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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 어느 나라 사람인가? 라고 물으면, 대부분 망설임 없이 ‘한국인’이라고 답할 것이다. ‘홍콩인’에게 묻는다면,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대부분 머뭇거리면서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홍콩대학 민의연구소는 1990년대부터 매년 설문조사를 해오고 있다. 대답은 정치경제적인 상황에 따라 달랐다. 대체로는 홍콩인 30%, 홍콩중국인(중국홍콩인) 30%, 중국인 30% 정도의 비율로 나타났다. 

 

반환을 1년 앞둔 시점인 1996년 1월과 5월의 설문조사에서는 5분의 1이 ‘중국인’은 믿을 수 없다고, 4분의 3이 자신은 중국인이 아니고 홍콩인이라고 답변했다. 이 시기 홍콩인들의 위기감을 대변하는 것일 게다.  

 

시위가 한창이던 2019년 12월에는 자신이 ‘홍콩인’이라는 답변이 제일 많았고, 아시아인, 중화민족의 일분자, 세계 시민, 중국인의 순서였다. 중국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이라는 답변은 ‘불행하게도’ 꼴찌였다.

 

 

해법은 간단, 현실은 복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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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홍콩 시위.

 

시위는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마지막 외침이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감추지 못할 때 폭발하는 마지막 행동이다. 2019년 중국과 홍콩이라는 정체성의 충돌은 시위로 나타나고 있었다. 주권 반환 이후 중국홍콩체제는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정체성이 갈등하고, 충돌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교재였다. 이제 세계인들은 홍콩의 시위 장면만을 기억한다. 

 

우리 한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홍콩인들도 자신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를 직접 뽑고 싶었다. 홍콩의 수장인 행정장관에 대한 직선 등을 요구했다. 홍콩 정부(라고 쓰고 중국 정부라고 읽어야 한다. 주권 반환 전에는 영국 정부라고 읽어야 했다. 홍콩은 언제나 이런 식의 구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들어주지 못했다. 아니 들어줄 수 없는 요구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중국과 홍콩이 충돌하는 이유는, 정체성의 편차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 대부분 자신이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이라고 대답한다. 통일(통합)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반면에 홍콩특별행정구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정체성은 매우 복잡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시작되고, 그 해법도 여기에 있다. 

 

언제나 해법은 간단하다. 상대를 그냥 수용해주면 된다. 상대의 정체성이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 가치를 인정해주면 된다. 나아가서 내 정체성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홍콩의 진실에 대하여> 연재의 결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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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중국과 홍콩은 상대를 인정해 주지도 않고, 수용하지도 않았고, 그냥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중국 정부가 홍콩의 정체성을 인정해주기 꺼린다고 해야 정확하다. 홍콩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중국 정부가 볼 때 ‘홍콩 독립’ 움직임이 표면화되는 등 홍콩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내외의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왜 ‘홍콩 독립’ 움직임이 표면화되었는지를, 주권 반환 이후 일어났던 대표적인 몇 가지 사건으로 살펴보려 한다. 

 

 

통일(통합)의 의미

 

한국인들은 단일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단일하다는 정체성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상황이 중국홍콩체제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알게 모르게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주입 당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결국 그것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단일하다는 믿음이 우리의 사고를 얼마나 단순화시키는지에 대한 통찰은 부족했다. 우리 모두가 단일하다는 믿음은 절대 진리처럼 우리 두뇌의 구석구석을 시시각각 지배하고 있다. 이런 지배적인 흐름이 두뇌의 유연한 작동을 방해하여 상대의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고집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한국 친구들은 자주 질문한다. “홍콩은 중국이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시끄러워?” 물론 예전에 나도 홍콩 친구들에게 그렇게 따지듯이 질문한 적이 있다. “너희들은 중국사람이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말이 많아?” 이 질문을 이제는 중화인민공화국 사람들이 홍콩특별행정구 사람들을 혼낼 때 던진다. 

 

나는 이런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는 국민이어야 하는가, 국가는 반드시 필요한가, 국가라는 권력은 어디까지 정당한가? 우리는 어디까지 단일해야 하는가?” 

 

국가 권력은 언제나 우리에게 단일하고 통일된 정체성을 요구한다. 나는 어릴 때 국가권력 자체가 폭력이라고 생각해서 국가를 증오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연장선상에서 40대 이상은 모두 죽어야 세상이 맑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나키즘의 과도한 낭만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국가폭력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국가 권력의 위험성을 잘 안다.

 

세계는 국가의 집합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편의상 어쨌든 지금의 국가 시스템을 만들어냈다. 국가는 간신히 유지될 수밖에 없는 원죄를 안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든 국가는 국민으로부터 충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을 다한다. 국민들은 수시로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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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 국방부 청사에서 진행된

메르켈 총리의 퇴임식. 

 

지난 2일(현지시간), 16년간 독일과 유럽연합을 이끌어 온 메르켈 총리의 퇴임식이 있었다. 이제 그는 이번 주를 끝으로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그는 독일 통일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일이 완성되지 못하고 있는바 ‘통일은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동독 출신 사람들은 동독인은 여전히 2등 국민이고, 현재까지도 동서독의 사회 통합이 과제라고 말한다. 홍콩인들 역시 자신들이 2등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정체성의 통일(통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일(통합)은 국가처럼 거부할 수 없는 명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통일에 반드시 수반되는 문제를 무시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다분하다. 그저 명분에 휘둘리기 쉽다. 통일(통합)은 궁극적으로 진입 불가능한 유토피아일 수도 있다. 특히 통일 당하고 통합 당하는 소수나 약자(양자 내부 포함)의 입장에서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 매우 억울한 실험일 수도 있다. 

 

 

국가관념이 없다는 원죄?  

 

홍콩은 식민지 역사 155년 동안 국가가 아니었다. 홍콩인은 국민이 아니었다. 국민이었던 적이 없다. 국가 관념 없이 ‘자유롭게’ 살아온 부족이었다. 통일(통합)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중국 정부나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 보면 국가 관념이 없다는 것보다 더 큰 원죄는 없다. 

 

홍콩인을 바라보는 중국인의 마음은 아래와 같다.

 

“홍콩인이라고? 홍콩은 나라가 아니잖아, 홍콩은 중국 영토의 일부니까, 홍콩인이라는 것은 말도 안 돼! 홍콩인이라는 건 없어. 그냥 중국인이지.” 

 

“그동안 영국 제국주의에 빌붙어서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지금이라도 죄를 뉘우치고 조국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지, 그래도 용서해줄까 말까인데, 감히 지역 정체성을 들먹이면서 조국을 배반하려고 하다니 너희들이 정녕 사람이냐!”  

 

그만큼 홍콩인이라는 정체성은 강했다. 당장 중국 정부의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듯이 홍콩은 제3지대였다. 중국도 아니고,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영국도 아닌, 애매한 곳이었다. 

 

홍콩인들은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다른 (문화적) 유전자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성장환경을 바꾸어야 하는 과제가 중국 정부에게 주어졌다. 홍콩인들의 성장환경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997년 7월 1일, 중국과 홍콩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이 만났다. 중국 아니 중화인민공화국과 완전히 다른 ‘홍콩’이라는 정체성은 영국 식민지 155년(일본 식민지 3년 8개월 포함)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하루아침에 사라질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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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6월 30일 홍콩 정부 청사에서 영국령 홍콩 휘장을

철거하는 노동자들. / 출처-<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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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일, 홍콩으로 들어오는

약 4,000명의 인민해방군. / 처-<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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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1일, 중국 리펑 총리에 앞에서 선서하는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 둥젠화. / 출처-<AFP> 

 

1997년 홍콩의 주권이 중국으로 반환된 후, 중국과 홍콩 양자의 갈등이 자주 수면 위로 올라왔다. 중국과 홍콩의 자연스러운 통일(통합)의 길은 아득하게 멀어져 갔다. 

 

이 갈등을 보여주는 몇 가지 사건을 통해 중국과 홍콩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이 얼마나 다른지, 통일(통합)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살펴보려 한다. 이 사건들을 보며 통일(통합)은 누구의 책임인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이 몇 개의 사건 때문에 홍콩의 정체성이 중국 정부의 기대와는 반대로 무한대로 증폭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칡나무와 등나무가 얽혀서 만들어낸 ‘갈등(葛藤)’ 같은 것이다. 갈등은 수면 아래에 있는 것이 좋은데,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할 경우, 무한대로 증폭된다. 잠복되어 있는 갈등이 표면화되어서 상황이 더욱 악화된 장면은 역사에 많았다. 통제할 수 없게 되면 통제되었을 때가 그리운 법이다. 

 

 

중국의 새로운 인해전술 

 

사람의 정체성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일까, (문화적) 유전자와 환경이다. 유전자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문제이니까, 환경이 그 사람을 결정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 사람은 중국에서 살기에, 홍콩 사람은 홍콩에서 살기에 서로 다르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개천에서 용 나기가 정말 힘들다는 뜻이다. 개천이라는 환경은 사회경제적인 조건을 말할 것이다. 이것을 이론화한 것이 ‘마르크스의 사회구성체론’이다.

 

경제 시스템으로 대표되는 하부구조가 의식 형태를 비롯한 모든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생각이었다. 사회주의 국가가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금과옥조이다. 중국 정부는 이 점에 주목하여 홍콩을 경제적으로 대륙과 통합하고자 했다. 

 

우선 2003년 『내지와 홍콩 마카오의 긴밀한 경제무역 관계(CEPA)』를 체결했다. 홍콩에서 생산된 제품은 무관세로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고, 홍콩의 투자자는 우대를 받게 되었다. 

 

광저우(廣州)-선전(深圳)-홍콩(香港)을 연결하는 고속철도를 시공하고(2010년), 홍콩-주하이(珠海)-마카오(澳門)를 잇는 해상대교를 시공하고(2012년), 광동성과 홍콩과 마카오를 하나의 벨트로 묶는 ‘대만구(大灣區)’ 정책 등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가 중국 관광객을 홍콩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관광객을 통해 중국의 현실적인 힘을 보여 주고 싶었다. 이는 2003년 홍콩의 사스 파동 당시 즈음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정부가 중국인 관광객을 대거 보내서 홍콩의 경제를 돕기로 한 것이다. 일 년에 7천만 명을 ‘보낸’ 적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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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경제적인 인해전술 중 하나이다. 홍콩이나 대만은 물론 다른 나라에 중국의 경제적인 힘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사드로 인한 한중갈등으로 중국 관광객이 끊어진 서울의 명동을 생각해 보면 되겠다. 관광객을 정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중국이 외국 조야를 ‘길들이기’ 위해 그 나라의 관광을 제한하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홍콩의 경제를 위하여 관광객을 특별히 ‘보내주는’ 것이다. ‘보내주어’ 홍콩의 경기 활성화를 도와주자는(사실은 홍콩경제의 대륙 의존성을 높이자는) 것이 중국 정부의 기본적인 생각이었다. 국가의 존재를 인식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인 힘으로 홍콩의 고집스런 정체성을 어느 정도 해체시켜 버릴 수 있다고 믿었다. 잘 먹고 잘살게 해주면 네 고집도 사라지지 않을까? 

 

하지만 중국의 기대와는 달리 몰려드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홍콩인들의 불만은 커져만 갔다. 이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사건이 있었는데, 2003년부터 중국에서 터지기 시작한 ‘가짜 분유 사건’이다.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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