니, 호주 총리였던 존 하워드, 인도 총리였던 만모한 싱이 모여서,

 

“떼놈시키들을 어떻게 때려잡지?”

 

를 논의하게 됐다. 이 쿼드 모임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게, 미국과 중국의 군사전문가들이나 싱크탱크들이,

 

“만약 미국과 중국이 한판 붙는다면 그 장소가 어디일까?”

 

를 연구한 적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나온 답변이 ‘남태평양’이다. 미국과 중국이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이기에 육지에서 붙을 확률은 낮다. 중국의 동쪽에 연해 있는 한국과 일본을 치고 밖으로 나가긴 어려운 상황이고, 인도가 있는 쪽으로 나가기에도 애매하다. 결국 나갈 수 있는 출구는 남태평양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하는 게,

 

필리핀-대만-한국-일본’으로 이어지는 일자 방어선이다. 중국을 양팔 벌려 막아선 모양새다. 여기에 호주가 끼어든 거다. 호주의 경우는 남태평양의 중앙을 떡 하니 장악한 지정학적 위치에다 앵글로색슨 족에다가, 미국의 우방에다가...여튼 그렇다.

 

그런데 이 호주의 군사력이 그닥 그렇게 강한 게 아니다. 이때쯤...그러니까 2014년 즈음에는,

 

“호주 군을 업그레이드까진 아니어도 최소한 중국군을 상대할 수준까지는 가야 할 거 아니냐!”

 

란 말이 나왔고, 콜린스급이나 호바트급 같은 쓰레기들을 치우고 좀 제대로 된 무기를 주자는 생각을 하게 된 거다. 이때 치고 나온 게 일본이었던 거다. 같은 쿼드 쪽 사람인데다가, 미국도 측면 지원을 하고 있었다.

 

“우리는 핵잠수함 밖에 없어서 못 팔지만...일본은 디젤 잠수함이 있잖아? 우리랑 일본이랑 무기 호환되는 거 알지? 일본 애들이 카피 잘 뜨잖아. 얘들 손 기술 좋아. 믿을 만해. 일본 게 미국 거란 생각하고, 일본 거 가져다 써. 그리고... 우리 같이 손잡고 싸워야 하는 동지잖아. 기왕 사는 거 같은 편 거 사야지 안 그래?”

 

(당시 리처드 아미티지 같은 애들이 호주에다가 엄청나게 압박을 넣었다)

 

이런 상황이었던 거다. 게다가 이 당시 중국이 남중국해에 진출해서 구단선(九段線)이 어쩌네 하면서 멀쩡한 암초에다 시멘트 부어서 섬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이때 치고 나갔던 게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호주의 토니 애버트 총리였다.

 

“일본이랑 호주가 크로스 해서 저 중국 놈들을 때려잡자! 애버트 도와줘!”

 

“그래 아베! 호주와 일본이 손을 잡으면 중국 놈들을 때려잡을 수 있어! 아베!”

 

아베 신조와 토니 애버트는 국제사회에서 인정한 ‘찐친’이었다. 이들은 죽이 잘 맞았고, 호주가 잠수함을 사겠다는 말이 돌 때 이미,

 

“그거 일본 거 사는 거 아냐?”

 

“이미 일본 걸로 결정됐다고 하던데?”

 

란 말이 돌고 있었다. 2014년의 아베와 토니는 그렇게 서로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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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