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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이슈는 대선에서 야당의 화력이 집중되는 여당의 약한 고리다. 반면 여당에 부동산 이슈는 반격을 위해 사수해야 할 ‘낙동강 방어선’이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여론이 나쁘다 보니 이런 전선이 만들어졌다.

 

어쩌다 부동산 문제에 이토록 발목잡힌 것일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부정적 평가나 시장의 상황은 의지 부족이나 고위 관료의 부동산 이해관계 탓은 아닌 것 같다. 서른 번 넘는 부동산 대책이 나왔고, 여당 정치인과 정부 고위 관료가 부동산 이익을 크게 봤다고 보기도 어렵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부동산 정책에 대한 의지, 신념과는 별개로 시장의 상황은 명징한 사실이고 결과이기에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냉철한 마음으로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 채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오답정리이며 틀린 것을 바르게 정리해야 진짜 공부고 실력이 되니 말이다. 

 

다음 정부를 위해서도 그렇고, 부동산만큼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이슈가 없다.

 

적폐의 최상위와 여론 

 

문재인 정부의 민주주의는 두 가지 핵심 요소로 갖고 있었다.

 

첫째는 적폐청산이다. 국정농단과 대통령 탄핵을 겪은 영향이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 하겠다고 선언했다. 각 부처에 적폐청산과 관련한 위원회들이 만들어졌고, 검찰은 과거 정부의 인사들을 여럿 구속했다.

 

둘째는 여론이다. 대중적 촛불 집회의 힘으로 건설된 정부였던 까닭이다. 대통령은 취임 100일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국민께서) 정부에 정책을 직접 제안해 그것을 반영하게 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의 이런 생각을 상징적으로 구현한 게 여론 지지도에 따라 정부가 답변하는 국민청원 게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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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뉴시스>

 

부동산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쯤에서 감이 왔을 것이다. 적폐청산‧여론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미쳤는지 말이다. 바로 부동산 투기 규제와 징벌적 세금 부과 정책이었다.

 

사실 적폐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순간, 부동산 투기꾼은 필연적으로 적폐 리스트의 최상위에 위치할 운명이었다. 집값 문제는 단 한 번도 한국 사회 관심사에서 멀어진 적이 없었다. 부동산 투기꾼은 1970년대 강남 개발 때부터 나왔던 가장 전통적 ‘적폐’였다. 여론을 따라야 하는 이상 투기꾼 응징은 불가피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청원은 ‘처벌’해 달라는 요구다. 대중의 공감은 만족이나 기쁨이 아니라 질투나 분노에 더 집중되는 법, 인간 감정의 속성이 그렇다.

 

벼락 맞은 부동산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부동산 투기 적폐를 청산하는 정책을 쏟아냈다. 매매 제한, 대출 규제, 세금 부과 3종 세트였다. 집값 폭등이 시작되지 않은 2018년 초순까지는 여론도 정부의 정책을 지지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 치솟는 아파트 가격 앞에서 적폐청산 정책은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약속했던 바와 실제 상황이 달랐기 때문이다. 정부 말을 믿은 사람은 이른바 ‘벼락거지’가 된 느낌을 받았다. KB부동산 통계로 보면 서울 아파트 중위 가격은 박근혜 시기보다 연평균 세 배 빠르게 상승했다. 문 정부 출범 직후 10억 아파트를 샀다면 현재 5억 이상의 차익을 얻은 셈인데, 반대로 정부 말을 듣고 집을 사지 않은 사람은 5억 이상 손해 본 느낌을 받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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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겨레>

 

혹자는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 국면이라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봐도 서울 아파트는 가격 폭등이 심하다. 2021년 상반기 서울 아파트 매매 지수는 작년 동기와 비교해 실질 가격으로 17% 상승했는데(KB통계), 세계적 투자은행 UBS가 내놓은 보고서(Global Real Estate Bubble Index)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 거품이 심한 도시로 평가받은 독일 프랑크푸르트가 같은 기간 10% 상승했을 뿐이다. 서울이 평가 대상이 아니어서 그렇지 포함됐다면 1위를 했을 것이다. 

 

단일한 욕망과 빗나간 과녁

 

그렇다면, 부동산 적폐청산은 왜 이루어지지 못했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원인을 찾는 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여야 대선 후보 모두가 공약 첫 번째로 무지막지한 아파트 공급 계획을 내놨으니 말이다.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이 공급 부족이란 점에 거국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기억을 떠올려보자. 공급 확대를 핵심 정책으로, 투기 규제를 보조 정책으로 가져야 한다는 지적은 정부 출범 직후부터 전문가들이 꾸준하게 지적했던 바였다. 정부는 반박까지 해가며 이런 지적을 무시했다. 따라서 지금에 와서 우리가 생각해봐야 하는 건 왜 실패했는지가 아니라, 왜 실패할 게 예상되었던 정책을 반복해서 강화했는지다.

 

간단한 상식부터 보자.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주택 소유자의 자산이 커지고, 세입자의 주거비 지출이 증가한다. 소유자 이득, 세입자 손해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보면 자기 소유 집에 사는 가구(자가점유율)가 60% 정도 된다. 만약 순수하게 부동산 손익으로 정부 정책 지지 여부를 결정한다면, 집값 상승에 대해 60%는 긍정적 반응을 보여야 정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랬나? 당연히 아니었다. 모든 여론 조사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실마리는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실태조사는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관련 가장 큰 조사다. 2020년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0%가 자가 보유를 원하고 있었고, 정부에 바라는 주택 지원 정책도 주택 구매 대출 지원이 가장 많았다. 심지어 하위 소득 가구도 공공임대보다 주택 구매 대출을 오히려 선호했다. 주택을 보유하는 건 국민 다수의 욕망이었다는 것이다. 정부의 매매 제한, 대출 규제, 세금 부과 정책은 결과적으로 국민 다수의 욕망과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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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경향>

 

즉, 원인은 부동산 시장의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와 욕망의 과녁을 잘못 조준한 것에서 시작됐다. 따져보면 청와대 여러 인사의 부동산 논란에서도 드러났듯 정부 고위 관료들도 부동산과 관련하여 다 나름의 이해할 만한 사정이 있었다. 무 자르듯 투기꾼과 실거주자로 나눌 수 없다는 건 청와대도 알고 있었다. 관계자들의 사정 역시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시행할 때는 적폐청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나는 민주주의를 적폐청산과 여론의 지배로 이해한 점과 이 부동산 맹목이 깊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적폐청산이란 세상이 선과 악으로 나뉘어 각각이 차곡차곡 쌓인다는 생각을 전제한다. 하지만 부동산에서 볼 수 있듯 세상사에서 그런 일은 좀처럼 없다.

 

또한, 여론을 반영하는 정부는 국민 다수가 원하는 정책은 실행하고, 원하지 않는 정책은 중단한다. 국민 호오로 정책 시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좋고 싫음이 결과의 성패를 결정하진 않는다. 요컨대, 적폐청산과 여론의 민주주의는 부동산 시장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국민 감정도 요동치는 문제 앞에서 백전백패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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