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내장산의 돌, 스치면 간다
내장산의 가을은 피처럼 붉은 단풍으로 유명하다. 국내 15종중 11종의 단풍이 자생하며 가을 산을 수놓는다. 단풍과 함께 내장산은 봉우리마다 깎아 세운 절벽, 그리고 사면에 다양한 암석 조각이 퇴적된 ‘애추’가 어우러져 호남의 금강으로 불릴 만큼 빼어난 절경을 자랑한다. 본래 영은사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이라 불렸었는데,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 하여 내장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니, 그 풍경이 얼마나 멋진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봄에는 백양, 가을엔 내장’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그런데 문제는 생각했던 것보다 등산로가 훨씬 가파르고 험했다는 점이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내장산에서 보이는 돌들은 등산로 초입부터 꼭대기까지 예리하게 깎아낸 것처럼 날카로운 형태의 돌들이 가득했다.
싸늘하다. 가슴에 바위가 날아와 꽂힌다.
나중에 안 것인데, 이것은 안산암 지역에 잘 발달하는 절리가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내장산에는 화산암의 일종인 안산암 지대가 넓게 퍼져있다. 정상의 깎아 세운 것 같은 절벽은 안산암이 절편처럼 얇게 쪼개지는 덕분에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절경과는 별개로, 이것은 새로운 난관이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내내 울퉁불퉁 박혀있는 뾰쪽한 돌들이 산을 오르는 다리를 끊임없이 잡아채서 나는 보통의 발걸음보다 다리를 더 높이 들어야만 했다.
돌이 없는 산이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내장산에 비하면 북한산이나 관악산에 있는 돌은 비교적 둥글둥글한 편이었다. 그래서 혹여 넘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지는 않을 것 같은 느낌이라면, 내장산의 돌은 세모난 이빨이 박혀있는 듯 날카로워서 시각적으로도 압도되었다. 게다가 하도 촘촘히 박혀있어서, 여간해서는 발을 디딜만한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촘촘히 박힌 돌 사이로 발 디딜 곳을 찾으며 걸어 올라가는 것은, 곁을 내주지 않으려는 고양이에게 손 내밀고 조심조심 다가가는 것처럼 지난한 느낌이었다. 중간중간 계단을 만났는데, 전혀 반갑지 않았다. 기찻길 침목을 가져다 계단으로 만들어 놓은 것 같은 이 계단은 하늘 끝까지 연결된 듯 아무리 기어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앞서가던 친구들은 내가 보이지 않으면 잠시 멈춰 서서 따라붙기를 기다렸다.
나에게는 황천길 느낌이더라...
6. 코로나 19 정부지침을 준수한 프로 등반가, 영탄
물을 마시며 여유롭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간간이 웃는 모습이 보였다. 나도 얼른 올라가서 땀도 닦고 물도 마시며 함께 웃어야지 했다. 하지만 거의 따라잡았다 싶으면 녀석들은 다시 길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야속했다.
“아이고, 잠깐 쉬자.”
앞서가는 친구들을 불렀다.
“야, 우리 20분도 안 올라왔어.”
영탄이가 말했다.
“뻥치시네. 내가 시계 봤는데 30분 올라왔다고. 둘레길 수준이라더니 이게 뭐야.”
산길이 힘든 거야 백 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둘레길 수준으로 알고 왔다가 엄청난 코스를 가다 보니 뭐랄까, 힘도 배로 들고, 속은 느낌도 들었다. 실체 없이 억울한 느낌이 들어 농담 반 진담 반, 앓는 소리를 했다.
“그래, 잠깐 쉬자. 이거 좀 먹어라. 힘 나게.”
내 표정을 살피던 L이 꿀타민을 건넸다.
PPL 아님. 이왕 이렇게 된 거 광고 주면 받긴 하겠으니
딴지는 나에게 수수료를 달라.
“모르냐? 산에서 하는 말은 단위가 좀 달라. 새겨 들어야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
하긴, 산에서는 지친 사람들이 지레 겁먹고 포기할까 봐 표지판에 실제 거리보다 짧게 줄여서 표기해 놓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긴 하다.
“와, 아무리 그래도 이번엔 너무 힘들다. H가 안 왔길래 망정이지, 걔 왔었으면 우리 의절당했어.”
‘북한산 갔을 때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라며 걱정하던 H에게 영탄이는 ‘둘레길 같으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호언장담했다. 그 말이 내장산행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갑자기 일이 생겨 못 왔기에 망정이지, H가 만일 예정대로 여기 왔다면 어땠을까. 대충 상황이 그려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H가 부럽기도 했다.
체감거리는 달랐다...
0.1킬로미터 남았다는 표지판이 보였지만, 체감 거리는 아무리 못해도 1킬로미터는 될 것 같았다. 드디어 까치봉 정상. 기를 쓰고 올랐다. 비 오듯 쏟아지는 땀에 꼭 물에 빠진 생쥐 꼴 같았다. 반면, 영탄이는 놀라운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의 초상권 따위는 챙기지 않겠다.
허나 코로나 19 치하에 모범적인 등반가인 건 인정한다.
땀은 전혀 흘리지 않았고 옷은 보송보송했다. 마스크도 벗지 않고 있었다. 모자도 쓰고, 장갑도 끼고, 옷매무새는 한 치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아… 사람인가 싶었다.
“그래도 여기 엄청 좋다. 그치? 저기 새 나르는 것 좀 봐!”
L이 가리키는 쪽을 보니, 놀랍게도 산 아래로 보이는 계곡 위로 큰 새가 날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새가 나는 곳 보다 훨씬 높이 있어서 날아가는 새의 등이 보였다. 신기했다. 내 눈 아래 새가 날다니, 난생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야~~~ 호~~~
“여기서 점심을 먹자.”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편의점 김밥이 그렇게 맛있는 줄 처음 알았다. 해발 713미터 까치봉. 힘겹게 올라왔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 낸 나 자신이 무척 대견스러웠다. 난 먹을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배낭을 가볍게 하려고 물도 거의 다 마셔버렸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7. 노약자 입산금지
까치봉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든든히 점심도 먹었겠다, 오르막길도 끝났겠다, 평지와 내리막이 반복되어 나오니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앞장선 친구들을 따라붙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또 오르막이 나오는 것이었다. 산길이니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좀 이상했다.
“우리 어디로 가는 거야?”
“조금만 더 가면 연지봉!”
“연지봉? 내려가는 거 아니었어?”
“이게 내려가는 길이야!”
“내려가는데 왜 내리막길이 안 나와?”
“천천히 내려가고 있는 거야!”
알고 보니 정문에서 친구들이 ‘이렇게 돌면 되겠다’고 손가락을 휘휘 저으며 얘기하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하산하는 시간을 도대체 왜 4시간이나 잡을까' 이상했는데, 산 능선을 따라 일주해서 내려가려면 당연하였다. 배신은 가까운 사람에게 당한다.
‘… 나의 인간관계, 다시 생각해야 될지도...’
시계를 보니 산길로만 8~9킬로미터를 걸어왔다. 얼마나 걸어왔는지 알고 나니 배낭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계속 발끝을 내려보고 걸어서인지 뒷목이 굳은 듯 아파왔다. 뻐근하던 오른쪽 발꿈치는 이제 본격적인 통풍 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칼끝을 밟는 것처럼 통증이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허벅지에 힘이 빠졌는지 자꾸만 돌부리를 찼다. 보폭은 점점 줄어들었다.
까치봉(713m), 연지봉(蓮旨峰670.6m), 망해봉(望海峰650m), 불출봉(佛出峰610m).
숫자상으로 점점 낮아지는 것을 보니 내려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해가 중천을 넘어가니 그림자가 길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나마 드문드문 마주치던 사람들도 더는 없었다. 맞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도 없었고, 같은 방향으로 내려가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조바심이 났지만 발걸음은 자꾸만 늦어지고 앞장선 친구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졌다.
너무 무서웠다... 엄마...
아, 그런데 이건 좀 무섭다. 망해봉을 내려오는 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깎아지른 절벽을 내려오는 철제 계단이다. 손잡이와 계단이 고맙긴 한데, 디딤판 아래로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 까딱 잘못하면 발이 빠져버릴 것만 같다.
무서우면 아래를 내려다보지 말라고 했는데, 발이 빠질까 봐 아래를 안 보고는 도저히 발을 옮길 수가 없다. 친구들은 벌써 시야에서 사라졌다. 소리 질러 친구들을 부르려다 그만뒀다. 친구들이 돌아와 봐야 딱히 도움을 받을만한 일도 없거니와 공연히 겁먹은 거 보였다간 두고두고 무슨 놀림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난관은 꼼짝없이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양손으로 난간을 잡았지만, 절뚝거리며 내려가자니 영 자세가 불안했다. 계단은 뭐가 이리 많은지, 내려가도 내려가도 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디딤판에 주저앉았다. 혹여 누가 볼까 봐 계단에 앉아 쉬는 척, 멀리 풍경을 즐기는 척, 여유를 부리는 척했다. 그렇게 발판에 궁둥이를 붙이고 한 칸 한 칸,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야, 저 계단 너희들 괜찮았어? 노약자들에게는 너무 위험하겠더라. 계단 아래로 절벽이 보이니까 현기증이 다 나더라.”
불출봉에 도착하니 반가운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혹여 긴장한 얼굴을 들킬까 너스레를 떨었다.
“뭔 소리야, 여기 어떤 노약자가 오겠어.”
'(속으로)우리가 노약자잖아... 이거뜨라...'
그래도 친구들과 함께 있으니 안심이 됐다.
“이제 진짜 내려가기만 하면 돼. 거의 다 왔어.”
L이 말했지만, 그 말은 이제 믿을 수가 없었다.
거짓말 쟁이들 1, 2
8. 퉁풍 걸린 다리로 오징어게임
그럼 그렇지, 예상대로 내려가는 길은 끝이 없었다. 이제는 신발 속에서 발가락이 뭉그러지는 것 같았다. 몸이 힘들어서 더 지루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한참을 걸어, 양 갈래 길을 만났다. 정말 다 내려왔구나 하고 표지판을 보니, 오른쪽 길로 가면 월영봉이 나온단다. ‘아… 이렇게 사람이 산속에서 길을 잃고 호랑이에게 잡혀가게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월영봉 올라가 볼 거야?”
나는 말도 못 하고 손사래를 쳤다.
“이거 네가 짚으면서 내려가라. 훨씬 도움이 될 거야.”
L이 들고 있던 스틱을 건네주며 말했다.
“괜찮아, 나는 스틱 잘 안 써봐서 좋은지도 몰라. 너 들고 내려가.”
“아냐, 너 들어봐. 진짜 편해. 이거 새로 산 거야. 비싸게 줬어.”
“괜찮대도.”
“아, 글쎄 들어봐.”
실랑이를 하다 보니 어느새 스틱이 내 손에 들려있다. 친구 말대로 스틱을 짚고 내려가 보니 무릎도 덜 아프고 한결 편하다.
“가만, 너 배낭 이리 줘봐.”
아무리 그래도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배낭까지 친구에게 맡기고 패잔병처럼 절뚝거릴 순 없다.
“괜찮아. 안 아파. 아무렇지도 않아.”
극구 사양하며 화제를 돌렸다.
“영탄이는 왜 이렇게 빨라?”
“쟤는 저녁 예약해 놓은 거 자리 놓칠까 봐 저리 서둔다.”
아… 저녁. 어마어마한 맛집이라고 했지.
신발 벗고 마주 앉아 따끈하게 불 피우고
비스듬히 벽에 기대 까무룩 꿈꾸다가
산해진미 한술 뜨면 그게 바로 천국일걸
다들 미안하다. 맛집 소리 들으니 시 한 수 읊어봤다(이래 봬도 내가 출판사 운영한다...!). 여튼 머릿속에 한 줄기 빛이 드리우는 듯하더니 이내 환하게 불이 가득 들어와 기분이 좋아지긴 했다.
“몇 시 예약이라고?”
“5시.”
시계를 보니 벌써 4시가 한참 넘은 시간이었다. 그 식당은 워낙 인기 있는 곳인데다가 테이블도 많지 않아 혹 늦으면 자리를 뺏길지도 모른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조바심이 났다.
“얼른 가자.”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단길이 나오는 것을 보니 정말 거의 다 내려온 것 같았다.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얼른 내려가서 택시 잡아타고 식당으로 가면 천국이 펼쳐지리라.’
그런데, 계단을 걷기가 너무 어려웠다. 내가 힘이 다 빠져서 그런가 싶었다. 아무리 제대로 발을 디디려 해도 자꾸만 미끄러지고 넘어질 듯 몸이 휘청이는 것이었다.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찻길 침목으로 만든 계단 때문이었다. 발의 반도 걸쳐지지 않는 저 계단 크기가 보이시는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발이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웃지말자. 나는 오징어 게임하는 기분이다.
발꿈치를 최대한 뒤로 붙이고 찍은 사진이다. 신발 밑창의 크기가 못해도 33~4센티쯤 될 테고, 계단의 크기는 아무리 크게 잡아도 대략 20센치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난 옆으로 서서 한 칸씩 게걸음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걸음이 늦어지는 것은 당연하였다. 영탄이가 이 어려운 코스를 어떻게 그리 빨리 내려갔는지는 아직도 세기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그렇게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나서야 우리는, 아니 나는 서래탐방센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시계의 기록에 의하면 15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더라.
세상에… 평소 1.5킬로미터도 걷지 않던 내가 산길로만 15킬로를 걸었다. 그것도 고작 김밥 한 줄에 물 한 병으로 버티며, 심지어는 통풍 발작이 올라오는 다리를 이끌고 내장산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일주를 해 낸 것이다.
친구들이야 뭐, 마라톤 대회도 나가고, 탁구 대회도 나가고, 헬스클럽도 나가고, 틈만 나면 몸을 움직이려고 용을 쓰는 자들이라 내장산 일주를 끝내고도 별다른 감동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어마어마한 사건이었고 성취였다. 이것이야말로 근성과 끈기, 그리고 거룩한 투혼으로 일궈낸 기적이요, 눈물겨운 인간승리의 드라마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봄에 그 고생을 하며 올라갔던 북한산 족두리봉이 해발 370m, 그리고 비봉이 해발 560m라고 한다. 허허허.
버스를 타려면 서래탐방센터에서 한참을 걸어 나와야 했다. 혹시 택시 없나 찾아봤지만, 그 시간에 그곳으로 들어오는 택시는 결코 없다고 했다. 해는 다 넘어갔고, 한겨울 찬바람이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저절로 턱이 위아래로 떨며 이를 두드렸다. 찬 바람을 막으려면 가방에서 옷을 꺼내 입어야 했지만, 찝찝하게 젖은 티셔츠 위로 두 겹 세 겹 옷을 껴입기는 싫었다. 걸터앉을 벤치도 뭣도 없는 버스 정류장에서 쭈그리고 앉아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티셔츠가 마르기를 기다리며 추위와 싸웠다. 그러면서 난, 군인이나 소방관, 운동선수나 탐험가, 혹은 무장 공비 같은 극한 직업은 절대 가질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20여 분을 기다리니 드디어 반가운 버스가 왔고, 우리는 정읍 시내로 나왔다.
9. 황천길을 지나 천국에
그 막걸릿집은 정읍여고 근처에 있었다. 서너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원형 깡통 테이블이 대여섯 개 정도 있는 아담한 크기의 막걸릿집이었는데, 다행히 저녁 시간 직전에 도착한 우리는 한쪽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벽에 붙은 차림표는 한 주전자, 맥주, 소주 그리고 기본이 전부였다.
“안주는 뭐 먹어?”
“기본”
차림표에 안주는 별도로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냥 ‘기본’이 전부였다. 기본은, 술을 시키면 이런저런 안주들이 자동으로 따라 나오는, 말하자면 모듬안주의 확장판 같은 느낌이었다. 막걸리를 한 잔 따르기 무섭게 (안타깝게도 난 콜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지만), 부침개, 찌개, 굴, 밥, 쌈, 과메기 등이 차려지더니 가리비, 게장, 편육, 육회, 갑오징어, 생선구이에 매생잇국까지 줄줄이 따라 나왔다. 나중에는 상 위가 하도 복잡해서 접시를 들고 먹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같은 날이라 하더라도 주방의 사정에 따라, 테이블마다 차려지는 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우리 옆 테이블은 생선구이 대신 달걀찜이 나온 것까지 봤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새 만석. 막걸릿집이라 동네 아저씨의 단골집인 줄 알았더니 웬걸, 가게 안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겉모습과는 달리 여기는 어마어마한 먹거리 콘텐츠로 전국에 소문난 전국구 핫플레이스였던 것이다.
10. 오늘의 교훈
저녁이 깊어가니 막걸리 향과 함께 사람들의 눈빛도 깊어졌다.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들며 술 마시는 장면을 본 것이 언제였던가 싶을 만큼 생소하고 또 반가웠다.
내년 가을에는 이번에 빠졌던 친구들도 데리고 꼭 다시 오자고 약속했다(꼭 그래야만 하는 걸까 싶다. 왜냐하면 우정은 이 나이에도 소중하니까). 그러려면 아름답고 즐거운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며 영탄이는 민주산악회 단톡방에 신나고 즐거워 보이는 사진만 올렸다. 그러면서 오늘 등산 코스가 너무 싱거웠다고, 오죽하면 내가 옆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다고 또 거짓부렁을 덧붙였다(영탄이는 내년에 H랑 의절할 생각인가 보다).
2021년 11월 마지막 주말, 그렇게 하루를 새하얗게 불태운 세 아저씨들의 단풍 없는 내장산 단풍 순례가 끝났다. 가을의 끝자락을 잡으러 갔지만, 우린 겨울을 마중 나간 셈이 됐다. 덕분에 생각보다 아주 힘들었고, 생각보다 매우 즐거웠다.
집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시작된 통풍 발작으로 일주일을 앓아누워야 했지만, 그래도 오랜 친구들과 함께 땀 흘리고 웃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풍뎅아, 너의 도전을 응원한다!”
정읍역에서 헤어질 때, 영탄이가 했던 말이 자꾸만 생각난다.
여러분은 나와 같은 전철을 밟지 말고 친구를 함부로 믿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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