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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돈까스가 일본의 과거 돈까스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도 많이 나온다. 그중 하나인 정명섭 작가의 ‘한국인의 맛’이라는 책의 일부를 살펴보자.

 

“그러니까 돈까스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우리라고 할 수 있다. (...) 일본에서는 거의 사라진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게 된 것은 음식의 역사가 주는 아이러니가 아닐까 한다. (...)

 

그 시기 우리는 서양 음식을 먹는다고 믿으면서 돈까스에 칼질을 해 포크로 찍어 먹었다. 그리고 돈까스를 주문하면 빵이나 밥을 선택할 수 있고, 스프의 종류를 고를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 하지만 경양식에서 제공하는 음식들 가운데 서양과 직접 닿아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돈까스는 일본이 덴뿌라와 커틀릿을 변형시켜서 자국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서 만든 음식이다.

 

(...) 우리의 근대화가 과속과 저속으로 우왕좌왕한 이유는 이처럼 일본을 거쳐야만 했다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은 우리의 근대화를 밀어주는 듯 가로막으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양식이라고 믿었지만 사실은 일본 음식인 돈까스다.“

 

분명 일정한 설득력이 있는 내용이고, 한국 돈까스를 해명하는 주요한 요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주장도 깊게 생각해보면 전부를 설명하기는 미흡하다. 앞에서 말한 차이점 중 ① 고기의 두께, ③ 썰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은 해결되지만, 해결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

 

우선 ② ‘렌가테이’의 튀김옷은 현대 일본식 돈까스처럼 입자가 큰 빵가루(영어로도 일본어 パン粉의 독음을 따서 'Panko'라고 따로 부른다)를 사용하는데 왜 한국은 서양식과 오히려 비슷하게 가는 빵가루를 사용하는지 해명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한국의 시판 빵가루는 panko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데, 이를 부수어서라도 입자를 작게 만드는 것이 과거 경양식 돈까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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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ko라는 일본식 빵가루와 유럽 빵가루의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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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Panko와 Bread crumbs로 튀겼을 때 질감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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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천 '잉글랜드 왕돈까스'의 돈까스. 과거 스타일을 유지한다고 하는 집 중 하나다

 

그리고 ④ ‘렌가테이’를 비롯한 어디에도 소스를 뿌려 먹지 않았는데, 한국 돈까스는 왜 소스를 뿌리는지, ⑤ ‘렌가테이’나 일본 과거 돈까스 전통을 유지하는 집들에서도 수프를 함께 주지 않는데, 왜 한국은 주는지, ⑥ 한국 돈까스의 가니시(곁들여 나오는 야채)는 샐러드(이것도 양배추만 썰어 넣은 일본식보다는 양상추를 사용한 것이 많다) 외에도 콩 통조림, 베이크드 빈스, 썬 당근 또는 삶은 야채(이것은 서구에서 흔히 제공하는 가니시이다) 등이 제공되는 이유는 무엇인지는 전혀 해명되지 않는다. 이 해명되지 않는 지점들이, 대부분 유럽식 커틀릿 등과는 비슷한 지점이라는 것에서 더욱 의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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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슈니첼의 가니시. 한국 돈까스 가니시와 비슷하고, 일본 가니시와는 차이가 크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저 주장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일제 강점기 가쓰레쓰를 폭넓게 경험했다는 것인데, 그 경험을 가진 이들이 어째서 ‘돈까스는 서양 음식’이라고 믿었던 것일까?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역시 ‘돈까스는 일본에서 온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일본의 돈까스 이야기를 장황하게 펼친 후, 한국의 돈까스 이야기에 대해서는 대충 196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경양식을 서양 문화라 믿었지만, 경양식은 사실 서양과 직접 닿은 것이 아닐 걸?’이라는 이야기도 하고, 우리의 근대화 속도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자못 준엄한 분석까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이나 한국의 돈까스가 일본의 것보다 서양의 것과 비슷하다면, ‘한국의 돈까스는 일본에서 온 것’이라는 전제부터 의심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돈까스집들은 예외 없이 ‘양식집’을 표방했는지, 어째서 오래된 돈까스집 주인들은 일본 돈까스가 더욱 고급품이 된 현재에 이르기까지도 ‘일본 식당에서 일했던 경력’이 아닌 ‘다른 경력’을 이야기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앞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이 주장은 또 다른 편견을 드러낸다. 한국의 근대화는 일본에 의한 것이 절대적이라는 편견, 민족주의에 빠졌거나 열등감에 빠진 한국인들은 그걸 부정한다는 편견 등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한국인들이 사용하는 한자어, 전문용어 등 일본이 현대 한국에 미친 영향은 매우 많지만, 이 또한 현대 한국을 이루는 하나의 블럭일 뿐이다. 한반도의 기후, 역사, 철학, 정치체제 등 문화의 영향도 크고(한국인이 커피의 산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참조), 해방 이후 미국을 통해 받은 영향도 엄청나게 크며, 현대 한국의 특수한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서 문화가 변화 발전해 온 부분도 많다.

 

즉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 등장한 것이 현대 한국, K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이루는 그 무엇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어떤 요소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좀 더 세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현대 한국의 돈까스의 조상 중 '가쓰레쓰'가 아닌 또 하나의 조상, K-돈까스를 만든 또 다른 블럭은 무엇인가?

 

바로, 미국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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