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강화> 논란의 중점은 이 드라마가 조기종영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조기종영이 될 수도 있겠다만 난 거기엔 관심 없다.
"<설강화>는 문제 많은 작품이지만 표현의 자유를 위해 대중의 분노에 의한 강제적인 조기종영에는 반대한다"
는 말은, 참 좋은 말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파시즘이니, 집단주의니, 따위를 경고하면서 대중에 옐로카드를 드는 논평은 참 안일하고 피상적이다. 이슈의 핵심은
'어째서 민주당과 386, 주사파라면 극혐하는 젊은 층(특히 남성)이 <설강화>에 이토록 분노하는가?'
가 되어야 한다.
출처 - <JTBC>
2.
<조선구마사>에 깔린 관점은 조선왕조가 악하다는 것이다. <설강화>에 깔린 관점은 민주화 운동은 무익하고 무용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분노하는 중이다. 지식인이라면 대중이 어느 지점에서 불쾌감을 느꼈는지 드러내 밝혀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지점을, 대중이 제기하는 논점과 별도의 문맥에서도 조망해야 한다.
사람들은 특정 인물에 반대하는 시위를 할 때 "사퇴하라", "퇴진하라"고 외치지, "자중하라"고 하지 않는다. 당연히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다음엔 더 좋은 작품을 만들도록!" 하고 따지지 않는다. 누구나 비토 감정을 표현할 때는 그만 집어치우라고 하고, 썩 물러가라고 한다. 이게 한국인만의 표현방식일까? 그렇지도 않을 거다. 장담하는데 만국 공통이라고 본다.
헬조선을 외치는 젊은 층과 국뽕에 취하는 젋은층은 다른 이들이 아니다. 승객들에게 주야장천 한국은 이 모양 이 꼴이라 안 된다고 떠드는 택시 기사님이라고 해서 한일전에서 골 넣으면 안 좋아하겠는가? 누구나 그렇겠지만 젊은 층 역시 한국 사회의 적폐적 문제에 대해서는 이놈의 나라는 틀려먹었다고 욕한다. 동시에 K-컬쳐가 세계에서 승리를 거두는 모습이나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일본을 보면서는 국뽕에 취한다.
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젊은 층은 민주당과 86 정치인들을 정말로 싫어한다. 기분이 나쁠 때는 '공부 안 해도 대학만 졸업하면 취업하던 시절이었으니 데모한 거다'라는 악담도 퍼붓는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 덕에 조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은 사실을 잘 안다. 그렇지 못한 국가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젊은 층은 기성세대만큼 진영론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이들이 가진 묘한 균형감을 알아야 한다. 현재의 젊은 층은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신화를 동시에 인정하는 최초의 세대다. 예를 들어 민주당에 분노하는 이대남은 표현방식이 거칠고 위악적이어서 잘 드러나지 않을 뿐 86 정치인들을 싫어하는 마음과 민주화에 감사하는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 즉 그들은 86 정치인들이 한때 정의로웠으나 현재 타락했다고 믿거나, 시민과 동지들이 헌신해 얻은 결과를 86정치인들 소수가 독점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설강화>에 대한 젊은 대중의 분노는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
'현재 자신이 민주화된 국가의 시민으로서 누리는 토대가 부정되는 모습을 용서하지 않는다.'
이한열 열사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3.
<설강화>는 <조선구마사>와 비슷한 곤경에 처했다. 대중이 제기하는 음모론에 딱히 반박할 여지를 찾지 못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역사를 대충 대하니 왜곡 따위 서사적 재미를 위해 매몰되어 버리고, 나중에는 억울해도 할 말이 없어진다. 무성의함이 만들어낸 셀프 재해다. 아직 2화밖에 안 나왔지만 내 감상은 이 정도다
'<사랑의 불시착>을 이번엔 남한에서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대중이 표현의 자유를 해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건 참 속 편한 강 건너 불구경이다. 표현의 자유는 이미 높은 수준으로 보장되어 있다. 조기종영이 된다면 그건 방송국이 판단하기에 장사가 안될 판이니 앞으로의 장사를 위해서나마 접는 거지, 따지고 보면 대중이 방송국을 뭘 어찌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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