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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져버린 ‘신사의 나라’란 환상 

 

‘신사의 나라’라는 마케팅 전략에 성공한 영국. 그래서 지금도 영국이 약자를 배려하고, 노인, 여자, 아이들을 존중하는, 말 그대로 ‘신사의 나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 사회가 되며,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릴 만큼 전 세계 각지를 (독점자본주의를 기반으로) 식민지 삼았던 영국의 만행은 세계 시민들에게 속속들이 알려졌다. 때문에 현재, 영국을 진심으로 ‘신사의 나라’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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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1600년대부터 식민지배를 시작해 종국에는 아메리카를 비롯하여 아프리카, 아시아를 넘어 오세아니아까지 그 발을 넓혔었다. 세계 각지에서 벌인 일들이 하도 많아 아직도 새로운(?) 만행이 계속 드러나고 있고, 그 만행으로 인한 피해는 현재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런지, 영국과 관련된 뉴스나 글, 이야기에 대한 대중들의 시선은 차갑다. 실제로 훌리건들에 대한 보도를 비롯, 브렉시트나 영국 왕실에 대한 뉴스에 달린 댓글들을 보면, 이중적이면서도 모순적인 영국인들의 행태를 비난, 고발하는 댓글들이 넘쳐난다. 겉으로만 멀쩡한 듯 꾸미지만 실상은 행패 부리고, 뒷통수치며, 치장하고 감추는데 여념이 없다는 평가들,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언제부터 영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 시작했을까 고민해 보면, 아마도 1990년대 후반, 유럽 배낭여행이 한창 유행할 무렵이 아닐까 생각한다(급속히 진행된 건 21세기 들어선 이후). 

 

그 전엔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이든 어디든 여행 자체가 자유롭지 않았고 –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부터 여행자율화 – 책으로, 사진으로만 봐 왔던 유럽이었기에 더더욱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실제로 각종 교과서를 비롯 책과 영상 자료에서 묘사된 유럽은 웅장한 건축물들이 즐비해 있고, 르네상스의 멋들어짐과 오랜 기간 손상시키지 않은 자연의 묘미가 절묘하게 섞여 있기에 많은 이들의 교감신경을 자극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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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Pixabay>

 

하지만 여행자율화 이후, 물 밀듯이 오고가는 여행객들, 직접 발을 내딛고 경험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모여, 깨끗하고 정숙하고 친절할 것만 같았던 유럽은 옛말이요, 집시의 나라 이탈리아, 쓰레기와 배설 냄새로 가득 찬 프랑스 파리. 소매치기 조심해야 한다는 영국의 런던 등 어느 순간부터 유럽은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봉변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서의 인식이 늘어갔다. 

 

물론 반대의 상황도 있겠다. 가령, 친절한 사람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든지, 알프스의 전경은 카메라만 갖다 대면 엽서라든지 하는 이유로 긍정적인 인식을 더 하게 된 경우도 있을 것이다. 허나, 유럽에 대한 기존의 절대적 환상이 깨지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유럽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나라가 ‘영국’일 것이다.  

 

 

왜 영국에 유독 그럴까

 

중세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서구 유럽을 지배했던 중요한 이데올로기 중 하나는 제국주의였다.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를 비롯 프랑스와 영국까지, 현재 선진국이라 일컫는 나라들의 대부분은 제국주의를 통해 부를 축적한 나라들이다. 그럼에도 다른 국가들보다 영국에 대한 이미지는 가히 좋지 않다.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보다도 영향력이 월등히 강했던 만큼 그들이 뿌린 씨앗(만행)이 워낙 많았던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사의 나라’라며 이미지 메이킹 한 것에 대한 배신감 때문은 아닐까. (이미지 메이킹으로 인해) 좋게 인식했던 만큼 실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에 대한 실망감의 정도는 비례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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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영국 식민지

 

두 번의 세계대전을 통해 엄청난 대가를 치른 인류는 인간의 욕망에 기반한 독점자본주의와 식민주의를 종식했다. 식민지배를 받던 많은 국가들이 독립을 했고, 자주국가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성장했다. 

 

대표적인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식민주의에 대한 여파가 남아 있다. 과거 일제강점기를 통해 경제적인 부분뿐 아니라, 민족,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억압과 침탈을 당한 우리에게 일본은 여전히 경계대상 1호다. 일본이 무릎 꿇고 진심으로 사죄를 한다 해도 용서는 할 수 있겠지만, 아픈 역사에 대한 여파는 쉽게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 때문에, 이러한 식민지 문화를 꽃피우게 만든 장본인 영국에 대해 식민지 경험이 없는 국가보다 부정적 인식이 강할 것이다.

 

 

근데, 영국은 아이러니한 면이 있다

 

대부분의 경우,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와 받았던 국가는 관계가 좋지 않다. 우리와 일본이 그렇고, 핀란드를 오랜 기간 지배해온 스웨덴의 경우도 마찬가지. 핀란드 사람들에게 스웨덴은 여전히 자국의 이익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다. 이외에도 다수의 국가들은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에 대해, 외교적으로야 국익을 위해 무난한 관계유지를 한다지만, 국민적 정서는 적대감이 있는 경우가 다수다. 

 

그런데 유독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 중, 과거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굳건한 동맹관계를 맺고 좋은 이웃으로 남아 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영국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살았던 나라, 그래서 충분히 미움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영국은 어떻게 식민지였던 국가들과 잘 지내고 있을까? 또 식민지였던 국가들은 왜 잘 지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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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멘웰스 회원국.

주황색 국가는 아일랜드와 짐바브웨로

옛 커먼웰스 회원국이었던 국가다.

 

커먼웰스 깃발.png

커먼웰스 깃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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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로고

 

‘커먼웰스’(Commonwealth)라는 국제기구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영연방(英聯邦)으로 표현되는데, 영국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치 공화국 또는 식민지 지역을 결합한 연합체이다. 총 52개의 국가가 회원국으로 있으며, 연방 수장은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다.

 

(참고로, ‘커먼웰스’(Commonwealth)는 공동(Common)의 부(Wealth)를 추구하자는 정치적 목적의 단체를 뜻하는 단어로 영국에서 오래전부터 사용되던 단어다. 우리가 커먼웰스를 영연방이라 부르는 이유는 영국을 표기할 때 쓰는 꽃부리 영(英)에, 연이을 연(聯), 나라 방(邦) 즉, 영국으로부터 쭉 이어진 나라들이라 하여 영연방이라 번역해 부른다고 한다)

 

이들은 분명 사이가 좋지 않을 법한데, 식민주의가 종식이 된 지 60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경우는 원래 국가가 없던 곳을 영국인들이 지배하며 그들을 중심으로 문화가 형성됐고(즉, 영국인이 만든 국가), 국가 운영체제가 형성된 것이라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 외 다른 국가들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단면이다. 아일랜드의 경우를 보면, 영국에게 800년이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끝까지 싸워 독립했고, 지금도 앙숙으로 자리하고 있지 않나. 당연 ‘커먼웰스’ 회원국도 아니고. 

 

우리에겐 아일랜드의 사례가 당연하게 느껴진다. 영국이 과거 식민지 국가에게 한 만행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도적/윤리적인 차원을 넘어 인류사에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수준의 일이 많다. 그리고 계속 새로운 만행이 밝혀지고 있다.  

 

일례로, 아프리카 대륙에 대한 영국의 야욕은 흑인 노예 제도를 통해 나타났지만, 더 극심한 고통을 안겨준 사건이 최근에서야 밝혀졌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민물 창고라 알려진 ‘빅토리아 호수’.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크며 아프리카에선 제일 큰, 이 호수는 현재 탄자니아, 우간다, 케냐에 걸쳐 있다. 그리고 이 세 나라는 모두 한때 영국의 식민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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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호수' 구글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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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호수

 

당시 영국은 ‘빅토리아 호수’의 생태계를 파괴했다. 이 일은 지금도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책 <The Work of Nature>에서 작가 ‘이본 바스킨’(Yvonne Baskin)도 외래 물고기로 인해 다수의 어류가 멸종위기에 놓은 것에 대해 비판했다. 

 

영국은 1940년대 나일퍼치(Nile Perch)와 같은 육식성 대형 어류를 빅토리아 호수에 들여오며 기존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왜 그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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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퍼치(Nile Perch)

 

이유는 단순했다. 유럽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이 어류의 어업생산량을 늘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나일퍼치가 들어오면서 빅토리아 호수의 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하더라도 빅토리아 호수는 생태학적으로도 연구가 끝나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워낙 특이한 종류의 어류가 많고, 지구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희귀 생물이 많아 보존의 가치가 매우 높은 곳으로 평가된 곳이었다. 

 

하지만 나일퍼치의 등장으로 400여 종의 어류가 종적을 감췄고,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수초와 담수조류를 주식으로 하는 물고기들을 죄다 먹어 치워 호수의 수초가 급증했다. 문제는, 수초가 호수 바닥에 쌓이면서 호수의 수질까지 급격히 악화되고 결국 용존산소량이 급감하여 다른 생물에게도 치명타를 입혔다.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지만, 인도의 '벵골 대기근' 사건도 2010년에서야 벵골 출신의 역사학자 ‘마드휴스리 무케르지’(Madhusree Mukerjee) 교수가 자신의 연구서인 'Churchill's Secret War(처칠의 비밀 전쟁)'에서 다루면서 세상에 밝혀졌다. 

 

벵골 대기근은 2차 세계 대전 중에 발생한 사건으로 아돌프 히틀러가 감행한 유태인 학살과 버금가는 수준의 일로 알려진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한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넘어 서아시아까지 식민지를 넓히려 했고, 미얀마까지 점령한 것에 위기를 느낀 영국은 더 이상의 팽창을 막기 위한 방침으로 벵골만 지역에 식량 공급을 중단한다. 

 

인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던 처칠이었기에 이 결정이 고의적인 면이 없지 않다는 평가가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일본에 대한 경계가 주목적이라 알려졌다. 하지만 그 사건으로 인해 벵골 지역에서 식량이 없어 굶어 죽은 이들만 최소 300만이라고 하니 사실상 대량 학살이라고 봐도 무방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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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 대기근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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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블로그<스탐노스>

 

 

그래도 그들의 관계는 계속된다. 왜?

 

하지만 커먼웰스에 속한 국가 중, 영국과 가장 끈끈한 연을 맺고 있는 국가 중 하나가 인도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이 영국에 거주하던 이들이 이주하면서 생성된 국가들을 제외하고, 인종과 언어, 문화가 다른 국가 중에서는 가장 많은 인적/물적 자원의 교역이 이뤄지는 나라다. 죽도록 미워해도 시원찮을 판인데 여전히 동맹국으로 손을 맞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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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점은 인도뿐 아니라, 영국에 식민지배를 받던 다른 국가들도 여전히 여왕이 연합의 수장으로 여기는 커먼웰스라는 테두리에 있기를 원한다. 단순 정치적으로만 연합체에 속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끼리 더 친목을 다질 수 있는 여러 이벤트도 진행한다. 대표적인 예가 ‘커멘웰스 게임(Commonwealth Games)’이다. 커멘웰스에 속한 국가들끼리 4년마다 그들끼리의 올림픽을 개최하며 친목을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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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웰스 게임의 개최지 및 참가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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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인도에서 개최된 ‘커먼웰스 게임’ 개막식

 

스코틀랜드의 경우는, 역사만 본다면 전쟁을 불사한다 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잉글랜드에 앙금이 있지만, 커먼웰스도 아니고, 아직도 아예 연합왕국(United Kingdom)이라는 대전제 아래서 함께 살아 움직인다. 이유가 뭘까. 

 

이번 시리즈는 이러한 궁금증에서부터 출발했다. 상식적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관계들이 오랜 기간 얽히고설켜 끊어낼 수 없는 거대한 거미줄을 이루고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에 대한 이유를 밝혀보려 한다. 

 

완벽하진 못하겠지만, 과거 울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이 국가들이 여전히 관계가 틀어지지 않고 지속되고 있는 이유, 그리고 그 이유를 굳건히 지지하는 힘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구해보고자 한다. 

 

참고로, 필자는 15년간 영국에 거주 중이다. 대다수 인연은 한국인이 아닌 현지인이기 때문에 외부인의 관점이지만, 현지인들의 생각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한다. 물론 누구에게나 그렇듯 한계는 있겠지만, 15년간 쌓은 좌충우돌 영국 적응기 경험을 토대로, 도대체 무엇이, 비상식적인 일을 상식처럼 받아들이게 하는지 풀어보겠다. 혹시라도 의견이 있으시다면 가차 없이 댓글로 피력을 해주길 부탁한다. 그럼, 

 

다음 편을 기대해 주시길! 투비컨티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