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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은행원도 영업직입니다

 

1월 30일부터 일부 시설과 상황을 제외하고는 한 몸같이 느껴지던 마스크를 드디어 벗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다른 곳은 몰라도 대중교통에서는 아직 마스크 착용을 해야 하니 출퇴근하는 직장인 입장에선 반쪽짜리 느낌이 들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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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서 1월 30일부터는 그동안 9시 30분~3시 30분까지 운영되던 은행들도 9시~4시로 정상화한다고 합니다. 금융감독원도 '마스크 해제 시 영업시간 정상화는 상식적'이라고 은행들을 압박하고 있지요.

 

당연히 금융노조 측에서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노조 협상으로 타결된 영업시간 단축에 대한 부분을 상호 협의 없이 사측 일방에서 변경할 수 없다는 이유지요. 은행원들이야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영업시간 연장이 반갑지는 않을 겁니다. 다른 이유를 댈 것도 없이 업무시간이 1시간 늘어난 느낌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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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아시아투데이>

 

국민들이 은행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귀족 노동자'겠지만 은행원들은 기본적으로 '영업직'이며 '감정노동자'입니다. 흔히 생각하는 영업직의 이미지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말단 직원부터 지점장들까지 개인별, 지점별로 부여된 각종 카드·펀드·보험 등 판매실적을 올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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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연합뉴스>

 

지점장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습니다. 지점 근처 업체들을 돌아다니며 급여계좌, 퇴직연금 계좌 등을 섭외해야 합니다. 다른 은행을 이용 중인 업체들에 우대이율 등을 제시하며 본인들 은행으로 모셔 오기도 합니다.

 

거기에 고객 응대·우대환율·여·수신 이율 등에 대한 다양한 이유로 각종 민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고객들은 느끼지 못할지 몰라도 은행은 을의 입장이긴 하지요. 은행원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아냐고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이처럼 은행원들은 기본적으로는 영업을 통해 이익을 창출하는 조직입니다

 

은행도 마찬가지죠. 영업조직이 모인 영업집단이며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 사기업입니다. 물론 정부의 허가가 필요한 사업이고 정부 개입이 많이 있는 공공기관 성격도 어느 정도 갖고 있지만 근본은 이익 창출을 위한 집단입니다.

 

2. 그렇다면 사측은 영업시간 변경에 어떤 생각일까요?

 

팬데믹 동안 은행이 영업시간을 단축했었지만, 그 기간 은행의 실적은 어땠을까요? 기준금리 인상이 이익 증가에 큰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금리가 이렇게 오르기 전, 코로나 초기만 보더라도 영업시간 단축으로 은행의 이익이 줄어들지는 않았습니다.

 

은행 영업의 특성상 영업시간이 실적에 유의미한 결과를 내지 않는다고 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은행이 고객을 찾아가는 게 아닌 고객이 은행을 찾아오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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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영은 기자/연합뉴스>

 

쉽게 비교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영업조직인 보험설계사를 생각해보면 이분들에게 영업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하루 4시간보다 8시간이, 12시간을 영업하는 게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겠죠. 물론 고객을 만난다고 모두 계약에 성공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은행은 정해진 영업시간 내에 끊임없이 고객들이 방문합니다. 은행을 방문하시면 느끼시겠지만 단순 입출금 계좌만 개설해도 연계된 체크카드 발급이나 신용카드 발급, 예·적금 권유 등을 받으며 대출이라도 받을 시엔 위의 상품들에 가입해야 0.1%라도 우대이율을 받지요. 물론 은행이라고 방문 고객 모두에게 상품 판매 등 영업을 할 수는 없지만요. 위와 같은 지점의 영업수익을 제외하고도 은행은 예대차익이나 수수료 같은 비이자수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며, 직간접 투자를 통한 투자 이익도 있습니다.

 

영업시간이 1시간 늘어난다고 해서 은행의 실적이 몇십 퍼센트 상승한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영업시간이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비용도 발생합니다. 아주 작게는 1시간 늘어난 영업시간 동안 발생하는 각종 유지비와 은행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인건비 문제가 발생할 겁니다.

 

3. 영업시간 변경이 은행원에게 지니는 의미

 

다른 업종이나 근무 형태 등 단순 비교는 무의미하겠지만 은행이 9시 30분에 영업을 시작하게 되면 은행원들은 8시 30분정도에 출근을 합니다. 1시간 정도 영업준비를 하는 거지요.

 

3시 30분에 영업을 종료한다고 하지만 3시 30분이 되었다고 객장에 기다리는 손님들을 내보내고 강제로 문을 닫지는 않습니다. 3시 30분은 마치 ‘라스트 오더’ 같은 개념이랄까요?

 

영업시간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에는 전장표 관리나 각종 마감 업무 수행 등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6시 혹은 그 이후에 퇴근합니다. 지점별로 상황별로 상이하겠지만 큰 문제 없는 일반적인 날에 하루 8시간 30분 정도 근무한 셈이지요.

 

만약 9시~4시로 영업시간이 늘어나면 은행원들은 8시까지 출근해야 합니다. 퇴근이야 6시에 한다고 해도 하루 근무가 9시간이 됩니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상 근무 시간은 주 40시간입니다. 한주에 초과근무를 해도 12시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52시간 제도가 시행 중이죠. 9시 30분~3시 30분 영업시간 중에도 30분의 초과근무가 발생했지만, 은행도 은행원들도 쉬쉬하며 제대로 챙기지 않았습니다(물론 이 부분에 대한 수당 지급 문제는 매년 발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8시 출근으로 1시간의 초과근무가 발생하게 되면 초과근무수당 지급에 관한 문제가 좀 더 본격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팩트체크] '은행 영업 4시 마감'…최경환 발언 검증해보니 2-9 screenshot.png

출처-<Jtbc 갈무리>

 

기존 9시부터 4시까지 영업할 때와 동일한 거 아니냐? 하시겠지만 과거에 비해 강제되는 주당 근무 시간과 초과근무 제한 등이 적용된 은행에서 모든 걸 무시하고 근무 시간을 예전처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없었다가 발생하는 비용은 두 배 더 쓰리지 않을까요?

 

초과근무 수당을 지급하자니 1시간 연장한 영업시간으로는 은행의 손실이고 지급하지 않자니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시끄럽고... 은행에서도 쉽지만은 않은 문제일 겁니다.

 

4. 노동 시간 (재)연장이 필요한 시대일까요

 

코로나시기 전후하여 은행들은 디지털화에 모든 초점을 맞췄죠. 돌이켜보면 2022년에 은행을 방문한 적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앱으로 기본적인 업무들이 모두 가능했고 비대면으로 카드발급부터 신용대출까지... 이정도면 은행에는 명절에 신권 교환하러 가야 하는 건가 싶을만 하지요.

 

그와 동시에 인원 감축과 점포 통폐합을 진행하면서 기존 전통적인 은행의 일하는 방식을 많이 바꿔놨습니다. 코로나가 남긴 유산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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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이은경 / 헤럴드경제>

 

이런 상황에서 은행도 속으로 고민이 많을 겁니다. 속으로는 열심히 계산기 두드리면서 어떻게 하는 게 더 이익인지 계산하고 있겠지요.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은행은 영업시간 정상화를 거부하지 않을 겁니다. 정상화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들은 언제나 그렇듯 답을 찾아낼 터입니다. 국민들의 정서, 정부의 압박 등 모든 게 은행 편은 아니니까요. 싫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겠지요. 

 

쉽게 공론화할 수 없겠지만, 은행도 영업시간 ‘정상화’에 고민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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