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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랄(halal)’이라고 들어봤을 거다. 

 

할랄은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이 먹고 쓸 수 있는 제품을 총칭하는 것이다. 아랍어로는 ‘허용된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식품의 경우 곡물, 과일, 채소, 해산물은 특별한 규정이 없으나 육류에 한해선 이슬람식 도축법으로 도살한 짐승의 고기만을 할랄 육류로 분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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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무슬림은 전 세계 인구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을 소비자로 보유하고 있는 할랄 시장은 굉장히 유망하고 큰 시장이다. 규모는 약 2.3조, 달러로 한화 약 2,700조 원에 해당한다. 

 

말레이시아에 관한 기사에서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현재 글로벌 할랄 시장의 리더 국가가 ‘말레이시아’이기 때문이다. 

 

 

할랄의 리더,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는 1997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할랄인증정부기관인 ‘말레이시아 이슬람 발전국(JAKIM: Jabatan Kemajuan Islam Malaysia, 이하 자낌)’에서 할랄인증기관을 설립하고, 세계 이슬람 ‘할랄(halal)’ 시장의 메카가 되겠다고 선언했다(당시로는 무모할 정도로 과감한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말레이시아를 세계에 널리 알리게 된 주요 사건 중 하나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는 전 세계 20억 무슬림들의 할랄 시장을 장악할 채비를 공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으니까. 

 

할랄 시장의 메카로 빠르게 발돋움하며,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사회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매우 중요한 국가로 등장하게 된다. 이는 말레이시아가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과 위상을 보유하고 있음을 증명한 대표적인 사례에 속하기도 한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는 현재 세계 최대 할랄 제품 수출국으로서, 할랄 시장 중 가장 큰 시장인 식품 및 금융 부문을 장악하고 있다. 무슬림 시장 확장 기회의 측면에서 중국과 인도에 비견되는 ‘세 번째 10억(the 3rd one billion)’으로 선정되었을 정도다. 할랄 시장의 규모가 엄청나는 것과 더불어 그만큼 말레이시아가 할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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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문재인 대통령이 괜히 “한류와 할랄의 만남”이라는

발언을 말레이시아에서 한 것이 아니다.  

 

할랄 제품은 이제 무슬림 소비자들뿐만 아니라 비무슬림 소비자들에게도 안전하고 건강에 도움되는 제품으로 폭넓게 인식되고 있다. 비무슬림 소비자들의 할랄 제품 판매량과 소비량이 점진적으로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할랄 산업 역시 점점 확장하며 세분화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식품뿐 아니라 화장품, 전자기기 등의 분야에서 할랄인증을 취득한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가장 큰 할랄 제품 수출국인 말레이시아의 영향력도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세계 이슬람 경제 지표(GIEI: Global Islamic Economy Indicator)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8년 연속으로 글로벌 이슬람 경제를 이끌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할랄 패션과 할랄 미디어, 할랄 여가 용품 부문을 제외한 전 할랄 산업 부문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해 왔다. 

 

(이슬람 경제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아닌 제3의 경제체제를 말한다. 이슬람 경제는 과거의 전통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Shariah)를 현대의 경제체제에 접목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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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GIEI(세계 이슬람 경제 지표) 순위 1위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경제학계도 선도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이슬람 학자와 이슬람 금융전문가 중 상당수가 말레이시아에서 국제이슬람대학(IUA: Islam Universiti Antarabangsa, International Islamic University)을 비롯, 현지 대학과 대학원에서 학위를 취득한 전문가들이다. 

 

이외에도 말레이시아 정부는 계획적으로 이슬람 디지털 경제를 적극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이슬람 금융과 은행, 보험, 증권, 핀테크 등의 부문에서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19 CEO World Magazine에 따르면,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협력기구 회원국과의 경제투자와 무역 관계가 튼실한, 최고의 사업 및 투자환경을 보유한 국가로 선정되기도 했다(이슬람 협력기구란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으로 57개국이 가입한 이슬람권 최대 국제기구다. 이슬람 국가들의 연대 및 협력 등을 목적으로 창설된 국제기구다). 

 

GIEI(세계 이슬람 경제 지표)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런 종합적인 이유에 대한 결과이다. 그럼 많은 이슬람권 국가 중, 말레이시아에서 유독 이슬람 경제가 발달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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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협력기구 회원국들.

녹색: 정회원국, 파랑: 가입거부국,

빨강: 참관국, 주황: 자격 정지. 

 

 

어떻게 이슬람 경제 1위 국가가 되었나

 

①다종족 국가라는 위험한(?) 환경 

 

무슬림 인구가 대부분을 이루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인구의 69%만이 무슬림(말레이계 69.6%, 화인 22.6%, 인도계 6.8%, 기타 1.0%)이다 보니 언제 할랄이 아닌 것에 오염될지 모른다는 경계심이 높았다(할랄과 반대되는 용어로 ‘하람(haram)’이 있다, 아랍어로 ‘금지된’이라는 뜻이다).

 

예컨대 인구의 약 22-25%를 차지하는 화인(華人,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들은 대표적인 하람인 돼지고기를 즐겨 먹는다. 이슬람에선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의 콜라겐 성분이 담긴 화장품, 돼지고기를 자른 칼이 닿은 식품들도 하람으로 간주한다. 하람으로 규정된 동물의 가죽이나 털이 섞인 의류도 금지된다. 

 

이런 상황은 말레이시아의 무슬림들에게 하람에 대한 경계심과 조심성이 더욱 유발되었고, 엄격한 기준으로 안전한(?) 이슬람 제품들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②"이슬람 경제"라는 확고한 목표 설정과 정부의 적극적 지원

 

말레이시아의 경제 권력은 화인들이 갖고 있다. 재벌 회장들을 봐도 대체로 화인들이다. 이에 말레이시아 정치 권력을 갖고 있는 말레이계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말레이계 국민들의 경제적 지위를 상승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이슬람 경제를 키우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적으로도 이슬람 경제를 국가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삼는 것이 말레이시아의 미래를 위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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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전 총리.

할랄 산업 육성을 주도했다.

현대 말레이시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 중 하나이다. 

 

말레이시아는 1997년 이후 2020년까지 할랄 제품, 서비스, 생산 및 교역의 글로벌 허브로 성장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할랄 산업을 정부의 핵심 산업으로 선정하여 전략적으로 육성해왔다. 

  

할랄 산업은 시간이 갈수록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과거의 할랄/하람 구분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품 분야를 예로 들면 가공기술이 발달해 과거에는 없던 재료와 첨가물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렇게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지는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할랄인증제도가 생겨났다. 

 

그런데 전 세계에 300여 개의 할랄 인증단체가 산재해 있다. 이토록 많은 단체가 각각 다른 할랄 인증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할랄 산업은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힘들다. 말레이시아는 이런 상황 속에서 세계적으로 통합된 인증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원래 다른 국가에서는 이슬람 사원이나 무슬림 조직에서 할랄인증을 발급해 왔는데, 말레이시아는 국가에서 전략적으로 할랄 산업을 육성했다. 1997년 세계 최초의 할랄인증 기관인 자낌(말레이시아 이슬람 발전국)을 정부 조직 내에 신설하고,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문서화된 할랄인증제도를 갖췄다.

  

자낌은 원재료의 성분, 제조공정, 출하 공정까지 인증심사를 엄격하게 관리하며 할랄인증을 부여한다. 자낌의 할랄인증제도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복잡하고 까다로운 인증 절차를 보유하고 있으며, 가장 엄격하고 어려운 인증에 속해 명실공히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되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자낌의 할랄인증에 대한 국제적 인지도 및 공신력은 가장 높은 편이라고 공인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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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자낌의 할랄 인증 로고.

 

또한 자낌의 할랄인증제도는 자국 내에서 유통되는 제품의 인증을 총괄하는 동시에 해외 할랄인증기관들과의 네트워크 구축도 적극적으로 이뤄졌다. 상호 인증 관계에 있는 외국 할랄인증기관들이 70개가 넘을 정도다. 

 

그 결과, 말레이시아 및 전 세계 할랄 시장으로의 수출을 위해선 자낌의 할랄인증을 받는 것이 유리하게 되었다.

 

③말레이시아 내 화인들의 경제력을 적극 이용 

 

자낌이 빠르게 정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비무슬림인 화인들이 운영하는 식품업체들과 말레이시아에 생산시설을 둔 다국적 식품기업, 패스트푸드 기업들의 적극적 협조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약간의 반발을 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말레이시아 정부 주도의 글로벌 할랄 허브 추진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이들 입장에선 정부로부터 할랄 인증을 받으면 비무슬림 기업으로서 무슬림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고, 까다로운 검사 과정을 거쳐 인증을 받으면 비무슬림들에도 인정받을 수 있었다. 기업들의 협조는 그들의 사업을 더 확장하기 위한 영업 및 마케팅의 기회이기도 했다.

 

그 결과, 참여했던 기업들 또한 전 세계 할랄 시장에서 점유율을 크게 높이는 성과를 창출해 낼 수 있었다. 

 

이것은 도축자를 제외한 할랄 식품의 생산자나 판매자가 반드시 무슬림이지는 않아도 되는 할랄인증제도의 규정을(말레이시아가) 잘 이용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전술했듯 무슬림 인구가 대부분을 이루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인구의 69%만이 무슬림인 말레이시아는 경제력 높은 화인들의 비율이 22.6%나 된다. 이는 그만큼 운용할 수 있는 경제력이 크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말레이시아는 이 부분을 강점으로 잘 이용했다)

 

 

말레이시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말레이시아에선 현재 할랄산업개발공사(HDC: Halal Development Corporation)가 할랄 산업 전반에 대한 홍보 및 지원 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국제 할랄 쇼케이스인 미하스(MIHAS: Malaysia International Halal Showcase)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등 굵직한 이벤트들도 진행한다. 

 

(미하스는 식품과 음식을 비롯, 화장품과 의약품, 식품 기술, 전자 상거래, 무슬림 친화적인 관광상품, 프랜차이즈 등 다양한 분야의 제품과 서비스를 전시한다. 국제 바이어와 셀러를 연결해주기도 한다. 2019년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 열렸을 땐, 44개국 1천여 개의 전시 업체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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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에 열렸던 미하스(MIHAS).

 

이슬람 시장은 앞으로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슬람 교리에는 다산을 위한 특별한 규정이나 제약은 존재하지 않는다. 낙태나 유산에 관한 제약은 있다. 이 제약이 우리 기준에서 옳은 것이냐 아니냐의 가치 판단은 하지 않겠다. 본 기사의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건 낙태나 유산에 대한 제약이 존재하기에 어찌되었든 이슬람 사회에선 다산이 장려되고 있고, 이는 자연스럽게 무슬림들의 인구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도 이슬람 국가들의 경제발전과 중산층의 증가는 이슬람 시장이 확장하는 데 크게 일조했다. 당연히 이와 함께 할랄 시장은 대폭 성장했다.

  

시장이 커지며 2010년에는 무슬림 소비자를 사업 목표로 하는 이슬람 마케팅(Islamic marketing)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글로벌 기업은 이에 대해 적극적인 투자를 시작했다. 

 

할랄 사업은 초기에는 주로 식음료를 포함한 음식과 요리 분야에 한정되었으나 최근에는 화장품, 의약품, 건강보건, 경제, 금융, 은행, 보험, 증권, 패션, 물류, 관광에까지 영역과 범위를 계속 넓혀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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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출처-<말레이시아 관광청>

 

2013년, 말레이시아는 정부 주도하에 할랄의 개념을 확장하기도 했다. ‘무슬림에게 허용 가능하고(Permissible), 건강에 좋으며(Wholesome), 안전하고(Safe), 질적으로 우수한(Quality)’이라는 의미를 지닌 ‘할랄 토이이반(thoyyiban halal)’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비무슬림 소비자들의 할랄 제품 소비를 장려해 왔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어왔다. 

  

말레이시아가 현대적인 무슬림 소비문화를 대표하는 지역으로 할랄 시장 개척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춘 ‘테스트베드(Test Bed: 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혹은 시스템이나 설비를 가리킴)’임은 분명하다. 

 

홍석준(목포대 고고문화인류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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