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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뮌헨 맥주홀

 

영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1650년 한 유대인에 의해 옥스퍼드에서 문을 열었다.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로이드 보험회사도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됐다. 커피하우스를 만들고, 배의 화물과 운송 일정에 대해 논의했고, 보험업자들이 운송보험을 팔기 시작했다. 커피하우스는 만남의 장이었고, 정보교환의 창구가 됐다. 

 

이곳에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는 계몽주의자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입장료 1페니만 내면 누구든 출입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붙은 별명이 ‘1페니 대학’이다. 1페니만 있다면 당대 명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1페니 대학을 중심으로 정치적인 움직임이 있는 게 당연했다. 이 때문인지 청교도 혁명을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가 돌아와 왕정을 복고(復古)시킨 찰스 2세는 커피하우스 폐쇄를 명령하기도 했다. 

 

17세기 영국의 불온한(?) 기운이 커피하우스에서 시작됐다면, 20세기 독일의 불온한 기운은 맥주홀에서 시작됐다. 1920년대 독일의 술집은 정치 군상들의 집합체이자, 모든 사상들의 전시장이었다. 이곳으로 히틀러가 걸어 들어갔다.

 

뮌헨에만 50여 개가 넘는 정치결사체가 만들어졌다. 시시껄렁한 동네 양아치들의 모임도 있겠지만 무정부주의자, 애국주의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까지 온갖 단체들이 다 튀어나왔다. 히틀러에게 이들 정치모임을 감시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바로 독일 노동자당(Deutsche Arbeiter Partei), 훗날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Nationalsozialistische Deutsche Arbeiterpartei), 나치라 불리게 되는 정치결사체를 찾아가게 된다. 당시 모습을 히틀러는 이렇게 묘사했다. 

 

(상략)···돌연 한 ‘교수’가 발언할 때까지는 모두 무의미하게 끝날 것 같았다.···(중략)···바이에른을 ‘프로이센’으로부터 분리시키는 투쟁을 일으켜야 한다며 이것을 아주 열심히 이 신당에 추천했다.···(중략)···나는 발언을 요구하고 이에 관한 내 의견을 학식 있는 분에게 말씀드릴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성공이었다. 이 연설자는 내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물벼락을 맞은 푸들개처럼 회의장에서 사라져버렸다.

- <나의 투쟁> 중 발췌  

 

히틀러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이날 히틀러는 자신에게 ‘연설의 재능’이 있다는 것과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두 눈으로 확인한다. 이때 독일 노동자당의 지도자였던 안톤 드렉슬러는 직접 팸플릿을 들고 와 히틀러 영입에 나서게 된다. 이때까지 독일 노동자당의 실체는 '사회에 불만 많은 아저씨들의 집합체'였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들어오면서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건 독일 노동자당도 그렇지만, 히틀러 자신도 변하게 된다. 

 

뮌헨 폭동.jpg

 

“그것은 나의 생애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결단이었다.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이미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독일 노동자당’의 당원으로서 등록하고 번호 7의 임시당원증을 받았다.”

- <나의 투쟁> 중 발췌

이건 거짓이다. 히틀러는 55번째 당원이며, 당원 번호는 555번이었다. 당원 번호는 501번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나의 투쟁>을 보면 히틀러의 정치적 비전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책을 펴게 된다. 그런데 목차나 내용을 보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 

 

- 잡종의 열등성

- 순종은 견디어내는 경우에도 잡종은 견디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게 있다.

- 인종의 자연적 갱신과정

 

<나의 투쟁>에 나와 있는 인종과 혼혈에 관한 목차와 내용 일부를 발췌한 거다. ‘민족주의 국가의 인종 위생’이란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게 이 책이다. 책 내용의 상당수가 과장되거나 윤색된 부분, 억지 주장들이 넘쳐난다. 연구 목적 외에는 가급적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2. 킹메이커의 등장

 

이쯤에서 주목해야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디트리히 에카르트다. 이 사람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히틀러는 없을 수도 있다. 처음 독일 노동자당의 문을 두들긴 히틀러는 말 그대로 ‘얼치기 선동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히틀러는 기본적인 테이블 예절이 없었고, 좀 ‘사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도 없었다. 옷도 제대로 입을 줄 몰랐으며 철자법도 자주 틀렸다. 결정적으로 상식이 부족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상식은 더더욱 부족했다(훗날 뉘른베르크 감옥에서 나온 뒤 그의 측근들은 시간 있을 때 미국 같은 외국을 방문해서 견문을 넓히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었다. 히틀러는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소양을 채우려 했지만 그의 미국행은 무산된다).

 

1890년 경의 디트리히 에카르트.jpg

디트리히 에카르트

 

디트리히 에카르트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창설 멤버였다. 그는 히틀러를 발굴했다. 히틀러를 갈고 닦았다. 히틀러의 연설문을 손봐주었으며 부족한 교양과 인맥을 채워 준 것도 그이다. 20살이 넘는 나이 차이를 보면 거의 부자지간의 모습이라 해도 될 것이다.  

 

에카르트는 툴레 협회의 회원이었다. 툴레 협회(Thule-Gesellschaft)의 애초 설립 취지는 간단했다. '바이에른의 상류층 인사들이 만든 비밀 결사체'. 오컬트적 성격에, 정치결사체로서의 모습도 보였다.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던 단체이다. 이들은 나치당의 이념과 활동 방향에 큰 영향을 끼쳤다. 

 

훗날 그가 죽기 직전에 남겼던 유언은 유명하다.

 

“히틀러를 따르라, 춤은 그가 추지만 노래는 내가 고른다.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라. 나는 독일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에카르트는 뮌헨 폭동이 있고 얼마 뒤 쓸쓸히 병원에서 죽는다. 뮌헨 폭동 전후 히틀러와 에카르트의 관계는 이미 소원해진 뒤였다. 히틀러는 더 이상 에카르트를 찾지 않았다. 주목해야 하는 건 ‘뮌헨 폭동’ 혹은 ‘맥주홀 반란’이라고 부르는 나치당의 쿠데타 모의다. 알다시피 이 쿠데타 모의는 훗날 나치당의 전설로 전해지게 된다. 

 

폭동에 참여한 나치당 친위 단체, 돌격대(SA).jpg

폭동에 참여한 SA(Sturmabteilung, 나치의 준군사적인 조직인 돌격대) 단원들

 

뮌헨 폭동 당시, 나치당의 ‘찌질 했던’ 이들이 15년 뒤, 한 자리에 모여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엄중한 의식을 거행할 때 마음은 어땠을까. 어설픈 쿠데타 계획 아래, 쫓기듯이 시작한 뮌헨 폭동이다. 그들이 10년 뒤 정권을 잡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시작은 독일 공산당이 수면 위로 치고 올라가면서부터였다. 

 

3. 로자 룩셈부르크 

 

붉은 로자도 사라졌네

그녀의 몸이 쉬는 곳마저 알 수 없으니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말했고

그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그녀를 처형 했다네

- 베르톨트 브레히트

 

1차 대전 종전 직후 독일 사회의 혼란상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 있다.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두뇌라 일컬어졌던 로자 룩셈부르크다. 

 

로자 룩셈부르크.jpg

로자 룩셈부르크

 

1880년대 중반에 열다섯 절름발이 유대인 소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불공평에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후 평생을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았다. 그녀에겐 타협이란 단어가 없었다. 그녀 스스로가 내세운 이상과 신념을 위해 싸웠다. 레닌이 혁명 달성을 위한 독재를 말했을 때 이를 반대했다. 조국 폴란드의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을 말할 때, 계급 해방을 부르짖었다. 그녀는 노동자의 평등과 자유, 민주적인 세계를 부르짖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외쳤다.

 

 "사회주의는 노동자의 이름으로 독재를 행하는 훌륭한 사람들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라는 것은 노동자의 자기 해방이 아니면 안 된다. 누구도 당신을 위해 사회주의를 가져다 줄 사람은 없다."

 

그녀는 1918년 11월의 혁명으로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다. 그녀는 원래 사민당 소속이었으나, 사민당 지도부의 퇴행적인 행보에 분노했다. 카를 리프크네히트와 함께 사민당을 뛰쳐나와 스파르타쿠스단(Spartacus League)을 만든다.

 

훗날 독일 공산당의 전신이 되는 스파르타쿠스단은 그 존재 자체로 종전 직후 독일의 모습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참고자료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2/ 페이퍼 로드/ 존 톨렌드 저 민국홍 역

히틀러 평전 1, 2/ 푸른숲/ 요아힘 C. 페스트 저 안인희 역

CEO 히틀러와 처칠 리더십의 비밀/ 휴먼 앤 북스/ 앤드류 로버츠 저 이은정 역

나의 투쟁/ 범우사/ 아돌프 히틀러 저 서석연 역

히틀러는 왜 세계 정복에 실패했는가/ 홍익출판사/ 베빈 알렉산더 저 함규진 역

히틀러 최고사령부/ 플래닛 미디어/ 제프리 메가기 저 김홍래 역

히틀러가 바꾼 세계/ 플래닛 미디어/ 메튜 휴즈 저 박수민 역 

히틀러 최후의 14일/ 교양인/ 요아힘 C. 페스트 저 안인희 역 

제2차 세계대전사/ 청어람미디어/ 존 키건 저 류한수 역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 페이퍼로드/ A. J. P 테일러 저 유영수 역 

강대국의 흥망/ 한국경제신문사/ 폴 케네디 전 이왈수 역 

처칠회고록(제2차대전 발췌본)/ 까치/ 윈스턴 처칠 저 차병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