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주권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후, 중국은 홍콩을 경제적으로 통합하고자 했다. 경제로 대표되는 하부구조가 의식 형태를 비롯한 모든 상부구조를 지배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에 주목한 정책이었다. 즉, 홍콩의 경제를 중국과 떼어놓을 수 없을 정도로 통합시키면 홍콩인들의 정체성 또한 중국인들의 정체성과 통합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신념 아래 중국은 홍콩과 관련해 여러 정책들을 시행했다.
그중 하나가 중국 관광객을 홍콩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관광객을 통해 중국의 현실적인 힘을 보여 주고 싶었다. 아마 2003년 홍콩의 사스 파동 당시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정부가 중국인 관광객을 대거 보내 홍콩의 경제를 돕기로 한 것이다. 일 년에 7천만 명을 ‘보낸’ 적도 있었다. 중국의 경제적인 인해전술 중 하나로 관광객을 정부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는 중국이 외국 조야를 ‘길들이기’ 위해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다. 중국으로 인해 잘 먹고 잘살게 되고, 의존성이 높아지면 네 고집도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의미다.
하지만 경제가 모든 것을 지배할 수는 없다. 개인의 정체성도 쉽게 좌우할 수 없지만, 홍콩이라는 지역 정체성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자존심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개인이나 지역의 정체성은 그것 자체로 자존심이기도 하다.
게다가 중국의 기대와는 달리 주권 반환 후 터진 몇 개의 사건 때문에 홍콩의 정체성은 중국과 반대로 무한대로 증폭되었다.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가 2003년부터 중국에서 터지기 시작한 ‘가짜 분유 사건’이다.
‘가짜 분유 사건’으로 싹쓸이된 홍콩의 제품들
‘가짜 분유 사건’이란 중국에서 팔리던 분유가 사실은 영양가가 하나도 없는, 고체 음료였던 사건이다. 장기간 섭취할 경우 머리만 이상적으로 발육하는 ‘대두증’이 나타나고, 심하면 사망하게 되었다. 가짜 분유는 중국 정부의 언론 통제와 미온적인 대처로 아는 사람들은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른 채 계속 판매되고 있었다.
가짜 분유.
가짜 분유로 인한 대두증.
결국 2008년 영유아 수십 명이 사망하고, 수만 명이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다. 중국 정부는 관련자들을 공개 처형시키기도 했지만, 2021년인 지금까지도 가짜 분유가 있다는 의심은 꺼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중국인들은 세계 각지로부터 분유를 사들였고, 홍콩의 편의점에서도 분유를 싹쓸이하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생산되는 모든 먹거리에 대한 불신이 생기게 되었다.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가장 쉽게 구입할 수 있는 곳은 제일 가까운 ‘외국’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이었다.
외국산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개인은 물론 보따리상들이 홍콩으로 몰려들었다. 분유는 물론, 다른 먹거리들까지 정작 홍콩인들이 구하지 못하는 사태들이 발생했다.
원정 출산과 역차별받는 홍콩인
그즈음부터 홍콩 언론에서 ‘메뚜기(蝗蟲)’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쇼핑, 관광, 출산을 위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중국인을 낮추어 일컫는 말이다. 중국인들에게 ‘타인의 이익을 뜯어먹는, 가로채는’ 메뚜기 이미지를 덮어씌운 것이다. 홍콩인들은 몰려오는 중국인들을 ‘메뚜기’라고 불렀다.
홍콩으로 향하는 중국인들의 목적은 제품 구매에서 원정 출산까지 더해졌다. 중국 임산부들에게 홍콩의 병원에서 출산하는 것이 유행이 되어버렸다. 홍콩은 속지주의를 적용하기 때문에 홍콩에서 태어나면 홍콩에서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홍콩뿐만이 아니라 같은 속지주의의 미국과 캐나다 등 선진국들도 중국 임산부들의 원정 출산으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다.
선진적인 홍콩의 교육과 의료 혜택을 받기 위해 1년에 수만 명의 중국 임산부들이 홍콩의 병원에서 출산을 했다. 2011년 기준 4만 명의 임산부가 홍콩에서 몸을 풀었다(2013년부터 금지됨).
2011년 ‘중국인 원정 출산 반대’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홍콩인들.
참다못한 홍콩맘들은 중국인의 원정 출산을 금지하라는 시위를 벌였다. AFP 등의 외신이 보도한 홍콩맘의 심경은 이랬다.
"중국 본토에서 원정출산 하러 온 산모들 때문에 정작 홍콩 산모들은 병원 복도에서 출산해야 할 지경이다."
"6개월 전 출산했을 때 산부인과 병동 10명의 산부 중에 9명이 중국 여성이었다."
홍콩인들은 중국인들이 세금도 내지 않고 혜택을 보려는 것과 정작 자신들이 필요할 때 병상을 사용할 수 없는 현실에 분노했다. 이런 불만을 잘 알면서도 중국 정부는 상황을 오랫동안 방치했다. 인구로 홍콩을 접수하고자 하는 새로운 인해전술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홍콩의 쇼핑센터에서는 구매력 때문에 중국인 관광객을 선호하고, 도리어 홍콩인을 차별했다. 홍콩인들의 불만은 비등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내 친구는 편의점에도 마음대로 가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자주 한탄했다.
“낮에는 중국인들의 구매대열이 너무 길어서 밤에 편의점을 갈 수밖에 없어. 하지만 대부분 내가 사고 싶은 물건은 이미 다 팔렸더라고. 물건을 살 수가 없어”
곳곳에서 홍콩인들과 중국 보따리상들의 말싸움이 벌어졌다. 편의점 앞에서 쇼핑한 물건을 정리하는 중국인들을 향해 홍콩인들은 “돌아가! 돌아가! 오지마!” 라고 고함을 질렀다. 나중에는 집단으로 행동하기 시작했다.
SNS로 지금 홍콩 어디에 중국인 보따리상들이 많다고 하면 바로 수백 명이 그곳으로 몰려들어 보따리상들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경찰이 출동해서야 겨우 진정될 때가 많았다.
조국으로의 ‘거룩한’ 주권 반환이 이제는 홍콩인들에게 생활의 불편이라는 의미가 되었다. 어쩌면 이것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비극이었다. 브렉시트 등 유럽연합의 위기는 난민 유입으로 야기된 생활상의 불편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생활의 불편보다 더 가슴 아픈 사건이 발생했다. 홍콩인들의 자존심을 크게 짓밟아버린 초대형 사건이었다.
‘전철 과자 사건’에서 시작된 핵폭풍
나는 이 사건이 주권 반환 이후 정체성 충돌을 보여주는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작은 사건처럼 보였으나 나중에는 핵폭풍처럼 커졌다. 중국과 홍콩을 양분시킨 역사적인 사건으로 발전했을 정도다. 사건의 시작은 ‘홍콩의 전철‘에서 일어났다.
2012년 1월 구정 직전, 중국에서 가족과 함께 관광을 온 아이가 전철 객실에서 과자(라면땅)를 먹었다. 홍콩인 몇 명이 전철 규정을 들어 그것을 지적하였고 말싸움으로 번졌다. 그즈음 홍콩의 전철 내에서 왕왕 발생하던 감정싸움 중의 하나였다.
홍콩의 전철에서는 음식물 섭취가 금지되어 있다. 벌금 액수와 함께 음료수도 마시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있다.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홍콩인들의 습관으로 인해 전철이 더러워지면서 금지 규정이 생겼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홍콩인들도 중국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마찬가지) 심심풀이로 호박씨-수박씨를 까먹는 습관이 있었다. 이것 때문에 70년대 홍콩의 전철 개통 초기에 객실 안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홍콩은 아예 전철 내 음식물 섭취를 금지했고, 수십 년이 지나며 홍콩인에겐 전철 내에서 마시지도 먹지도 않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그런데 주권 반환 후 중국인 관광객이 몰려들며 전철 내에서 이것저것 까먹는 행동을 했다. 중국인들은 아직 그 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로 인해 홍콩인과 몰려드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충돌이 발생했다.
충돌이 계속되자 어느 순간부터 홍콩의 침사추이 등 중국의 관광객이 몰리는 곳에는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포스터와 게시판이 등장했다. 큰 소리로 떠들거나 휴지를 함부로 버리는 등의 비문명적 행위를 하지 말자는 내용이다. 인해전술처럼 몰려오는 관광객들 중에는 길거리와 식당에서 중국에서 하던 대로 ‘비문명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았다(중국의 문명표어와 관련하여 졸저 『이미지로 읽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참조 바람).
홍콩 전철의 모습.
음식물 섭취를 금하는 전철 내 경고문.
중국인들은 그들대로 사사건건 트집 잡는 홍콩인들의 옹졸함에 속상해했다. 홍콩인들은 시종일관 중국인을 가르치려 하는데, 중국인들은 이것이 홍콩인들의 국가 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당시 홍콩의 전철이나 길거리에서 공중도덕과 관련하여 홍콩인들과 중국인 관광객들의 충돌이 잦았다. 전철과자 사건도 그중의 사소한 하나의 사건으로 묻힐뻔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 사건의 크기가 엄청나게 커진 것은 베이징대학 중문과 쿵칭둥 교수가 중국 인터넷 텔레비전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전철 과자 사건을 언급하며 홍콩의 정체성을 강하게 비판하면서다. 이 동영상이 공개되자 양쪽(중국, 홍콩) 네티즌은 즉각 상호 비방전에 나섰다. 관련하여 수많은 여론조사가 발표되는 등 순식간에 정체성 갈등의 쟁점이 되었다.
류영하(백석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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