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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방은 벼락치기로 메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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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계 5015 아시죠?”

“네”

“작계 5015가 발동되면 대통령으로서 제일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글쎄요, 한 번 설명해주시죠”

“작계 5015 아신다고 했잖아요?”

 

지난 일요일 국민의 힘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윤석열 후보에게 날린 질문이었다. 이걸 생방송으로 지켜보던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한 마디, 

 

“홍준표가 괜히 홍준표가 아니었어!”

 

급작스럽게 대선 후보가 된 윤석열. 준비되지 않은 채 무대에 올라섰다는 건 정치에 조금만 관심이 있다면 다 알고 있을 거다. 단순히 지지율이 높았기 때문에 대선에 뛰어든 거란 말이 나돌 정도니까.

 

자신의 분야, 그러니까 사법체계에 있어서는 전문가로서의 역량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가 전체를 통치해야 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외교국방과 경제는 꼭 필요한 소양이다. 경제는 일반인이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기에 조금만 노력하면 기본은 갈 수 있다. 그러나 국방은 이야기가 다르다. 

 

“벼락치기로 메울 수 없다.”

 

홍준표는 이걸 노렸고, 노림수는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윤석열은 얼버무렸고, 나중에 가서야, 

 

“미국 대통령에게 전화를 하겠다.”

 

라고 답변했다. 김여정에 관한 논란도 흥미진진했다.

 

“김여정이 군사적 균형을 깨지 말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경고했다. 어떻게 보나.”

“언제 했습니까? 이번에?”

 

윤석열의 대답에 홍준표도 어이가 없었던지, 

 

“그거 모르면 내가 넘어가겠습니다.”

 

라고 말했고, 윤석열은 웃음으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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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에피소드 하나로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부적합하다던가, 함량미달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그가 준비가 덜 됐고, 급하게 후보가 됐다는 건 확실해졌다. 국가를 존속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틀이 국방과 교육이다. 국방력이 있기 때문에 외적으로부터 국가의 주권을 수호할 수 있고, 교육이 있기 때문에 국가를 미래로 이어나갈 수 있다. 그 기둥 중 하나가 국방력인데, 이 국방력에 대한 판단력이 부족하다는 걸 토론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대목에서 윤석열이 얼버무린 작계 5015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까 한다.

 

 

2. 작계 5027과 작계 5015 

군대를 갔다온 분이라면 ‘작계 5027’이란 말을 들어봤을 거다.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계속 들었던 말일 거다. 

 

작계 5027이 뭘까? 간단히 말해서 작전계획이다. 'Operation Plan', 이 명칭은 미국에서 나온 거다. 태평양사령부(PACCOM)의 작전 번호가 5000번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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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10개의 통합전투사령부를 두고 있는데, 각각 아프리카 사령부, 중부사령부, 유럽사령부, 북부사령부, 태평양사령부, 남부사령부, 우주사령부, 특수작전사령부, 전략사령부, 수송사령부, 사이버사령부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중 지역별 사령부는 각각의 해당지역을 관할하고, 그 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작전을 주도해서 수행한다. 그렇기에 평시에 해당지역에서 벌어질 ‘전투’를 예상해 작전계획을 준비해 놓는다. 한국은 태평양 사령부 관할구역이기에 5000번의 작전번호가 부여된 거다. 유럽 사령부의 경우는 4000번 대의 작전번호를 부여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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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링크)>

 

한반도 유사시 전쟁 상황에서 가장 유명한 작계는 작계 5027이다. 이 작전은 남북한 전면전을 상정해 준비된 작전이다. 이 작전의 처음 취지는 ‘방어’였다. 북한이 치고 내려오면 이걸 막아내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가. 어느새 '전진 방어(Forward Defense)' 전략이란 개념이 나오고, 그 결과 북한 지역까지 치고 올라가는 방식으로 변하게 됐다. 그러다가 작계 5027-92가 되면 한미 연합 해병대가 원산을 상륙하는 개념까지 발전한다. 작계 5027-98이 되면 때가 때인지라(한참 북한이 영변 핵발전소 가동하고, NPT 탈퇴하던 시점) 영변 핵시설을 포함한 주요 군사시설에 대한 선제타격이 포함된다. 그러다가 작전계획 5027-02에 이르면 김정일에 대한 암살과 북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기습공격까지 포함된다(이 역시 911 테러와 ‘악의 축’ 발언 등등의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거다. 당시 분위기가 좀 흉흉했다). 

 

그렇다면 작계 5015는 뭘까? 작계 5027이 20세기의 ‘남북한 전면전’을 상정한 작전계획이라면, 5015는 개념이 좀 다르다. 

 

작계 5015(Operational Plan 5015)는 간단히 말해서 우리가 전작권을 환수한 이후 북한과의 전쟁을 상정한 작전계획이다. 5027의 뿌리가 방어전 성격이라면, 5015는 공세적인 성격이 강하다. 한미 연합군은 전쟁징후가 보이면 북한의 주요 핵심시설 700여 곳을 선제 타격하는 게 작전의 주요골자다(이 700여 곳의 목표 중 하나가 김정은의 집무실이다. 즉, 5015는 김정은의 목을 노린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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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계획 5027이 20세기의 전면전을 대비한 ‘옛날’ 작전이라면, 5015년 21세기 형 전쟁을 대비한 작전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5027의 후계자'라고 보면 쉽게 이해가 갈 거다.

 

윤석열 캠프에서는 토론 이후에, 

 

“군사기밀보호법을 지키라!”

 

라고 논평을 내며 윤석열을 옹호하고 나섰지만, 윤석열의 바닥이 어디인지는 국민 모두가 알아버린 상황. 툭 까놓고 말해서 작계 5015든, 5027이든 구체적으로 어떤 작전이 있고, 개략적으로 어떤식으로 진행될지에 대해서는 언론에 이미 다 나와 있는 상황이다. (작계 5026, 5029, 5030 등등 이미 언론에 나온 작전계획만 몇 개인가?)

 

문제는 그 실행계획이다. 작전 하나의 실행계획만 몇 백 페이지가 넘어가고, 목표와 그 목표에 대한 타격방안, 병력 운용계획, 이동루트 등등에 대한 상세 계획안은 민간인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다(이미 북한이 해킹을 통해 작계 5015의 세부 계획을 빼간 사실은 언론에도 공개된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캠프에서 군사기밀보호법을 지키라고 말하는 건...

 

“그래, 오죽 할 말이 없었으면 그랬을까.”

 

란 생각에 측은한 마음까지 든다.

 

국방은 벼락치기로 메울 수 없다. 홍준표가 괜히 홍준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윤석열 캠프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