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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의 정수리

 

나는 인턴 비서로 국회 보좌진을 시작했다. 대학교 다니던 시절엔 이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졸업 후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국회 인턴 비서직에 지원하게 되었다. 국회 비서로 일을 한다고 했을 때, 주변 어른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올바른 직장을 구해야지 그건 정상 일자리가 아니다”

 

그분들에게 국회 보좌진이란, 국회의원 ‘시다바리’ 혹은 ‘가방모찌’나 하는 사람들로 느껴졌을 것이다. 단어 자체에 폄하의 의미가 담겨 있어서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영 틀린말도 아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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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좌관>

 

어느 날 의원실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왔다. 정중하게 입장한 그들은 사무실 직원들과 한 명 한 명 정성스레 인사했다. 쭈뼛쭈뼛 앉아 있던 내게도 차례가 돌아왔다. 선두에 있던 남자가 명함을 건네며 예의 바르고 다정하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잘부탁드립니다”

 

손에 쥐어진 명함에 쓰여진 그의 직업은 ‘한국공항공사 사장’. 야당 국회의원 인턴 비서에게도 공기업 사장은 정중하게 머리를 숙이고 명함을 건넨다. 며칠 전까지 자소서를 넣던 곳의 사장이 찾아와 정수리를 보여준다.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묘하게 기분은 좋았다.

 

그렇다. 국회 보좌진은 사실 엄청난 갑이다. 일을 해보니 정말 웬만해선, 어딜가나 ‘갑’이었다. 아쉬운 소리를 할 일이 없다. 싫으면 싫다고 말할 수 있고, 좋으면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대로 말하면 되고, 급하면 급히 달라고 요청한다. 이 모든게 가능한 것은, 국회가 갖는 지위가 대한민국 헌법과 관련 법률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헌법 61조 ①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

 

국회법 128조 ① 본회의, 위원회 또는 소위원회는 그 의결로 안건의 심의 또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와 직접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와 해당 기관이 보유한 사진ㆍ영상물(이하 이 조에서 “서류등”이라 한다)의 제출을 정부, 행정기관 등에 요구할 수 있다. 다만, 위원회가 청문회, 국정감사 또는 국정조사와 관련된 서류등의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에는 그 의결 또는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할 수 있다.

 

⑤ 제1항의 요구를 받은 정부, 행정기관 등은 기간을 따로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요구를 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보고 또는 서류등을 제출하여야 한다.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0조(감사 또는 조사의 방법) ① 위원회, 제5조제1항에 따른 소위원회 또는 반은 감사 또는 조사를 위하여 그 의결로 감사 또는 조사와 관련된 보고 또는 서류등의 제출을 관계인 또는 그 밖의 기관에 요구하고, 증인ㆍ감정인ㆍ참고인의 출석을 요구하고 검증을 할 수 있다. 다만, 위원회가 감사 또는 조사와 관련된 서류등의 제출 요구를 하는 경우에는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할 수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제4조(공무상 비밀에 관한 증언ㆍ서류등의 제출) ① 국회로부터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사람이 증언의 요구를 받거나, 국가기관이 서류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 증언할 사실이나 제출할 서류등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증언이나 서류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

 

이러한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모든 보좌진들은 ‘권한’을 갖는다. 국회는 상시적으로 행정부를 감시할 수 있다. 특히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는 슈퍼 갑이 된다.

 

VIP 헬멧을 쓴 사회 초년생

 

내가 인턴으로 국회 일을 시작하고 첫 국정감사 때 일이다. 선임 보좌관과 함께 경기도의 터널 공사 현장에 현장 답사를 나갔다. 당시 나는 국토교통위원회 소속이었다. 보좌진이 건설 현장에 직접 답사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의원도 없이 보좌진 둘만 답사를 나갔는데도 공사가 일시 중지 되는 상황은 놀라움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현장의 책임자와 담당 공무원은 ‘흰 장갑’과 ‘VIP’라고 적힌 안전모를 건네주며 우리를 극진히 대접(?)했다. 몇 달 전까지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던 내가 흰장갑에 안전모를 쓰고 공사 현장을 둘러보는 광경이 뭔가 우스꽝스러웠지만, 노련한 척 하느라 애썼다. 현장의 책임자는 이곳 저곳을 보여주고 선임 보좌관의 질문에는 친절한 설명을 곁들여 주었다. 사회 초년생인 내게는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불편함을 느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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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기도의회>

 

우리의 주요 방문 목적은 ‘현장이 안전수칙을 잘 준수하고 있는지?’, ‘공사에 사용되는 볼트나 부품이 정해진 규격의 제품을 정량으로 사용하는지?’, ‘공사비 과다 계상은 없는지?’ 등등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도피아(한국도로공사 마피아)’ 문제가 수면에 드러나고 있던 시기였다.

 

열심히 설명을 들어도 특별히 아는 게 없었으니, 내가 할 일은 그저 현장 곳곳을 카메라로 찍는 것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의미 없이 찍어대는 카메라 렌즈의 방향이, 그들에게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노심초사 지켜보는 커다란 의미로 다가갔을 것이다.

 

당시엔 몰랐지만, 우리는 아마 현장에서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를 듬뿍 받고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에겐 피곤한 ‘불청객’이었을 테니. 현장사람들의 그런한 감정과는 별개로 나와 함께 갔던 보좌관은 그 불편한 현장답사에서 무려 2시간을 넘게 설명을 듣고 질문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의 차 안에서 보좌관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서류만 봐서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있다. 직접 보고오면, 현장의 돌아가는 분위기를 이해하고 피감기관에서 제출하는 서류를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그 해 국토위 국정감사에서는 건설 현장 공사비 과다계상, 부품 단가 부풀리기, 공사비 횡령 문제로 떠들썩했었다.

 

보좌진들의 일하는 스타일은 제각각이다. 현장을 꼭 다녀오는 보좌진들이 있고 책상에 앉아서 서류만을 살펴보고 아이템을 발굴하는 보좌진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서류만 봐서 알 수 없을 땐 꼭 현장을 나가본다. 가끔 현장을 쫓아 영상을 직접 촬영해 공개하는 의원실을 보면 보좌진들이 아니라 탐정 사무소 같을 때도 있다.

 

좋은 예로는, 올해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김의겸 의원실 보좌진들의 조선일보 부수 조작 추적 영상이다. 조선일보 인쇄소에서 갓 발행된 새 신문을 실은 트럭 한 대가 신문을 싣고 그대로 경기도 광명 일대의 고물상으로 향하는 영상이었다. 새 신문이 발행 직후 곧바로 폐지 처리되는 현장을 직접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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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이런식으로 지금도 ‘부수조작’을 일삼고 있다는 내용의 아이템이 국정감사에서 다뤄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정부 광고 집행 과정에서 신문 발행 부수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보니 종이 신문 언론사들의 부수 조작이 일상화 되어 있었던 것이다. 놀라운 영상이었지만, 언론엔 그리 많이 다뤄지지 않았다.

 

이처럼 국회의원실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권한을 활용하는 수단과 방법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대부분 문서나 서류를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보좌진들은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취재를 하든 추론을 하든 상상력을 발휘하든 어떻게든 아이템을 찾아내려고 한다.

 

그렇다. 그것은 정말 '아이템' 발굴이다. 어떤 문제점을 발견했느냐, 즉 어떤 아이템을 찾아 내느냐가 곧 모시는 의원의 성과가 되고 보좌직원 본인의 포트폴리오가 되기 때문이다. 이 역시 넓은 의미의 ‘밥그릇 투쟁’이다. 

 

의원실의 권한

 

행정부 견제의 최전방에 있는 보좌진들이 죽자고 달려들면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늘 난처해진다. 보좌진들은 피감기관의 모든 내부사정을 다 들여다 볼 수 있고,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그래야 문제점이, 아이템이 더 잘 보이기 때문이다.

 

피감기관 입장에선 보좌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을 수 밖에 없다. 측근인 보좌진에게 잘 보여야 국회의원에게도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좌진 입장에서 공공기관 사장 정도야 크게 무섭지 않은 것이었다. 유수의 대기업 임원들도 여야 합의로 국회에 부를 수도 있다. 심지어 ‘백종원’도 부르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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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국정감사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더본코리아 대표 백종원 씨

 

그뿐인가, 국정감사에 무려 펭수를 부르겠다는 의원도 있었다. 펭수를 국회에 부를 수 있다니 국회는 역시 안되는 게 없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이 사건은 끝까지 코메디였던 게 펭수 팬클럽연합(펭클연)에서 참고인 철회를 요구해서 참고인 출석이 불발되었다. 국민의힘 황보승희 의원이 한심한 게 아니라 펭수를 부를 생각을 못한 나의 상상력이 부족했다치고 넘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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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 최초로 국회에 출석할 뻔한 펭수 (관련기사 링크)

 

국회 보좌진들은 현장 답사를 가는 것 외에도 상시적으로 피감기관에 자료요구를 할 수 있다. 이 역시 엄청난 권한이다. 자료요구는 국회 인터넷 페이지에서 쉽게 가능하다. (링크) 

 

자료 요구에는 주말이나 공휴일도 가리지 않는다. 오늘 요구하고 내일까지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다(2편에서 말했듯, 자료요구도 야당의원실에서 더 빡빡하게 하고, 여당 보좌진들은 아무래도 좀 널널하게 하는 편이다). 정해진 양식도 따로 없다. 원하는 대로 요구해서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정부부처 XX산하기관 기관장의 최근 5년간 법인카드 사용내역’이라고 한줄만 보내면, 해당 기관에서는 기관장의 최근 5년간 사용한 법인카드 내역을 보내야한다. 다시 생각해봐도 역시 놀라운 권한이다.

 

언론의 권능

 

국회의 자료요구 때문에 난처하고 고생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보좌진들의 자료 요구로 세상에 드러나는 사례도 많다. 하나의 예로, 올해 교육위 국정감사에서 여수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도중 숨진 故 홍정운 학생에 대한 이슈가 국정감사장 도마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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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국회 교육위원들은 국정감사에서 교육부의 부실한 관리 점검을 질타하고 재발방지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특성화고 학교 측이 현장 실습 과정에서 학생들이 하기 어려운 고위험 작업들을 시키기도 했고, 현장실습 프로그램의 규정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나아가 최근 3년간 직업계고 현장실습 도중 산업재해가 발생한 기업의 수가 매년 40곳이 넘어서고 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국회 교육위 보좌진들이 교육부와 관련 부처에 요구한 자료를 통해 알아낸 새로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국회 보좌진들의 자료요구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는 새로운 내용들도 많이 있다. 아니, 대부분 그렇다.

 

올해 교육위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현장실습생 보호법’이 국회에 발의되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직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현장실습 도중 매년 발생하는 산업재해로부터 두텁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법안이 바로 소위 말하는 민생 법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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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링크)

 

국회의 수많은 보좌진들과 의원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감추어진 부조리와 허점들을 찾은 사례는 매우 많다. 잘 알려지지 않을 뿐이다. 사실 애초에 그러라고 뽑아 놓은 사람들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언론의 무관심 속에서도 만들어내고 발의하고 통과시키고 있는 보석처럼 빛나는 민생 법안들이 많이 있다. 그렇게 사용하라고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에게 막강한 권한이 부여되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올해 국정감사에서 대다수의 언론은 ‘대장동 이슈’에만 몰두했다. 국회의 국정감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고 정쟁만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정치권이 일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전가의 보도처럼 쉽게 꺼낸다.

 

많은 이들이 저 말에 대충 동의 하겠지만, 사실 이 말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말이다. 실제로 일하지 않는 의원도 있고 정말 미친 듯이 일하는 의원들도 있다. 그러니 다 똑같다고 퉁쳐서 될 일이 아니다.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일 안하는 정치인들을 찾아서 정밀 타격해야 한다.

 

뿌리 깊은 정치 혐오는 이런 데서 비롯된다. 보좌진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진짜 관심이 필요한 뉴스는 늘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할 때가 많다. 이번 국정감사에도 언론이 대장동 이슈로 대중의 관심을 모조리 빨아간 덕에, 치부가 드러나지 않고 무사히 위기를 넘겨 가슴을 쓸어내리는 피감기관, 많았다.

 

위임된 지위

 

보좌진들이 갖는 ‘갑’이라는 지위는 시민이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에게 권한을 위임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힘이다. 결국 그 갑의 지위는 국민이 준 지위다. 위임된 막강한 지위를, 쓰여야 할 곳에 오롯이 쓸 줄 아는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국회에 진출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격 미달, 수준 미달의 국회의원과 그의 보좌진들이 국회를 활개 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한심해보이기를 넘어 보기 두려울 정도다.

 

피감기관 사람들은 국회 보좌진에게 대부분 저 자세로 임한다. 그러한 상황에 점점 익숙해지면 한심하게도, 자신들이 가진 특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좌관 갑질 문제가 종종 터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읽지도 않을 방대한 자료를 쓸데없이 많이 요구해 피감기관을 괴롭히는 보좌관들도 종종 있다. 심지어는 뒷돈을 받는다거나 접대를 받는 사람들도 봤다.

 

다행히도 이런 한심한 보좌진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단언컨대 이런 인간들은 국회에서 오래 발붙이기 힘들다. 1편에서 말했듯, 여의도는 자유계약시장이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치열한 밥그릇 싸움을 통해 자신의 실력과 능력을 검증받는 곳이다. 지위에 취해 한심하게 구는 인간들은 웬만해선 나가리다. 현재 대한민국 국회에는 그정도 자정작용은 있는 것이다(물론 세상일엔 언제나 예외는 있지만).

 

자정 시스템과 별개로, 국회에서 일하는 자는 늘 겸손해야 한다. 보좌진들이 가장 경계해야 되는 부분이다. 결코 지위에 취해선 안된다. 우리의 직업은 잘못했을 때 뉴스에 나오는 직업이다. 이름을 드높이는(?)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