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 기사 추천 기사 연재 기사 마빡 리스트



돈까스를 조금만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비슷한 질문에 도착하게 된다. 어째서, 한국식 돈까스(경양식 돈까스, 기사식당 돈까스 등)는 일식 돈까스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돈까스와 일식 돈까스가 다른 점부터 살펴보자.

 

① 우선 고기 두께. 일식 돈까스는 두껍고 고기의 질감을 살렸는데, 한국 돈까스는 고기를 망치나 칼로 두드려 넓게 펴서 상당히 얇다(그래서 두꺼운 안심을 사용하는 것이 표준인 일식 돈까스와 달리 주로 등심을 사용한다).

 

② 튀김옷과 빵가루. 일식이 좀 더 굵은 빵가루를 쓰고 튀김옷도 두터워서, 좀 더 바삭한 맛이 난다.

 

③ 일식 돈까스는 대부분 잘라서 나와 젓가락으로 먹는데, 한국 돈까스는 대부분 그대로 나와서 포크와 나이프로 직접 잘라먹어야 한다.

 

④ 진한 소스에 돈까스를 따로 찍어 먹는 일식과 달리 한국 돈까스는 소스가 부어져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소스의 맛이 일식에 비해 강하지 않다.

 

⑤ 한국 돈까스는 주로 스프와 함께 나오는데 일본 돈까스는 된장국과 함께 나오고, 한국 돈까스는 양배추 외에도 마카로니, 당근, 삶은 야채, 베이크드 빈스, 옥수수 등 함께 나오는 가니시의 종류가 좀 더 다양하다.

 

1.jpg

전형적인 경양식 돈까스인 인천 '씨사이드'의 돈까스

 

 

2.jpg

전형적 일본 돈까스인 도쿄 긴자 '돈까스 아오키'의 돈까스

 

‘돈까스의 원조’라는 슈니첼, 커틀릿 등을 먹어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어째서 이 음식들은 한국 돈까스와 더 비슷한 모습일까? 슈니첼이 일본에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온 것이라면, 어째서 원조 슈니첼과 비슷한 모양으로 변한 것일까?

 

일단 서유럽식 커틀릿(슈니첼, 예거슈니첼,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 등)의 특징을 알아보자.

 

① 고기를 얇게 두드려 펴고

 

② 튀김옷과 빵가루의 질감도 한국과 거의 비슷하거나 외려 한국보다 덜 바삭하며

 

③ 잘라 나오지 않고

 

④ 레몬즙만 쳐서 먹는 경우가 많지만 소스를 뿌려 나오기도 한다. 적어도 소스를 따로 두고 찍어 먹는 경우는 거의 없다.

 

⑤ 가니시도 감자튀김이나 삶은 야채, 마카로니 등 다양하다. 

 

이러다 보니 유럽식 커틀릿 등은 한국 돈까스와 더 흡사한 모양이다.

 

3.jpg

이탈리아의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제 - 밀라니즈 커틀릿'

 

심지어 독일의 '예거슈니첼'을 비롯하여 몇 가지 종류의 서유럽 커틀릿은, 소스를 뿌려 내어 이게 한국 돈까스인지 독일 음식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한국 돈까스와 흡사하고, 맛 또한 흡사하다.

 

4.jpg

독일의 ’예거슈니첼'

 

5.jpg

독일의 '예거슈니첼' 2번째

 

여기에 대하여, 여러 설명들이 있다. 

 

6.jpg

 

무려 통신사인 뉴스원은 ‘일본식 돈까스가 한국전쟁 이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푸짐하게 보이도록 고기를 얇게 편 것’이고 ‘돈가스를 자르는 대신 나이프, 포크를 제공하고 소스를 뿌려 내놓는 방식 역시 한국식 돈까스만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이야기는 틀렸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글쓴이의(또는 사람들의) 편견을 드러낼 뿐이다.

 

우선 원조인 côtelette(꼬똘레뜨, 영어로 Cutlet), 오스트리아 독일의 슈니첼 모두 두껍지 않았고, 이를 받아들인 일본의 돈까스 또한 두껍지 않았다. 아래 일본의 요리책들을 보면, 1960년대까지도 돼지고기의 두께는 1.5cm를 넘지 않고, 때로는 1cm 미만인 경우도 많다.

 

“돼지고기는 2푼(0.66cm) 두께로 썬다. 소금, 후추, 밀가루, 계란, 빵가루, 페트, 라드”

 

- ‘가정 실용 메뉴와 요리법’의 ‘포크 가쓰레쓰’ 요리법, 1915

 

“돼지고기를 잘 두드린다, 소금, 후추, 밀가루, 계란, 빵가루, 고온의 튀김으로 튀긴다”

 

- ‘아키보리 서양 요리법’의 ‘포크 가쓰레쓰’ 요리법, 1929

 

일본에서 최초로 돈까스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긴자의 '렌가테이(煉瓦亭)'에서는 과거 스타일대로 돈까스를 만들어 판다고 하는데, 여기를 보면, 현재 일본 돈까스보다 얇게 펴고, 칼이나 망치로 고기를 두드려 현재 한국 돈까스의 두께와 흡사하다.

 

7.jpg

긴자 ‘렌가테이’의 돈까스의 모습

 

8.jpg

긴자 '렌가테이'에서 돈까스를 만드는 고기 두께

 

“요즘 돈가스는 상당히 두꺼워졌다. 그렇게 두꺼운 고기를 튀겨서 속까지 익히는 것은 대단한 기술이다. 외국의 요리사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을 것이다”

 

- 야마모토 가지로, ‘일본 삼대 양식고’, 1973

 

야마모토 가지로의 책에도 기록되어 있듯, 일본 돈까스는 지속적으로 두꺼워졌지만 지금처럼 두꺼운 모습이 된 것은 1970년대의 일이다. 따라서 ‘두꺼운 돈까스를 한국전쟁 시기 한국에서 얇게 만들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일본 요리책들을 비교해보면, 일본의 돈까스는 계속해서 두꺼워지는 중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제 역사가 긴 돈까스 집일수록 두께가 얇은 경향이 있다.

 

9.jpg

90년 전통이라는 요코하마의 카츠레츠안(勝烈庵)의 돈까스

 

사실 논리적으로만 생각해도 이상한 부분이 많다. 왜 유럽식 커틀렛과 비슷한지에 대해 해석도 되지 않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비싼 음식을 파는 고급 음식점인 경양식집에서 팔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사람이 굳이 '더 커 보이려고'한 음식을 선택한 것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편 어째서 빵가루의 굵기가 다른지, 수프 제공은 어찌 된 것인지 등도 전혀 해석되지 않는다.

 

이러한 이야기는 편견에서 창작된 '그럴싸한 이야기'일뿐이다. 사실과 무관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의 이름이 ‘돈까스’이므로 당연히 일본식 돈까스에서 전해졌을 것이라는 편견, 일본은 전통을 잘 지키는 나라이므로 일본의 돈까스는 계속 그대로일 것이라는 편견, 한국인들은 전쟁 이후 가난한 상황에서라면 눈속임을 했을 것이라는 편견 등이다. 즉, 원조인 일본 제품을 한국인들이 싸게 먹으려고 눈속임을 해서 생긴 물건이라고 보는 편견을 드러낼 뿐인데,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머리에 떠올릴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일본에서 전해진 방식 그대로를 한국이 지키고 있는 것이고, 일본만 변한 것이 아닐까? 정명섭의 '한국인의 맛'을 비롯하여 돈까스에 대해 생각한 다양한 책에서 이런 견해를 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계속)

 



Prof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