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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꽤 많은 독자분이 대선 결과 때문에 현타가 와 까먹고 있었겠으나 지난 3월 14일, 국토교통부 현대 산업개발 아파트 붕괴사고 건설사고 조사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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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 출처 - <연합뉴스>

 

어떤 영역이든 이제 꽤 전문화되는 바람에 사회적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되면 통역사가 절실해진다. PIT층, 동바리(가설지지대), 뭐 이런 용어들, 인터넷 뒤지면 뭔지는 금방 나온다. 문제는 이것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건축 쪽을 아예 모르는 일반인들이 알아먹긴 좀 어렵다. 그래서 해설 편을 준비했다.

 

 

 

문제점 하나, PIT층

 

PIT층은 주로 최고층 하단과 최저층 상단에 방습·단열·오염을 방지하고 건물에 필요한 각종 배관 등의 설비가 지나가도록 만드는 설비만 모아둔 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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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거.

사진은 연합이 촬영한 39층 PIT층 내부.

 

높이는 건물 설계마다 차이가 나는데 보통 성인 남자가 똑바로 서 있기 좀 어려운 높이다. PIT가 약어는 아니고 영어로 '움푹 들어가게 하다, 구멍을 내다, 흠집을 내다'는 뜻이 있다. 

 

화정 아이파크의 경우엔 1.43미터 정도 된다. 1,200mm짜리 거푸집에 하단 수평목과 상부의 멍에, 그리고 장선과 콘 패널의 두께를 합치면 그 정도 된다. 비슷한 높이의 PIT층을 만들어 본 경험상, 작업 난이도는 조금 까탈스러운 정도다.

 

형틀 목수가 거푸집을 짠 다음에 하는 일이 각종 부자재로 타설(건물을 지을 때 구조물의 거푸집과 같은 빈 공간에 콘크리트 따위를 부어 넣는 것) 때의 압력을 견딜 수 있도록 보완작업하는 거다. 이 과정에서 저기보다 훨씬 낮은 공간에 기어들어가 손목 하나가 간신히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서 굵은 철사(현장에선 반생이라고 주로 부른다)로 고정해 주는 작업을 온종일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저기 상부 뚜껑 닫기 전까지는 위가 열려 있다. 그렇게 많이 기어 다니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해서 저게 어려워서 뭐 어쩌구 하는 기사는 무시하시고... 

 

그런데… 여기서 잠깐.

 

무너져 내린 부분이 어디인지 평면도에서 좀 확인해보자. 여기가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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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과 안방 부분이 무너져 내렸다. 건축 일 하신 분들은 여기서 좀 깨는 게 보일 거다. 오른쪽의 방 공간들은 오밀조밀하게 되어 있어 벽체 자체가 주욱~ 올라가 그 자체가 지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데 위 평면도로 봤을 때 무너진 부분은 지지하는 지점이 두 곳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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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동그라미를 친 부분이다. 반대쪽까지 두 곳 더 한다면, 아마 저 뻥 뚫린 거실과 안방, 드레스룸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겨우 기둥 4개로 처리한 거다. 참고로 대표적으로 하중을 많이 받는 곳, 그러니까 지하층 같은 곳은 어떻게 만들까. 아래 사진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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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사실 우리같은 쟁이들 아니면 '므야, 뭐, 만들고 있네. 근데 므?' 일케 보일 터인데 자세히 보면 탄탄하게 받칠 보가 많은 게 보일 거다. 그만큼 하중을 많이 받는 곳은 빡세게 만들어야 한다고 보시면 된다. 

 

뭐, 당연한 거다. 건물을 올리는데 하중을 받을 기둥이 많이 있어야 무너지지 않으니;;; 헌데 148제곱미터짜리 세대인데 저렇게 휑하게 뚫려 있으니 무슨 힘을 받을 수 있겠나. 역시 무너져 내린 곳도 바로 저 휑한 공간이다. 거기다 저 공간, 밑에선 두 세대로 나뉘어 있었던 것을 설계 변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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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수 표 사진의 위쪽을 보자. 무너진 곳은 저 초록색 세대 구간이다. 밑에선 84제곱미터로 쭈욱 올라오다가 왼쪽의 마지막 다섯 세 대와 오른쪽의 마지막 세 세대가 저렇게 뻥 뚫려 있었다. 여기까지 읽으셨으면 아실 테지만 뻥 뚫렸으니 구조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상태다. 

 

그 위의 무게가 설계하중보다 한참 더 많이 올라갔다는 것이 사고의 원인 중 하나라고 해석하시면 된다. 

 

문제점 둘, 동바리(가설지지대)

 

그다음 등장하는 게 동바리다. 타설할 때 수직 부하, 그러니까 내리누르는 힘을 지탱하는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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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건축 현장에서 위 사진처럼 생긴 현장을 많이 보셨을 거다. 저렇게 생긴 놈들을 시스템 동바리라고 한다. 이건 최소 높이가 있어 PIT층 같은 공간에선 절대 못 쓴다. 뭐, 일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현장에선 서포트라고 쓰고... 사뽀도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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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놈들은 7킬로그램 안쪽이다. 바로 위 사진에서 보이는 놈들은 최소 14킬로그램 정도 된다. 놀랍게도 이거 하나가 1톤 이상의 하중을 견딘다. 148제곱미터에 높이 20cm 정도 철근 콘크리트라고 하면 대략 100톤 정도가 된다. 그러면 필요한 서포트는 약 100개가 된다. 여기에 각재(角材)와 파이프, 콘판넬(고강도 플라스틱을 소재로 한 판넬)의 무게 합쳐봐야 3톤이 안 됐을 것이다.

 

반면 일반적인 철근 콘크리트는 1세제곱미터당 2.4톤 정도다. 높이가 1.43미터에 폭 20cm 정도 되는 곳을 5미터 쳤으면 3.4톤이 넘는다. 길이가 있으니 무게는 더 늘어났을 것이다.

 

수직 부하를 받아주는 서포트는 상가건물 같은 곳의 경우엔 위층 타설이 끝나면 뺀다. 즉, 그 층을 타설 한 지 보름 이상 지나야 뺀다. 위의 부하는 두 배가 더 걸렸는데 밑으로 내려가는 힘을 받쳐주는 애를 일찍 빼버리면... 결과는 다들 아실 게다.  

 

게다가 기사에는 콘크리트에 물을 탔다고 하지만 현장 경험삼, 강도가 나오는 각종 화합물을 덜 섞었다가 좀 더 정확한 표현일 게다. 그래서 강도가 설계 하중의 85% 정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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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내용들을 쉽게 한마디로 압축하면 이건 39층짜리 건물을 가지고 젠가를 한 게 된다. 

 

이제 아래의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구조물 붕괴 과정을 보면 조금이나마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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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 제공

 

왜 젠가했어요? 말해봐요 

 

건물이 무너지고 나서 언론에 의해 '범인'으로 처음 지목된 건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는 일은 주어진 도면에 따라 거푸집을 조립하고, 타설하고, 그 뒤의 잔 처리를 하는 것밖에 없다. 사고에서 원인이 된 구조변경을 할 권한, 콘크리트를 주문할 권한이 없다는 얘기다. 굳이 죄를 묻는다면 PIT층을 더 무겁게 만든 건데, 이것도 골조를 맡은 하도급사 공사 부장의 OK 사인이 없으면 못 한다.

 

한국은 건축 쪽이라고 하면 옛날 조폭들과의 연계 이미지가 남아선지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는데... 당연히 상장된 건설사가 시공하는 현장, 그 현장에 나와 일하는 기사들은 힘든 입사 시험을 거친 이들이다. 건축공학과 졸업하고 건축 기사 자격증 딴, 똑똑한 이들이란 말이다. 

 

그 똑똑한 이들을 부리는 이가 현장소장이다. 당연히 건설 현장 경력이 십수 년 된 베테랑이다. 회사 내에서도 직위가 좀 있다. 대규모 단지의 경우, 현장소장이 이사인 경우도 있을 정도다. 그런 분들이 구조 계산부터 시작해 자기들이 해야 할 수많은 일들을 모조리 날려 먹었다. 당연히 이런 질문이 나오지 않겠는가.

 

“왜 그렇게 한 거에요?”

 

조사 결과는 나왔다. 그러나 정작 왜 저렇게 했는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누군가 시키든가, 누군가 결정을 했을 것 아닌가. 여기서부턴 경찰과 검찰의 영역이라서 시간이 더 걸려서 그런 건진 모르겠다만 언론에서 제대로 된 질문이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OECD에 가입했다고, 우리 이제 후진국이 아니라고 막 자랑하던 그 즈음, 성수 대교와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는 것을 봐야 했던 게 한국이다. 얼마나 충격이었는가. 그 이후, 당연히 건설 토목 쪽으로 안전 규정이 꽤 까다롭게 되었다. 거의 30년 전 얘기다. 

 

현대산업개발 정도 되는 곳의 현장소장이라면 저런 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베테랑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답답한데, 요즘 기사들을 보면 더욱 답답할 뿐이다. 

 

<달콤한 인생> 이병헌의 대사가 떠오른다. 

 

"왜 그랬어요? 말해봐요."

 

당연히 모욕감을 받은 건 아닐테다. 이전 사고로 욕을 덜 잡수셔서 그런지 모르겠다만 이런 죽고 사는 문제일 수록 언론이 더 면밀히 떠들어줘야 하기에 몇 글자 적어봤다. 우리가 세월호에 대해 아직 이야기하는 건 귀하디 귀한 생명, 즉,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닌가. 아무래도 일반 사람들이 쉬이 접하기 어렵고, 깊이 들어가면 관심이 있어도 알기 어려운 이야기라 그렇겠지만 나는 언론이 이런 목숨이 달린 일에선 충분히 계속 떠들고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게 의무라 본다.    

 

오래도록 욕 먹고 있는 언론이지만 많은 사건, 사고를 보면 아직도 좋은 기능이 많다. 딴지에서도 주구장창 떠들어서 해결된 사건, 사고가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떠들면 정치권은 가만히 있을 수 없고 정치권이 관심을 가지면 경찰과 검찰도 관심이 없다가도 팀을 꾸려 사건 해결에 만전을 기하는 거... 뭐, 다들 알잖은가. 

 

말도 안되는 옷값이니 뭐니, 언론이랑 권력이랑 주고받는 기득권 짬짜미 짓 같은 건 일단 좀 참고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를 쉽게, 알 수 있도록, 관심 가질 수 있도록, 많이 떠들어 줬으면 한다.

 

그래야 현장이 조금 바뀌고 그래야 사람이 덜 죽는다. 나도 현장에서 일하면서 우리 가족 오래도록 먹여 살리고 싶어서 몇 자 적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